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아래 본문과 글만 달랑 보내어 그에 대한 답 또한 달랑 보내봤습니다 ㅎㅎ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바울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15:1‭-‬2‬) Some people came from Judea and started teaching the Lord's followers that they could not be saved, unless they were circumcised as Moses had taught. This caused trouble, and Paul and Barnabas argued with them about this teaching. So it was decided to send Paul and Barnabas and a few others to Jerusalem to discuss this problem with the apostles and the church leaders. (Acts 15:1-2)

유대인의 전통인 할례 문제가 대두됩니다. 원래 할례는 구원받은 자의 표징이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닙지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갑론을박이 커지자 문제의 정리를 위한 최초의 예루살렘 공회가 개최됩니다.

 

 

답변

 

구원이란 무슨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그런 게 아니고, 내가 과연 그 나라에서 지낼 수 있는 성품, 역량이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길,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하신 것도 그래서인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세계 최고 글로벌기업에 낙하산으로 들어간들 그곳에서 요구하는 업무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못 견디고 나오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할례는 일종의 증명, 곧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일종의 증표 행위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여 정말 내게 속한, 내 백성임을 표현하고 싶으면 그 증표로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지요. 즉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으로서 자기는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표현하기 위해 할례를 받는, 순서상으로 정반대가 되는 개념이지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신30:6)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 할례를 얼마나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고요, 그리고 또 개신교를 포함, 전체 기독교 역시 구원에다가 ‘은혜’라는 개념을 섞음으로써 이 할례의 의미를 이상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은혜’의 참된 의미는 한 인간의 평생, 그가 선과 악, 진리와 거짓 중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동행하시겠다는 것이지, 그가 아직 천국에 머무를 내적 역량이 안 되는데도 그냥 교회 다니고 예수 믿는다 하니, 눈 한번 감아주시며 천국 입국을 허락하시는,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신들, 그가 천국에 머무를 내적 역량, 곧 그의 속 사람이 이미 천국 상태가 아닌 이상, 그는 천국 문턱도 넘지 못하고 바로 뛰쳐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듭, ‘할례’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대 교회가 요구했던, 겉 사람에 관련된 증표요, 예식이었음을, 그리고 오늘날에는 주님을 사랑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체어리티(charity)의 삶으로 이 마음의 ‘할례’를 나타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답이 되었을까요? ㅎㅎ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5-6, AC.90-93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Verse 5, 6. And there was no shrub of the field as yet in the earth, and there was no herb of the field as yet growing, because Jehovah God had not caused it to rain upon the earth. And there was no man to till the ground. And he made a mist to ascend from the earth, and watered all the faces of the ground.

 

※ 5, 6절 속뜻

 

여기 비, 안개는 천적 인간에게만 허락되는 천국 평화의 평온함입니다. 신앙의 진리, 사랑의 선의 생명이 바로 이 천국 평화의 기쁨에서 나옵니다. 이런 비가 내리지 않은 땅은 아직 천적 인간이 아닌 영적 인간입니다. 들의 초목, 밭의 채소는 겉 사람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 곧 그의 합리적 마인드와 기억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하며, 나중에 그가 천적 인간이 되면 이 역시 천적 영적 기원, 곧 천국 평화의 샘에서 나옵니다.

 

 

90. ‘들에는 초목’(the shrub of the field)과 ‘밭에는 채소’(the herb of the field)는 보통은 겉 사람한테서 나오는 모든 걸 의미합니다. 겉 사람은 아직 영적 상태일 동안은 ‘땅’(earth)이라 하지만, 천적 상태가 되면 ‘땅’(ground), ‘들’(field), ‘밭’(field)이라 합니다. ‘비’(Rain)는, 이는 곧 ‘안개’(mist)라고 하게 되는데요, 전투가 그칠 때 오는 평화의 평온 상태(the tranquility of peace)입니다. By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are meant in general all that his external man produces. The external man is called “earth” while he remains spiritual, but “ground” and also “field” when he becomes celestial. “Rain,” which is soon after called “mist,” is the tranquility of peace when combat ceases.

 

 

91. 그러나 이런 것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인간의 상태(what man’s state is)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지각하는 것이 불가능한데요(cannot possibly be perceived), 아주 깊숙이들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상태란 영적 상태에서 천적 상태로 변화되어가는 동안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가 영적 상태에 있는 동안은 그의 겉 사람은 속 사람에게 아직 기꺼이 복종하려고도, 그리고 섬기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 결과 둘 사이엔 전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상태가 천적 상태가 되면, 이때는 겉 사람이 속 사람에게 복종, 섬기기를 시작하고, 그 결과 전투가 그치며, 평온한 상태(tranquility)가 됩니다. (87번 글 참조) 이 평온한 상태를 ‘비’와 ‘안개’로 상징하는데요, 이는 마치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수분 공급을 받아 적셔지는 것 같기 때문이지요. ‘들에는 초목’, ‘밭에는 채소’라고 하는 것들은 특별히 천적 영적 기원(a celestial spiritual origin)에서 나오는 합리적 마인드와 기억에 관한(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것들인데요, 이것들은 바로 평화의 자녀, 후손(the offspring of peace)이라 할 수 있는 평온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But what these things involve cannot possibly be perceived unless it is known what man’s state is while from being spiritual he is becoming celestial, for they are deeply hidden. While he is spiritual, the external man is not yet willing to yield obedience to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re is a combat;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then the external man begins to obey and serve the internal, and therefore the combat ceases, and tranquility ensues (see n. 87). This tranquility is signified by “rain” and “mist,” for it is like a vapor with which the external man is watered and bedewed from the internal; and it is this tranquility, the offspring of peace, which produces what are called the “shrub of the field,” and the “herb of the field,” which, specifically, are things of the rational mind and of the memory [rationalia et scientifica] from a celestial spiritual origin.

 

 

92. 영적 전투라든지 탐욕과 거짓으로 인한 불안 같은 게 그칠 때, 그때 겉 사람에게 찾아오는 평화의 평온 상태의 본성(The nature of the tranquility of peace of the external man)은 평화라는 상태에 익숙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이 상태는 모든 기쁨의 개념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기쁘고 즐거운 상태(so delightful)입니다. 이 상태는 전투가 끝난 상태일 뿐 아니라, 내적 평화에서 나오는 생명(life proceeding from interior peace)이며, 형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겉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태입니다. 신앙의 진리, 사랑의 선 등 그 생명이 평화의 기쁨에서 나오는(which derive their life from the delight of peace) 이런 것들이 그때 태어납니다. The nature of the tranquility of peace of the external man, on the cessation of combat, or of the unrest caused by cupidities and falsities, can be known only to those who are acquainted with a state of peace. This state is so delightful that it surpasses every idea of delight: it is not only a cessation of combat, but is life proceeding from interior peace, and affecting the external man in such a manner as cannot be described; the truths of faith, and the goods of love, which derive their life from the delight of peace, are then born.

 

 

93. 천적 인간의 상태, 곧 비가 내려 생생해진(refreshed by the rain), 평화의 평온함(the tranquility of peace)이라는 선물을 받은, 그리고 악과 거짓의 노예라는 상태에서 변화 받은 천적 인간의 상태를 주님은 에스겔에서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The state of the celestial man, thus gifted with the tranquility of peace—refreshed by the rain—and delivered from the slavery of what is evil and false, is thus described by the Lord in Ezekiel:

 

25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26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27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의 멍에의 나무를 꺾고 그들을 종으로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후에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겠고, 31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겔34:25-27, 31) I will make with them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beast to cease out of the land, and they shall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and sleep in the woods; and I will make them and the places round about my hill a blessing; and I will cause the rain to come down in his season; rains of blessing shall they be. And the tree of the field shall yield its fruit, and the earth shall yield its increase, and they shall be upon their ground in confidence, and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when I have broken the reins of their yoke, and delivered them out of the hand of those that make them to serve them; and ye my flock, the flock of my pasture, ye are a man, and I am your God. (Ezek. 34:25–27, 31)

 

그리고 이것은 ‘셋째 날’(the third day)과 같은 건데요, 이 날은 말씀에서 ‘일곱째 날’(the seventh)과 같은 의미입니다. 호세아에 보면 말입니다. And that this is effected on the “third day,” which in the Word signifies the same as the “seventh,” is thus declared in Hosea: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6:2-3) After two days will he vivify us; in the third day he will raise us up, and we shall live before him and we shall know, and shall follow on to know Jehovah: his going forth is prepared as the dawn, and he shall come unto us as the rain, as the late rain watering the earth. (Hos. 6:2–3)

 

에스겔에서는 고대 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이 상태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다’(the growth of the field) 비유하고 있습니다.And that this state is compared to the “growth of the field” is declared by Ezekiel, when speaking of the ancient church:

 

내가 너를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겔16:7) I have caused thee to multiply as the growth of the field, and thou hast increased and hast grown up, and hast come to excellent ornaments. (Ezek. 16:7)

 

그리고 그걸 또 비교하기를 And it is also compared to: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사60:21) A shoot of the Lord’s planting, and a work of the hands of Jehovah God. (Isa. 60:21)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