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1-213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창3:7)
211. 그들의 ‘눈이 밝아져’는 그들이 어떤 내적 직관을 통해, ‘자기들이 벗은 줄을’, 즉, 더 이상 전처럼 순진함이 아닌, 악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시인하게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Their “eyes being opened” signifies their knowing and acknowledging, from an interior dictate, that they were “naked,” that is, no longer in innocence, as before, but in evil.
212. ‘눈이 밝아져’가 일종의 내적 직관을 상징하는 것임은 말씀에 나오는 유사한 표현들, 가령, 발람이 자신을 가리켜 말하는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그 구절에서 발람은 전능자의 환상을 보고 나서는 자신을 가리켜 ‘눈을 감았던 자’(민24:3, ※ 이 부분을 왜 ‘감았던’으로 번역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른 번역은 ‘뜬’입니다.)라고 합니다. That by having the “eyes opened” is signified an interior dictate is evident from similar expressions in the Word, as from what Balaam says of himself, who in consequence of having visions calls himself the “man whose eyes are opened.” (Num. 24:3)
그가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And he lifted up his enunciation, and said, Balaam the son of Beor has said, and the man whose eyes are opened has said; (민24:3)
그리고 요나단인데요, 그는 벌집의 꿀을 조금 맛본 후, 그것, 곧, 아버지 사울의 명령이 악함을 직관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즉, 내적 시야가 열려 전엔 몰랐던 것을 이젠 보게 되었다.” 라고 말이지요. And from Jonathan, who when he tasted of the honeycomb and had a dictate from within that it was evil, said that his “eyes saw,” that is, were enlightened, so that he saw what he knew not. (1 Sam. 14:29)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And from Jonathan, who when he tasted of the honeycomb and had a dictate from within that it was evil, said that his “eyes saw,” that is, were enlightened, so that he saw what he knew not. (삼상14:29)
더욱이 말씀에서 ‘눈’은 종종 이해력과, 거기서 나오는 내적 직관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됩니다. 시편입니다. Moreover in the Word, the “eyes” are often used to denote the understanding, and thus an interior dictate therefrom, as in David: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Lighten mine eyes, lest I sleep the sleep of death (시13:3)
여기 ‘눈’은 이해력을 가리킵니다. where “eyes” denote the understanding.
에스겔에서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겔12:2)라 하십니다. So in Ezekiel, speaking of those who are not willing to understand, who “have eyes to see, and see not.” (겔12:2)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 Son of man, thou dwellest in the midst of a rebellious house, who have eyes to see, and see not; they have ears to hear, and hear not; for a rebellious house are they. (겔12:2)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Shut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사6:10)
위 말씀은, 그들로 소경이 되게 해야지 안 그러면 그들이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denotes that they should be made blind, lest they should understand.
모세 또한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So Moses said to the people,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Jehovah hath not given you a heart to know, and eyes to see, and ears to hear, (신29:4)
여기서 ‘마음’은 의지를, ‘눈’은 이해력을 각각 가리킵니다. where “heart” denotes the will, and “eyes” denote the understanding.
이사야에서는 주님을 가리켜,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사42:7)라 하십니다. In Isaiah it is said of the Lord, that “he should open the blind eyes.”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to open the blind eyes; to bring the bound out from the dungeon; and from the prison house those that dwell in darkness. (사42:7)
역시 같은 선지서에서,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사29:18)라 하셨습니다. And in the same prophet: “The eyes of the blind shall see out of thick darkness and out of darkness.”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And in that day shall the deaf hear the words of the book; and the eyes of the blind shall see out of thick darkness, and out of darkness. (사29:18)
213.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는 그들이 더 이상 전처럼 순진함이 아닌, 악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시인하게 되었음을 상징하는데요, 이것은 앞장 마지막 구절,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를 보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그들이 벌거벗었으므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로 읽고, 순진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By “knowing that they were naked” is signified their knowing and acknowledging themselves to be no longer in innocence as before, but in evil, as is evident from the last verse of the preceding chapter, where it is said,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and where it may be seen that “not to be ashamed because they were naked” signifies to be innocent.
그들의 ‘부끄러워함’이 상징하는 것은 오히려 정반대인데요, 본문 7절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하는 부분 때문입니다. The contrary is signified by their “being ashamed,” as in this verse, where it is said that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hid themselves”;
순진함이 전혀 없는 곳에서는 벌거벗음은 일종의 부도덕함이요, 창피함입니다. 그것엔 악을 생각함이라는 의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for where there is no innocence, nakedness is a scandal and disgrace, because it is attended with a consciousness of thinking evil.
이런 이유로, 말씀에서 ‘벌거벗음’은 수치스럽고 악한 그런 종류의 일에 사용되며, 전도된 교회를 서술할 때 사용됩니다. 에스겔입니다. For this reason “nakedness” is used in the Word as a type of disgrace and evil, and is predicated of a perverted church, as in Ezekiel:
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Thou wast naked and bare, and trampled on in thy blood. (겔16:22)
그들이 너를 벌거벗은 몸으로 두어서 네 벗은 몸을 드러낼 것이라 They shall leave her naked and bare, and the nakedness shall be uncovered. (겔23:29)
계시록에서는 In John: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I counsel thee to buy of me white raiment that thou mayest be clothed, and that the shame of thy nakedness do not appea. (계3:18)
그리고 마지막 날에 관하여는 And concerning the last day:
보라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Blessed is he who watcheth, and keepeth his garments, lest he walk naked and they see his shame. (계16:15)
신명기에서는 In Deuteronomy:
사람이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줄 것이요 If a man hath found some nakedness in his wife, let him write her a bill of divorcement. (신24:1)
같은 이유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단에 나아가 봉사할 때, 베로 속바지를 입어 하체를 가리도록, 안 그러면 죄를 짊어진 채 죽는다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For the same reason Aaron and his sons were commanded to have linen breeches when they came to the altar, and to minister, to “cover the flesh of their nakedness, lest they should bear iniquity, and die.”
42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43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42And thou shalt make for them breeches of linen to cover the flesh of nakedness; from the loins and even to the thighs they shall be. 43And they shall be upon Aaron, and upon his sons, when they come in to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or when they approach the altar to minister in the holiness; lest they bear iniquity, and die; it is a statute of an age for him and for his seed after him. (출28: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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