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느 경건하신 원로(39생) 여목사님이 보내오신 고백과 그에 대한 저의 답글입니다.

 

먼저 여종의 글입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목사님, 너무 두렵고 떨리는 말씀, 저는 얼마나 추악한지 모릅니다. 겉치레만 그럴 듯, 속은 형용할 수 없는 내면입니다. 어찌 표현할 수 없이... 자존심에, 이기심에... 감히 글로 표현 못 하겠습니다. ~~~, 끝이 없습니다. 어서 부르시기 전에 변화되어야지요... 죄송하지만 기도해주세요.

 

저는 목사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이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어 그 귀한 보화를 무지한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귀한 날이 이르도록...

 

귀한 긴 시간 소비시켜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가내 평강하소서... 🙏🙏🙏🙏🙏🙏

 

 

다음은 다음날 제가 보내드린 답글입니다.

 

목사님, 다음 글은 ‘천국과 지옥’ 513번 글인데요, 53장, ‘사람의 사후 셋째 상태’에 나오는 겁니다.

 

교육은 많은 공동체의 천사들이, 특히 북쪽과 남쪽 공동체의 천사들이 맡는다. 그쪽 천사 공동체들은 선과 진리를 아는 데서 오는 지성과 지혜 안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 장소들은 북쪽을 향하고 있고, 다양하며, 모든 영이 각자의 성격과 수용 능력에 따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천국적 선의 종류와 다양함에 따라 구분되고 배치되어 있다. 교육 장소들은 아주 멀리까지 둥글게 퍼져 있다. 교육을 받을 선한 영들은 중간 영계에서의 그들의 둘째 상태가 완료되면 주님의 인도로 이 장소들로 오게 된다. 그러나 모두가 다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들은 세상에서 이미 가르침을 알고 있었고, 주님에 의해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되어 있었으므로 다른 길을 거쳐 천국으로 올라간다. 그중 일부는 죽은 뒤 바로 올라가고, 일부는 선한 영들과 잠시 머물면서 세상에서 명예와 재물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애정의 탁한 요소들이 제거되어 정화된 후에 올라간다. 일부는 먼저 버려짐을 겪는데, 이는 낮은 땅이라고 하는 발바닥 밑에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이들은 거기서 심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은 선한 삶을 살았지만, 그릇된 생각을 확신한 사람들이다. 그릇된 생각들은 확신하면 굳게 달라붙고, 그것이 떨어져 나가기 전까지는 진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다. 버려짐의 과정은 ‘천국의 비밀’에서 다룬 바 있다.주278 (HH.513)

 

이중 ‘주278’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나오는데요,

 

① 내세에는 황폐함(vastations, 버려짐)이라는 게 있는데, 그러니까 생을 마감하고 내세에 들어가는 사람들한테 일어나는 것이다. (AC.698, 7122, 7474, 9763)

 

② 선한 사람들은 거짓에 대해 황폐화가 일어나고, 반면 악인들은 진리에 대해 황폐화가 일어난다. (AC.7474, 7541, 7542)

 

③ 선한 사람들이 겪는 황폐함은 지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벗어버리는 황폐함인데, 이것들은 세상에 살 동안 함께했던 것들이다. (AC.7186, 9763)

 

④ 또한 악과 거짓의 제거, 그리고 그렇게 해서 주님한테서 나오는 천국 선과 진리의 유입을 위한 여지, 그리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AC.7122, 9330)

 

⑤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런 것들이 제거될 때까지는 불가능한데, 그 이유는 그것들은 천국에 있는 것들을 방해하고, 그들과 조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AC.6928, 7122, 7186, 7541, 7542, 9763)

 

⑥ 천국으로 올려지는 사람들은 그래서 미리 준비된다. (AC.4728, 7090)

 

⑦ 준비도 되기 전, 천국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AC.537, 538)

 

⑧ 황폐함이라는 과정을 마치고 천국으로 올려진 사람들의 내적 밝아짐과 기쁨의 상태,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리셉션에 관하여 (AC.2699, 2701, 2704)

 

⑨ 이들 황폐함의 과정이 진행되는 지역을 가리켜 낮은 땅이라고 한다. (AC.4728, 7090)

 

⑩ 그 지역은 지옥들로 빙 둘러싸인 발바닥 아래이다. 그곳에 대한 설명(AC.4940–4951, 7090)과 그곳을 경험한 이야기(AC.699)

 

⑪ 그 무엇보다 훨씬 더 감염되게 하고, 황폐하게 하는 지옥들이란 무엇인가 (AC.7317, 7502, 7545)

 

⑫ 선한 사람들을 감염시켜 황폐하게 한 사람들은 나중에는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을 피하며, 그들로부터 돌아선다. (AC.7768)

 

⑬ 이들 감염과 황폐의 과정은 악과 거짓의 들러붙은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진행되며, 그들의 질과 양에 따라 계속된다. (AC.1106–1113)

 

⑭ 일부는 황폐화 과정을 진심으로 기꺼이 원한다. (AC.1107)

 

⑮ 일부는 두려워하면서 황폐화 과정을 밟는다. (AC.4942)

 

⑯ 일부는 세상에서 행한 악과 세상에서 한 거짓된 생각들로 감염되어 있다. 그들은 이 악과 거짓 때문에 근심하고 양심의 큰 고통을 겪는다. (AC.1106)

 

⑰ 일부는 진리 알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운데 영적 감금 상태에 있는, 그런 식으로 이 과정을 지나는데, 이 상태는 진리에 관한 무지와 진리를 차단하는 상태다. (AC.1109, 2694)

 

⑱ 일부는 잠드는 식으로, 일부는 깨어있음과 잠이 든, 그 중간 상태에 있는 식으로 (AC.1108)

 

⑲ 자기가 한 일을 공으로 여긴 사람들한테는 자신들이 마치 장작을 패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AC.1110)

 

⑳ 다른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엄청한 다양함으로 (AC.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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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예를 들어, ‘AC.699’라는 표현은, ‘Arcana Coelestia 699번 글’이라는 뜻입니다.

 

Arcana Coelestia’는 라틴어로, ‘天界秘義, 천국의 비밀’ 등으로 옮길 수 있고, 이는 주님이 풀어 주시는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을 스베덴보리가 총 7년에 걸쳐 딕테이션한 것입니다. 글 번호가 10,837번으로 끝나지요.

 

목사님, 어제 목사님 마지막 글을 읽고 계속 생각하게 하시더니 오늘 아침, 이렇게 답을 하게 하시네요...

 

목사님, 우리 중에 과연 누가 사후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을까요? 스베덴보리는 그런 사람을 보긴 보았지만 아주 아주 희귀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지옥으로 직행하는 사람들도 보았답니다.

 

위 ⑦번 글처럼 저 역시 이 상태로 만일 임종, 그리고 천국으로 바로 들어가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위 ④번 글처럼 사후, 저렇게 천국에 올라갈 준비를 시켜주시는 주님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 역시 ⑬번 글처럼 제게 들러붙은 것들을 떼어내는 과정이 진행되겠지만, 욥의 고백처럼 정금, 순금처럼 정제되어 천국에 올라갈 줄 믿습니다.

 

목사님이야말로 주님 보시기에 순금(pure gold)이시며, 극락조(a bird of paradise)이십니다. 목사님은 스스로 자신을 배설물이요, 거기 앉아 있는 파리로 여기시기 때문인데요, 참으로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그런 존재임을 시인, 인정, 그리고 믿습니다.

 

그러니 목사님, 더 이상 자꾸 저거하지 마시고, 오히려 주님의 사랑과 호의, 선의 안에 머무르시며, 감사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에게 와있는 천사들이 목사님 홀로 계시는 방과 거실을 삼층천 천국 향기로 가득 채우실 줄 믿사오며...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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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속뜻

 

 

...오늘은 특별히 우리의 헌금생활 중 십일조에 대하여, 그 아르카나(arcana, 秘義, 속뜻)에 대하여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십일조에 관한 거의 첫 본문이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창세기 14장, 아브람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드린 부분입니다.

17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14:17-20)

여기 20절,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에 나오는 이 ‘십분의 일’에 관하여, 창세기 주석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1738번 글을 보면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십일조(tithes)가 리메인스(remains)를 상징한다, 가리킨다는 사실은 앞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리메인스라는 것은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선행, 인애)의 모든 상태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의 모든 상태, 이웃 사랑의 모든 상태들을 말하며,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순진함(innocence)과 평화(peace)의 모든 상태, 곧 천국의 모든 상태이며, 주님은 이런 상태, 이런 리메인스를 거듭남의 과정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이 상태들이 사람에게 그 유아기 때부터 주어져 어른이 되면서 점점 줄어들지만 그러다가 거듭남이 시작되면 사람은 다시 이번에는 새로운 리메인스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입니다. 사람이 진정 사람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리메인스로부터, 또는 리메인스에 의해서이며, 만약 사람에게 이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상태가 없다면, 그래서 결국 순진함의 상태가 없다면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며, 그때는 오히려 짐승보다도 더 최악이 됩니다. 사람은 순진함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생명의 다른 상태들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말하는 리메인스는 시험을 이김으로써 얻는 리메인스입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싸워 이긴 후, 멜기세덱에게 바친 십일조를 가지고 이 리메인스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리메인스는 사랑의 모든 상태, 곧 사랑의 모든 천적인 것들인데, 주님도 마리아로 유전한 인성을 입고 계신 동안은 지속적인 싸움과 이김을 통해서 힘들게 습득하신 것입니다. 이것으로 주님은 끊임없이 주님의 신적 본성과 결합하셨고, 같은 방식으로 주님의 인성이 사랑, 곧 생명 그 자체, 곧 여호와가 되실 때까지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That this signifies remains derived from victor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tithes” as being remains (spoken of before, n. 576). But what remains are may be seen above (n. 468, 530, 560–561, 661, 1050), namely, that they are all the states of love and charity, and consequently all the states of innocence and peace, with which a man is gifted. These states are given to man from infancy, but less by degrees as the man advances into adult age. But when a man is being regenerated, he then receives new remains also, besides the former, thus new life. For it is from remains, or by remains, that a man is a man; for without the state of love and charity, and without the state of innocence—which states instill themselves into the other states of his life—a man is not a man, but is worse than any wild beast. The remains acquired in the combats of temptations are those which are here meant. These remains are what are signified by the tithes given to Melchizedek by Abram; and they are all the celestial things of love which the Lord procured to himself by the continual combats and victories by which he was continually being united to his Divine essence, until his human essence in like manner became love, or the being of life, that is, Jehovah.

 

이해가 되시나요? 좀 어렵지 않으신지... 스베덴보리의 글들은 천계(天界), 초월적 지혜의 나라의 일을 매우 제한적인 지상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는지 원문은 사실 이보다 더 간략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 글과 글 사이 무슨 배경지식이 없으면 한 번에 이해하기가 다소 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위 주석을 제가 이해한 바로 좀 쉽게 풀이하자면...

모든 사람은 거듭남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단은 주님으로부터 첫 번째 리메인스라는 것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어떻게든 결국 선 쪽으로 기울어지는데요, 물론 사람들 중에는 끝까지 주님을 거절하여 선보다는 악을, 천국보다는 지옥을 선택, 결국 멸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말입니다. 주님의 이 첫 번째 선물로 말미암아 사람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며, 일단 거듭남이 시작되면 이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두 번째 리메인스를 또 선물로 받습니다. 이 선물로 말미암아 사람은 생명, 곧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발자국을 떼는 것이지요. 사람은 주님의 선물, 주님의 호의, 주님의 돌보심 없이는 결코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탐욕과 거짓의 덩어리, 곧 악의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입니다. 사람 안에 주님이 넣어 두신, 주님으로 말미암은 이 리메인스라는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십분의 일’로 표현된,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십일조’라 일컫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무슨 이쁜 짓을 하고, 무슨 기특한 행실을 보일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안에 넣어 두신 이 리메인스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것으로 멜기세덱, 곧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공경하였습니다. ‘주님, 이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으로 제가 롯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사례한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아르카나입니다.

이 멜기세덱 본문을 보다 더 온전히 이해하려면 그돌라오멜, 소돔왕, 그리고 롯과 아브람의 속뜻, 그 아르카나가 무엇이며, 그들 간 전쟁과 그 결과, 그리고 멜기세덱과 그가 들고 온 ‘떡과 포도주’의 아르카나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하지만 그것은 내용이 깊어지므로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정식으로(?) 다루기로 하고요, 여기서는 간략히만 말씀드리면...

주님도 인성을 입고 오셔서 처음에는 외견상의 선과 진리(apparent good and truth), 겉으로 보기엔 선이요, 진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닌 것, 가짜인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셨습니다. 그것이 아브람과 그돌라오멜 간 전쟁입니다. 아브람은 주님의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을, 그돌라오멜은 외견상 진리를, 롯은 주님의 겉 사람을 각각 가리킵니다. 겉 사람과 합리성은 같이 있어야 하는데 겉 사람이 합리성을 떠나 가짜 진리에게 사로잡힌 것을 롯이 아브람을 떠나 소돔에 있다가 그돌라오멜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주님이 이 가짜들과 싸워 이기신 후, 주님의 겉 사람이 속 사람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온전히 인도된 것을 아브람이 롯을 데리고 멜기세덱을 만난 것과 그의 ‘떡과 포도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네, 여기서는 이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간략하게라도 소개를 하고 넘어가는 것은, 말씀(the Word)은 정말 철저하게 상응(相應, correspondence)으로 기록되었다는 것과 그래서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은 아르카나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14장 28절, 29절입니다.

28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 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14:28-29)

십분의 일’을 가지고 주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말씀하시는 본문입니다. 주님은 이 ‘십분의 일’을 가지고 레위인과 객,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십니다. 이들은 겉뜻으로도 그렇지만 속뜻으로도 영적 결핍을 뜻합니다. 주님은 거듭남을 시작한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두 번째 리메인스를 가지고 이런 영적 결핍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거듭남의 여정 가운데 있는 우리는 정말 그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에게 있는 이 영적 결핍들을 돌아보고 채워주는 일에 이 두 번째 리메인스를 열심히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아브라함의 십일조 본문을 통해, 그리고 오늘 주님 말씀 마태복음 본문을 통해 우리가 확인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먼저, 십일조를 드린다, 십일조 헌금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헌금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넣어주신 선한 능력, 리메인스를 잘, 그리고 열심히 사용하여 더욱 주님으로부터 더욱더 많은 리메인스가 우리 속 사람 안에 공급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개념이 아닌, 주님의 것이 우리 안에 쌓이는 개념입니다.

말라기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10)

여기 ‘시험하여’는 ‘증명하여’(prove, verify)라는 뜻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라, 증명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주님은 우리 안에 더욱 더 넘치게 주님의 리메인스를 공급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넘치는 리메인스로 우리는 더욱더 쉽게 거듭남의 여정, 곧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내 것을 드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주님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리메인스라는 것을 우리는 두 번 다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가 악을 이겨 낼 근본 능력을 우리도 모르게 주님께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것으로 살며, 영적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사실은 모두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시인하며 사는 삶은 복된 삶이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게 되며, 우리가 드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 안에 리메인스로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본문, 주님 말씀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3)

박하와 회향, 근채의 십일조는 외적인 십일조입니다. 정의와 긍휼, 믿음의 십일조는 내적인 십일조입니다. 이 둘은 같이 갑니다. 외적 십일조는 내적 십일조가 겉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의 신앙이 온전할 수 없고, 반대로 온전한 신앙의 사람이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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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말과 불 병거(왕하6:8-23)로 대통령 관저를 둘러 주시옵소서

 

 

오, 주님, 지금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진입,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고자 저 불의한 수많은 무리가 모여 모의하고 있고, 그에 비하면 소수인, 그리고 이럴 때 당연히 대통령을 지켜야 할 경찰도, 군도, 법원도, 심지어 대통령실과 정부 행정 관료들조차 대통령을 향해 등을 돌리거나 딴청을 부리는 등 대통령 경호처 몇을 제외하고는 아무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 가운데 있는 이때...

 

8그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더불어 싸우며 그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10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12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13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14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18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19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눈을 여시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 가운데에 있더라 21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22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23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왕하6:8-23)

 

저 엘리사의 때에 일어난 일이 지금 대통령 관저에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의로움과 올바름으로 분연히 일어나 주께 속한 모든 주의 자녀들에게 천사들에게 입혀 주시는 얇은 보호막을 입혀 주셔서, 이 강추위와 더불어 모든 지옥의 기운들로부터 영육간 어디 상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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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엡4:26) (2025/1/8)

 

간밤 한남동 관저 앞 도로변 상황을 박완석 라이브로 계속 보다가 저분들은 이 강추위 한복판에 아랑곳없이 저렇게 애들을 쓰시는데 나는 따뜻한 방에서 이 무슨... 하는 맘에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아 드러눕지도 못하고 앉아 기도하며 자다 깨다를 반복, 토막잠 자던 중 새벽 5시, 얼른 유튜브를 켜니 아이고...

 

어떤 분은 그 추운 아스팔트 바닥에 호일을 돌돌, 마치 김밥처럼 말아 주무시고 계신 분, 그 시간에 청년들이 애들을 쓰며, 누구는 연사로, 누구는 자원봉사로... 그리고 저만치 열 대가 넘어 보이는 대형 버스의 엔진 소리, 보니 애국 후원자들께서 보내주신 ‘난방 버스’, 아... 세상에! 어르신들, 이곳에서 몸 녹이시라고... 아이고, 주님, 순간 울컥...

 

요 며칠 계속 이 급변 정국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의 애를 써서인가 오늘은 제법 몸에 무리가 오고, 두통이 있습니다. 곰곰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에 원망과 분노, 저주의 기운을 받아들여 깜빡, 제 안에 벌어진 틈을 따라 지옥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 서둘러 수습,

 

오, 주님, 주님도 때로는 노를 발하셨지만, 그러나 주님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여서 주님은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정말 이 시대 저 이재명과 그의 무리들, 그리고 온 나라 전반에 퍼져 있는 이 독버섯 같은, 암세포 같은 불의한 자들로 정말 화가 많이 나지만, 그러나 참으로 주님 안에서 분노하고 싶습니다. 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셔서 제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는, 분을 내다가 지옥문이 열리는 우를 범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또 기도하기를,

 

오, 주님,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서도, 그리고 그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던져졌어도 전혀 몸이 상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주님의 선, 곧 주님의 올바름을 사랑하는 저분들을 지켜주시고, 역시 일체 몸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 안에서 안전하게 나라를 사랑하여 지옥의 기운으로부터 보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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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 동안 다음과 같은 믿음, 곧 자신들이 행하는 선과 자신들이 믿는 진리는 모두 자신들한테서 나오는 것이라고, 즉 자신들의 본성, 그러니까 능력상 그게 맞다 믿으며 살아온 영들은 천국 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은 선행을 자기 공로로 여기고,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한테서나 볼 수 있는 믿음인데요, 하지만 천사들은 그런 영들을 피합니다. 천사들은 그들을 어리석다 하며, 도둑들로 보기 때문인데요, 어리석다 하는 이유는, 그들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아니고 말입니다. 도둑들로 보는 이유는, 그들이 주님이 공급하시는 걸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님의 것을 훔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는 천국 천사들의 믿음, 곧 천사 자신들 안에 있는 주님의 것, 주님의 신성이 천국을 이룬다는 믿음을 역행하는 것입니다. Such spirits as have confirmed themselves during their life in the world in the belief that the good they do and the truth they believe is from themselves, or is appropriated to them as their own (which is the belief of all who place merit in good actions and claim righteousness to themselves) are not received into heaven. Angels avoid them. They look upon them as stupid and as thieves; as stupid because they continually have themselves in view and not the Divine; and as thieves because they steal from the Lord what is his. These are averse to the belief of heaven, that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in the angels that makes heaven. (HH.10)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2장, '천국을 이루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HH.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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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천사들은 시인하기를, 모든 선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자신들로부터 말미암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리고 주님은 자기들 안에 있는 주님의 것 안에 계시지, 자기들의 것 안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한다. The angels of heaven acknowledge all good to be from the Lord, and nothing from themselves, and the Lord dwells in them in His own and not in their own. (HH.8)

 

또 그들은 말하기를, 이 유일한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이 원천은 주님이신데, 나오는 것은 오직 신적 선과 신적 진리밖에 없다고, 그리고 각 사람은 이것, 곧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이  신적 선과 신적 진리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즉 선과 진리를 신앙과 생활(생명) 안에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안에 있는 천국을 발견하지만, 거부하거나 질식시키는 사람은 그것을 지옥으로 만든다고 한다. Again, they say that from this one fountain of life, which is the Lord, nothing goes forth except Divine good and Divine truth, and that each one is affected by these in accordance with his reception of them—those who receive them in faith and life find heaven in them while those who reject them or stifle them change them into hell; (HH.9:2)

 

이것이 천사들의 믿음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선행에 대한 감사를 전부 거절하고, 만일 누군가가 선을 그들, 곧 천사들의 공로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화를 내고 물러선다. 그들은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지혜로운 건 오직 내가 열심히 해서야라거나, 나는 내 힘으로 이렇게 선행을 하는 거야라고 믿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것을 그들은 선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자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 자체를 목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은 신성으로 말미암은 선이라고 한다. 천사들은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천국을 이루는 선이라고, 이 선이 곧 주님이시라고 그들은 말한다. This being the belief of the angels they refuse all thanks for the good they do, and are displeased and withdraw if anyone attributes good to them. They wonder how anyone can believe that he is wise from himself or does anything good from himself. Doing good for one’s own sake they do not call good, because it is done from self. But doing good for the sake of good they call good from the Divine; and this they say is the good that makes heaven, because this good is the Lord. (HH.9:3)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은 그 안에 내적으로 주님이 계시지만, 사람으로 말미암는 선은 그렇지 않다. Good from the Lord has the Lord inwardly in it, but good from one’s own has not. (HH.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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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함은 신앙의 진리와 사랑의 선을 받는 그릇이기 때문에 천국의 모든 것이 심기는 바탕이 된다. and in innocence all things of heaven can be implanted, for it is a receptacle of the truth of faith and of the good of love. (HH.330)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김은경 역), 37장, ‘천국의 어린이들’(Little Children in Heaven)

 

이번 신정 연휴를 3세, 0세 손주들과 보내면서 더더욱 위 기술(記述)을 깊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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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 생전에 창세기, 출애굽기를 친히 풀어 주셨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당시 관례처럼 자신의 글에 번호들을 매겼는데, 창세기 50장, 출애굽기 40장까지 글 번호가 10,837번까지 갔으며, 걸린 기간은 1749년에서 1756년이고, 라틴어로 기록했습니다. 이 저작의 이름은 ‘Arcana Coelestia’, 역시 라틴어이며, 천계비의(天界秘義)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약어로는 AC를 사용합니다.

 

그는 이 주석을 쓸 때, 곁에 주님이 계셔서 딕테이트하시면, 자기는 그저 받아적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오늘날의 프린터 역할만 했다는 말이지요. 그는 성경 외에 그 어떤 세상 책도 참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 해 전부터 스베덴보리의 여러 Writings를 작업 중인데, 특별히 그 메인은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입니다. 위 라틴 제목을 저는 이렇게 읽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창세기는 다분히 그 기록된 겉 글자의 뜻인데요, 그러니까 창세기 1장 천지창조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하나님이 천지를 육 일 만에 창조하셨고, 인류 첫 번째 인간은 아담이다라는 식으로 읽는 것입니다. 기독교 전체가 이렇게 읽지요.

 

그러나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읽어 보시면 단번에 느끼시겠지만, 우리가 알던 창세기, 출애굽기하고는 많이, 아니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창세기 1장은 한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여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는, 그리고 아담은 인류 최초의 교회로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닫힌 마음으로 읽으시면, 무척 당황하시거나 화가 나실 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로 읽는 걸 ‘속뜻으로 읽는다’ 하고, 기존처럼 읽는 걸  ‘겉뜻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영과 육으로 되어 있듯, 말씀도 그렇게 되어 있는 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사람은 영과 육이 하나 되어 살듯, 말씀 역시 속뜻과 겉뜻이 하나 되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건 어느 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의 몸, 즉 육은 친숙, 익숙하지만, 자신의 영은 무척 낯설듯, 우리 중에 아직 자기 영을 본 사람은 없듯이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겉뜻이라는 그릇 안에 속뜻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이지요!

 

그러니까, 도저히 속뜻으로는 못 읽겠다, 너무 어렵고, 거부감이 심하게 든다 하시면, 겉뜻으로만 읽으며, 신앙생활 하시면 됩니다. 주님은 놀랍게도 겉뜻이라는 그릇만으로도 얼마든지 그 속 사람이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속뜻이 와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부디 겉 글자에 담아놓으신 주님의 신성을 실천, 체어리티(charity)의 삶을 사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책을 번역, 속뜻으로 주님 말씀 읽는 걸 소개하는 이유는, 그 유익이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며, 이것이 천국 천사들이 말씀 읽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이 속뜻으로 푼 창세기가 이해가 되시고, 와닿으시면 정말 복 받으신 겁니다. 그런 분이 만 명 중 한 명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친히 풀어 주셨다는 사실에 닻을 내리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 곧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구하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님이 보내주신 천사들의 도우심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선 창세기 1장만 올립니다.

창1, AC.1-66.pdf
1.49MB

 

아래 링크는 스베덴보리라는 사람에 관한 링크이며, 그 아래는 그의 저작들(Writings)에 관한 링크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다음은 제가 번역하는 책들의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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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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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는 스베덴보리가 알려준, 성경 66권 중 어떤 성경이 말씀’(The Word)인가 하는 내용입니다.

 

 

성경 66권 중 말씀(The Word)은...

성경 66권 중에서 속뜻(internal sense, inner meaning)이 있는 성경, 곧 그 안에 주님의 아르카나(arcana, 秘義, 말씀의 내적 의미)가 담긴 성경을 ‘말씀’(The Word, 총 34권)이라 하며, 스베덴보리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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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에 관하여 (2024/12/18)

 

주님은 시대의 끝, 종말을 예언하실 때, 신앙이 없거나 사랑 없는 신앙을 또한 ‘겨울(winter)로 비유하셨습니다. 마가복음입니다. No faith and faith without love are also compared by the Lord to “winter,” where he foretell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in Mark: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막13:18-19) 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for those shall be days of affliction (Mark 13:18–19).

 

여기서 ‘이 일(Flight, 비행, 들림, 휴거)은 마지막 때를,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가 죽는 때를 의미합니다. ‘겨울(Winter)은 사랑이 결핍된 삶을, ‘환난의 날(the day of affliction)은 저세상 삶의 끔찍한 상태를 말합니다. Flight” means the last time, and also that of every man when he dies. “Winter” is a life destitute of love; the “day of affliction” is its miserable state in the other life. (AC.34)

 

 

※ 휴거는 특히 개신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겉 글자의 뜻 그대로 이해를 했기 때문인데요, 같은 본문의 마태복음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24:31)

 

AC.4060번 글을 보면, 이 말씀은 새 교회의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택하신 자들’은 사랑의 선,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방에서’는 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교회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즉 휴거란, 종말의 때임에도 불구, 여전히 사랑과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주님의 새 교회 세우시는 걸 의미하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람들이 갑자기 공중으로 들림 받고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태고교회 종말의 때에, 그런 암흑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노아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주님 신앙을 이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그들을 리메인스처럼 보관하셨다가 나중에 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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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주님, 이 대통령 탄핵 정국을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2024/12/14)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그래서 주께 속한 모든 자녀를 주님,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일곱 배나 되는 진리의 빛을 더하사 천국 천사들 같은 판단력 안에 머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석연치 않은 삶을 사는 자들 안에 와있는 저 악한 영들과 저들에게 매여 함께 저 광란의 칼춤을 추며, 함께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의 저 광기를 주님, 주의 천사들을 통해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김은경 역에서 인용

 

영계에서의 천사들의 능력은 너무도 커서 그에 대해 내가 목격한 것을 모두 얘기한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영계에서 신적 질서에 어긋나 제거해야 하는 어떤 장애물이든지 천사들은 단지 한 번의 의도함과 응시함으로(merely by an effort of the will and a look) 쫓아내거나 전복한다. 나는 악인들이 점령한 산들이 그렇게 내던져지고 파괴되는 것과, 때로는 지진이 난 듯 끝에서 끝까지 흔들리는 것을 보았으며, 암벽이 밑바닥까지 갈라져 그 위에 있던 악인들을 삼키는 것도 보았다. 또 나는 천사들이 수십만의 악한 영들을 흩어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것도 보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악한 영들은 천사를 당할 수 없고, 술책과 교활함과 무리 지음도 허사가 된다. 천사들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즉시 쫓아버리기 때문이다.영계에서 천사들은 이와 같은 능력이 있다. 성서를 보면 천사들은 허락되었을 때는 자연계에서도 이런 힘을 나타낸 것을 알 수 있다. 군대 전체를 쳐부수거나 전염병을 내려 칠만 명을 멸했다고 한 구절 등이 그 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왕하19:35)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16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삼하24:15-16)(HH.229)

 

 

마치 무저갱이 열린 듯 지옥의 모든 악과 거짓의 기운이 우든 좌든,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 빨갱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가 그를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옥의 공격에, 오래도록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니면, 그리고 천국을 오랫동안 사모하여 이 세상 그 어떤 걸로도 도저히 빈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이 아니면, 요즘 저 광기 앞에 배겨날 사람이 없습니다.

 

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의 날개 아래 피하오니 주님, 저희를 지키시며,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제발 사법부 저 대법 산하, 그리고 헌재 판사들에게 역시 일곱 배의 빛을 더하사 하늘에 저들의 판관이 있음을 시인, 두려워하게, 그래서 의롭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게 하옵소서! 절대로 세상 여론, 특히 조중동의 신문 기사나 여론조사에 휘둘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각 사람 안에서 부추기는 자들은 지옥에서 온 악한 영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악이요, 거짓임을 알고도 자기 사랑에 함몰된 나머지 악령들과 함께 즐겁게 악을 행한 자들의 모든 행위에 벌을 주시고, 그 모든 결과가 본인에게 돌아가게 하옵소서!

 

이것은 주의 정하신 보응의 법칙(the law of retaliation), 곧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는, 그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주께서 정하신 신적 질서(Divine Order)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을 사랑한 모든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순진한 마음에, 그리고 단순한 사람들, 그러니까 무슨 무료 아이돌 음악회 한다 하여, 그리고 그냥 재미로 저들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등 잠시 미혹된 사람들은 주님의 빛이 비칠 때, 정신들을 차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윤석열 대통령의 심령을 붙드사 요동치 않게 하시고, 그가 헌재 앞에 서서 자신을 변호할 때에 요셉 같고, 다니엘 같게 하옵소서! 그가 대답할 말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는 주의 권능이 실린 말이 되게 하시오며, 그에게 친히 대답할 말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입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주님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기를 바라보는 순간, 빈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의 자녀들은 주님 사랑(the love of the Lord)으로, 아직 주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라 사랑으로, 그리고 ‘올바른 일을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 저희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 정국을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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