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I Jehovah make all things,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Isa. 44:24).
이 구절은 겉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를 홀로 지으셨다는 선언처럼 보이지만,AC.50의 문맥에서는‘주님만이 사람 안에서 새로운 창조,곧 거듭남을 이루신다’는 것을 밝히는 핵심 구절입니다.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44:24의‘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쳤다’는 것은 우주의 창조만이 아니라,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주님 한 분이 질서 있게 새롭게 형성하시는 영적 창조,곧 거듭남의 전 과정을 의미합니다.’
먼저‘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입니다.여기서‘구속자’(redeemer)는 단순히 죄를 사하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람을 거짓과 악의 상태에서 건져내어 새로운 상태로 옮기시는 분’을 뜻합니다.그리고‘모태에서 너를 지었다’는 표현은 자연적 출생이 아니라, ‘영적 형성의 시작 상태’,곧 사람이 진리와 선 안에서 다시 형성되기 시작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즉,이 구절은 이미 태어난 인간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인간’,곧 거듭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입니다.여기서‘만물’은 단순한 자연계의 모든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형성되어야 할 모든 선과 진리,그리고 그 질서 전체’를 포함합니다.사람 안에‘하늘’이 세워지고‘땅’이 정돈되는 이 모든 과정이 바로‘만물을 짓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 표현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연결되면서도,그것이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지금도 각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창조’임을 보여 줍니다.
이제 핵심 표현입니다.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여기서‘하늘’은‘속 사람,내적 영역’,곧 사랑과 신앙이 자리 잡는 부분을 의미하고, ‘땅’은‘겉 사람,외적 삶과 행위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하늘을 편다’는 것은 사람 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참된 이해의 질서를 세우시는 것이고, ‘땅을 펼친다’는 것은 그 질서가 실제 삶과 행위 속에서 구현되도록 외적 삶을 정돈하시는 것입니다.즉,속과 겉이 하나의 질서로 연결되는 전 과정을 가리킵니다.
특히‘홀로’, ‘나와 함께 한 자 없이’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이것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거듭난다고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끊어냅니다.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 선한 의지와 참된 이해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따라서 거듭남의 과정에서 주도권은 전적으로 주님께 있으며,사람은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거부하지 않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제AC.50의 흐름과 연결하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태고교회에서는 이런 내적 질서가 자연스럽게,거의‘퍼셉션’으로 주어졌지만,이후 인간은 그 상태를 잃고,외적인 것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이제는 주님께서 말씀과 진리를 통해 다시 사람 안에‘하늘과 땅’을 세워 가셔야 합니다.이때 중요한 것은,이 일이 사람의 노력이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철저히‘주님의 단독 사역’이라는 점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어떤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그것을 따라 살고자 애씁니다.겉으로 보면 그 사람이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어느 순간,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넘어서는 변화가 일어납니다.이전에는 싫던 것이 좋아지고, 반대로이전에 좋던 것이 더 이상 안 좋게 느껴집니다.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만든 변화가 아니라,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하늘을 펴고 땅을 정돈하시는’과정입니다.바로 그때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창조는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지금도 사람 안에서 계속되는 거듭남의 역사입니다.’
‘사44:24의‘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쳤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질서 있게 새롭게 형성하시는 전적인 신적 사역,곧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음...지금까지의 묻고 답하기를 보면,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중간 영계,곧 영들의 세계 상황과 좀 달라 뭔가 좀 헝클어진,뒤죽박죽 느낌이 드는데요...그러니까 천국의 천사들,중간 영계의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그리고 지옥,즉 악마라는 지옥의 영들,마귀라는 지옥의 영들의 구분과 역할에 있어서 말입니다.그리고 사람들에게 와있는 영들의 경우,오직 중간 영계의 영들만 가능하다는 것인데요,이들의 역할에 대해 오늘 본문인AC.50맥락에 맞춰 정돈된 설명 좀 깔끔하게 부탁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까지의 내용이 헝클어져 보이신 이유는 ‘누가 직접 사람과 접촉하는가’와 ‘그 접촉 뒤에 실제로 작용하는 근원은 어디인가’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AC.50의 흐름에 맞추어 정리하면, ‘사람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오직 영들의 세계(중간 영계)의 영들이지만,그 영들을 통해 실제로 작용하는 근원은 천국(천사들)과 지옥(악마, 마귀들)이며,따라서 사람 안에서는 이 두 근원이 동시에 작용한다’가 핵심입니다.
먼저 구조부터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직접 천국의 가장 높은 천사들이나 지옥의 가장 깊은 악마들과 바로 접촉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영들의 세계’라는 중간 매개층을 통해 연결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 곁에 와 있는 존재들은 모두 ‘영들의 세계에 있는 영들’입니다. 이 점에서 목사님께서 알고 계신 ‘사람에게 와 있는 것은 오직 중간 영계의 영들뿐이다’라는 이해는 정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셔야 합니다. 이 중간 영계의 영들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들이 아니라, 항상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영은 천국 쪽과 연결되어 있고, 어떤 영은 지옥 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와 있는 영들이라고 해도, 그들 자체가 최종 원인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천국 또는 지옥이 사람에게 작용한다’고 보셔야 정확합니다.
이제 이를AC.50과 연결해 보겠습니다.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쳤다’라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 안에 ‘질서’를 세우신다는 뜻인데, 그 질서의 핵심이 바로 ‘어느 쪽 흐름이 중심이 되는가’입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중간 영계의 영들이 와 있지만,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영들이 주로 ‘지옥과 연결된 영들’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지옥의 흐름이 사람 안에서 중심을 잡습니다. 반대로 거듭남이 진행되면, 점점 ‘천국과 연결된 영들’이 중심이 되면서, 그들을 통해 천국의 흐름이 사람 안에서 작용하게 됩니다.
여기서 ‘천사’의 역할을 정확히 보셔야 합니다. 천사들은 보통 사람에게 직접 붙어서 작용한다기보다, ‘중간 영계의 선한 영들을 통해’ 사람에게 작용합니다. 즉, 천사 → 선한 영 → 사람, 이런 구조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옥도 악마나 마귀가 직접 사람을 붙잡기보다, ‘중간 영계의 악한 영들’을 통해 작용합니다. 즉, 지옥 → 악한 영 → 사람, 이런 구조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람에게 느껴지는 생각과 감정은 ‘중간 영계의 영들’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두 근원이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악마’(devils)와 ‘마귀’(satans)의 구분까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지옥을 크게 두 계열로 나누는데, 하나는 ‘사랑(의지)의 악’에서 나온 지옥, 곧 악마들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이해)의 왜곡’에서 나온 지옥, 곧 마귀들입니다. 이 구조는 앞서 말씀드린 인간의 ‘의지와 이해’ 구조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와 있는 악한 영들도 어떤 것은 의지 쪽을 자극하는 욕망과 쾌락으로 들어오고, 어떤 것은 이해 쪽을 어둡게 하는 거짓과 왜곡된 생각으로 들어옵니다.
정리하면 전체 구조는 이렇게 됩니다. 사람 곁에는 항상 ‘중간 영계의 영들’이 있으며, 그 영들은 각각 천국 또는 지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천국 쪽에서는 천사들이 그 영들을 통해 선과 진리를 흘려보내고, 지옥 쪽에서는 악마와 마귀들이 그 영들을 통해 악과 거짓을 흘려보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 두 흐름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중간 상태’에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은 단순히 ‘내 안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중간 영계의 영들을 통해 들어온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 배후를 보면, 어떤 것은 더 이기적이고 집착적인 방향(의지의 악)에서 오고, 어떤 것은 더 왜곡된 판단과 자기합리화(이해의 거짓)에서 옵니다. 동시에 또 다른 방향에서는 더 바르고 선한 마음과 깨끗한 이해가 함께 올라옵니다. 바로 이 복합적인 흐름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인간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래서AC.50의 핵심으로 다시 돌아가면, ‘주님이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치신다’는 것은, 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흐름 속에서 ‘천국 쪽이 중심이 되도록 질서를 재배치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영들이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과 연결된 영들이 중심이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에게 직접 오는 것은 중간 영계의 영들이지만,그들을 통해 실제로 작용하는 것은 천국과 지옥이며,거듭남은 이 연결의 중심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 과정입니다.’
왜‘두’영,‘두’천사인가요?‘셋’이나‘넷’은 안 되나요?저는 책,‘천국과 지옥’에서,사람이 기본적으로 의지와 이해로 되어 있고,이에 상응하는 천적 천국과 영적 천국에서는 천사들이,그리고 상응하는 지옥에서는 악한 영들이 오기 때문이라고 읽은 것 같고,그래서‘아,그래서 둘인가 보다’하고 있는데,이게 맞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목사님께서 이해하고 계신 방향이 맞습니다.다만 조금 더 정확히 정리하면,‘두 영,두 천사’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적 개념이 아니라,인간이‘의지와 이해’라는 두 본질적 기능으로 이루어져 있고,이에 각각 대응하여 천국과 지옥으로부터 두 방향의 영향이 들어오기 때문에‘둘’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된 것입니다.즉,이것은 상응의 구조를 반영한 설명입니다.
먼저 인간의 구조부터 보셔야 합니다.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의지’(will)와‘이해’(understanding)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의지는 사랑과 선에 관한 부분이고,이해는 진리와 생각에 관한 부분입니다.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할 때,비로소 인간은 온전한 인격으로 존재합니다.그래서 어떤 것이든 인간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려면,의지와 이해 두 영역 모두에 작용해야 합니다.
이제 여기에 상응하는 영적 구조가 연결됩니다. ‘천국과 지옥’에서 설명하듯이,천국에도 두 큰 구분이 있습니다.하나는‘천적 천국’으로,주로 사랑과 의지에 대응하고,다른 하나는‘영적 천국’으로,주로 진리와 이해에 대응합니다.그래서 천사들도 이 두 계열로 나뉘며,각각 인간의 의지와 이해에 작용합니다.마찬가지로 지옥도 이 두 구조를 뒤틀린 형태로 가지고 있어서,악한 영들도 의지 쪽과 이해 쪽에서 각각 작용합니다.
이렇게 보면‘왜 둘인가’가 분명해집니다.인간이 두 기능(의지와 이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그 두 기능 각각에 작용하는 영적 연결도‘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그래서 천국 쪽에서는‘두 천사’,지옥 쪽에서는‘두 영’이라는 구조가 형성됩니다.이것은 임의적인 숫자가 아니라,인간 존재의 구조와 정확히 맞물린 필연적인 형식입니다.
그렇다면‘셋’이나‘넷’은 왜 아니냐 하면,그것들은 인간의 본질 구조를 설명하는 숫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물론 실제로는 한 사람 주변에 수많은 천사들과 영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양적인 설명’이고,스베덴보리가 말하는‘두 영,두 천사’는‘구조적인 설명’입니다.즉,인간 안에서 반드시 작동해야 하는 최소 단위,곧 의지와 이해라는 두 축에 대응하는 기본 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더 분명해집니다.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합니다.이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동시에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의지’가 함께 움직입니다.즉,이해와 의지가 동시에 작용합니다.이때 이해 쪽에는 어떤 진리 혹은 거짓의 흐름이 들어오고,의지 쪽에는 어떤 선 혹은 악의 끌림이 들어옵니다.이 두 흐름이 서로 얽히면서 사람의 선택이 이루어집니다.바로 이 구조가‘두 영과 두 천사’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목사님께서 생각하신 것처럼, ‘‘의지와 이해’라는 인간의 두 본질적 기능에 대응하여,천국에서는 두 계열의 천사들이,지옥에서는 두 계열의 악한 영들이 작용하기 때문에‘둘’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 맞습니다.이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인간 존재의 깊은 구조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 때 사정과 거듭난 상태 때 사정이 이렇게 다르다면, 그러면 ‘거듭났다’는 상태가 정확히 영적 인간의 거듭남 여섯 상태 중 언제를 말하는 건가요? 어느 상태, 어느 단계부터 그 주도권과 영향이 악한 영들한테서 천사들로 바뀌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도권이 악한 영들에서 천사들로 넘어간다’는 것은 어떤 한 시점에서 단번에 뒤집히는 사건이라기보다, ‘거듭남의 중간 지점에서 서서히 방향이 바뀌어,후반부에 들어가면서 확실히 자리 잡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여섯 상태로 나누어 본다면, 대체로 ‘셋째 상태를 지나 넷째 상태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전환이 실제로 시작되고, ‘다섯째와 여섯째 상태에서’ 비로소 안정적으로 천사 쪽이 주도권을 갖는다고 보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먼저 큰 틀을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거듭남의 여섯 상태는 단순한 단계 구분이 아니라, ‘진리가 중심이던 상태에서 선이 중심이 되는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초반부(상태1-3)는 아직 ‘진리(이해)’가 앞서고, ‘선(의지)’은 따라오는 상태이고, 후반부(상태4-6)는 ‘선(의지)’이 중심이 되고, ‘진리(이해)’가 그에 맞게 정렬되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 중심축의 이동이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와 직결됩니다.
이제 상태별로 보면 이렇게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첫째와 둘째 상태에서는 사람은 여전히 자기중심성과 세속적 애착 안에 깊이 묶여 있습니다. 이때도 천사들은 함께 있지만, 역할은 거의 ‘보호자’에 가깝고, 실제 생각과 감정의 흐름은 주로 악한 영들 쪽에서 강하게 들어옵니다. 셋째 상태에서는 ‘유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두 흐름이 강하게 충돌합니다. 이때는 아직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싸움의 한복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번번이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는 상태를 반복합니다.
중요한 전환점은 넷째 상태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단순히 진리를 아는 것을 넘어서, ‘선을 실제로 사랑하기 시작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옳아서 했던 것이 이제는 ‘좋아서 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도권이 서서히 이동합니다. 아직 유혹은 남아 있고 악한 영들의 작용도 계속되지만, 사람 안의 중심이 더 이상 그쪽에 있지 않게 됩니다.
다섯째 상태에 들어가면 이 변화는 훨씬 분명해집니다. 사람은 선을 자연스럽게 행하고, 진리는 그것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는 천사들의 흐름이 실제로 사람의 의지와 생각을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악한 영들은 여전히 접근하지만, 이제는 ‘외부에서 건드리는 수준’이지, 중심을 장악하지는 못합니다. 여섯째 상태에서는 이 질서가 거의 안정되어, 사람은 ‘천국의 질서 안에서 사는 상태’, 곧 내적 평안과 일치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질문하신 핵심에 정확히 답하면 이렇습니다. ‘주도권의 전환’은 셋째 상태의 유혹 가운데 준비되고, 넷째 상태에서 실제로 시작되며, 다섯째 상태에서 확실해지고, 여섯째 상태에서 안정됩니다. 즉,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유혹을 통과하며 서서히 이루어지는 방향 전환’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이게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조금씩 선택이 바뀌고,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더 나은 쪽을 택하게 됩니다. 그때 이미 중심은 옮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좋아하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선한 것이 더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천사 쪽이 주도권을 갖게 된 상태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거듭남에서 주도권의 전환은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셋째 상태의 유혹을 거쳐 넷째 상태에서 시작,다섯째와 여섯째 상태에서 완전히 자리 잡는 점진적 변화입니다.’
위AC.50본문은,그러니까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과 천사들이 와 있고,거듭난 상태에서는 천사들만 와 있다는 말인가요?여기서 말하는‘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에서,여기서 말하는‘두 영’은 악한 영들을 말하는 거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네, 이해하신 방향이 맞습니다. 다만 조금 더 정확히 정리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항상 두 종류의 영적 존재,곧 악한 영들과 천사들이 함께 있으며,거듭남의 여부에 따라 이들의‘존재 여부’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주도권과 영향력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두 영’은 일반적으로 ‘악한 영들’을 가리키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는 말의 구조를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결코 혼자 존재하지 않고, 항상 영계와 연결된 상태로 산다고 설명합니다. 이때 ‘두 영’은 지옥 쪽에서 오는 악한 영들, ‘두 천사’는 천국 쪽에서 오는 선한 영들입니다. 즉, 인간은 항상 ‘천국과 지옥 사이의 접점’ 위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때는 ‘악한 영들의 영향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천사들도 여전히 함께 있지만, 그들은 직접적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완전히 버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연결’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천사들은 뒤에서 지키고 있고, 실제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더 가까이 작용하는 것은 악한 영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방향으로 기울게 됩니다.
반대로 거듭난 상태에서는 ‘천사들의 영향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한 영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존재하며, 계속해서 자극하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중심이 아니라 ‘주변적 존재’가 됩니다. 사람은 더 이상 그들의 흐름에 자동으로 끌려가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곧 천사들과 연결된 흐름 속에서 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사람이 누구와 함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흐름을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 안에 악한 영과 천사가 동시에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쪽에 동의하고 어떤 쪽을 따라 사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곧 자유와 책임의 자리입니다.
이걸 조금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생각이 올라옵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적이고, 하나는 더 바르고 선한 방향입니다. 이 둘은 단순히 ‘내 안에서 생겨난 생각’이 아니라, 각각 다른 영적 근원에서 오는 흐름입니다. 이때 사람이 어느 쪽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점점 그쪽과 더 깊이 연결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어느 쪽이 주도권을 갖는 상태’로 굳어지게 됩니다.
그래서AC.50의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말씀과 연결하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바로 이 ‘주도권의 전환’입니다. 즉, 악한 영들이 중심이던 상태에서 천사들이 중심이 되도록,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새롭게 질서 잡으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 전체가 바로 거듭남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두 영’은 맞습니다,악한 영들을 가리킵니다.그러나 거듭남은 그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그들의 영향력이 중심에서 밀려나고 천사들의 영향이 중심이 되는 상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AC.50
태고교회는 ‘주의 형상’(image of the Lord)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천사들과 영들에 의해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계와 소통하고, 천사들을 통해서는 천국과 소통하는 것이지요. 영계를 통한 소통과, 천국을 통한 소통, 그리고 그 천국을 통해 주님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전혀 살 수 없는 구조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 결합에 전적으로 달려 있어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물러난다면 그는 즉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The most ancient church understood by the “image of the Lord” more than can be expressed. Man is altogether ignorant that he is governed of the Lord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that with everyone there are at least two spirits, and two angels. By spirits ma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angels with heaven. Without communication by means of spirits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means of angels with heaven, and thus through heaven with the Lord, man could not live at all; his life entirely depends on this conjunction, so that if the spirits and angels were to withdraw, he would instantly perish.
[2] 사람은 거듭나기 전과 후에 있어 다스림을 받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이 사람과 함께 있으며, 그들이 사람을 강하게 지배합니다. 이때에도 여전히 천사들은 함께 있으나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만 사람이 가장 극단적인 악으로 떨어지지만 않도록 막아 주며, 그의 본성적 욕구를 통해서는 선으로, 감각의 오류를 통해서는 진리 쪽으로 향하게 할 뿐입니다. 이때 사람은 함께 있는 영들을 통해 영계와는 소통하지만,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천사들이 그 지배를 겨우 막고 있는 상태이므로, 천국과의 소통은 매우 미약합니다.While man is unregenerate he is governed quite otherwise than when regenerated. While unregenerate there are evil spirits with him, who so domineer over him that the angels, though present, are scarcely able to do anything more than merely guide him so that he may not plunge into the lowest evil, and bend him to some good—in fact bend him to good by means of his own cupidities, and to truth by means of the fallacies of the senses. He the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through the spirits who are with him, but not so much with heaven, because evil spirits rule, and the angels only avert their rule.
[3]그러나 사람이 거듭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는 천사들이 주도적으로 다스리며, 사람에게 모든 선과 진리를 불어넣고,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혐오를 일으키게 합니다. 물론 천사들이 이끌기는 하지만, 그것은 봉사의 방식일 뿐이며, 실제로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천사들과 영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기에서는 먼저 복수형으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라고 하고, 곧이어 단수형으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일하시지만, 다스림과 창조의 주체는 오직 주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도 이 점을 이사야에서 분명히 밝히십니다.But when the man is regenerate, the angels rule, and inspire him with all goods and truths, and with fear and horror of evils and falsities. The angels indeed lead, but only as ministers, for it is the Lord alone who governs man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as this is done through the ministry of angels, it is here first said, in the plural numb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yet because the Lord alone governs and disposes, it is said in the following verse, in the singular number, “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This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Jehovah make all things, 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 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Isa. 44:24).
천사들 자신도 자신들에게는 어떤 능력도 없으며, 오직 주님한테서 나오는 그분의 힘으로만 자기들은 일한다고 고백합니다.The angels moreover themselves confess that there is no power in them, but that they act from the Lord alone.
해설
이 글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을 인간의 외형이나 도덕성 차원이 아니라, ‘영적 통치 구조’의 관점에서 풀어 줍니다. 태고교회가 ‘주의 형상’을 매우 깊이 이해했다는 말은, 그들이 인간의 생명이 어디서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퍼셉션을 통해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주님–천국–천사–영계–인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연결이 끊기면, 인간은 단순히 약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유지되지를 않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충격적인 진술 중 하나는, 사람이 자신에게 영들과 천사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신비주의적 주장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인간 생명의 ‘일상적인 구조’입니다. 인간은 감각적으로는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영계와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연결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생존 조건’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치는 ‘악한 영들의 우세’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이 글은 인간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존재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들이 강하게 작용할 때에도 천사들은 함께 있으며,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사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때 천사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적 욕구와 감각의 오류를 통해서라도 선과 진리 쪽으로 굽힙니다. 이는 주님께서 인간의 현재 상태를 무시하지 않고,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거듭남 이후에는 통치의 중심이 바뀝니다. 이제는 천사들이 주도적으로 작용하며, 인간 안에 선과 진리를 적극적으로 불어넣습니다. 특히 악과 거짓에 대해 ‘두려움과 혐오’가 생긴다는 설명은 중요합니다. 이는 외적 규율이나 공포심이 아니라, ‘내적 질서가 바뀌었음을 보여 주는 징표’입니다. 더 이상 악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거부감이 생기는 상태가 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천사들을 통치의 주체로 세우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철저히 ‘사역자’이며, 통치의 실제 주체는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창세기에서 복수형과 단수형이 함께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형상대로’라는 표현은 천사들의 사역을 포함한 통치 구조를 드러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단수 표현은 ‘권능과 주권의 단일성’을 분명히 합니다.
이 글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완전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통치가 막힘없이 흐르는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