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 생전에 창세기, 출애굽기를 친히 풀어 주셨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당시 관례처럼 자신의 글에 번호들을 매겼는데, 창세기 50장, 출애굽기 40장까지 글 번호가 10,837번까지 갔으며, 걸린 기간은 1749년에서 1756년이고, 라틴어로 기록했습니다. 이 저작의 이름은 ‘Arcana Coelestia’, 역시 라틴어이며, 천계비의(天界秘義)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약어로는 AC를 사용합니다.
그는 이 주석을 쓸 때, 곁에 주님이 계셔서 딕테이트하시면, 자기는 그저 받아적기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오늘날의 프린터 역할만 했다는 말이지요. 그는 성경 외에 그 어떤 세상 책도 참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 해 전부터 스베덴보리의 여러 Writings를 작업 중인데, 특별히 그 메인은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입니다. 위 라틴 제목을 저는 이렇게 읽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창세기는 다분히 그 기록된 겉 글자의 뜻인데요, 그러니까 창세기 1장 천지창조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하나님이 천지를 육 일 만에 창조하셨고, 인류 첫 번째 인간은 아담이다라는 식으로 읽는 것입니다. 기독교 전체가 이렇게 읽지요.
그러나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를 읽어 보시면 단번에 느끼시겠지만, 우리가 알던 창세기, 출애굽기하고는 많이, 아니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창세기 1장은 한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여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는, 그리고 아담은 인류 최초의 교회로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닫힌 마음으로 읽으시면, 무척 당황하시거나 화가 나실 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이‘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로 읽는 걸 ‘속뜻으로 읽는다’ 하고, 기존처럼 읽는 걸 ‘겉뜻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영과 육으로 되어 있듯, 말씀도 그렇게 되어 있는 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사람은 영과 육이 하나 되어 살듯, 말씀 역시 속뜻과 겉뜻이 하나 되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건 어느 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자신의 몸, 즉 육은 친숙, 익숙하지만, 자신의 영은 무척 낯설듯, 우리 중에 아직 자기 영을 본 사람은 없듯이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겉뜻이라는 그릇 안에 속뜻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이지요!
그러니까, 도저히 속뜻으로는 못 읽겠다, 너무 어렵고, 거부감이 심하게 든다 하시면, 겉뜻으로만 읽으며, 신앙생활 하시면 됩니다. 주님은 놀랍게도 겉뜻이라는 그릇만으로도 얼마든지 그 속 사람이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속뜻이 와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부디 겉 글자에 담아놓으신 주님의 신성을 실천, 체어리티(charity)의 삶을 사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 책을 번역, 속뜻으로 주님 말씀 읽는 걸 소개하는 이유는, 그 유익이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며, 이것이 천국 천사들이 말씀 읽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이 속뜻으로 푼 창세기가 이해가 되시고, 와닿으시면 정말 복 받으신 겁니다. 그런 분이 만 명 중 한 명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친히 풀어 주셨다는 사실에 닻을 내리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 곧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구하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님이 보내주신 천사들의 도우심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선 창세기 1장만 올립니다.
아래 링크는 스베덴보리라는 사람에 관한 링크이며, 그 아래는 그의 저작들(Writings)에 관한 링크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스베덴보리가 알려준, 성경 66권 중 어떤 성경이 ‘말씀’(The Word)인가 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시대의 끝, 종말을 예언하실 때, 신앙이 없거나 사랑 없는 신앙을 또한 ‘겨울’(winter)로 비유하셨습니다. 마가복음입니다.No faith and faith without love are also compared by the Lord to “winter,” where he foretells the consummation of the age, in Mark:
18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19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13:18-19)Pray ye that your flight be not in the winter, for those shall be days of affliction(Mark 13:18–19).
여기서 ‘이 일’(Flight,비행, 들림, 휴거)은 마지막 때를,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가 죽는 때를 의미합니다. ‘겨울’(Winter)은 사랑이 결핍된 삶을, ‘환난의 날’(theday of affliction)은 저세상 삶의 끔찍한 상태를 말합니다.“Flight” means the last time, and also that of every man when he dies. “Winter” is a life destitute of love; the “day of affliction” is its miserable state in the other life. (AC.34)
※ 휴거는 특히 개신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겉 글자의 뜻 그대로 이해를 했기 때문인데요, 같은 본문의 마태복음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AC.4060번 글을 보면, 이 말씀은 새 교회의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택하신 자들’은 사랑의 선,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사방에서’는 선과 진리의 모든 상태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교회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즉 휴거란, 종말의 때임에도 불구, 여전히 사랑과 신앙의 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주님의 새 교회 세우시는 걸 의미하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사람들이 갑자기공중으로 들림 받고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태고교회 종말의 때에, 그런 암흑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노아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주님 신앙을 이어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그들을 리메인스처럼 보관하셨다가 나중에 쓰신 것입니다.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그래서 주께 속한 모든 자녀를 주님,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일곱 배나 되는 진리의 빛을 더하사 천국 천사들 같은 판단력 안에 머무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석연치 않은 삶을 사는 자들 안에 와있는 저 악한 영들과 저들에게 매여 함께 저 광란의 칼춤을 추며, 함께 미쳐 돌아가는 사람들의 저 광기를 주님, 주의 천사들을 통해 수습하여 주시옵소서!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김은경 역에서 인용
영계에서의 천사들의 능력은 너무도 커서 그에 대해 내가 목격한 것을 모두 얘기한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영계에서 신적 질서에 어긋나 제거해야 하는 어떤 장애물이든지 천사들은 단지 한 번의 의도함과 응시함으로(merely by an effort of the will and a look) 쫓아내거나 전복한다. 나는 악인들이 점령한 산들이 그렇게 내던져지고 파괴되는 것과, 때로는 지진이 난 듯 끝에서 끝까지 흔들리는 것을 보았으며, 암벽이 밑바닥까지 갈라져 그 위에 있던 악인들을 삼키는 것도 보았다. 또 나는 천사들이 수십만의 악한 영들을 흩어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것도 보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악한 영들은 천사를 당할 수 없고, 술책과 교활함과 무리 지음도 허사가 된다. 천사들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즉시 쫓아버리기 때문이다.영계에서 천사들은 이와 같은 능력이 있다. 성서를 보면 천사들은 허락되었을 때는 자연계에서도 이런 힘을 나타낸 것을 알 수 있다. 군대 전체를 쳐부수거나 전염병을 내려 칠만 명을 멸했다고 한 구절 등이 그 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왕하19:35)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16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삼하24:15-16)(HH.229)
마치 무저갱이 열린 듯 지옥의 모든 악과 거짓의 기운이 우든 좌든,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 빨갱이든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가 그를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옥의 공격에, 오래도록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아니면, 그리고 천국을 오랫동안 사모하여 이 세상 그 어떤 걸로도 도저히 빈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이 아니면, 요즘 저 광기 앞에 배겨날 사람이 없습니다.
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의 날개 아래 피하오니 주님, 저희를 지키시며,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제발 사법부 저 대법 산하, 그리고 헌재 판사들에게 역시 일곱 배의 빛을 더하사 하늘에 저들의 판관이 있음을 시인, 두려워하게, 그래서 의롭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게 하옵소서! 절대로 세상 여론, 특히 조중동의 신문 기사나 여론조사에 휘둘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각 사람 안에서 부추기는 자들은 지옥에서 온 악한 영들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악이요, 거짓임을 알고도 자기 사랑에 함몰된 나머지 악령들과 함께 즐겁게 악을 행한 자들의 모든 행위에 벌을 주시고, 그 모든 결과가 본인에게 돌아가게 하옵소서!
이것은 주의 정하신 ‘보응의 법칙’(the law of retaliation), 곧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는, 그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주께서 정하신 신적 질서(Divine Order)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을 사랑한 모든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순진한 마음에, 그리고 단순한 사람들, 그러니까 무슨 무료 아이돌 음악회 한다 하여, 그리고 그냥 재미로 저들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등 잠시 미혹된 사람들은 주님의 빛이 비칠 때, 정신들을 차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윤석열 대통령의 심령을 붙드사 요동치 않게 하시고, 그가 헌재 앞에 서서 자신을 변호할 때에 요셉 같고, 다니엘 같게 하옵소서! 그가 대답할 말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는 주의 권능이 실린 말이 되게 하시오며, 그에게 친히 대답할 말을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입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주님으로부터 눈을 돌려 자기를 바라보는 순간, 빈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의 자녀들은 주님 사랑(the love of the Lord)으로, 아직 주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라 사랑으로, 그리고 ‘올바른 일을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19:12)
천국의 결혼(the heavenly marriage)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고자’(鼓子, eunuch)라 합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born from the womb) 고자들은 천적 천사들(the celestial angels)을 닮았고, ‘사람이 만든’(made of men) 고자들은 영적 천사들(the spiritual angels)과 같으며, ‘스스로 된’(made so by themselves) 고자들은 천사 같은 영들(angelic spirits)과 같은데, 그 행위가 체어리티(charity)로라기보다는 순종(obedience)으로가 더 두드러진 사람들입니다. (AC.394)
천국의 결혼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고자’인 이유는, 영적 고자, 즉 이들은 천국과 결혼 상태에 있기 위해, 지상에서 자칫 있을 수 있는 성적(性的) 문란의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필요 이상의 성적 호기심으로부터 물러나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혹시 저 사람, 성적으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냐? 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지킨, 그러니까 성적으로 건강한 금욕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계에서의 천사들의 능력은 너무도 커서 그에 대해 내가 목격한 것을 모두 얘기한다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영계에서 신적 질서에 어긋나 제거해야 하는 어떤 장애물이든지 천사들은 단지 한 번의 의도함과 응시함으로(merely by an effort of the will and a look) 쫓아내거나 전복한다. 나는 악인들이 점령한 산들이 그렇게 내던져지고 파괴되는 것과, 때로는 지진이 난 듯 끝에서 끝까지 흔들리는 것을 보았으며, 암벽이 밑바닥까지 갈라져 그 위에 있던 악인들을 삼키는 것도 보았다. 또 나는 천사들이 수십만의 악한 영들을 흩어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것도 보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악한 영들은 천사를 당할 수 없고, 술책과 교활함과 무리지음도 허사가 된다. 천사들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즉시 쫓아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바빌론의 멸망을 다룬 책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영계에서 천사들은 이와 같은 능력이 있다. 성서를 보면 천사들은 허락되었을 때는 자연계에서도 이런 힘을 나타낸 것을 알 수 있다. 군대 전체를 쳐부수거나 전염병을 내려 칠만 명을 멸했다고 한 구절 등이 그 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왕하19:35)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16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삼하24:15-16)
이 외에 다른 구절들도 있다. 천사들에게 이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능력’이라고 불린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103:20) (HH.229, 김은경 역)
마음 같아서는 주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대한민국의 현 상황 역시 저렇게 수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절대로 어느 한 개인도 그의 속 사람 역량을 무시, 강제로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거나 지옥으로 던지시거나 하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돕는 천사들을 통해 끝까지 빛을 비추시지만, 결국 자신들의 영원한 운명은 본인들이 선택하는 것이며, 결국 모든 벌은 각 개인이 스스로 자초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 그 자체이셔서 결코 누구를 벌주고 처단하는 신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보응의 법칙’(the law of retaliation), 즉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돌아감의 법칙’ 대로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 남아 있는 리메인스(remains)들, 곧 주님의 자녀들을 곁에서 지켜 보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마치 대홍수 때 노아라는 리메인스를 지키셨던 것처럼, 그리고 모세 때, 여호와의 편에 섰던 갈렙과 여호수아, 그리고 레위 자손처럼, 또한 주님 승천 후, 초대교회를 지켜 보호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 곧 주님 편에 서고자 몸부림치는 의로운 국회의원들과 광화문 모든 어르신, 그리고 보수 우파 유튜버들의 영육 간 강건을 허락, 지켜주시고, 저들에게 주님의 빛을 비추시되 일곱 배로 비추사 저들로 오직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이 의로운 싸움을 싸울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또한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향해 심령을 활짝 열어 주께서 내게 붙이신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절대 흔들리지 말고 주님 진리의 빛 안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부화뇌동하는 대신 말입니다.
※ 모든 사람한테는 지옥에서 온 악한 영 둘, 그리고 주님이 보내신 천사 둘이 와있습니다. 왜 둘이냐면,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하는 능력(understanding)이 있어 사람인데, 이 두 가지가 주님의 신성인 선(Divine Good)과 진리(Divine Truth)로 연결되며, 또 두 종류의 천국과 두 종류의 지옥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주님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주님이 저 이재명 같은 자와 그 무리들을 당장 오늘밤 데려가지 않으심도 주님은 신이시요, 저들은 인간, 곧 한 줌 호흡이요, 해 뜨면 사라질 아침 안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에 주님의 빛을 일곱 배나 더하사 국회의원들의 사리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악한 영들의 활동이 망하게 하시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 가운데 주께 속한 자들이 정신들을 차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 같은 일개 필부도 분명히 아는 옳고 그름을 저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지옥조차 그 빽빽한 구름을 뚫고 천국의 빛이 한 줄기 들어가면 그 순간 지옥 그 악한 영들이 살짝 정신들이 돌아온다 하니 주님, 국회를, 그리고 모든 언론, 방송, 인터넷 등을 천국 주님의 빛으로 환히 비추사 다들 좀 제 정신들을 차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의 쓰임새가 아직 남았으면 부디 이 나라가 문재인에 이어 다시 이재명과 그 무리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지옥은 말할 것도 없고, 영들의 세계에도 악한 영들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든 상황이 더 괴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즉 너무 놀라거나 절망할 필요 없다는 것! 그곳이나 이곳이나 모든 것이 주님의 다스리심, 통치 아래, 허락 아래 벌어지기 때문
2. 단, 그곳과 이곳의 차이는, 그곳은 주님과 싱크로율 100%인 천사들에 의해 모든 것이 정밀하게, 큰 권능으로 다스려지는 반면, 이곳은 그렇지 못해 모든 상황이 대부분 예측 불가일 때가 많다는 것. 우파 보수라 하더라도 주님이 허락은 하시되 도우실 수는 없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것
3. 이럴 때일수록 우리 영혼을 보호해야겠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저들 의도대로 윤 대통령 탄핵, 하야, 조기 대선, 이재명 당선... 등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우리가 심령이 병들어 빛이 꺼져가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것
4. 당분간 세상 창문을 닫자. 유튜브나 인터넷 보는 걸 좀 줄이거나 잠시 중단하고, 대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자. 그래서 세상 뉴스 대신 주님 음성에 온전히 귀 기울이도록 하자. 아침저녁으로 주님께 나아가고, 말씀 암송으로 우리의 의식을 가득 채우자
5. 참고로, 주님의 허락이 곧 주님 뜻이라는 말은 아님. 그럴 때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주님 뜻과 내 뜻이 다를 때, 내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주님이 내 뜻, 내 선택, 나라 지도자의 결정을 존중하시는 것을 말함, 그러므로 철부지같이 ‘야, 주님이 허락하셨다’ 좋아하면 안 됨, 오히려 ‘주님이 말씀하셨다, 주님이 명령하셨다’를 좋아해야 함. 이 둘의 차이는 빙 돌아가느냐, 질러가느냐의 차이!
주님이 누구를 고치실 때, ‘내가 고쳐주마’ 하지 않으시고,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는 이유 (2024/12/2)
햇빛이 커튼이 젖힌 만큼만 어두운 방 안을 비출 수 있고, 수돗물도 꼭지 밸브가 열린 만큼만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치유의 광선, 곧 신적 진리(Divine Truth)이신 주님의 치유 능력 또한 그 사람의 속 사람 역량만큼만 흘러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두 해 혈루 여인만 유일하게 그 몸 부대끼는 무리 속에서도 몰래 주님의 겉옷 가에 손을 댄 것만으로 주님으로부터 능력이 흘러나간 반면, 주님 몸에 닿았을 다른 많은 사람한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저들의 역량, 곧 그의 속 사람 상태이면, 능히 천국을 받을 수 있음을, 능히 천국 능력이 흘러들어와 그가 고침 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 ‘...대로’, ‘...만큼’의 원리, 그러니까 ‘심은 대로’, ‘행한 대로’, ‘뿌린 대로’ 등의 원리는 의외로 피조세계 전체에 적용되는 일종의 설계 원리입니다.
천국은 속 사람의 나라, 즉 속 사람이 천국에 합당해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주님 영접기도를 하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산다 하더라도, 아무리 우리가 전도와 선교, 그리고 구제와 선행에 힘쓴다 하더라도 우리 속 사람이 여전히 천국에 합당한 상태가 아니면 안 됩니다. 반대로 타종교인이라 하더라도 그의 상태가 천국에 합당하면, 그는 사후, 천사들의 정성을 다한 교정(敎正)을 받아 주님을 영접 후 천국에 올라갑니다. 이것이 주님의 질서이며, 구원 시스템입니다.
※ 이에 관해선 아래 링크(318-328)나 첨부파일을 읽어보세요.
살면서 이 속 사람은 우리가 심은 대로, 즉 심은 만큼, 그리고 우리가 행한 대로, 즉 행한 만큼, 우리가 뿌린 대로, 즉 뿌린 만큼만 형성됩니다. 그러니까 사랑과 분리된 신앙 상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이 하나 된 상태라는 말이며, 이런 상태여야 천국에서 지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복과 형통 또한 그렇습니다. 아무리 안수기도를 받아도, 아무리 축복기도를 받아도 본인의 속 사람 역량, 그러니까 그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면 그 빈 복이 담기지 않으며, 그럼에도 혹시 복을 누리며, 삶이 형통하다면 그건 복이 아니라 저주요, 형통이 아니라 불행일 수 있으니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천국도 모두에게 다 똑같지 않습니다. 그의 내면, 곧 속 사람이 열린 만큼만 각 사람은 그에 합당한 천국으로 배정됩니다. 이걸 차별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자기 역량을 초월하는 천국으로 가거나 자기 역량에 모자라는 천국으로 가게 되면 불행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주님의 배려이며,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저마다 자기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도록 주님은 부어주시기 때문에, 다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속 사람 이야기를 잔뜩 해놓고는 정작 그럼 어떻게 해야 속 사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건지는 그냥 슬쩍 언급만 하고 지나쳤네요. 위 내용 중, ‘사랑과 신앙이 하나 된 상태’가 바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속 사람 상태인데요, 이는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만 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아도 정작 실천을 안 하면 그건 그냥 지식일 뿐이요, 속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부디 주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즐겁게 실천하시는, 그러니까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즐겁게 선을 행하시는, 그래서 주님 주시는 천국으로 행복하신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제가 가끔(?) 보내드리는 글에 대하여 굳이 이단 대하듯 마음 문을 철컹 닫아걸고 경계하시며, 불편해들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혹시 주님이 말씀하심인가 하시며, 마음을 넓히시길 권합니다. 우리 인생에 주님의 허락 없이 일어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이런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귀를 틀어막는 행위는 본의 아니게 주님을 제한하실 수 있어 안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 제가 보내드리는 글은,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사람의 영 얘기를 한다고 무슨 경계하고 피하고 하지 않는 것처럼, 네, 딱 그렇게만 생각해 주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도저히 와닿지 않으시면 말입니다.
사람이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걸 잘 아는 우리이기 때문인데요, 사람처럼 주님의 말씀 또한 영과 육으로, 그러니까 겉뜻과 속뜻, 속뜻과 겉뜻으로 되어 있음을 저는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주님이 주시는 부담 때문이기도 하고요.
말씀을 기록된 겉 글자의 뜻으로만 읽어온 우리는 내적 존재인 천사들처럼 말씀을 속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신체, 몸에 대해서는 나름 지식이 있지만, 영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무지한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겉뜻으로만 읽어도 그 내면,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만 있으면 됩니다. 속 사람의 상태라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여 그 사랑으로 주님 말씀을 실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 속 사람의 상태가 이럴 때, 우리 안에 천국이, 그러니까 주님이 임하십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그냥 제 글은, 말씀을 영으로도 읽을 수 있구나, 즉 천사들은 말씀을 이렇게도 읽는구나 정도로만 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힘드시면 말입니다. 괜히 제 글로 시험에 드실 필요는 절대로들 없으십니다. 여기 ‘천사들은 말씀을 이렇게도 읽는구나’에 대해서는 아래글을 참고하세요.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은, 점점 더 많은 분의 마음이 오픈, 그러니까 좌우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 말씀에 겉뜻이 있는 것처럼 속뜻도 있었구나!’ 하신다는 것이지요. 참 감사하지요. 저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6:1-2)
이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the sons of God, the daughters of man)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6장에 나오는 조금은(?) 알쏭달쏭한 표현입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한 말씀을 먼저 좀 드리고, 이어 ‘백이십 년’(a hundred and twenty years) 및 ‘네피림’(the Nephilim)에 관하여도 준비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창세기 6장, 특히 1절로 8절은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5장에 요약, 정리되고 있는 아담 교회, 곧 아담(man)으로부터 시작,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렛(Jared), 에녹(Enoch), 므두셀라(Methuselah), 그리고 라멕(Lamech)을 끝으로 하는, 인류 첫 번째 교회인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는 홍수로 표현된 큰 시프트(shift)를 통해 마감되고, 이후 노아(Noah) 교회, 곧 인류 두 번째 교회인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가 일어납니다.
아, 참고로 늘 말씀드리지만, 창세기 아브람 등장 전까지는 등장하는 이름들이 어느 한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닌, 그 시절 존재했던, 그리고 주도적이었던 교회, 즉 교리를, 신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고하세요. 고대에는 이런 식의 스토리 텔링, 즉 의인화를 통한 드라마 기법 스피칭을 아주 즐거워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선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잠깐 의인화 관련, 재미있는(?) 예로, 창3:26,‘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에 나오는‘그룹들’(cherubim)을 들 수 있는데요, 겉 글자의 뜻에 익숙한 우리는 그룹들을 다른 좀 특별한 천사들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룹은 사실은 주님의 섭리(the providence of the Lord), 곧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그래서 다시 창1: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상태로 돌아간, 그런 인간이 더 이상 거룩한 주님 신앙과 관련된 것들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걸 일체 금하시는, 그래서 비록 안타까운 상태로 돌아갔지만, 더 악화되지 않도록 인간을 보호하시는 주님의 섭리를 의미하며, 그것을 이렇게 아주 멋지게 의인화하여 표현하신 것입니다.
태고교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퍼셉션(perception)이 지상에 머물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이 퍼셉션이라는 걸 잃어버린, 노아 이후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이 퍼셉션이 무엇인지 그 무슨 말로도 설명이 안 되고, 또 설령 그 어떤 말로 설명을 한다 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그저 관련 글을 읽고, 여러 해 고민, 그리고 살짝 ‘아, 이런 건가?’ 체험한 걸 가지고 말씀드리는데요, 이마저도 그러나 감사하게도 지금도 주님을 사랑하여 천국을 향한 내면의 창을 활짝 여는 사람들한테는 즉시 이 퍼셉션을 허락하시는 주님이시라는, 참으로 감사한 글에 힘입어 주님의 붙드심 가운데 어린아이같이 구할 수 있었던 덕분이지요.
오늘 글은 퍼셉션 관련 글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살짝만(?) 말씀드리면, 천국은 퍼셉션으로 충만한 나라이며, 천국 모든 구성원은 주님과 이걸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합니다. 천국은 주님의 신성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 주님의 신성은 신적 사랑(Divine Love)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선(Divine Good)과 신적 진리(Divine Truth)이며, 그래서 천국 모든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이 둘을 즉시 아는 능력, 곧 퍼셉션 역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이 퍼셉션을 많이 받는 천사일수록 그는 주님의 신성을 더욱 내적으로 이해,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주님의 신적 선에 특화된, 그러니까 주님의 신성을 이루는 두 가지인 선과 진리 중 선에 더 끌리는 천사들을 삼층천, 곧 천적(celestial) 천사, 진리에 더 끌리는 천사를 이층천, 곧 영적(spiritual) 천사라고 합니다.
주님의 신성을 천사들은 지상에 사는 우리처럼 무슨 공부를 통해서, 학습을 통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이 퍼셉션으로 그냥 압니다.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천사들이 뭐가 궁금해서 주님께 구하면, 그 즉시 그냥 어떤 답이 내적으로 들린답니다. 참 신기하지요? 그만큼 주님과 늘 막힘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천사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주님 뜻 알기 위해 여러 번 이랬다저랬다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를 빌어 특별히 용서를 구해야 할 분이 계시는데요, 지금 그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과거 어느 세미나, 아마 그 주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었던 것 같은데, 그 강사는 일상의 모든 것, 심지어 아침에 오늘은 어떤 넥타이를 맬까요? 하는 것까지도 주님께 물어 맨다고 하더군요. 한 이십 년 된 기억인데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런 그의 강의가 매우 거슬렸고, 맘에 안 들어 끝내 끝에 가서 무슨 말 한 마디를 하는 바람에 전체적인 강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분은 아마도 이런 퍼셉션이 이미 가능하셨던, 내면이 천국을 향해 활짝 열렸던 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정말 그분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고 생각나신다면,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시길 원합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태고교회가 이런 퍼셉션을 지상에서도 누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할렐루야! 지금까지 인류는 태고교회, 고대교회, 유대교회 및 현 기독교회를 지나가고 있으며, 그 각각, 또 그 안에 수많은 교회가 부침(浮沈)을 거듭했는데요, 그 가운데 주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교회가 바로 태고교회의 첫 출발인 아담(man)이라는 교회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상에서도 천국을 온전히 그대로 수용할 수 있었던 교회였기 때문인데요, 그때는 사람들이 천사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했으며, 주님도 자주 지상에 오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마치 천국에서처럼 말입니다!
아, 참고로 주님은 사람 따로, 천사 따로 지으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천사는 천사가 되기 이전에 지상에서 사람으로 살았던 존재들입니다. 주님 자신, 먼저 참 사람(The Man)이신 주님은 심지어 천국 전체도 사람 모습(The Grand Man)으로 지으셨고, 천국 내 수많은 공동체들 역시 멀리서 보면 사람 모습인데요, 이런 주님이 굳이 사람 아닌 제 삼의 무엇을 지으실 이유가 없으신 것입니다. 지옥의 악령들 역시 모두 생전에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은 아래 책, ‘천국과 지옥’에 자세히, 아주 자세히 나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총 63장으로 구성된 제목들 중 이와 관련된 앞부분 제목들만 조금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장 주님이 천국의 하나님이시다The God of Heaven Is the Lord
2장 주의 신성이 천국을 이룬다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3장 천국 안의 주님의 신성은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In Heaven the Divine of the Lord Is Love to Him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4장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5장 세 천국이 있다There Are Three Heavens
6장 천국은 무수한 공동체들로 이루어져 있다The Heavens Consist of Innumerable Societies
7장 각 천사는 가장 작은 천국이다Each Society Is a Heaven in a Smaller Form, and Each Angel in the Smallest Form
8장 천국 전체는 사람의 형상을 이룬다All Heaven in the Aggregate Reflects a Single Man
9장 천국의 각 공동체는 한 사람으로 보인다Each Society in Heaven Reflects a Single Man
10장 천사는 완전한 사람 형태로 있다Therefore Every Angel Is in a Complete Human Form
11장 천국이 사람 모습임은 주의 신적 인성에서 비롯된다It Is from the Lord’s Divine Human That Heaven as a Whole and in Part Reflects Man.
이 중 천국이 사람 모습이라는 주제와 관련되는 장들만 위와 같이 링크를 연결했습니다. 혹시 종이책이 없지만 당장 좀 읽어보고픈 분들은 이렇게라도 내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네, 어쨌든 이런 퍼셉션이, 그러나 세상 모든 교회가 그렇듯 태고교회 역시 뒤로 갈수록 그들의 선조와는 달리 각 교회의, 이 퍼셉션 수용 능력이 약화되다가 거의 소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이때가 바로 이 창세기 6장 1절로 8절 상태인 것입니다. 교회의 상태가 거의 늘 항상 이렇게 되는 이유는,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보다는 자아 사랑(love of self), 세상 사랑(love of the world)에 더 기울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신앙의 하나 됨, 즉 신앙으로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사랑 따로, 신앙 따로, 즉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갈수록 지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인데요, 그러니까 가인처럼 말입니다. 아벨은 하나 됨을 추구하는 교회였지만, 가인은 분리를 추구하는 교회였고, 가인이 아벨을 죽였다는 건 그때 교회의 상태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홍수 전 상태 또한 이랬는데요, 이때는 창세기 3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욱 최악이었다고 합니다. 3장에서는 그래도 ‘리메인스’(remains)라는 것이 남아 있었지만, 이 6장 홍수 전 교회에는, 그러니까 교회 구성원들 하나 하나에게는 이것이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리메인스에 관해서는 요 다음 글인 ‘백이십 년’에서 충분히(?) 다룰 예정입니다. 이 리메인스라는 것은, 그러니까 모든 교회, 모든 사람에게 주님이 은밀히 보관해 오고 계시는, 주님의 신성과 관련된 지식입니다. 우리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것도 이 리메인스의 유무입니다. 사람이, 그리고 교회가 아무리 악하여 황폐해져도 이것만 남아 있으면 주님이 좀 어떻게 해보실 수가 있는데, 이마저도 없어지면 그때가 바로 개인으로서도 끝이요, 교회적으로도 끝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후 지옥 가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이 리메인스가 소멸된 상태였기 때문임을 유추할 수 있지요. 앞에 세 번의 교회 시대가 있었고, 지금 네 번째 교회 시대인 기독교회 시대라는 것은, 앞서 세 번의 종말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인류가 늘 주님과 연결되어 있게 하시려고, 매번 각 교회 시대의 종말 때마다 소위 이 리메인스의 역할을 하는 교회들을 준비하셔서 다음번 새 교회 시대를 일으키곤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남은 자’, ‘남은 그루터기’, ‘십일조’, ‘소돔과 고모라 의인 열 명’ 등이 모두 이와 관련된 것들이며, 6장 후반 노아 역시 그 시대의 리메인스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 제목인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the sons of God, the daughters of man)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이미 어느 정도 배경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간단히 정리만 해도 되겠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은 신앙과 관련된 교리적인 것들(the doctrinal things of faith)을,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거의 욕망이 되어버린 갈망(yearnings)을 말합니다.
태고인들은 그들이 지각하는, 즉 퍼셉션으로 아는 진리와 선(the truths and goods)을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이라 하였습니다. 창5: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인류 역사상, 그러니까 지상에 교회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주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태고교회, 그중에서도 주님이 안식하실 수 있으셨던 ‘일곱째 날’이었으며, ‘천적 인간’(天的, celestial)이었던 이 아담 교회 이후, 셋, 에노스를 거쳐 후대로 갈수록 점점 주님 사랑보다는 자아 사랑을, 이웃 사랑보다는 세상 사랑으로 더 기울더니 급기야 마지막 교회인 라멕에 이르러서는 퍼셉션도, 리메인스도 거의 사라진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안에 주님의 것인 이 리메인스가 있어 사람인 것입니다.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이것이 없게 되면, 겉은 사람 모습이어도 결코 사람이라 할 수 없는데, 이때, 즉 이 홍수 전 시대가 바로 이런 상태였으며, 또 그 시절엔 인류가 주님과 퍼셉션으로 연결되어 있어 주님의 신성을 호흡하던 시대였는데, 그 호흡에 필요한 퍼셉션이 흐릿, 희미, 거의 희박해지는 바람에, 홍수 전 인류, 곧 교회가 주님의 신성에 대해, 그러니까 무엇이 주님의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 수 없는, 거의 질식 상태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가 있어 또한 사람입니다. 신성(神性, The Divine), 곧 선과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은 사람의 의지 안으로는 직접 들어가시고, 사람의 이해 안으로는 의지를 거쳐 간접적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지와 이해가 온전한 상태인 게 정말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태고교회의 끝에 가서는 퍼셉션도, 리메인스도 거의 소멸,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도 더 이상 의지가 아니요, 사람의 이해 역시 더 이상 이해가 아닌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홍수 전 사람들은 ‘이건 내 의지야’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욕심, 욕망에 가까운 갈망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더럽다’(filthy)고 하는데,그 이유는, 그것의 출발이 주님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곧 자기 사랑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매 교회 시대마다 갈수록 사람들의 상태, 곧 교회의 상태가 이렇게 되며, 이렇게 그 의지가 고장 나 버린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니까 창6:1, 2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의 속뜻, 그 아르카나(arcana)는, 그 시절 존재하던 세상 모든 교회가 주님의 신성으로부터 멀어져 주님의 선과 진리 대신 더러운 것들을 갈망하는 욕망 상태가 되었고, 그 결과 주님 신앙에 관련된 모든 교리적인 것들, 곧 주님의 거룩한 것들을 자신들의 더러운 갈망과 결합(conjoin)시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뭘 의도하든 모두 악했다는 말씀입니다. 뒤에 나오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5)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상태, 완전 맛이 간 상태를 ‘네피림’이라 하는데, ‘백이십 년’과 함께 곧 올리겠습니다.
천사들은 내적(內的, internal, 속, 영) 존재들이어서 우리가 읽는 이 말씀(The Word, 성경 66권 중 그 안에 속뜻, 즉 아르카나가 담긴 성경들)도 우리처럼 외적(外的, external, 겉, 육)으로 읽는 게 아니라 내적으로 읽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우리가 자신의 외모는 평생 보아오고 있어 잘 알지만, 자신의 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듯, 말씀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겉 글자만 평생 읽어 왔지, 말씀의 영, 곧 말씀의 겉 글자에 담긴 아르카나(arcana, 秘義)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어 거의 모르지요.
그러면 왜 천사들처럼 말씀을 읽는 게 필요하고, 또 중요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사후(死後), 이어질 삶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민을 앞둔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요, 다른 나라로 살러 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일에 계속 목숨 걸기보다는 앞으로 가서 살게 될 나라를 더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떠나기 전까지 어느 정도는 계속 병행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런 겁니다.
그래서 천국 천사들은 말씀을 어떻게 읽나 알아보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우리도 부지런히 그들처럼 말씀 읽는 법을 익혀 말씀에서 가르치고 있는 천국에 대해, 먼저 어떻게 해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의 삶은 어떤 삶인지를 미리 준비할 수 있으면 좋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아무래도 아직 못 가 본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의 말보다 주님의 허락으로 미리 가 본 사람이 전하는 그곳 현지 생생한 소식으로 말입니다.
이를 위해 천국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 곧 인류를 사랑하셔서 이 마지막 때에 이 모든 걸 삼백 년 전에 미리 준비하셨다는 사실! 여러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사람이 바로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입니다. 이분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주님의 섭리로 스베덴보리를 한 지 어느덧 7년 된 지금, 제가 깊이 느끼는 한 가지는, 이 길을 수십 년 전부터 앞서가신 분들이 전하시는 말씀처럼 이 계시, 이 가르침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네, 정말 어렵습니다. 육체 안에서 평생 겉의 삶, 외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내적 존재인 천사들의 말이 선뜻 와닿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내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가늠이 되시나요? 네, 정말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심지어 저는 이 길을 걷기 전, 주님의 섭리로 몇 번의 영적 체험 및 수도원 공부를 먼저 여러 해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소위 ‘입문’(入門)을 위한 순서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이 순서는 사실은 주님이 저를 이끄신 순서이기도 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 먼저는, 저는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래 책인데요,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평들이 분분합니다만, 저는 단지 ‘스베덴보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역사적으로 알기 위해서 읽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글 내용이 너무 이상, 도저히 더 진도를 나가기가 꺼려져 그냥 멈추고 쓰레기통에 던질까 했던 적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니야, 그래도 혹시 주님의 이끄심이면...’ 하면서, 그러니까 주님의 보호하심을 구하면서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이 책 관련 댓글들에 대해 제법 시간이 흐른 후 작성한 글인데, 혹시 시간 되시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From Things Heard and Seen)을 읽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여러 번!
혹시 종이책이 필요하시면, 아래로 가셔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특별히 김은경 역을 추천하는 이유는 제가 이 번역으로 읽었기 때문인데, 실제로도 여러 번역 중 저한테는 이게 제일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꼭 좀 당부드리고픈 것은, 이 책을 읽으실 때마다 문장 문장, 쉬지 말고 주님의 빛 비추심을 구하시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천국에 관한 기록들, 소식과 사실들은 천국에 충만한 주님의 신성의 빛, 곧 신적 진리(Divine Truth)의 빛으로 비추임을 받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스베덴보리 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The heavenly arcana contained in the Holy Scripture or Word of the Lord unfolded, beginning with the book of Genesis,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리딩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창세기, 출애굽기와 너무나 달라 당혹스러우실 꺼라는 말씀부터 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참고로, 저는 위 두 번째 책은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기를 한글과 영어로 대략 열 번 이상은 한 것 같고, 세 번째 책은 창3까지는 번역을 끝냈고, 창4부터는 일단 리딩부터 쭉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 가지, 7년이나 되었음에도 겨우 요만큼 밖에 진도를 못 나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물론 다른 많은 저작 역시 병행하여 읽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ㅎㅎㅎ, 아, 참고로 스베덴보리의 저작들(Writings)은 아래 글에 가시면 접하실 수 있습니다.
위 두 번째, 세 번째는 둘 다 위 제 블로그에 올렸으니 우선은 그걸로 읽으시고, 나중에 책 제본 나오면 그때 종이책으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위 세 번째 책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번역본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영어가 좀 되시면 그냥 영어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번역본의 경우, 분명 우리말임에도 정말 읽기가 어려운, 아주 초창기 수준 번역기를 돌렸나 싶을 정도여서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번역하신 취지가 선하고 의로우시니 너무 저거하시지는 말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영역본은 요즘 나오는 여러 AI 번역기로 번역을 하셔도 이게 다분히 영서(靈書)라 좀 손이 많이 가실 겁니다. NCE(New Century Edition)라고 비교적 최신판도 있어 이 경우, 요즘 영어라 읽기는 쉬운데요, 거의 의역 수준이라 권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혹시 그래도... 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직접 연락하시면 받으실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오랜 세월, 수십년간 이 길을 걸으시는 두 분 부부 장로님, 권사님의 정말 너무나도 귀한 걸작들, 더 나아가 귀한 번역 유산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리딩 및 번역을 제가 어떻게 중도포기 안 하고 계속 할 수 있었을까를 몇 줄로 요약한 것입니다.
첫째, 처음엔 수도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주님, 제가 이 사람의 글 읽는 것이 참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지요? 제가 무슨 이단의 글을 읽는 건 아니지요? 만일 그렇다면 주님이 저를 말려주시고, 이 길로부터 저를 지켜 보호하여 주세요...’ 하는 기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만큼 충격의 연속이었으니까요! 말씀을 겉 글자가 아닌, 거기 담긴 영으로 읽는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둘째, 계시(啓示)는 내면이 열리는 만큼만 보입니다. 계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의 신적 진리(Divine Truth)의 빛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데, 그럴려면 내면이 열려 그 빛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한번은 주님이 맹인을 고치실 때, 그가 단번에 낫지 않아 다시 안수하신 후라야 그가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창세기 처음 세 장을 한 일곱 번 정도 번역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머리 신앙의 사람, 내면의 열림이 매우 더딘 사람이었답니다.
셋째, 이 길을 걸은 지 7년, 제게 가장 큰 보람과 상급, 영광과 감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거의 마치 천사들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고교회에 허락하셨던 퍼셉션(perception, 태고교회에 허락하셨던, 지금도 천국 주님과 천사들 사이 사용하는 내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주님의 신성을 지각할 수 있는 역량)을 나름 아직은 좀 일반적이지만, 아니 매우 여전히 투박하지만, 그러나 아주 조금이라도 허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퍼셉션이라는 영적 역량의 회복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있어야 천국에 충만한 주님의 신성(The Divine)을 알 수 있는데, 그 결과 주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정말 정말 확실히, 투명하게, 천사들처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학습으로 얻는 게 아닌, 주님이 거저 주시는,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을 사랑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이 외에도 많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분명한 건, 저는 7년을 한결같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매일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길을 걸으며 그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ㅎㅎㅎ
그럼에도 여러분, 천사들처럼 말씀을 영으로, 즉 속뜻으로 읽는 법을 익혀 다시 오실, 사실은 말씀의 속뜻으로 이미 오신, 주님의 새 교회, 계시록 주님의 새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그렇다고 말씀을 겉 글자로 읽는 것이 무슨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아직 내면이 열리지 않아 지상의 언어로밖에는, 기록된 겉 글자로밖에는 읽을 수 없는 99.99%의 분들한테는 이렇게라도 말씀을 가까이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시니까요! 겉 글자는 그릇이요, 속뜻은 거기 담기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신령한 것을 아무 그릇에나 담는 분이 아니심을 생각할 때, 그만큼 그릇 역할을 하는 이 겉 글자 또한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며, 주님을 향한 애정 안에 있는 사람들은 겉 글자로도 충분히 일상에서 선을 행하며, 그로 말미암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 즉 그러면서 서서히 내면이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리 되면, 덩달아 속뜻을 보는 눈, 곧 영안이 열리며, 주님의 말씀을 천사들처럼 읽고픈 소망이 시작된다는 사실이지요! 아멘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