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그리고 함께 주신 두 계명 (16:15-20)

 

 

15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17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16:15-20) And the sons of Israel saw, and they said a man to his brother, What is this [Man hoc]? for they knew not what it was. And Moses said unto them, This is the bread which Jehovah hath given you to eat. This is the word that Jehovah hath commanded, Gather ye of it everyone according to the mouth of his eating, an omer a head, according to the number of your souls, take ye everyone for him who is in his tent. And the sons of Israel did so, and they gathered, collecting for the numerous and the few. And they measured it with the omer, and it made nothing over for the numerous; and for the few there was no lack; they gathered everyone according to his eating. And Moses said unto them, Let no one make a residue of it till the morning. And they heard not unto Moses; and men made a residue of it until the morning, and it bred worms and stank, and Moses was angry with them (Exod. 16:15-20).

 

 

오늘 본문을 좀 더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출16 1절로 14절까지를 먼저 좀 보겠습니다.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출16:1-14)

 

만나’(히브리어: מָן, 그리스어: μάννα)는 15절의 ‘이것이 무엇이냐’를 히브리어로 말한 것입니다. 아침에 처음 보는 그걸 보고 이게 뭐지? 서로 묻던 그 의문문이 그대로 ‘만나’라는 이름이 된 것이지요.

 

만나는 영적 의미, 곧 속뜻으로는 ‘진리의 선’(the good of truth)을 뜻합니다. 그것을 진리의 선이라 하는 것은, 바로 영적 교회의 사람들에게 내려 주신 선(善)이기 때문입니다. 선한 진리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 선이 들어있는 진리라는 의미라면 말입니다. 영적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영적 교회에는 처음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 이 교회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기 4장 아벨과 가인에까지 이릅니다. 여기서 아벨은 체어리티(charity)를, 가인은 신앙(faith)을 말합니다. 원래 주님은 이 둘이 하나로 결합하기를 원하셨지만, 가인이라는 사람들, 즉 신앙, 신앙하는 사람들이 일어나 신앙에서 체어리티를 분리했는데, 이걸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8절)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 이런 가인을 어떻게 해버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주님은 인류 역사가 결국 가인 쪽으로 흐를 것을 아시고,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십니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4, 15절)

 

그러니까 주님은 이런 가인들일지라도 그 쥐고 있는 신앙, 즉 진리를 통해 결국은 다시 체어리티를 회복, 체어리티와 신앙, 선과 진리가 하나 되게 하시려는 장구한 계획, 그것이 곧 인류의 역사가 되는 그런 계획을 섭리하신 것입니다. //

 

그래서 주님은 먼저 진리를 주시고, 그다음 그 진리를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게끔 하십니다. 그러니까 진리를 가지고 선을 행하도록 만드시는 것이지요. 왜 그렇게 하실까요? 진리를 모르면 뭐가 선이고 뭐가 악인지, 뭐가 참이고 뭐가 거짓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진리에 따라 살려고 노력할 때, 그때 주님은 선이나 선한 애정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만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리의 선입니다. 진리면 진리고 선이면 선이지, 왜 진리의 선이라고 하냐면 이 선은 진리를 통해 얻는 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겉으로 보면 진리이지만 그 속을 보면 선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선이 담긴 진리인 것이지요. 진리로 말미암는 선이라고도 해도 됩니다. 선은 능력입니다. 선은 곧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 이 선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진리, 앉은뱅이 신앙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 거듭나는 사람들한테 있어서는 진리의 선을 받는 것이구요, 그러므로 그것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의 선, 곧 선한 진리가 우리에게 흘러들어올 때 일어나는 삶의 변화는 어떤 것입니까? 제일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있는 악과 거짓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대부분 나는 항상 경우가 밝다, 나는 항상 옳다, 나는 참 합리적이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실상은 정반대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캄캄한 어둠 속으로 이제 진리의 선, 선한 진리라는 빛이 비침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어두워서 안 보이던 것들, 내 안의 모든 악하고 거짓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깜깜한 데서 밤을 보내며, 아, 참 좋다, 여기는 무슨 호텔 같아 했는데 정작 아침 동이 틀 때 보니 자기가 쓰레기 더미들 가운데 있었던 걸 알게 되는, 그런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그런 악하고 거짓된 것을 몰아내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동안은 악한 생각이 일어날 때 그걸 끊는 게 어려웠는데, 이제는 그걸 끊어낼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진리의 선은 설교나 말씀을 통해 배우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의 선, 선한 진리 안에는 주님이 계세요. 그래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악을 끊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쉬워집니다. 세 번째 일어나는 변화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한 기쁨을 알게 됩니다. 이전에 우리는 어땠습니까? 무슨 선한 일을 하든 반드시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게 아니라 뭘 얻어내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아무 대가 없이 이웃에게 선을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이전에는 몰랐던 행복입니다. 놀라운 변화 아닙니까? 이러한 모든 일이 주님으로부터 만나라는, 즉 진리의 선, 선한 진리를 받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변화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엇이지? 했던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선과 그것에 수반되는 은근한, 은은한 기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과 세상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만 익숙해 있고,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에 살면서 빠르고 자극적인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체로 시골의 단순하고 느리게 사는 삶의 기쁨, 소확행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16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 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주님은 만나를 내려 주시면서 두 가지 지킬 것을 명하십니다. 첫째는, ‘자기 먹을 만큼만 거두되 한 사람 앞에 한 오멜 씩 거두라’입니다. 자기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말씀은 각자의 분량에 맞게 선을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오멜(omer) 씩 거두라는 말씀은, 오멜은 곡식 같은 걸 측정하는 단위인데, 성경에는 오멜이란 것도 있고, 에바라는 것도 있습니다. 오멜은 에바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오멜은 속뜻으로는 충분한 것을 뜻하는데요, 왜냐하면 말씀에서 ‘’, ‘’(10)이란 수는 충분하다는 속뜻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 배수나 분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에바의 십 분의 일인 한 오멜 역시 충분하다(enough for)라는 속뜻을 갖습니다. 따라서 자기 먹을 만큼만 거두되 한 사람에 한 오멜 씩 거두라는 말씀은 주님은 각자의 능력에 맞게 선을 주시되 충분한 양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 그러니까 저마다 가진 잔의 크기는 다르지만, 그 모든 잔을 주님은 넘치게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각 사람에게 해당하는 분량은 어떤 식으로 정해질까요? 그것은 개개인이 행하는 선의 질과 양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선을 행하더라도 얼마만큼 진리를 따라 행하는가에 따라서 선의 질이 달라집니다. 또 선과 결합한 진리가 얼마나 내적인 진리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리에도 외적인 진리가 있고, 내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내적인 진리는 주님과 보다 가까운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 가운데 있는 진리가 보다 내적인 진리일수록 선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따라 주님은 각 사람이 받을 선의 분량을 정해주십니다.

 

※ 다음은 이와 관련된 천국의 어떤 사실들입니다.

 

한 천국 안의 천사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지 않고, 그들의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선의 차이에 따라 크고 작은 공동체로 나뉘어 있다. 같은 선을 지닌 천사들이 한 공동체를 이룬다. 천국의 선은 무한히 다양하며, 각 천사마다 선이 다르다.주44 (HH.41)

 

주44.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하며, 그 어떤 것도 결코 다른 것과 똑같지 않다 (AC. 7236, 9002). 천국에는 그래서 무한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AC. 684, 690, 3744, 5598, 7236). 천국의 무한한 다양성은 선의 다양성이다 (AC. 3744, 4005, 7236, 7833, 7836, 9002). 이들 다양성은 다양한 진리를 통해 존재하며, 각 천사의 선은 이들로부터 나온다 (AC. 3470, 3804, 4149, 6917, 7236). 천국의 모든 공동체와 어느 한 공동체 내 모든 천사가 서로 구분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AC. 690, 3241, 3519, 3804, 3986, 4067, 4149, 4263, 7236, 7833, 783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는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된다 (AC. 457, 3986).

 

천국의 천사 공동체들은 그 선이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차이가 나는 만큼 서로 떨어져 있다. 영계에서 거리는 오직 사람의 내면 상태의 차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국에서는 사랑의 상태가 다르면 거리가 생긴다. 많이 다른 사람들은 멀리, 약간 다르면 조금 떨어져 있다. 유사성이 그들을 함께 있게 하는 것이다.주45 (HH.42)

 

주45. 천국 모든 공동체는 그들 생명의 상태 차이, 곧 사랑과 신앙의 상태 차이에 따라 어떤 일정한 위치가 정해진다 (AC. 1274, 3638, 3639). 저세상, 곧 영들의 세계에 있는, 거리, 상황, 장소 및 시공간에 관한 놀라운 것들 (AC. 1273–1277)

 

한 공동체 내 천사들은 모두 서로 간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배열되는데, 보다 완전한 천사들, 즉 선에 있어 뛰어난, 그래서 사랑, 지혜, 지성에 있어 뛰어난 천사들은 가운데 중앙으로, 덜한 천사들은 그 완전함이 덜한 정도에 따라 주변으로 빙 둘러 퍼지게 된다. 이 배열은 마치 중앙의 빛이 주변으로 퍼져 감소하는 것과 같으며, 중앙에 있는 천사들은 가장 밝은 빛 가운데, 주변으로 퍼져 있는 천사들은 점점 더 희미한 빛에 있는 것과 같다. (HH.43) //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두 번째 명령은,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입니다. 여기서 자기 장막에 있는 자는 자기 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선의 공동체(society)를 뜻합니다. ‘선의 공동체’란 무엇일까요? 선의 공동체는 천국에서는 천사들의 사회가 선의 공동체이구요, 지상에서는 교회가 선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연대가 바로 선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자기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만나를 거두라는 말씀은, 주님이 주시는 선과 진리를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쓰지 말고, 교회를 위하여 쓰라는 말씀입니다. 선하고 진실한 모든 사람과 서로 나누라는 것이죠.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나의 선이 주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흘러가고, 또 모든 사람의 선이 끊임없이 내게로 흘러오는 그런 관계 속에서 주님의 교회는 점점 천국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그걸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 다음은 이와 관련된 글입니다.

 

앞의 두 가름에서, 천국 전체가 한 사람의 모습이고, 각 공동체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밝혔다. 각 천사도 이와 똑같다는 것은 거기 설명한 원리에 따른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천국이 가장 큰 형태의 사람이고, 각 공동체가 작은 형태의 사람이듯이 천사는 가장 작은 형태의 사람인 것이다. 천국 형태처럼 지극히 완벽한 형태는 전체와 부분이 서로 같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천국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곳이라는 데 있다. 천국의 모든 것은 모든 구성원에게 나누어지며, 각 구성원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그 나누어짐에 의해 받기 때문이다. 앞의 해당 가름에서 말했듯이, 천사는 그처럼 받아들이는 그릇이기 때문에, 천국의 가장 작은 형태가 되는 것이다. 사람도 그가 천국을 받아들이는 한, 그릇이며 천국이고 천사이다. (HH.73) //

 

17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말씀은 각자의 분량대로, 각자의 그릇대로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중심에 계시는 분들은 선을 많이 받을 것이고, 반면에 변두리에 계신 분들은 선을 조금밖에 받지 못할 것입니다.

 

※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이분들이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천국과 연결된 분들이시라면, 아래 천사들처럼 생각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든 적든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한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주어진다는 것을, 즉 조금 필요한 사람은 조금 받고, 많이 필요한 사람은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HH.278)

 

여기 ‘필요한 만큼’이란 주님이 맡기신 어떤 쓰임새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마다 가진 잔의 크기는 달라도 그 모든 잔을 주님은 넘치게 채우시기 때문에, 저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하는 데가 천국입니다. //

 

그러면 누가 교회 중심에 계시고, 누가 변두리에 계실까요? 그것은 오직 주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는 만큼 우리는 교회의 중심에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발언권이 세고 영향력이 있다고 해서 꼭 교회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9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주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일 일을 걱정하는 마음은, 자신의 힘으로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구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선을 쌓아 두려는 마음입니다. 만약 주님이 주시는 대로 받고,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것을 모두 이웃과 나누려고 한다면, 우리는 아마 매일 매일을 만족하면서 살 것입니다. 내일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아래 천사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의 인도를 받기 원한다. 또한 그들은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지 우리는 모른다는 것, 오직 모든 것을 살피시고 영원한 것을 섭리하시는 주님만이 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들은 내일 염려라 부르고, 그것은 삶에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잃거나, 못 받을까 봐 근심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그들이 주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받는 모든 것의 근원을 주께 돌리기 때문에, 자기 본성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들이 자기 본성에서 떨어져 있는 정도만큼 주께서 그들에게 들어가신다. (HH.278) //

 

그런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같이 내일 일을 걱정합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는 마음은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이 뜻대로 되고,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봅니다. 반대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지나치게 절망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높은 지위에 올라도 오만하지 않구요, 비천한 자리에 내려와 앉더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매일 먹을 만큼만 만나를 거두라 말씀하신 데에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20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더러는 순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내일 먹을 게 걱정되어 다 안 먹고 남겨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선을 행하려는 것이구요, 주님의 것을 자기 창고에 쌓아 두려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진리를 실천하고 선을 행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그 선 안에, 즉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났다고 말합니다. 벌레는 주님의 선이 아닌 인간의 선 안에 들어있는 거짓입니다. 그리고 악취가 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행하는 선은 결국 불결한 선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천국 선이 아니라 지옥 선으로 바뀐다는 뜻이지요. 그것이 악취가 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분명히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했는데 아침까지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리에 등을 돌린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무엇을 잘못하더라도 성을 내시거나 보복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시며, 자비 그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깐 진리에 등을 돌리는 모습입니다. 진리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들의 그런 모습을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로 표현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주님이 선을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고, 선을 행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같이 만나를 내려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렇게 기도하라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에게 만나를 줄 터이니 이 두 가지는 꼭 지키라 하십니다. 그 하나는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입니다. 자기 분량 이상으로 거두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아에서 나오는 선은 겉으로 보기에만 선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아는 악하고 거짓된 것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6장 29절에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옷을 짓기까지 얼마나 많은 장인들의 노력과 지혜가 들어갔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이 들에 핀 백합 한 송이만큼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엇을 섞지 말고 주님 주시는 선 그대로를 가지고 행하라 하시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신 다른 하나는, 자기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라고 하시는데요, 이 말씀은 주님이 주시는 선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쌓아 두지 말고 이웃과 교회를 위해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주신 것들을 자기 곳간에 쌓아 두는 일은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이 땅을, 이 교회를 주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분량에 맞게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주님 앞에 가서 받을 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마태복음 6장 28절로 34절의 말씀을 함께 읽으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6:28-34)

 

아멘

 

원본

2016-04-17(D1)

청주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5-05-11(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5-11(D1)-주일예배(2597, 출16,15-20), ‘만나’, 그리고 함께 주신 두 계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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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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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천국 공부에 힘써야 하는 세 가지 이유 (2025/5/8)

 

첫째, 어떤 작가의 작품을 보면 대략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듯 천국 또한 그렇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주님을 알기 위한 건데요, 천국 또한 알면 알수록 천국을 포함, 영계 전체를 그렇게 설계하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저 하늘의 해를 공부하겠다고 맨눈으로 해를 볼 수는 없듯 주님 또한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이렉트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불덩어리 그 자체인 해에서 나오는 열과 빛으로 우리가 사는 것처럼 주님 역시 그렇습니다. 사랑 그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열과 빛, 곧 선과 진리로 만물이 존재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불덩어리에서 나오는, 주님의 이 신적 진리(Divine Truth)는 여섯 단계, 등급(degree)이 있는데요, 주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 처음 두 단계의 진리는 심지어 삼층천 천사들조차 이해 불가한 진리입니다. 세 번째 단계부터 차례로 삼층천, 이층천, 그리고 일층천 천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각 단계마다 수천수만 배의 차이가 있습니다. 지상에 사는 우리는 마지막 여섯 번째에 해당, 비로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의 언어로 기록된 말씀(The Word)입니다. 그러니까 각 천국, 각 대상마다 자기 역량에 따라 맞추고 조절된, 허용된 진리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 사람의 일생은 그 목적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이를 위한 일종의 가이드로 주신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의 일생은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일생인데요, 어디서 태어나 무슨 삶을 살든 말입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지만 세상 편하기만 한 꿀 보직 같은 건 없습니다. 겉보기엔 그래도 결국은 어디나 다 말 못 할 사정이 있고, 쓴맛 단맛이 있습니다. 군 뿐이겠습니까? 세상일이 다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로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되게 하시는 주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커 보이는 남의 떡 때문에 원망과 불평으로 세월 낭비하지 마시고, 오히려 그 시간에 천국 공부에 집중, 지름길 인생을 사시길 권합니다. 결국 우리가 갈 곳을 미리 공부, 거기에 맞춘 맞춤식 인생을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험문제도 그 출제자의 의도를 얼른 읽는 게 중요하듯 우리네 인생 역시 창조주의 의도를 얼른 파악, 거기에 맞춘 삶을 사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아무렴 창조주께서 우리를 세상에 내신 이유가 우리 맘대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겠습니까? 우리 거실 요만한 소품 하나도 무슨 이유가 있는 건데 말입니다. 우리는 자기 사랑으로 세월 낭비하라고, 그리고 최종 목적지도 아닌 이 세상을 사랑하라고 지음받은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랬다간 결국 아무짝에도 쓸데없어 아궁이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이 그런 곳이며, 그래서 그것이 천국 입국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하면 삶이 또렷해집니다.

 

셋째, 천국을 알아야 형통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도 결국은 저마다 자기 사는 동안은 좀 평안한 삶, 형통한 삶 살기를 원하는데요, 이는 주님도 원하시는 바이며, 이 역시도 그러려면 천국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상태의 나라입니다. 우리처럼 시공간의 나라가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올라가고 싶으면 그 사람의 상태, 그러니까 그의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받을 수 있는, 천국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자기 안에 흘러들어오며, 그것은 곧 천국의 모든 것, 즉 모든 사랑과 지혜, 선과 진리, 능력과 부요가 자기 삶 가운데 흘러들어오는 것이지요. 물론 자기 역량만큼만이지만 말입니다.

 

이것이 복의 정체입니다. 누가 내게 안수하여 복을 빌어도 정작 내 속 사람의 역량이 그 복을 수용할 수 없으면, 내 속 사람이 하늘의 어떤 것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5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눅10:5, 6)

 

그러니까 기도응답의 정체, 비밀도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속 사람의 역량이 넉넉하다면? 그렇다면, 천국의 지혜와 평안, 능력과 부요가 내 삶 가운데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 속 사람의 역량을 키울 수 있을까요? 즉 어떻게 해야 내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래서 천국을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 세상 사랑에 매인 바 된 우리의 이 시야, 이 가치관에서 철저히 물러나 천국에 오리엔티드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 철저히 사로잡힌 그런 새로운 시야, 새로운 가치관을 옷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 천사들처럼 말입니다.

 

끝으로, 천국을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특별히 주님의 은혜로 어느 날 기도 중에 불쑥 들림받아 천국을 다녀오지 않는 한, 천국을 다녀온, 그리고 주님의 허락을 받아 그 사실을 잘 기록한 어떤 사람의 기록을 접하는 것이 무난하지 싶습니다. 물론 유튜브도 있지만, 그게 좀... 워낙 중구난방 다양해서 말이지요. 뭐, 어쨌든 자기에게 끌리는 것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시다 보면, 아, 이건 좀... 싶으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아지니까요. 저 역시 지금 이 자리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걸 두루 경험해야 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현재 8년째 늘 곁에 두고 읽는 책입니다. 제가 무슨 책 광고? 뭐 그런 거 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저는 이 책으로 천국 공부 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른 걸로 하셔도 됩니다. 참고로, 아래 첫 번째는 릴리즈된 영문이고요, 그 아래 두 번째는 현재 구입할 수 있는 링크입니다. 여러 번역 중 저한테는 이게 제일 낫더군요. 저는 이 출판사나 번역자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아래 링크들은 혹시 도움 되실까 달았습니다. 그럼...

 

heaven_and_hell, 581.pdf
1.77MB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그 중간의 영인들의 세계의 구조, 현상, 그곳 사람들의 상태와 생활을 보여준다. 사람이 사후 겪게되는 세계를 스베덴보리의 천사와의 대화, 관찰과 기록을 통해 알게되며 영의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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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다음은 제가 번역하는 책들의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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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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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속뜻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20:12) Hono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prolonged upon the land which Jehovah thy God giveth thee. (Exod. 20:12)

 

 

앞에서 말씀드린 십계명의 네 가지 계명에 이어서 나머지 계명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십계명의 각 계명은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적으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아에 대한 사랑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사랑하면 안 되는 이유는, 그렇게 되면 속 사람을 통해 들어오는 천국의 흐름이 막히고, 지옥의 흐름이 열리게 되며, 그렇게 해서 지옥으로부터 악하고 거짓된 것들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것은, 한마디로 자아를 사랑하지 말고,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 이 설교는 이순철 목사님의 청주 새 교회 및 서울 새 교회 시절 설교하신 ‘출애굽기 속뜻 강해’ 중 한 편입니다. 원래는 13절, 14절까지 포함된 본문이지만, 5월이 가정의 달이며, 어버이날, 어린이날이 있는 달이어서 12절만 따로 다루겠습니다.

 

※ 다음은 십계명 관련, 먼저 좀 알고 있어야 할 내용입니다.

 

...부모 공경에 관한 계명이 그러한 것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겉 글자의 뜻하고는 너무 거리감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십계명(the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은 세상과 천국, 양쪽 사람들의 삶을 다스리는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겉 글자, 즉 겉뜻으로는 세상 사람들을, 그리고 영적, 즉 속뜻으로는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계명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결과 겉과 속, 즉 세상 살 동안 천국에도 속한 사람들을 위한, 그러니까 교리적 진리를 따라 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계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십계명이 천국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말씀에 나오는 모든 것의 속뜻으로부터,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 곧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들은 사람들뿐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도, 그리고 또 천사들, 아니 온 천국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도 아주 명백한데요, 이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는 천국을 경유, 관통, 사람한테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친히 시내 산에서 이 십계명을 말씀하신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천국의 비밀 8899) ...That such things are signified by the commandment about honoring parents, may seem strange, because they are remote from the sense of the letter. But be it known that the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 are rules of life both for those who are in the world and for those who are in heaven—the sense of the letter or the external sense being for those who are in the world, and the spiritual or internal sense for those who are in heaven—and consequently both senses, external as well as internal, are for those who while they are in the world are also in heaven, that is, for those who are in the good of life according to the truths of doctrine. That the commandments of the Decalogue are also for those who are in heaven, is plain from the internal sense of all things in the Word, and clearly from the fact that the things which Jehovah God (that is, the Lord) Himself speaks, are not only for men, or for the world; but are also for angels, nay, for the whole heaven, because the Divine truth which proceeds from the Lord flows through heaven and passes through down unto man. This is the case with these ten commandments, which the Lord Himself spoke from Mount Sinai. (AC.8899) //

 

※ 주님이 우리에게 한 부모 밑에 태어나게 하시고, 부모와 자녀, 즉 가족이라는 혈연으로 묶어주시는 이유를 살피기 위해, 이 지상 혈연관계가 사후 천국에까지 이어지는 여부에 대해서 본 설교 후반에 따로 조금 다루겠습니다. 그 이유는, 그래야 천국을 염두에 둔 올바른 자녀 사랑, 그리고 부모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 스베덴보리는 히브리 및 슈미트(Schmidt)의 라틴 성경(1696) 넘버링을 따르고 있으며, 그래서 이 계명을 네 번째 계명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관련 내용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계명은 순서상 네 번째이며, 거룩함에 있어 이어지는 계명들을 능가합니다. 여호와, 즉 주님을 경배함에 관한 계명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인데, 이는 주님은 가장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안식일(the Sabbath)에 관한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의 신성 자체와 신적 인성 간 연합(the union of the Divine Itself and the Divine Human in the Lord)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으로 부모 공경의 계명이 이어집니다. 이 계명은 주님을 사랑함과 그에 따른,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과 진리를 사랑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비밀 8899:2) ...therefore this commandment is the fourth in order, and surpasses in holiness those which follow. The commandment concerning the worship of Jehovah, that is, the Lord, is first and second, because the most holy one. Next comes the commandment concerning the Sabbath, because by this in the supreme sense is signified the union of the Divine Itself and the Divine Human in the Lord. After this follows the commandment concerning honoring parents, because by this is signified the love of the Lord and the consequent love of good and truth which are from the Lord. (AC.8899:2)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기서 부모는 육신의 부모로만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건 겉뜻이고요, 속뜻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과 진리를 의미합니다.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와 내적 의미가 이렇게 다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자연적인 것들은 천국에 있는 것들과 내적으로 상응(相應, correspondence)하기 때문입니다.

 

※ 즉 그래서 말씀 또한 모두 상응으로만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라고 하면 세상에서는 육신의 부모라고 생각하지만, 천국의 천사들은 선과 진리로 이해합니다. 즉 아버지는 선을 뜻하고, 어머니는 진리를 뜻하지요. 선과 진리를 부모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은 선과 진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원한 부모는 선과 진리이며, 궁극적으로는 선과 진리 그 자체인 주님이십니다. 세상 부모는 세상에 있는 동안만 우리를 돌보는 부모이지만, 주님은 영원한 부모이십니다.

 

※ 그러니까 세상 부모는 부모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효가 고스란히 주님을 향한 효가 되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한 가지, 그러나 자녀가 부모를 따르고 의뢰할 때까지만 세상 부모는 부모이고, 더 이상 의뢰하지 않고, 제 뜻대로 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하늘의 하나님이 그의 부모가 된다고 합니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지난날 제가 써놓은 글입니다.

 

...자녀가 장성하여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 후에는 그는 전처럼 아버지(father)를 아버지로 인정하면 안 되는데, 그 이유, 즉 왜 아버지는 자녀가 자랄 동안만 아버지인가 하는 이유는, 그때는 그가 주님을 대신하기 때문이며, 그때는 아직 자녀가 어려 아버지가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장성하여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 제법 스스로 생각할 줄도 알고, 스스로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때는 이미 주님이 그의 아버지(Father)이심이 틀림없는데요, 이 아버지 노릇을 그동안은 육신의 아버지가 해왔었죠... (천국의 비밀 6492) ...after a son becomes his own master he ought not to acknowledge his father as father, as before; for the reason why the father is to be acknowledged during the bringing up of the son, is that the father is then in the Lord’s stead, nor does a son know at that time what he ought to do except by the direction of his father. But when a son becomes his own master, and competent to think for himself, and seems to himself to be able to direct himself from himself, then the Lord must be his Father, whose vice regent his natural father had been... (AC.6492)

 

이 글은 스베덴보리의 창세기 주석 중, 입류(influx)와 사람의 영과 육 사이 교류를 다룬, ‘About Influx and The Intercourse of The Soul and The Body’라는 글에 나오는 내용인데, 어느 날 꿈에 자기에게 나타나신 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주 내용입니다.

 

사람이 장성하면 더 이상 육신의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며, 그때는 주님이 그의 아버지시라는 이 글을 읽고 했던 몇 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이 글에 의하면, 그 이유는 먼저, 육의 아버지는 우리의 어린 시절, 어디까지나 주님의 대역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이때 아버지 노릇을 하는 우리 육의 아버지들은 끊임없이 실제 아버지이신 하늘의 주님께 안테나를 세우고, 그 주파수를 고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당연한 귀결, 곧 그때 주님으로부터 나와 내게 흘러들어오는 입류를 통해, 내게 맡기신 이 아이를 내 뜻, 내 생각, 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해서는 안 되고, 늘 주님 뜻대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장성한 자녀도 이제는 하늘의 주님께 직접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상의 혈연, 그리고 서류상, 행정적으로는 여전히 부모-자식 간이지만, 그러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의 실제 아버지는 주님이심을 시인, 아버지를 사랑하는 가운데 끝없이 아버지께 여쭙고, 아버지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은 위 원본 내용 중, ‘세상의 부모는 세상에 있는 동안만 우리를 돌보는 부모’라는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내적으로는 선과 진리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선과 진리를 그 자체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거나 타인을 지배하기 위해, 아니면 물질적 이득을 보기 위해 선과 진리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선과 진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아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보통 행하지는 않고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원하고, 원하는 것은 반드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선과 진리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행함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이성 가운데 있던 선과 진리가 의지 가운데 심어지고, 그렇게 해서 사람의 생명이 됩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성이 아니라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의도하고 행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여호와가 주신 땅이란 주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하늘의 천국과 땅에 있는 교회가 주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면 그곳에서 생명이 길다고 하십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폐의 호흡이나, 심장의 박동을 생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육체의 생명이지 영원한 생명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사람의 의지, 또는 의지 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가 무엇을 의도하고 사랑하느냐에 따라 생명의 질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의지와 사랑입니다. 그렇게 볼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말씀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사후에 천국에서도 그 사랑이 영원히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란 선과 진리에 대한 사랑이며,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은 선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많은 세상 사람처럼 세속적 성공이나,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교회 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복을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영원한 복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과 진리를 우리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리를 처음 받아들일 때는 머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아직 의지에 심어지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한 번 두 번 진리를 행할 때, 그것은 의지에 심어지고 생명이 됩니다. 진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생명이 되는데 그것은 사후에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리고 진리가 생명이 될 때의 기쁨은 세상 어느 것에서 얻는 기쁨보다 비교할 수 없는 내적인 기쁨입니다. 주님은 그 기쁨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이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은, 선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살 때에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후에는 천국에서 그 사랑이 영원히 커진다는 뜻입니다.

 

※ 다음은 시작 때 말씀드린, ‘이 지상 혈연관계가 사후 천국에까지 이어지는 여부’ 관련, 전에 제가 정리해 둔 글입니다.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53장, ‘사람의 사후 셋째 상태’ 512번 글입니다.

 

죽은 후의 사람, 즉 영의 셋째 상태는 교육받는 단계다. 이 상태는 천국에 들어가 천사가 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지옥에 갈 사람들에게는 이 단계가 없다. 그들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둘째 상태는 셋째 상태를 겸한 것이며, 그들이 자기 자신의 사랑, 즉 그 사랑이 있는 지옥 사회로 완전히 돌아서면 완료된다. 이렇게 완료되면, 그들은 그 사랑으로 의도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옥적이므로, 그들은 오직 악한 것만 의도하고, 그릇된 것만 생각한다. 그런 생각과 의도를 그들은 즐긴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이전에 자기의 사랑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했던 모든 선하고 참된 것을 거부한다. The third state of man after death, that is, of his spirit, is a state of instruction. This state is for those who enter heaven and become angels. It is not for those who enter hell, because such are incapable of being taught, and therefore their second state is also their third, ending in this, that they are wholly turned to their own love, thus to that infernal society which is in a like love. When this has been done they will and think from that love; and as that love is infernal they will nothing but what is evil and think nothing but what is false; and in such thinking and willing they find their delights, because these belong to their love; and in consequence of this they reject everything good and true which they had previously adopted as serviceable to their love as means.

 

선한 영들은 이와 반대로 둘째 상태에서 셋째 상태로 인도된다. 이 상태는 교육을 통해 천국에 갈 준비가 이루어지는 상태다. 선과 진리를 알아야만, 즉 가르침을 통해서만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될 수 있다. 사람은 가르침을 받아야만 영적 선과 진리가 무엇인지, 그에 반대되는 악과 거짓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세상에서 무엇이 올바름과 정직함인지, 즉 무엇이 사회적, 도덕적 선과 진리인지 배울 수 있다. 세상에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를 가르치는 사회적 법이 있고, 또 대인관계에서 도덕적 법에 따라 사는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정직하고 올바른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선과 진리에 대한 가르침은 세상에서 나오지 않고 천국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은 말씀에서, 그리고 말씀에서 도출된 교회의 가르침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에 속한 내면이 천국에 있지 않으면, 영적 선과 진리는 사람의 삶 속으로 유입될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신성을 인정하고, 말씀에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올바르고 정직하게 행할 때, 그 마음이 천국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나 세상을 목적으로 해서가 아니라 신성을 위해서 올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Good spirits, on the other hand, are led from the second state into the third, which is the state of their preparation for heaven by means of instruction. For one can be prepared for heaven only by means of knowledges of good and truth, that is, only by means of instruction, since one can know what spiritual good and truth are, and what evil and falsity are, which are their opposites, only by being taught. One can learn in the world what civil and moral good and truth are, which are called justice and honesty, because there are civil laws in the world that teach what is just, and there is association with others whereby man learns to live in accordance with moral laws, all of which have relation to what is honest and right. But spiritual good and truth are learned from heaven, not from the world. They can be learned from the Word and from the doctrine of the church that is drawn from the Word; and yet unless man in respect to his interiors which belong to his mind is in heaven, spiritual good and truth cannot flow into his life; and man is in heaven when he both acknowledges the Divine and acts justly and honestly for the reason that he ought so to act because it is commanded in the Word. This is living justly and honestly for the sake of the Divine, and not for the sake of self and the world, as ends.

 

그러나 아무도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그렇게 행할 수 없다.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사후 생활이 있다는 것,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 말씀은 신성하기 때문에 말씀 안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는 것 등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을 알고 인정하지 못하면, 사람은 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영적인 생각이 전혀 없다면, 영적인 것을 의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의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위와 같은 것을 의도할 때, 천국이, 즉 천국을 거쳐서 주께서 그의 삶 속에 들어오신다. 주께서는 사람의 의지 속으로 들어오시고, 의지를 통해서 생각 속으로 들어오시며, 그 둘을 통해 삶 속으로 들어오신다. 사람의 삶 전체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영적 선과 진리는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천국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며, 사람은 가르침을 통해서만 천국에 합당하게 준비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But no one can so act until he has been taught, for example, that there is a God, that there is a heaven and a hell, that there is a life after death, that God ought to be loved supremely, and the neighbor as oneself, and that what is taught in the Word ought to be believed because the Word is Divine. Without a knowledge and acknowledgment of these things man is unable to think spiritually; and if he has no thought about them he does not will them; for what a man does not know he cannot think, and what he does not think he cannot will. So it is when man wills these things that heaven flows into his life, that is, the Lord through heaven, for the Lord flows into the will and through the will into the thought, and through both into the life, and the whole life of man is from these. All this makes clear that spiritual good and truth are learned not from the world but from heaven, and that one can be prepared for heaven only by means of instruction.

 

나아가서 주님은 사람의 삶 속으로 유입하시는 정도만큼 그를 가르치신다. 그 정도만큼 주님은 사람의 의지를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랑으로 불붙이시고, 진리를 앎에 따라 그의 사고를 밝히 깨우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만큼 사람의 내면은 열리고, 천국이 그 안에 심어진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신성하고 천국적인 것이 사람의 도덕적 삶에 속하는 정직한 행위와, 사회적 삶에 속하는 올바른 행위 안으로 유입되어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그때 사람은 그런 행위를 신으로 말미암아, 즉 신성을 목적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도덕적, 사회적 삶에서 그런 목적으로 행하는 정직하고 올바른 행위는 영적 삶의 필수적인 결과이며, 결과의 모든 요소는 그 결과를 낸 원인에서 파생된 것이다. 원인의 성격이 결과의 성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Moreover, so far as the Lord flows into the life of anyone he instructs him, for so far he kindles the will with the love of knowing truths and enlightens the thought to know them; and so far as this is done the interiors of man are opened and heaven is implanted in them; and furthermore, what is Divine and heavenly flows into the honest things pertaining to moral life and into the just things pertaining to civil life in man, and makes them spiritual, since man then does these things from the Divine, which is doing them for the sake of the Divine. For the things honest and just pertaining to moral and civil life which a man does from that source are the essential effects of spiritual life; and the effect derives its all from the effecting cause, since such as the cause is such is the effect. (천국과 지옥 512, 김은경 역)

 

좀 길었지요? 네, 좀 길었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내용이라, 가령, 주님은 어떤 조건과 상황 가운데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지, 우리의 내면은 어떻게 열리는 건지, 우리의 지상 생활이 어떻게 해서 영적으로 변화되는지 등등...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번역도 참 깔끔하게 잘 되었고요. 주님의 빛을 구하시며, 충분히 ‘정독’하시면, 점차 밝아지며, 환하게 이해되실 줄 믿습니다.

 

이 외에도 이 교육장의 전체 구조 및 교육생들의 구성, 그리고 생전에 비기독교인이었던 영들의 경우, 이곳에서 어떻게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지 등은, 그리고 교육이 다 끝나면, 주님이 직접 한 사람 한 사람, 앞으로 그가 영원히 있게 될 해당 공동체로 인도하시는 등등은, 글이 너무 길어져 나중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나중에 사후 다 알게 될 사항들을 굳이 이렇게 미리 다루는 이유는, 이런 내용은 닥쳐서 깨닫기에는, 그리고 겪어서 알기에는 너무 늦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혈연과 혈육으로 지내게 하신 그 참뜻을 몰라 이 관계가 천년만년 갈 줄 알고, 내 핏줄, 내 혈육, 우리 집과 가문 등에 올인하는 삶을 사는 것은, 내면, 곧 속 사람의 형성에 올인해도 모자랄 시간을 외면, 곧 겉 사람의 삶으로 죄다 낭비를 하는 것과도 같아 사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참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이란 실상은 그의 애정, 곧 그의 중심 사랑(ruling love, 그 사람의 모든 언행을 지배하는 사랑)이 사람의 모양을 띤 것이며, 이것은 오직 삶을 통해서만 형성됩니다. 삶의 대부분을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놓고는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그런 건 없습니다. 구원,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비기독교인들이 보기에 공정하지 않은 무슨 허락이나 자비, 은혜를 받아 들어가는 게 아닌, 오직 이런 만인 앞에 공정하고도 공의로운 방법과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음은 다섯 번째인, ‘⑤ 자신의 영원한 공동체에 합류’인데요, 이 내용은 위 책, 40장, ‘천국 안의 결혼’ 383번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윗글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곧 선이 비슷한, 거의 같은 사람들끼리는 한 공동체를 이룹니다. 물론, 한 공동체 내에서도 모든 구성원의 선이 다 다르며, 그것은 중심에서 동심원 퍼져나가듯 그렇게 다릅니다. 즉 중심에는 그 공동체의 가장 뚜렷한 선을 가진 사람이, 바깥으로 갈수록 좀 덜한 사람이 배열됩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을 정도로만 다릅니다. 마치 아들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얼굴에 아버지의 얼굴이 반영된 것처럼 말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서는 비록 처음 보는 초면일지라도 마치 오랜 고향 사람 만나듯 친숙하고 반갑습니다. 그러나 천국일지라도 공동체가 다르면, 즉 선이 다르면 마치 외국인을 만난 듯 그저 대면대면합니다.

 

네, 이렇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지상의 혈육 관계는 휴면 상태로 들어가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새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의 남편 혹은 아내를 천국에서도 계속 부부로 만나 지내고 싶으면, 그리고 지금의 자녀들과 또 그리 하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 서로 선이 같으면 됩니다. 즉 그 중심 사랑이 같으면, 참된 결혼 생활을 하면 됩니다. 아내가 원하는 걸 남편도 원하고, 남편이 말하는 걸 아내는 따르고... 하여 둘이 한 몸 되면 됩니다!

 

끝으로 ‘⑥ 우리가 지상에서 혈연관계로 살아가게 하신 이유’입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속 사람, 곧 내면을 준비하게 하시려고’입니다.

 

땅 위 혈연관계는 천국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모종밭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인류로 채워지며 구성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천사들은 땅 위 혈연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결혼을 가장 신성시합니다. 천국 자체가 ‘결혼’입니다. 천국 결혼과 지상 결혼의 차이는 천국 결혼은 그 결과 선과 진리가 생겨나지만, 지상 결혼은 그 결과, 아들, 딸들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손주, 우리의 자녀들을 보며, ‘이 아이의 선과 진리는 어떤 면에서 나랑 살짝 다를까?’, 영적 시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땅 위 혈연관계를 통해 부지런히 우리는 자신의 속 사람, 영의 내면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녀, 부모, 손주 등 혈육, 핏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육의 눈으로 이들을 볼 때, 영의 눈이 함께 켜져서 주님의 모습 또한 겹쳐 보여야 하겠습니다. 자녀를 볼 땐, 부부, 곧 주님의 선과 진리의 결합으로 새로운 선과 진리가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를 뵐 땐, 자신의 뿌리이신 주님의 선과 진리를 역시 볼 수 있어야 하겠고 말입니다.

 

이래야 우리의 지상 혈육, 핏줄 사랑이 주께 복을 받으며, 안전할 것입니다. 이걸 놓치면, 우리는 그저 겉 사람의 일로, 육체의 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십계명의 의미를 배우면서 겉뜻과 속뜻의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십계명은 자연적 법이면서 영적인 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법이면서 천국 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뜻과 속뜻이 모두 중요합니다.

 

※ 즉 겉뜻도 지키지 않으면서, 속뜻, 속뜻 하는 것은 마치 기초 없이 집을 짓겠다 하는 것과 같고, 반대로 속뜻을 모르면서 겉뜻, 겉뜻 하는 것은 기초는 있는데 정작 집이 올라가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속뜻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겉뜻도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내면에서 천국적 결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신앙과 체어리티의 삶에 있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십계명의 속뜻뿐 아니라 겉뜻까지도 온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체어리티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은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할 수 없고, 또한 순결한 결혼 생활을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외적인 뜻은 이렇게 내적인 뜻과 서로 통합니다. 새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을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들의 상응(相應)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것들을 잘 이해하셔서 모든 교우께서는 십계명의 내적, 외적 은혜 가운데 충만한 삶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아멘

 

원본

2017-05-21(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5-05-0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5-04(D1)-주일예배(2596,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속뜻.pdf
0.51MB
성찬.pdf
0.14MB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목차 (Contents)

 

Contents

Contents Editor’s Preface ‘저자 서문’ (Author’s Preface, 1) HH.1, '저자 서문(序文)'(Author’s Preface)(HH.1)※ HH는 'Heaven and Hell'의 약어(略語)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공용 약어가 있습니다; 본문

heavenanditswondersandhell.tistory.com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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