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05.심화

 

3. 새 교회’,  새 예루살렘의 시작

 

그럼 새 교회’,  새 예루살렘은 어떻게 오나요? 그때에도 여전히 세상은 자기가 중심인 사람들로 혼란스러울 텐데... 그런 사람들로 지상의 99%는 어수선함에도 불구, 겨우 1%의 사람들을 가지고 어느 한쪽 구석에서 새 교회는 시작되는 건가요? 노아의 홍수도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 거죠? 태고교회도 당시 교회 안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 것이고 말입니다. 석기시대 등을 생각하면, 이렇게 모든 걸 나눠서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핵심부터 바로 말씀드리면, ‘새 교회’, 곧 새 예루살렘은 어떤 시점에 전 세계가 한꺼번에 바뀌면서 도래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런 식의 기대는 성경의 외적 역사 이해에서는 가능하지만, 스베덴보리의 내적 의미에서는 맞지 않습니다. 새 교회는 언제나 ‘상태의 시작’으로 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 가운데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중심으로 생명의 질서가 회복된 상태’가 시작될 때, 이미 새 교회는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하신 것처럼, 겉으로 보면 세상은 여전히 자기중심의 욕망과 혼란 속에 있습니다. 국가 간 대립, 이념 갈등, 개인의 욕망 중심적 삶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의 본질’과는 다른 층위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서 교회란 제도나 숫자가 아니라 ‘주님과 연결된 내적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교회는 99퍼센트가 어떻게 사느냐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거나 대치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층위에서, 조용히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고, 흩어져 있으며, 서로를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안에는 공통된 하나가 있습니다. 곧 ‘사랑이 중심이 되고, 그 사랑에서 신앙이 나오며, 그 신앙에서 이해가 열리는 질서’가 실제로 살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 교회의 시작입니다.

 

말씀하신 ‘노아의 홍수’ 역시 같은 원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 물리적 재난이라기보다, ‘교회 상태의 붕괴’와 ‘새로운 교회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홍수 이전의 교회, 곧 태고교회는 퍼셉션을 중심으로 살던 천적 인간의 상태였고, 그 상태가 무너지면서 감각과 기억 지식 중심으로 내려앉는 과정이 홍수로 묘사됩니다. 이 변화는 인류 전체가 동일하게 경험한 사건이 아니라, ‘교회로 불릴 수 있는 상태를 가진 사람들’ 안에서 일어난 변화입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라는 것은 인류 전체와 동일한 범위가 아니라, ‘주님과 연결된 상태를 가진 사람들의 집합’입니다.

 

이 점에서 석기시대든, 고대든, 현대든, 언제나 인류 전체와 교회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통찰은 정확합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같은 입장입니다. 인류 전체는 다양한 상태에 있고, 그중 일부만이 교회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가 소수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 소수가 ‘질서의 중심’을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영적 세계에서는 양보다 질서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이 들어오고, 그 사랑에서 신앙이 살아 있으며, 그 신앙에서 이해가 열리는 그 구조가 살아 있는 한, 교회는 존재합니다.

 

따라서 새 교회는 ‘어느 한 구석에서 시작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공간적 의미의 구석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식되지 않는 영역에서,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중심적인 영역에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영적 질서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떨어져 있는 개인들일 수 있지만, 그 상태가 점점 연결되면서 교회는 형성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늘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선지자 시대도,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도, 그리고 이후 모든 영적 갱신의 시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이 질문의 가장 실제적인 답은 이것입니다. 새 교회는 ‘언제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 시작되느냐’의 문제이며, 그 ‘어디’는 바깥세상이 아니라 ‘한 사람 안의 질서’입니다. 한 사람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주님 중심으로 돌아서고, 사랑이 중심이 되어 그로부터 신앙이 살아나고, 그 신앙으로 이해가 열릴 때, 그 사람 안에서 이미 새 예루살렘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비록 적어 보여도, 그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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