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23.심화

 

1. ‘수도원과 소유

 

저는 스베덴보리를 알기 전, 그러니까 이 AC를 읽기 전, 좀 특이한 단계를 밟았는데, 그것은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원 공부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수도사들, 곧 보통 성인이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러니까 성인전을 통해 많이 접하게 되지요. 성인들의 몇 가지 일반인과 다른 특징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게 바로 소유에 대한 태도입니다. 물론 한 나라 왕이었어도 성인인 케이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로부터 물러남을 통해서 이 삶을 시작합니다. 저는 수도원의 권유에도 불구, 수도원에 들어가 산 적은 없고, 단지 잦은 왕래와 순종, 겸손, 청빈, 정결 및 기도와 노동의 균형 공부만 한 케이스여서 반쪽짜리일 수 있지만, 어쨌든 덕분에 이 소유에 대한, 이 물질만능 시대에 나름 요동치 않는 관점을 가질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개신교 목사임에도 불구, 이 스베덴보리의 저작들, 특히 그 기초인 이 AC를 읽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희 교회 성도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초기 입문 과정에서 이 수도원 과정,  성인전 과정을 어떤 식으로든 도입하는 게 이런 과정 없이 갑자기 쑥 들어오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를 보면, 만일 저에게 이런 중간 과정이 없었으면, 그러니까 저를 잘 아시는 주님이 이런 과정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저는 스베덴보리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거든요...

 

목사님의 문제 제기는 매우 실제적이지만, 그대로 수도원식 과정’을 도입, 그대로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핵심은 외적 소유를 끊는 형식’이 아니라, ‘내적 소유 의식이 어떻게 바뀌느냐’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형식이 먼저 들어오면, 오히려 사람들이 나는 내려놓았다’는 새로운 자기 의를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방향은 수도원 도입’이 아니라, ‘수도원에서 길러지는 내적 태도를 교회 안에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형성할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겪으신 과정이 왜 유익했는지를 보면 답이 보입니다. 성인전은 단순히 금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내 것’이라는 감각을 서서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누군가는 재물을 내려놓고, 누군가는 명예를 내려놓고, 누군가는 자기 뜻을 내려놓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접하면서, 사람은 , 인간은 소유 없이도 살 수 있는 존재구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단계가 없으면, AC.122–123에서 말하는 소유하지 않음’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목사님처럼 미리 그 토양이 형성된 경우에는, 스베덴보리의 가르침이 낯설지 않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성인전에서의 내려놓음은 때로 외적 단절’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내적 귀속의 변화’로 설명합니다. 즉,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내 것’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주님께서 맡기신 것’으로 여기느냐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길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실천 가능합니다. 이 점을 놓치고 수도원 형식만 도입하면, 오히려 교회 성도들에게는 부담과 거리감이 커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적인 방향은 이렇습니다. 성도들에게 곧바로 소유하지 말라’고 가르치기보다, 먼저 누림과 소유의 차이’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가진 것들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인가, 아니면 맡겨진 것인가’를 스스로 묻게 하고, 작은 영역에서부터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성인전은 매우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규범으로 제시하기보다, ‘‘이런 삶의 방향도 있다는 창을 열어 주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단계입니다. AC.123이 보여주듯이, 사람은 처음부터 지각으로 아는 상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말씀을 통해 배워서 인정하는 단계’에서 시작합니다. 이 단계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먼저 배워서 말하는 인정’을 충분히 하게 하고, 그 위에 삶의 경험과 작은 실천을 통해 서서히 지각으로 아는 상태’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목사님의 통찰은 매우 정확합니다. 중간 과정 없이 곧바로 들어가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중간 과정은 수도원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성인전과 삶의 실천을 통해 소유 의식이 천천히 풀어지는 과정’으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도들은 부담 없이, 그러나 실제적으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릴 수 있습니다.

 

 

 

AC.123, 창2:15, ‘에덴동산에 대한 세 가지 태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2:15) AC.123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이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의 것임을, 지각하기(perceive) 때문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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