AC.195.심화

 

3. ‘58:3-5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58:3-5) They go astray from the womb, speaking a lie. Their poison is like the poison of a serpent, like the deaf poisonous asp that stoppeth her ear, that she may not hear the voice of the mutterers, of a wise one that charmeth charms [sociantis sodalitia] (Ps. 58:3–5).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시58:3-5를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이 단순히 잘못된 생각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듣지 않으려는 상태 자체를 의미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시편 140편이 ‘뱀의 독’이라는 표현을 통해 감각적 추론의 해악을 보여 주었다면, 시편 58편은 그 추론이 사람을 어떤 상태로 만드는지를 보여 줍니다.

 

특히 스베덴보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입니다. 그는 AC.195에서 바로 이어 ‘이성적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지혜로운 자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는 추론’을 ‘뱀의 독’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문제는 단순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미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창3의 뱀도 단순히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 뒤에는 이미 결론이 들어 있었습니다. ‘정녕 죽지 아니하리라.’ 즉 그는 진리를 배우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AC.195의 시편 58편 인용도 바로 이 점을 설명합니다. 독사는 술사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음성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귀머거리 독사’는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무지한 사람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배우지 못합니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들을 수 없고, 설령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미 감각과 자기 판단의 기준으로 재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AC.195의 핵심은 ‘’보다도 어쩌면 ‘귀를 막는다’는 표현에 있습니다. 독은 결과이고, 귀를 막는 것이 원인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거부하는 이유는 진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반복해서 말하는 ‘감각적 인간’도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손에 잡히는 것만 인정하며, 자기 경험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배제합니다. 그러니 천국, 영혼, 양심, 인플럭스, 주님의 섭리 같은 것은 애초에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58편의 ‘귀머거리 독사’는 AC.194에서 말한 ‘보고 느끼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의 다음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그런가?’라고 묻습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확인해야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상태가 됩니다. 그때는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독사의 귀가 막힌 상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들을 수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AC.189에서도 천국으로 인도되기 위해서는 ‘선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과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인식의 첫걸음은 ‘내가 모를 수도 있다’는 인정입니다. 반대로 귀머거리 독사는 ‘나는 이미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AC.195가 시편 58편을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뱀의 독은 단순히 잘못된 논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진리의 음성에 귀 막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창3의 뱀이 상징하는 감각적 추론의 가장 위험한 결과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다시 빌려 보자면, 진정한 위험은 ‘이성질’ 자체보다 ‘이성질을 하고 있다는 말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AC.195의 귀머거리 독사는 바로 그 상태를 보여 줍니다. 자기 판단이 최종 권위가 되어 버린 사람, 그래서 더 이상 지혜로운 자의 음성도, 주님의 음성도 들을 수 없게 된 사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편은 창3의 뱀이 단순한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닫힘과 영적 청각의 상실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AC.195, 심화 2, ‘시140:3’

AC.195.심화 2. ‘시140: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시140:3) They sharpen their tongue like a serpent; the poison of the asp is under their lips (Ps. 140:3). AC.195에서 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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