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85.심화
2. ‘persuasions’
AC.285에서 스베덴보리는 태고교회의 마지막 후손들이 ‘더럽고 추한 사랑’(filthy loves)과 ‘그릇된 확신’(persuasions) 속에 남겨졌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persuasions’는 단순한 의견(opinion)이나 믿음(belief)을 뜻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사용하는 persuasion은 거짓이 사람의 의지와 생각에 깊이 결합, 아무리 진리가 제시되어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굳어진 내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그릇된 확신’, ‘망상적 확신’, 또는 ‘완고한 확신’ 정도가 가장 가까운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히 태고교회 말기 사람들을 설명하면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진리를 몰랐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퍼셉션을 통하여 진리를 알고 있었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선택, 자신들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거짓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거짓이 반복되고 굳어지면서 마침내 진리를 완전히 밀어내는 강력한 확신으로 변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persuasion입니다.
이러한 persuasion은 단순히 잘못된 생각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문제를 잘못 이해할 수 있고, 새로운 진리를 배우면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persuasion은 이미 사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논리나 증거만으로는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진리를 사랑해서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사랑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한 논리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persuasion은 지성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사랑의 문제입니다.
스베덴보리가 persuasion을 위험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짓이 이해에만 머물러 있을 때에는 아직 고쳐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이 사랑과 결합하여 persuasion이 되면, 사람은 거짓을 자신의 생명처럼 붙들게 됩니다. 그 결과 진리를 들을수록 오히려 더 강하게 거부하고, 자신의 거짓을 더욱 굳게 방어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진리를 밀어내는 상태입니다.
특히 태고교회 말기 persuasion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집’보다 훨씬 강한 상태였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다른 곳에서 그들의 persuasion이 너무 강하여, 다른 영들의 생각과 자유까지 억누를 정도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거짓을 너무나 절대적인 것으로 확신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진리를 생각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persuasion은 영계에서도 매우 위험한 상태로 여겨졌습니다.
이 때문에 AC.285에서는 ‘더럽고 추한 사랑’과 ‘그릇된 확신’을 함께 말합니다. 더럽고 추한 사랑은 사람의 의지를 지배하고, persuasion은 사람의 이해를 지배합니다. 의지가 악한 사랑에 사로잡히고, 이해가 거짓된 확신에 사로잡히면, 사람 전체가 주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둘을 지옥 상태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동시에 이것이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신앙의 가장 깊은 거룩한 것들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persuasion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천적 진리까지 충분히 알고 그것을 거부하였다면, 그들은 모독(profanation)에 빠져 훨씬 더 깊은 영적 파멸을 맞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룹과 두루 도는 불칼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더 큰 악에 빠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persuasion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진리보다 더 신뢰하고, 자신의 욕망을 지키기 위하여 말씀을 왜곡, 아무리 분명한 진리가 제시되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때, 그 거짓은 점차 persuasion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님 앞에서 자신의 생각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 진리를 배우려는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은 persuasion이 아니라 참된 신앙 안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AC.285가 경고하는 persuasion은 단순한 잘못된 견해가 아니라, 자기 사랑이 만들어 낸 거짓을 끝까지 붙드는 영적 완고함이며, 동시에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할 마음의 상태입니다.
AC.285, 창3:20-24, ‘창3:24 개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창3:23) AC.285 여섯 번째와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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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85, 심화 1, ‘filthy lo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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