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명절 연휴는 창세기, 출애굽기와 함께 (2025/10/1)

 

말씀을 사랑하여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거나(loves the Word and lives in charity), 기록된 말씀을 어린아이 같은 마음(simplicity of heart)으로 믿으며, 신앙에 관한 속뜻 진리(the truth of faith which is in the internal sense)에 반(反)하는 원칙들을 세운 적이 없는 사람한테는 그가 주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그에게 와있는 천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천사들의 눈앞에서는 말씀의 모든 것(every particular)이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지각됩니다. 이 생명은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서, 말씀은 이 생명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내려왔을 때 태어난(from which the Word had birth)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천사들 앞에 펼쳐지는 이 말씀 속 생명의 향연은 너무나 아름답고(beauty), 너무나 유쾌한 것(pleasantness)인데, 아울러 그때 그들의 모든 상태에 맞춰 형용할 수 없는 다채로움을 가진 표상들(表象, representatives)과 함께 펼쳐집니다.

 

주님의 기록된 말씀은 비록 글자 상으로는, 즉 지상 인간의 언어로는 대충(crude) 살짝 조잡, 세련되지 못해 보여도 그 안에는 선한 영들과 천사들 앞에(before good spirits, and before angels) 확 펼쳐지는 영적 천적인 것들(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로 충만한데, 그것은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말씀’은 성경 66권 중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들, 곧 그 안에 아르카나(arcana)가 담긴 말씀들을 말하는데 이 아르카나는 주님으로부터만 말미암습니다. 그 가운데 구약은 , , , , , , , 삼상, 삼하, 왕상, 왕하, , , , , , , , , , , , , , , , , , (29), 신약은 , , , , (5) (AC.10325)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말씀을 사랑하여 체어리티의 삶을 살고 있거나 기록된 말씀을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믿으며, 신앙에 관한 속뜻 진리에 반하는 원칙들을 세우는 일 없이’ 읽는 사람한테는 그가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그가 위 목록에 없는 성경들을 읽을 땐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없기 때문인데 그때는 그에게 와 있는 천사들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내적 존재여서 내적 생명만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우리는 비록 지상 언어로 된 말씀을 읽지만 우리에게 와있는 천사들은 그 안에 담긴 아르카나를 읽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말씀을 겉뜻으로 읽을지라도 우리 안의 천사들은 속뜻으로 읽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 힘써 창세기를, 힘써 출애굽기를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우리 속 사람 안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일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예를 들면, 속 사람의 강건함이 겉 사람의 육체, 몸의 강건함으로, 속 사람의 아름다움이 겉 사람의 얼굴빛과 피부로, 속 사람의 지혜와 지성이 겉 사람의 총명과 아이디어로 등등 속 사람의 충만함이 겉 사람의 모든 눈부심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말씀은 하나에서 열까지 천국과의 상응으로만 기록되었기 때문이며, 사람의 몸은 천국과 일대일 상응하기 때문인데, 그러니까 말씀 생활을 통해 천국의 모든 부요와 능력이 내 삶, 내 안에 흘러들어오는 것이지요. 우리가 천국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긴 명절 연휴, 가급적 저마다의 무슨 골방을 찾아 바이블 리딩의 시간 가지시기를 적극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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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essing) (2025/9/30)

 

(, blessing)은 주고 안 주고의 문제, 받고 못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선택’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고, 그래서 그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 영원히 모든 것을 가령 자연계의 경우, 마치 저 하늘의 해가 그 빛과 열을 대지에 복사(輻射)하듯 아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저 햇볕을 받기 위해 볕을 쬐러 나가거나 커텐을 젖혀 방 안에 쏟아져 들어오게 하거나 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한테는 누구나 차별 없이 햇볕은 환히, 그리고 풍성히 비칩니다.

 

’은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즉, 그 마음의 상태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있는 상태인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있는 것처럼 ‘’은 주님으로부터 출발, ‘선택’하는 사람의 속 사람에게로 흘러 들어가며, 그렇게 해서 그의 겉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영계는 ‘상태’의 나라라 한 방에 뭐가 해결되거나 하는 건 별로 없습니다.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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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별로 찾지도 않는 이런 기록들을 남기면서 (2025/9/29)

 

2025년 가을, 저는 지금은 그동안 일종의 사명감으로 여러 해 거의 매일 해 온 SNS 사적 나눔에서도 물러나 은둔, 오직 스베덴보리의 저작들(Writings) 번역 및 이 블로그, 그리고 이 모든 걸 주일 설교 원고로 정돈하는 데에만 집중, 남은 삶을 올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수년간 마음 씀이 한순간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걸 보면서 스베덴보리처럼 이 모든 나눔과 오픈 역시 오직 주님의 허락하에서만 진행되어야 함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 가령 이사야나 예레미야들 역시 그 받아적는 말씀들이 언제 사용될 줄 알고 받아적고 있었을까요? 모세의 오경이나 다윗의 시편, 그리고 다른 대선지서들과 많은 소선지서들은? 주님의 복음서들과 계시록은 또 어땠을까요?

 

저는 오직 주님 힘 주심을 의지하여 기록으로 남길 뿐 그걸 나중에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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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세속화(2025/9/27)

 

신앙의 ‘세속화’란, 세상 것, 세상, 세속적 가치관으로 천국에 대한 걸 유추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 했으니 천국 가면 아랫사람들을 많이 두고 마음껏 누리는 삶을 살겠네, 천국은 날마다 잔치하는 곳이라 했으니 날마다 큰 연회 베풀어 가장 기름진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겠네, 천국 길은 황금길이요 집은 보석 집이라 했으니 황금을 비롯 각종 보석 등 나는 큰 부자가 되겠네 하는 식으로 천국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세속화는 사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현대문명의 시대인 오늘날에 생긴 게 아니라 그 기원이 아득히 먼 옛날, 곧 태고교회 그 후손들한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고교회의 선조들한테는 감각과 세상 지식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은 비유하자면, 오직 천국의 어떠함을 알게 해주는 일종의 모델하우스요 운전할 때 쓰는 네비일 뿐이었지만, 점점 자기 본위로 가라앉아간 그 후손들한테는 반대로 이 모든 감각적인 것이 오히려 원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한테는 한낱 도구였던 것들이 말이지요.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걸 이걸 가지고 이성질(理性질, reason)을 하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눈이 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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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천적(天的, celestial)이 되면 (2025/9/26)

 

태고인들은 천적(天的, celestial), 그러니까 상응 능력이 있어서, 땅 위 온 세상 만물을 눈으로, 곧 육안(肉眼)으로 보면서도 속으로는 그 사물이 가리키고 표상하는, 천국에 있는 어떤 신성한 것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상응의 사람들이 되면 일단 세상에서 추구하던 모든 세속적인 것들에서 한발 물러나게 됩니다. 즉 무슨 세상 지위를 탐하거나 무슨 세상 것을 누리려 하거나 소유하려 하는 모든 노력을 더 이상 일절 하지 않게 됩니다. 이 세상, 눈에 보이는 것들의 저급함과 천국의 영광과 아름다움의 차이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대신 그것들의 쓰임새에만 집중합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나의 지위를 높이셔도, 또 무슨 누림이나 소유를 많게 하셔도 오직 그 쓰임새만 생각합니다. ‘왜 나를 이 자리에 오르게 하셨을까?’,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게 하실까?’, ‘왜 내게 이런 재산과 명예를 허락하실까?’ 등등 말이죠. 천국 천사들이 바로 이렇습니다.

 

그들의 시각(sight)은 그저 창문 역할, 안경 역할이었을 뿐, 그들이 실제 뭘 봤는지를 알 수 있는 건 그들의 말(speech)이었습니다... (AC.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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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2:16)와 ‘나무의 열매(3:2) (2025/9/2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of every tree of the garden)는 네가 임의로 먹되 (2:16)

 

우리말 번역은 원문에는 없는 ‘열매’를 추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라 함으로써 아르카나가 더욱 흐릿하게, 안 보이게 하는 아주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성경 번역자들이 말씀 안에는 아르카나가 들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퍼셉션(perception)을 의미한다는, 이런 속뜻을 알 길이 없었던 번역자들은 나무를 먹는다고? 하면서 이 부분을 원전 그대로 번역하기가 굉장히 어색했을 것입니다.

 

비슷한 표현이 창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of the fruit of the tree of the garden)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에 나옵니다. 위 창2:16에서는 ‘나무(every tree)만 나오지만, 이 창3:2에서는 ‘나무의 열매(the fruit of the tree)라 하여 ‘열매’까지 나오는 이유는, 전자는 퍼셉션을 가리키지만, 후자는 그 퍼셉션에 의한 산물, 곧 태고교회의 후손들에게 계승된 선과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1-13은 태고교회의 세 번째 상태, 그러니까 주님 사랑에서 조금씩 벗어나 자기 사랑으로 기울던 태고교회의 두 번째 상태(2:18-25)에서 조금 더 위험해져 간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가 점점 더 계속해서 심화, 아래 말씀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으로, 이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기억-지식을 박탈당하고, 그들의 본성에는 대신 아주 더러운 사랑들과 신념들(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만 남았는데, 안 그러면, 이들은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을 모독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AC.285)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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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셉션(perception)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 (2025/9/24)

 

모세는 모세오경을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그 긴 내용, 특히 레위기는 그 자세한 묘사와 구체적 상황에 있어 거의 하이라이트인데... 그 길고 자세한 내용을 녹음기도 없던 시절, 어떻게 다 기억하고 기록했을까요? 지금처럼 메모를 위한 간편한 필기도구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모세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억력 천재였을까요? 요셉은, 다니엘은 어떻게 그 은밀한 꿈을 듣거나 듣지도 않고 풀 수 있었을까요? 또한 다음 요한복음 말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6)

 

하나 더 있는데요, 저는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 남기신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 1749-1756, 라틴, 총 10,837개의 글)를 지금 8년째 읽고, 번역 및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주석은 총 10,837개의 글로 된 대 저작입니다. 제가 정말 놀라고 또 놀라는 것은, 글의 내용상 어떤 보충 설명이 필요할 때 이를 위해 해당 부분에 괄호가 등장하고 그 안에 해당 글 번호들이 주욱 나열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말입니다.

 

말씀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속뜻, 즉 영적인 뜻이 있다 (AC.1143, 1984, 2135, 2333, 2395, 2495, 4442, 9048, 9063, 9086).

 

즉, 저 글들을 더 참고하면 더욱 깊고 풍성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런 걸 할 수 있으려면 저 10,837개의 글의 무슨 키워드들을 다 메모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컴퓨터도 없던 시절, 그래서 지금처럼 ‘검색’이란 걸 할 수도 없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가 거의 매일 영계를 다녀오느라 많은 시간을 써야만 했다는 사실 또한 감안하면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세계 3대 천재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게 과연 머리만 좋다고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이 모든 것이 다 퍼셉션으로 말미암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사람은 사후 영계에서 처음 눈을 뜬다고 바로 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 충만한 이 퍼셉션을 지각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영이 되는 것인데, 그래서 사람이 영계에서 처음 눈을 뜰 때, 돕는 천사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로 그의 눈을 열어 천국의 빛, 곧 이 퍼셉션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시키는 일이라고 합니다. 영계에서는 어떤 궁금한 일이 생기면 바로 어떤 답을 내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퍼셉션, 곧 지각을 하는 것이지요. 어떤 궁금한 걸 알기 위해 무슨 도서관을 찾거나 뭘 검색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에덴동산에 나오는 나무들이 표상하는 바가 바로 이 퍼셉션입니다. 그래서 거기 나오는 ‘나무를 먹는다’는 표현은 관련 퍼셉션이 시작되는, 즉 관련 퍼셉션으로 살아가는 걸 말하는 것이지요. 즉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천적 능력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9)

 

세상 지식의 섭취 역시 중요하지만,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며, 속 사람의 지혜와 지성, 이성과 지식에 천적 생명을 불어넣는 퍼셉션의 추구는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영적 능력, 역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래 회막 기구를 만들게 하신 브살렐과 오홀리압처럼 말입니다.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3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4정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5보석을 깎아 물리며 여러 가지 기술로 나무를 새겨 만들게 하리라 6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모든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7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 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8상과 그 기구와 순금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9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10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정교하게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의 아들들의 옷과 11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31:1-11)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36:1, 2)

 

이들은 단순히 일만 잘하는 장인이었던 게 아니라 회막 각 기구에 담긴 속뜻, 곧 아르카나를 깊이 알았던 사람들이었는데요, 우리도 세상 살면서 익힌 여러 전문 기술이 기름 부음을 받아 거기 담긴 상응 비밀을 아는 전문가들이 되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주님께 상달될 수 있는 그런 쓰임새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예배, 산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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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으로라도 ‘말씀’을 늘 읽어야 하는 이유 (2025/9/23)

 

비록 속뜻을 모르더라도 겉뜻으로라도 창세기, 출애굽기를 비롯, ‘말씀’을 늘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우리 속 사람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래야 속 사람의 양식인 ‘리메인스(remains)가 풍성해지기 때문이며, 이는 곧 ‘영혼의 근육’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좋은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지옥의 악한 기운들에 대한 방어막이 형성되며, 그러면 우리에게 와있는 악한 영들의 모든 시도가 소용없게 되며, 그 결과 저들의 힘이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영계, 곧 내면세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겉으로 잘 못 느껴서 문제이긴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영감이 좀 발달하면 어렴풋이라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하여튼 분명한 건, 겉뜻, 겉 글자로라도 부지런히 ‘말씀’을 늘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매일 읽는 사람은 얼마 안 가 삶이 형통해지는 걸 눈치채게 됩니다. 천사들이 내 안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그 결과 마치 추운 겨울을 지나 생명의 봄이 시작되듯 뭔가 형통해진다는 걸 느끼게 되는데요, 이는 지옥의 파괴적인 기운, 끊임없는 악의가 걷히기 때문입니다. 즉 매서운 겨울바람, 북풍이 더 이상 불지 않거나 불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런 걸 아는 사람들은 따로 며칠씩 휴가 내어 기도원이나 수도원, 혹은 골방 같은 데 들어가 세상을 향한 창을 닫고 오직 ‘말씀’ 섭취에만 정진(精進)합니다. 무협지, 무림으로 비유하자면, 무공, 내공을 쌓는 거라고나 할까요? 이 세상은 영적 시야로 보면 천국과 지옥이 서로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데려가기 위한 끝없는 싸움, 전투,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戰場), 전쟁터입니다.

 

그러나 저 무공 쌓는 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건, 저들은 오직 자기 힘으로만 싸우지만, 우리는 오직 주님이 앞서시도록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걸 배운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영적 무공(?)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내려놓는 거라는 점에서 세상 무공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9:23)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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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지식(2025/9/22)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2:9)

 

지식의 기원은 주님 아니면 세상입니다. 그 습득 방법도 마찬가지로 주님으로 말미암는 퍼셉션(perception) 아니면 세상의 학습, 곧 공부입니다. 물론 세상에 충만한 지식도 그 근원은 오직 주님이지만, 문제는 이것은 추구하면 할수록 오히려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감각과 팩트 기반 세상 지식은 주로 역기능적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과 천국 등 영계를 향해서는 소경 되게 하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감각, 그러니까 시각, 청각, 미각, 후각 및 촉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오직 팩트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은 바로 이 감각에 기반한 일체의 것들을 표상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퍼셉션에 대한 글입니다.

 

오늘날은 퍼셉션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는, 어떤 것이 참되고 선한지 여부에 대한 어떤 내적 감각(a certain internal sensation)으로, 태고교회에는 아주 잘 알려져 있던 것입니다. 천사들에게 있어서 이 퍼셉션은 정말 완벽한데 그들은 이것으로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 무엇이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자신들로 말미암은 것인지, 또 그들에게 오는 아무개가 어떤 자인지, 심지어 그가 다가오는 것만 가지고도, 그리고 그의 생각 한 조각만 가지고도 그가 어떤 자인지 등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영적 인간한테는 이 퍼셉션은 없고, 대신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양심조차 없으며, 굉장히 많은 사람이 이 양심이 뭔지 모르고, 퍼셉션이 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AC.104)

 

위 에덴동산의 나무들, 그리고 아래 주님 말씀과 요셉과 다니엘의 꿈 해석은 바로 이 퍼셉션을 표상한 것이며, 다음은 그 관련 말씀들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6)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25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41:16, 25)

 

17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18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19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20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2:17-23)

 

이들은 모두 지상에서, 세상에서 퍼셉션을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주님을 향해 마음의 얼굴을 돌리는 사람, 그 속 사람의 내면을 주님과 천국을 향하는 사람에게는 이 퍼셉션을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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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와 푸른 풀(1:29) (2025/9/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1:29)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선하고 진실한 모든 것, 즉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 오직 이런 것들만 선하고 진실한데요, 그것은 그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아주아주 극도로 증오하는 악한 영들은 사람에게 양식으로 ‘채소와 푸른 풀’과 같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과 달리 주님은 그에게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와 같은 양식도 주시는데요, 이는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이며, 주님은 이 양식을 간격을 두고 사람에게 주십니다. (AC.59)

 

※ 여기서 우리는 악한 영들의 정체와 그들이 주는 달콤한 것의 그 숨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그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결국은 보잘것없는 ‘채소와 푸른 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곧 그 안에 선과 진리가 있어 우리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하시는, 그래서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에 들게 하시는 분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즉 악한 영들이 주는 것은 짝퉁, 모조품, 가짜인 반면, 오직 주님이 주시는 것만이 진품, 정품, 진짜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람을 매 순간, 아니 정말 눈 깜빡할 순간이라도 막아주지 않으셨으면 인간은 즉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영들의 세계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 및 신앙과 관련된 것들을 향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지독한 증오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지난 수년간 (저는 분명히 몸 안에 있었음에도) 저세상의 영들, 특히 아주 못된 영들과 본의 아니게 어울려 왔습니다.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저는 수천의 영들에 둘러싸이기도 했고, 그들은 저를 향해 독을 뱉기도 했습니다.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은 저를 향해 우글거렸지요. 하지만 그들은 제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수 없었는데, 그것은 제가 주님의 보호 아래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해 경험으로, 저는 정말 영들의 세계와 그 본성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현재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영생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왜 반드시 견뎌야만 하는지 하는 영적 전투에 대하여 정말 철저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AC.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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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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