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13
190. 태고교회의 세 번째 상태, 곧 자신의 본성(own)을, 사랑할 정도로 원했던 태고교회의 상태를 다루는 장입니다. The third state of the most ancient church is treated of, which so desired its own as to love it.
※ 즉,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거진 패션(passion, 격정, 욕정)에 이를 정도가 된 것입니다.
191. 자아 사랑, 즉 그들의 본성 사랑으로 인해 이제 그들은 감각(sense)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않기 시작했는데, 이때 이 감각적인 부분을 ‘뱀’으로, 자아 사랑, 혹은 그들의 본성 사랑을 ‘여자’로, 그리고 합리(合理), 이성(理性)을 ‘남자’로 표현하였습니다. Because from the love of self, that is, their own love, they began to believe nothing that they did not apprehen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is represented by the “serpent”; the love of self, or their own love, by the “woman”; and the rational by the “man.”
※ 즉, 자아 사랑에 이끌린 나머지 이들은 이때부터 육체적 감각들을 가지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뱀은 감각 능력, 여자는 자아 사랑, 그리고 남자는 이성적 판단력에 대한 표현입니다.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And the woman said unto the serpent, We may eat 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But of the fruit of the tree which is in the midst of the garden, God hath said, Ye shall not eat of it, neither shall ye touch it, lest ye die.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And the serpent said unto the woman, Ye shall not surely die.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 knowing good and evil.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And the woman saw that the tree was good for food, and that it was pleasant to the eyes, and a tree to be desired to give intelligence, and she took of the fruit thereof and did eat, and she gave also to her man [vir] with her, and he did eat.
192. 그래서 뱀, 즉, 감각 파트가 여자를 설득하여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이 과연 그런지를 보게 하는데, 이걸 가리켜 ‘지식의 나무를 먹는 것’이라 하고, 그리고 덩달아 이런 걸 덥석 동의한 남자의 이성을 ‘그도 먹은지라’ 한 것입니다. (1-6절) Hence the “serpent,” or sensuous part, persuaded the woman to inquire into matters pertaining to faith in the Lord in order to see whether they are really so, which is signified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and that the rational of man consented is signified by “the man that he did eat” (verses 1–6).
※ ‘주님 신앙 안에 있는 사실들’은 신앙에 관한 교리들을 말합니다. 뱀, 즉, 감각들이 여자, 곧 자아 사랑으로 하여금 이 주님 신앙의 교리들을 의심하게 한 겁니다. 이럴 때, 사람의 이성 또한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자아 사랑에 휩쓸려 버리고 말게 된 그런 내용입니다.
7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And the eyes of them both were opened, and they knew that they were naked; and they sewed fig leaves together, and made themselves girdles. 8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And they heard the voice of Jehovah God going to itself in the garden in the air of the day; and the man and his wife hid themselves from the face of Jehovah God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And Jehovah God cried unto the man [homo], and said unto him, Where art thou?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And he said, I heard thy voice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and I hid myself.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woman, Why hast thou donethis?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193.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악 가운데 있음을 지각했습니다. ‘눈이 밝아져’와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가 상징하는, 남은 퍼셉션 (7-8절), 그리고 그들이 치마라고 만들어 가렸던 무화과 나뭇잎들 (7절), 부끄럽다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 것 (8-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인과 자백 (10-13절) 등을 볼 때, 그들 안에 아직은 자연적 선이 남아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But they perceived that they were in evil; from which remnant of perception, signified by their “eyes being opened,” and by their “hearing the voice of Jehovah” (verses 7–8), and from the fig-leaves of which they made themselves girdles (verse 7), and from their shame or hiding in the midst of the tree of the garden (verses 8–9), as well as from their acknowledgment and confession (verses 10–13), it is evident that natural goodness still remained in them.
※ 여기 ‘퍼셉션이 남았다’는 것은 그 흔적이 조금 남은 것이고요, ‘치마’는 그저 아랫도리 가운데만 살짝 가릴 정도인 가리개(loincloth)를 말합니다. 자연적 선이란, 세속적 종류의 선량함을 말합니다.
※ 이 상태가 바로 자아 사랑에 빠진 나머지 감각적 삶을 추구, 이성도, 합리도 다 마비된 사람의 실존인 것입니다.
창3:14-19
234. 결국은 홍수를 만나게 될 태고교회의 이어지는 상태가 여기 기술됩니다. 그리고 그때 교회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예언을 주십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235. 감각으로 파악이 안 되는 것들은 도무지 믿으려고를 하지 않는 감각 파트, 이게 바로 ‘뱀’인데요, 이런 태도 때문에 저주를 자초했고,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14절)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하여 달려 들어가게 되는 걸 막기 위해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5절)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self) 혹은 본성(own)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비록 이런 상황을 ‘다스리도록’ 이성이 그들에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6절)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verse 16)
※ 위 본성(own)은 주님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고자 하는 본성(autonomy)을 말합니다.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238. 그 다음은 합리의 퀄러티에 대한 설명입니다. 여기 보면, 남자, 남편(합리)은 동의했고, 저주를 자초하였으며, 결국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성은 없고 대신 추론만 남게 되었습니다. (17절)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 ‘합리의 품질’(the quality of the rational)이란, ‘합리적 능력의 본성’(the nature of this rational capacity)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 추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왜곡된 논리만 남은 겁니다. 궤변이라고도 하지요.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239. 저주와 황폐, 그리고 죽음을 초래하는 그들의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18절)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verse 18)
※ ‘황폐’로 번역한 영어 베스테이션(vastation)은 현대 영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현대 영어로는 루이네이션(ruination, 파괴), 디스트럭션(destruction, 파멸) 정도가 되겠습니다.
※ 영어 페린(ferine) 또한 마찬가지로, 지금은 페럴(feral)을 사용하며, 그 뜻은 죽음을 초래하다, 치명적이다입니다. 이 ‘죽음을 초래하는 본성’이란, 그들의 본성이 동물적인 본성, 짐승과도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의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게 되었음을,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됨으로써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19절)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verse 19)
※ ‘사람’이라는 호칭은 본래 오직 주님에게만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인류에게 처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이 ‘사람’이셨기 때문이며, 그래서 첫 사람들, 곧 아담 교회 사람들, 태고교회 사람들은 감히 이 용어를 자기들에게까지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을 ‘사람’이라 할 수 있으려면 자기들에게 주님의 성품, 신성, 주님과 닮은 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 19절 본문에서 왜 이들이 이제 더 이상은 ‘사람’이라 할 수 없게 되었나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241. 태고적 사람들은, 천적 인간들이었는데요,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면서도, 사실은 그 사물들이 상징하고 표현하는 하늘의 것, 주님의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그들의 시력은 그저 돕는 도구였을 뿐이었고, 그래서 그 결과는 그들의 말, 언어였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말보다는 말에 담긴 취지만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뜻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 ‘아, 지금 저 사람이 하고픈 말은 사실은 이거구나...’ 하고 딱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습니다. 앞뒤 무슨 장황한 말을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보는 그것을 사랑했고, 그들의 마음은 거기에 사로잡혔으며,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하늘과 주님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도구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 그저 도구일 뿐이어야 하는 돈이 안타깝게도 원리가 되고, 목적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이 원리를 가지고 추론하며, 그래서 그렇게 자신들을 소경으로 만들어 갑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문법적 특이점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창3:20-24
280. 태고(太古) 교회와, 사라진 사람들이 여기서 간략하게 다루어집니다; 즉, 그 교회가 끝났을 때, 결국 홍수로 이어진 그 후손들을 포함한 이야기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ose who fell away, are here summarily treated of; thus also its posterity down to the flood, when it expired.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81. 천적(天的, celestial)이었던 태고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주님 신앙의 생명으로 시작한 교회이며, 이 교회를 가리켜 ‘하와’(Eve),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20절)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 ‘천적이었던 태고교회’란, ‘하늘의 속성을 가졌던 태고 시대 참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282.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천적 영적 선이 있었습니다; 이어 그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해서는, 그들에게는 자연적 선이 있었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으신 가죽옷’으로 상징하였습니다. (21절)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 여기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란 ‘천적 선의 영적 종류’(a spiritual kind of heavenly good), 즉, 천적 선이 일종의 영적 선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참고로, 선에는 천적 선, 천적 영적 선, 그리고 자연적 선이 있습니다. 천적 선은 옷을 입지 않으며, 천적 영적 선은 광채 나는 흰옷을, 자연적 선은 가죽옷을 입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자연적 선(natural good)은 세속적 선(earthly good)입니다.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283. 네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자연적 선이 소멸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만일 그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 안에서 새롭게 빚어지거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더라면, 그들은 소멸되어 버리고 말았을 텐데요,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의미가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22절)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 여기 ‘영생할까 하노라’의 영생은, 지옥에서 영생하는 것, 곧 지옥 같은 상태에 영원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즉, 사랑과 신앙에 관한 것, 다시 말해, 주님에게 속한 것을 가지고 신성모독을 하기 때문인데요, 이 신성모독은 마치 영혼의 코로나 같아서 사람의 영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신성모독이란 주님의 것에 사람의 사사로움을 섞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사람의 영은 성과 속이 뒤섞여 영원히 그를 천국과 지옥으로 서로 끌어당겨 찢는 듯한 고통, 즉, 지옥과도 같은 고통 가운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유대인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숨기셨습니다. 유대인의 속성상, 그들이 천국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신성모독의 길을 걸을 것이며, 그것은 곧 그들을 영원히 파멸시킬 것임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알고 시인 후 부인하여 신성모독의 길에 들어서느니 차라리 알고 시인조차 하지 않는 게, 모르는 게 낫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맞춰 나름 최대한으로 보호하신 것입니다.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284. 다섯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후손에 이르러는 드디어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되었고, 그리고 거듭남 이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이런 내용입니다. (23절) Of the fifth posterity, which was deprived of all good and truth, and was reduced to the state in which they had been previous to regeneration, which is meant by his being “sent forth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verse 23)
※ ‘에덴동산’은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 지혜와 지성을 갖춘 천적 인간, 천인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가 이 모든 것을 박탈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 그 아름다웠던 태고교회가, 일곱째 날, 천적 인간, 천인(天人)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그 교회, 그 순결한 주님 신앙의 교회였던 아담교회가 이렇게까지 퇴행, 다시 창1:2 상태인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285.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후손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기억-지식을 박탈당했고, 그들의 본성에는 아주 더러운 사랑들과 신념들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로 말미암아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이 모독을 당할 것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가 상징하는 것이 이런 내용입니다. (24절)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 여기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는 그에게서 선에 관한 모든 의지와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를 깡그리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그것들과 분리되었고, 그렇게 ‘사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것들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더 이상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 ‘동쪽에 그룹들을 두어’는 무슨 비밀스런 신앙의 일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이런 뜻인 것은, ‘에덴동산 동쪽’은 天的인 것이며, 지성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며. ‘그룹’이란, 저런 사람이 신앙의 일들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 ‘두루 도는 불 칼’은 비정상적인 것들을 원하고, 그 결과 그런 것들로 고착된 자아 사랑입니다. 그는 정말 거룩한 것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본능적으로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게 끌려 휩쓸려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즉, 거룩한 것에 대한 신성모독을 금하시는 이유입니다.
286. 이 장과 앞의 장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절들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영적인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다음은, 천적 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고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 뒤에, 사라진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차례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과 홍수 때까지 이른 그들의 계승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and the preceding chapters, down to the verses now under consideration, tre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d of their regeneration; first, of those who lived like wild animals, but at length became spiritual men; then of those who became celestial men, and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afterwards of those who fell away, and their descendants, in regular order through the first, second, and third posterities and their successors, down to the flood.
이 장을 포함, 이어지는 절들을 통해, 태고교회의 사람이 형성된 때부터 홍수 때까지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요를 만나게 됩니다; 즉, 이것이 앞서 다룬 모든 내용, 곧 창세기 맨 앞 첫 세 장의 결론입니다. In the verses following, which conclude the chapter, we have a recapitulation of what occurred from the period when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formed, until the flood; thus it is a conclusion to all that goes bef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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