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이란 전쟁이 한창입니다. 미국-이스라엘의 압도적 군사력으로 그동안 중동 호랑이 노릇하던 이란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풍비박산이 나는 중입니다. 어느 산 속 깊은 곳에서는 이란군 혁명수비대 정예 5,000명이 생매장 되었다고도 하는데요, 저들이 그동안 저질러온 악행을 생각할 때, 심은 대로 거두는구나 싶지만, 한편으로 저런 나라에 태어나 저들의 교리가 진리인 줄 알고 살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는 젊은이들의 경우, 그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하나 고민도 됩니다. 저들 뿐이 아니지요.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많은 나라에 태어나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다 망하게 된 사람들도 다 그렇지요. 이런 것에 대해 스베덴보리는 어떤 입장, 어떤 통찰을 말하나요?

 

 

이 질문의 핵심은 ‘어떤 나라, 어떤 종교, 어떤 환경 속에서 태어나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다 비극적 삶을 마친 사람들의 책임과 구원 문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집중해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의 관점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스베덴보리의 핵심 입장은 매우 분명합니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이나 종교 자체’로 심판받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 곧 ‘그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선을 사랑하고 진리를 따르려 했는가’에 따라 판단됩니다. 그는 여러 저작에서 반복하여 말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으며, 각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빛 안에서 판단된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이슬람, 공산주의, 무신론, 혹은 왜곡된 기독교 환경 속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것 자체로 정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선하게 살고자 했는가, 이웃을 해치지 않으려 했는가, 양심에 따라 살았는가’가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 제시합니다. 바로 ‘양심(conscience)과 ‘인플럭스(influx)입니다. 그는 주님이 모든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선과 진리를 흘려보내신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외적인 교리로는 잘못된 것을 믿고 있다 하더라도, 내적으로는 ‘선한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이미 천국과 통하는 길이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는 저작들에서 ‘이방인들, 즉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많은 이들이 천국에 간다’고 단언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종교 안에서 진실하게 선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매우 중요한 역설도 있습니다. 진리를 많이 알고, 정통 교리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삶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빛을 알면서도 거부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있어 진정한 기준은 ‘무엇을 믿었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이며, 더 정확히는 ‘그가 사랑한 것이 무엇이었느냐’입니다. 사랑이 곧 그 사람의 본질이며, 사후 세계에서 그 사람은 그 사랑에 따라 자기와 같은 상태의 공동체, 곧 천국 또는 지옥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제 질문하신 ‘저런 환경 속에서 잘못된 것을 진리로 알고 살다가 비극을 맞이한 젊은이들’에 대해 보면, 스베덴보리는 그들을 집단적으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 각각을 ‘개별적인 영적 존재’로 봅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정직하게 살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선을 선택하려 했으며, 잔혹함을 기뻐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사후 세계에서 교육과 교정을 거쳐 천국으로 인도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이방인들은 사후에 천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아 더 쉽게 진리를 받아들인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또 하나의 냉정한 원리도 제시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거짓 교리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용해 악을 정당화하고, 잔혹함과 증오를 사랑하며, 타인을 파괴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면, 그 책임은 면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는 ‘무지’가 아니라 ‘사랑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즉 환경은 영향을 주지만, 최종적으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랑과 의지라는 것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의 통찰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시며, 아무도 태어난 조건 때문에 버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사랑 때문에는 면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나라, 어떤 집단을 단순히 ‘악하다’고 단정하기보다, 그 안에 있는 개별 인간들의 내면과 선택을 더 깊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이 돌아옵니다. ‘나는 더 많은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실제 삶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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