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숨지시니라
44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7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눅23:44-49)
주님의 고난에 대한 말씀을 읽다 보면, 유대인들은 왜 주님을 그토록 미워했을까? 어떻게 진리를 그렇게나 미워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 AC) 904번을 보면,
사람에게는 적어도 두 악령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 악령은 사람에게 있는 악을 부추기나 천사들은 선과 진리를 북돋운다. (AC.904, 이순철 역) There are with every man at least two evil spirits and two angels. The evil spirits excite his evils, and the angels inspire things that are good and true. Every good and true thing inspired by the angels is of the Lord; (AC.904)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욕망이 원하는 쪽으로 행동할 때, 그는 계속해서 악령의 손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점점 진리를 미워하고,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러니까 의도치 않게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을 대적하기까지 이릅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람들이었고, 일상을 부주의하게 살면서 점점 선을 넘더니 결국 악령이 시키는 대로 주님을 없애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하셨습니다.
※ 창세기 에서의 유명한 장자권 이야기이지요.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25:34)
물론 이 본문의 속뜻은 따로 있지만, 겉뜻만으로도 깊이 생각해야 하는 본문입니다. 즉 에서의 저런 행동이 저 날만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일상을 부주의하게 살면서 점점 더 선을 넘게 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무서운 얘깁니다. //
오늘 본문 44절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현장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44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
본문에서 육시와 구시, 그러니까 정오와 오후 세 시는 모두 3의 배수여서 속뜻으로는 3과 같은 의미, 즉 완전한 것을 뜻합니다.
※ 오늘날은 자정부터 다음날 자정까지가 하루이지만, 성서 시대 이스라엘은 달랐습니다. 그때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후 6시가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아침 6시가 영시, 아침 7시가 일시, 오전 8시가 이시 등등, 그러므로 본문의 육시는 정오, 구시는 오후 세 시를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이 삼시, 곧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육시, 곧 정오를 지나 구시, 곧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시는 것은 주님의 편에서는 시험에서 완전히 이기실 때까지 거쳐야 할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씀에서 시간은 영적인 상태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사람에게 시험은 단계별로 옵니다. 그리고 그 시험들을 하나하나 완전하게 이겨야 거듭날 수 있습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받으신 시간은, 내적으로는 당신이 영화롭게 되기까지 겪으신 모든 시험의 단계들을 나타낸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육시에서 구시까지의 시간은 교회가 점점 영적으로 어두워지다가 결국 완전히 문을 닫을 때까지의 모든 상태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죽어가시는 것은 곧 교회에서 진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대해 말씀에는,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해는 주님을 뜻하고, 땅은 교회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해가 빛을 잃고, 땅이 어둡다는 것은 유대교회 안에 주님에 관한 지식과 신앙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신앙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는 어둠이 구시까지 계속되었다고 했습니다. 9는 3의 세 배수입니다. 그러므로 그건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걸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유대교회 안에 빛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고, 그러므로 교회로서의 사명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본문 45절과 46절입니다.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주님이 숨지신 것을 영어 성경은 영혼을 ‘포기’한(give up) 걸로 표현합니다. 주목할 점은, 앞에서 주님이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실 때는 spirit, 즉 영이라 하고, 뒤에 영혼을 포기하셨다 할 때는 ghost, 즉 망령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포기하신 ghost는 무엇이고,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신 spirit은 무엇일까요? 포기하신 ghost는 마지막까지 주님 안에 남아 주님을 시험했던,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전적 자아(human self)를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신 spirit은 인간의 자아를 완전히 버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는 신성한 자아(Divine Self)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마지막 시험에서 완전히 이기셨을 때, 주님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받은 자아를 남김없이 벗으시고, 대신 아버지이신 여호와의 신성한 자아로 갈아입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고난 생명인 자아는 그냥 생각으로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 의지해서 죽기를 무릅쓰고 끊어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버릴 수 있습니다. 주님도 그런 방법으로 육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자아를 완전히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은 내면에 계신 아버지인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로 결합하셨고, 그리하여 신성한 인간(Divine Human)이며,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숨을 거두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천국의 비밀’ 4772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대교회의 외적인 것은 주님에 관한 모든 것을 표상했고, 또한 주님의 나라의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 즉 사랑과 인애와 그것에서 비롯한 믿음을 표상했으며, 결과적으로는 기독교회에 속한 것을 표상했다. 그러므로 고대교회와 유대교회의 외적인 것들이 꺼풀이 벗겨지듯 밝혀졌을 때 기독교회가 나타났다. 말씀에서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AC.4772, 이순철 역) The externals of the ancient church were all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his kingdom, that is, of love and charity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consequently of such things as are of the Christian church. Thus when the externals of the ancient, and also of the Jewish church, are unfolded and as it were unwrapped, the Christian church is disclosed. This was signified also by the veil of the temple being rent asunder (Matt. 27:51; Mark 15:38; Luke 23:45). (AC.4772)
이 글은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신성한 인간으로 우리와 함께 계실 때, 그동안 주님을 표상해 오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고대교회와 유대교회 같은 표상의 교회는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교회인 기독교회가 나타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성전의 성소와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 사이에는 위에서 아래로 휘장이 처져 있었습니다. 영적 의미로 볼 때, 휘장 바깥쪽에 있는 성소는 교회의 외적인 것, 이를테면 말씀의 문자적인 뜻과 예배의 의례, 성전의 기물 같은 것을 나타냅니다. 그에 비해 휘장 안쪽의 지성소는 외적인 것들로 표상되는 교회의 내적인 것, 즉 사랑과 체어리티, 신앙 같은 것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이른바 상응(相應, correspondence) 지식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그 외적인 것들로 표상되는 내적인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그때부터 인류는 신성한 인간이신 주님과 직접 교통함으로써 그동안 표상에 가려져 왔던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관한 내적 비밀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영원 전부터 계신 주님이 신성한 인간이 되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주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만지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직접 들은 것처럼 신성한 인간이신 주님을 통해 말씀의 내적인 것들을 직접 만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소의 휘장이 주님이 운명하시는 순간에 찢어진 이유는 뭘까요? 그때 주님은 비로소 어머니로부터 받은 인성(human)을 완전히 벗고, 아버지가 주시는 신성한 인성(Human)을 입으셨으며, 그리하여 신성한 인간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운명하셨을 때, 군중은 모두 기뻐했을까요? 꼭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47절로 4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7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48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49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마태복음 8장에도 믿음이 깊은 백부장 얘기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백부장이 등장합니다. 백부장은 로마 사람으로 자기 종교의 교리에 따라 신실하게 사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백부장이라고 하는 군대의 지휘관은 속뜻으로 신앙의 교리 안에 있는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비록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신앙에 따라 신실하게 사는 사람이 백부장입니다. 말씀에는 그가 그동안의 일을 모두 봤다고 전합니다. 즉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숨을 거두시기까지 조롱하는 군중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며, 강도의 간구와 신앙고백을 듣고, 그를 구원하시는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본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말합니다. 마침내 주님이 진리시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주님이 의인이시며 진리시라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백부장 말고도 또 있었는데요, 갈릴리로부터 주님을 따라온 여자들입니다. 말씀에서 갈릴리는 이방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교회를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라온 여자들은 백부장처럼 이방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지만, 마음속에 교회가 세워진 사람을 뜻합니다. 그들의 교회란 진리에 대한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들 역시 멀리서 주님이 운명하시기까지의 모든 일을 봤습니다. 그들이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주님이 조롱받고 죽어가는 모습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본 건 주님이 세상에 오실 때 입으셨던 부정한 인간을 벗고, 신성한 인간으로 새로 태어나시는 장면이었으며, 그렇게 해서 인류의 구속자이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제 그런 교회 밖 이방인들을 데리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오시기 전의 교회들을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의 교회라고 하는 이유는, 구약 말씀의 모든 문자적 의미와, 그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 그리고 예배의 외적인 것들이 모두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대한 표상이며,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직접 세상에 오심으로써 그동안 주님을 나타냈던 이 모든 표상이 사라졌습니다. 즉 그 역할을 다한 것이지요. 실체가 나타나면 그림자는 사라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그동안 주님의 본래 모습을 가리던 표상들이 모두 사라지고, 주님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실체로서의 주님이 바로 신적 인성, 또는 말씀의 신성한 내적 의미이신 주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 안에 말씀의 내적 진리로 오신 주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적 진리로 오신 주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주님을 의인으로 인정한 백부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그에 대해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전합니다. ‘그 된 일을 보았다’는 건, 성경의 주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을 보고,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것에 대해 ‘계시록 해설’ 815:3번 글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한다. 즉 자신의 직업에 관한 일을 성실하고 정직하고 근면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며,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일이며, 선이기 때문이다. (AE.815:3, 이순철 역)
라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을 본받아 우리도 자신의 직업에 관한 일들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근면하고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방인과 같이 어두운 우리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어주셔서 주님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십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15:8)
아멘
2023-03-19(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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