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3:20)

 

AC.289

 

‘아내’(wife)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또한 가장 넓은 의미에서는 하늘과 땅에 있는 주님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것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mother)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말씀에서는 교회를 매우 자주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사야에 보면, It has also been shown above that by “wife” is meant the church, and in the universal sense the kingdom of the Lord in the heavens and on earth; and from this it follows that the same is meant by “mother.” In the Word the church is very frequently called “mother,” as in Isaiah: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사50:1) Where is the bill of your mother’s divorcement (Isa. 50:1)?

 

예레미야에는 In Jeremiah: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 보라 그가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과 광야와 마른 땅과 거친 계곡이 될 것이며 (렘50:12) Your mother is greatly ashamed; she that bare you was suffused with shame (Jer. 50:12).

 

에스겔에는 In Ezekiel: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겔16:45) Thou art thy mother’s daughter that loathed her man and her sons; your mother was a Hittite, and your father an Amorite (Ezek. 16:45),

 

여기서 ‘남편’(man, vir)은 주님과 천적인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자녀’(sons)는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헷 사람’(Hittite)은 거짓을, ‘아모리 사람’(Amorite)은 악을 의미합니다. where “man” [vir] denotes the Lord and all that is celestial; “sons,” the truths of faith; a “Hittite,” what is false: and an “Amorite,” what is evil.

역시 에스겔에 In the same:

 

네 피의 어머니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겔19:10) Thy mother is like a vine in thy likeness, planted near the waters; she was fruitful and full of leaves because of many waters (Ezek. 19:10).

 

여기서 ‘어머니’(mother)는 고대교회를 의미합니다. 특히 ‘어머니’(mother)라는 이름은 태고교회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태고교회는 최초의 교회였으며, 유일한 천적 교회였기 때문에,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Here “mother” denotes the ancient church. The term “mother” is more especially applicable to the most ancient church, because it was the first church, and the only one that was celestial, and therefore beloved by the Lord more than any other.

 

 

해설

 

AC.289은 왜 말씀에서 교회를 ‘어머니’라고 하는지를 설명하는 단락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앞에서 ‘아내’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머니’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씀에서 여인이나 어머니를 단순한 가족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교회의 상징으로 이해해야 함을 보여 줍니다.

 

말씀에서 ‘어머니’는 영적으로 사람을 낳고 기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육신의 어머니가 자녀를 낳아 기르듯이, 교회는 말씀과 진리를 통하여 사람을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따라서 ‘어머니’라는 이름은 단순히 출생의 근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이 사람에게 전달되는 통로를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말씀은 교회를 자주 ‘어머니’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보여 주기 위하여 여러 예언서를 인용합니다. 먼저 사50:1에서는 ‘너희 어미의 이혼 증서’가 언급됩니다. 여기서 ‘어미, 곧 어머니’는 이스라엘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혼은 주님께서 교회를 버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가 스스로 주님을 떠나 언약을 깨뜨린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와 주님 사이의 영적 관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렘50:12에서도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어머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거짓과 악으로 말미암아 본래의 영광을 잃었기 때문에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이처럼 한 나라나 한 민족을 단순한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교회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겔16:45에서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헷 사람’은 거짓을, ‘아모리 사람’은 악을 의미합니다. 또한 ‘남편’(man, vir)은 주님과 천적인 모든 것을, ‘자녀’는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거짓과 악을 받아들인 교회가 주님과 신앙의 진리마저 싫어하게 된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겔19:10에서는 ‘네 어머니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는 고대교회를 의미합니다. 포도나무는 영적 교회를, 많은 물은 풍성한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고대교회가 한때 주님의 진리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던 상태를 보여 줍니다. 같은 ‘어머니’라는 표현이라도 문맥에 따라 태고교회, 고대교회, 이스라엘 교회 등 여러 교회를 가리킬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언제나 교회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어머니’라는 이름은 무엇보다 태고교회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합니다. 태고교회는 인류 최초의 교회였을 뿐 아니라, 유일한 천적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퍼셉션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과 진리를 직접 받아들이며 살았고, 이후의 모든 참된 교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고교회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표현은 주님께서 어떤 교회는 더 사랑하시고 다른 교회는 덜 사랑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모든 사람과 모든 교회를 향하여 동일합니다. 다만 태고교회는 그 사랑을 가장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상태입니다.

 

AC.289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왜 교회를 의미하는지를 여러 성경 구절을 통하여 보여 줍니다. 교회는 사람에게 영적 생명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그 생명의 근원은 언제나 생명 자체이신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말씀에서 ‘어머니’를 만날 때에는 단순한 가족 관계를 넘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교회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심화

 

1. ‘사50: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보라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 (사50:1) Where is the bill of your mother’s divorcement (Isa. 50:1)?

 

 

AC.289에서 스베덴보리가 이사야 50장 1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어머니(mother)’가 실제 여성이 아니라 교회(church)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앞에서 ‘아내’가 교회를 의미하며, 따라서 같은 의미가 ‘어머니’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한 뒤, 이를 뒷받침하는 성경의 여러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어미를 내보낸 이혼 증서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어떤 한 여인과의 이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팔렸고 너희의 어미는 너희의 배역함으로 말미암아 내보냄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보면, 여기서 어머니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던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즉 교회가 진리와 선에서 떠나 배역한 상태가 이혼의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에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을 낳고 양육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어머니’라고 불립니다. 따라서 교회의 타락은 어머니의 수치나 버림받음으로 표현되며, 교회의 회복은 다시 자녀를 낳고 기르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말씀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0장 1절은 창3 20절의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하와가 단순한 한 여인이 아니라 교회를 표상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특별히 태고교회는 최초의 교회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가장 충만하게 받아들인 교회였기 때문에, 가장 깊은 의미에서 ‘어머니’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렘50:12’

 

그러므로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 보라 그가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과 광야와 마른 땅과 거친 계곡이 될 것이며 (렘50:12) Your mother is greatly ashamed; she that bare you was suffused with shame (Jer. 50:12).

 

 

AC.289에서 스베덴보리가 예레미야 50장 12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어머니(mother)’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 20절의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해석하면서, 성경 여러 곳에서 ‘어머니’가 교회를 뜻하는 용례들을 모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너희의 어머니가 큰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를 낳은 자가 치욕을 당하리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것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한다면 어떤 여인이나 민족의 조상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에서 그 어머니는 ‘나라들 가운데의 마지막’, ‘광야’, ‘마른 땅’, ‘거친 계곡’과 같은 상태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한 개인의 상태가 아니라 교회의 영적 황폐함을 나타내는 상징적 언어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상응 해석에서 ‘수치’와 ‘치욕’은 단순한 감정적 부끄러움이 아니라, 진리와 선을 잃어버린 교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본래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을 낳고 양육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진리를 버리고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바로 ‘수치를 당하는 어머니’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또한 ‘광야’, ‘마른 땅’, ‘거친 계곡’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광야는 종종 진리와 선이 결핍된 상태를 의미하며, 마른 땅은 영적 생명이 메마른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어머니가 그러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교회가 더 이상 생명을 공급하지 못하는 황폐한 상태로 전락했음을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러한 구절을 통해 교회가 단순한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라, 영적 생명을 낳고 기르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할 때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영광스럽게 사용되지만, 교회가 타락할 때는 ‘수치를 당하는 어머니’로 묘사됩니다. 같은 상징이지만 상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50장 12절은 ‘어머니’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창3 20절의 하와 역시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교회를 표상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태고교회는 모든 참된 교회의 시작이었으므로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불렸지만, 여기 예레미야에서는 그와 반대로 타락하여 황폐해진 교회가 ‘수치를 당하는 어머니’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3. ‘겔16:45’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로다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겔16:45) Thou art thy mother’s daughter that loathed her man and her sons; your mother was a Hittite, and your father an Amorite (Ezek. 16:45),

 

 

AC.289에서 스베덴보리가 에스겔 16장 45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어머니’가 교회를 의미할 뿐 아니라, 그 교회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까지 보여주는 상징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이사야와 예레미야 구절들이 ‘어머니=교회’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면, 이 구절은 교회의 구성 요소들이 상응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더욱 자세히 보여줍니다.

 

본문은 ‘너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라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곧바로 이 구절의 상응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여기서 ‘남편(man, vir)’은 주님과 모든 천적인 것을 의미하고, ‘아들들(sons)’은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다’는 것은 단순한 가족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주님을 거부하고 신앙의 진리들을 미워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이 구절은 교회의 타락이 단순히 몇 가지 잘못된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진리 자체에 대한 혐오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본래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그것들을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교회의 극심한 타락을 묘사하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어지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라는 표현도 문자 그대로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헷 사람(Hittite)’은 거짓을, ‘아모리 사람(Amorite)’은 악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그 교회가 거짓과 악에서 비롯된 상태에 있음을 나타냅니다. 즉 영적 혈통이 천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거짓과 악으로부터 형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AC.289의 주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어머니’라는 단어가 단순한 여성이나 혈연적 어머니를 의미하지 않고 교회를 의미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만일 여기서 어머니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한다면,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에 대한 표현도 이해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교회로 이해하면, 전체 구절은 교회의 타락과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말씀으로 자연스럽게 해석됩니다.

 

따라서 에스겔 16장 45절은 ‘어머니’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 줄 뿐 아니라, 교회가 주님과 진리를 거부할 때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가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창3 20절의 ‘모든 산 자의 어머니’ 역시 한 여인이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으며, 동시에 교회가 주님과 진리에 충실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것들을 미워하는 타락한 상태로 변질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4. ‘겔19:10’

 

네 피의 어머니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겔19:10) Thy mother is like a vine in thy likeness, planted near the waters; she was fruitful and full of leaves because of many waters (Ezek. 19:10).

 

 

AC.289에서 스베덴보리가 에스겔 19장 10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어머니(mother)’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또 다른 측면에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 16장의 구절들은 주로 타락하거나 배역한 교회를 ‘어머니’로 묘사하였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풍성하고 열매 맺는 교회를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머니’라는 상징이 교회의 선한 상태와 악한 상태 모두에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네 어머니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였다’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특별히 ‘어머니’가 고대교회(Ancient Church)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문자적인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영적으로 풍성한 교회의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말씀의 상응에서 ‘포도나무(vine)’는 흔히 교회를 의미하며, 특히 신앙과 체어리티의 결합 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또한 ‘물(waters)’은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가 열매가 많고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교회가 풍성한 진리의 공급을 받아 선과 진리를 풍부하게 산출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여기서 열매는 선한 삶을, 잎은 진리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나타냅니다.

 

이 구절은 앞의 에스겔 16장 45절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거기서는 어머니가 주님과 진리를 미워하는 타락한 교회를 의미했지만, 여기서는 진리의 물을 충분히 공급받아 풍성하게 열매 맺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어머니’라는 상징 자체가 특정한 선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교회를 의미하며, 그 교회의 상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AC.28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교회가 왜 ‘어머니’라고 불리는지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낳고 기르듯이, 교회는 진리와 선을 통해 사람들을 영적으로 낳고 양육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하고 풍성한 상태에 있을 때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처럼 묘사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겔 19장 10절은 ‘어머니’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예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창3 20절의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단순한 개인 하와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진리와 생명을 받아 많은 영적 자녀들을 낳는 교회, 특별히 최초의 교회였던 태고교회를 의미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88, 창3:20, ‘아담’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88 ‘아담’(man, homo)이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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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3:20)

 

AC.288

 

아담(man, homo)이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또한 오직 주님만이 사람(man)이시며, 모든 천적 인간이 사람인 것도 그들이 주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사실 역시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속한 사람은 예외 없이, 그리고 어떤 구별도 없이 모두 사람이었습니다. 후에는 이 이름이 겉으로 사람처럼 보이는 모든 존재에게까지 확대, 사람을 짐승과 구별하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습니다. That by “man” is meant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celestial man, was previously shown; and at the same time it was also shown that the Lord alone is man, and that from him every celestial man is man, because in his likeness. Hence every member of the church, without exception or distinction, was called a “man,” and at length this name was applied to anyone who in body appeared as a man, to distinguish him from beasts.

 

 

해설

 

AC.288은 ‘사람’이라는 말의 가장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해 주는 중요한 단락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단순히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사람’이라는 이름은 원래 훨씬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름은 처음부터 육체를 기준으로 붙여진 것이 아니라, 주님을 닮은 존재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아담(man, homo)은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 인간을 의미합니다. 개역개정은 창3:20에서 ‘아담’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괄호 안에 homo를 덧붙임으로써 이것이 단순한 개인의 이름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아담’은 한 개인인 동시에, 주님과 가장 가까이 교통하던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을 대표하는 표상입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오직 주님만이 사람(man)이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만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랑과 지혜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천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생명과 사랑, 그리고 지혜를 받아 살아가는 존재일 뿐, 그 모든 것을 자기 안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는 이름은 본래 주님께만 완전하게 속합니다.

 

그렇다면 천적 인간도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베덴보리는 그들이 주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육체의 모습, 곧 겉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천적 인간은 주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살며, 퍼셉션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직접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형상을 가장 충만하게 반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태고교회에서는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남녀의 차별도, 신분의 차별도, 능력의 차별도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들이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라는 이름은 사회적 신분이나 외적 조건이 아니라, 주님과의 영적 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점차 타락, 이 이름의 의미도 함께 희미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는 이름에 담긴 영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이 말은 단순히 몸의 모습, 곧 겉모습이 사람처럼 생긴 존재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본래 영적 이름이었던 ‘사람’이 점차 자연적 이름, 평범한 이름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의 영적 상태가 변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닮은 존재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던 ‘사람’이라는 이름이, 시간이 흐르면서 단지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는 말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는 교회가 내적 의미를 잃고 외적인 것만 남게 된 과정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AC.288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 줍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외모도, 지식도, 사회적 지위도 아닙니다. 사람은 주님의 형상을 받아들이는 만큼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이 사람이시며, 모든 천적 인간은 주님의 형상을 닮았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이것이 말씀에서 ‘아담’, 곧 ‘사람’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가장 깊은 의미입니다.

 

 

 

AC.289, 창3:20, ‘어머니’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89 ‘아내’(wife)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또한 가장 넓은 의미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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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7, 창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AC.287-291)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창3:20) AC.287 여기서 ‘아담’(man, homo)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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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3:20)

 

AC.287

 

여기서 아담(man, homo)은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내(wife)모든 산 자의 어머니(mother of all living)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녀를 어머니(mother)라고 하는 것은 최초의 교회였기 때문이며, ‘산 자(living)라고 하는 것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By the “man” [homo] is here meant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or the celestial man, and by the “wif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is meant the church. She is called “mother,” as being the first church; and “living,” in consequence of possessing faith in the Lord, who is life itself.

 

 

해설

 

AC.287은 창3:20에 나오는 ‘아담’, ‘아내’,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내적 의미로는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단순히 아담과 하와라는 두 개인의 이야기로만 읽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담’은 태고교회의 사람을, ‘아내’는 교회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는 생명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영적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최초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아담(man, homo)은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개역개정은 창3:20에서 ‘아담’이라고 번역하지만, 스베덴보리가 괄호 안에 덧붙인 homo는 고유명사만을 강조하기보다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개역개정에 따라 ‘아담’이라고 하되, 내적 의미로는 그가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을 대표한다는 점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아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교회는 단순한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인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그의 아내는 역사적인 부부인 동시에, 내적 의미로는 천적 인간과 그가 속한 교회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사람은 교회를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교회는 사람 안에서 실제적인 생명과 삶으로 나타납니다.

 

태고교회를 ‘어머니’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최초의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어머니’는 영적으로 사람을 낳고 기르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육신의 어머니가 자녀를 낳고 양육하듯이, 교회는 사람에게 말씀과 신앙을 전하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생명을 받아들이도록 돕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태고교회는 이후 모든 참된 교회의 첫 근원이었이며, 그래서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산 자’는 단순히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을 가리켜 ‘산 자’라고 하는 이유를,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연결되어 그분으로부터 영적 생명을 받는 사람을 말씀은 ‘산 자’라고 합니다.

 

특히 ‘생명 자체이신 주님’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과 천사는 생명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받는 존재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명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태고교회 사람들이 영적으로 살아 있었던 까닭은 그들 자체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생명 자체이신 주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표현은 생명의 근원이 교회라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교회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참으로 교회이기 위해서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에 두어야 하며, 사람들을 자기 조직이나 교리 체계에 묶는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주님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AC.287은 창3:20의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태고교회와 영적 생명의 근원을 설명합니다. ‘아담’은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을, ‘아내’와 ‘모든 산 자의 어머니’는 최초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이 ‘산 자’였던 이유는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단락의 중심은 모든 영적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며, 참된 교회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공동체라는 데 있습니다.

 

 

 

AC.288, 창3:20, ‘아담’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88 ‘아담’(man, homo)이 태고교회의 사람, 곧 천적 인간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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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6, 창3:20-24, ‘배경’

AC.286 이 장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태고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던 사람들이 마침내 영적인 사람이 되는 과정을 다루었고, 이어서 천적인 사람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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