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2:15)
AC.123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이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의 것임을, 지각하기(perceive) 때문에 인정합니다. 영적 인간도 동일한 사실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이는 말씀으로부터 배웠기(learn) 때문에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적이며 육적인 인간은 이를 인정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부르고, 만일 그것을 잃게 된다면 자기 자신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he celestial man acknowledges, because he perceives, that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re the Lord’s. The spiritual man does indeed acknowledge the same, but with the mouth, because he has learned it from the Word.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neither acknowledges nor admits it; but whatever he has he calls his own, and imagines that were he to lose it, he would altogether perish.
해설
이 단락은 AC.122에서 말한 ‘누림은 허락되었으나 소유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원리를, ‘세 부류의 인간 상태’를 대비시키며 아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말로 고백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인식하고, 어디서부터 살아가느냐’입니다.
천적 인간은 ‘인정한다’고 말하지만, 그 인정의 근거는 배움이나 교리가 아니라 ‘지각’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따로 생각해서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인정은 선택이나 결단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식의 결과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내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영적 인간도 같은 말을 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다릅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다. 즉, 그의 인정은 여전히 이해와 신앙의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거짓이 아니며, 매우 귀한 단계이지만, 아직은 ‘지각의 즉각성’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입니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세상적, 육적인 인간은, 앞의 두 부류와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는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인간의 내적 논리를 폭로합니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소유를 잃는 것은 곧 존재의 붕괴로 느껴집니다.
이 대목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내가 가진 것 = 나’라는 등식이 성립할 때,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해집니다. 잃지 않기 위해 움켜쥐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방어하며, 더 가지기 위해 경쟁합니다. 이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존재를 소유에 걸어 둔 상태’입니다.
이렇게 보면, AC.122에서 말한 ‘소유하지 않음’은 결핍이 아니라 해방입니다.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지각하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는 이미 자기 자신을 주님께 맡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적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항상 잃을 가능성 안에 살아갑니다.
이 단락은 이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의 긴장을 예고합니다. ‘내 것’으로 삼으려는 충동은, 결국 인간을 에덴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천적 질서는 ‘주님의 것임을 지각함’ 위에 서 있고, 타락은 ‘자기 것이라 부름’에서 시작됩니다.
AC.123은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고백을 하더라도, 지각에서 나오는 인정과 배움에서 나온 인정은 전혀 다르며, 소유를 자기 존재와 동일시하는 순간 인간은 이미 에덴의 질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심화
1. ‘수도원과 소유’
AC.123, 심화 1, ‘수도원과 소유’
AC.123.심화 1. ‘수도원과 소유’ 저는 스베덴보리를 알기 전, 그러니까 이 AC를 읽기 전, 좀 특이한 단계를 밟았는데, 그것은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원 공부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수도사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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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천히 풀어지는’
바로 위 ‘소유 의식이 천천히 풀어지는 과정’ 중 ‘천천히 풀어지는’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이건 내 것이 아니다’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거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내 것’이라고 붙잡습니다. 재물만이 아니라, 내 생각, 내 판단, 내 경험, 심지어 내 신앙까지도 그렇게 여깁니다. 그래서 소유 의식은 단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인식이 바뀌면서 서서히 풀리는 것’입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이건 주님의 것이다’라는 말을 ‘배워서 말합니다’. AC.123에서 말하는 영적 인간의 단계입니다. 이때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래도 내 것 같은데...’ 하는 감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그렇게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작은 경험들이 쌓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주님의 인도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는다든지, 붙잡고 있던 것이 오히려 내려놓을 때 더 평안해진다든지 하는 경험입니다. 이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내 것’이라는 감각이 조금씩 느슨해집니다.
그다음 단계가 되면, 사람 안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더 이상 애써 ‘주님의 것이다’라고 말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때가 천적 상태의 시작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이 ‘생각’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소유하려는 긴장이 사라지고, 대신 맡겨진 것을 돌보는 자유가 생깁니다.
그래서 ‘소유 의식이 풀린다’는 말은, 무언가를 억지로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붙잡고 있던 마음의 힘이 서서히 느슨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님의 것임을 아는 평안’이 들어옵니다.
결국 이것은 훈련 이전에 ‘질서의 회복 과정’입니다. ‘내가 중심’이던 상태에서 ‘주님이 근원’이라는 질서로 돌아갈 때, 소유 의식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강요로 되는 일이 아니라, 말씀과 삶 속에서 점차 열리는 과정입니다.
AC.122, 창2:15, ‘에덴동산 : 천적 인간의 전 인격, 그리고 태도’(AC.122-124)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창2:15) AC.122 ‘에덴동산’(garden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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