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52.심화

 

3. ‘속임의 실제 통로는 여자

 

여자(woman)가 사람의 own을 뜻한다는 사실은, 여자가 속임을 당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것은 언제나 그의 own, 곧 같은 말로 하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뱀은 3장에서 등장하지만, 속임의 실제 통로는 여자를 통해 열립니다. , 악은 언제나 own 안으로 초대될 때 비로소 힘을 갖습니다. 외부의 거짓이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공명하는 own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AC.152에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핵심은, 인간을 실제로 무너뜨리는 것은 바깥의 악 자체가 아니라, 그 악이 인간 안의 proprium과 결합할 때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속이는 것은 언제나 그의 own’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own,  proprium은 단순 자의식이 아니라, ‘내가 나로부터 산다’, ‘내가 중심이다’, ‘내 판단과 내 욕망이 기준이다’라고 느끼는 자기 중심 구조를 뜻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구조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 기울어질 때, 인간은 진리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악을 단순 외부 침입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악이 단지 외부 공격이라면, 인간은 거의 피해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악이 힘을 얻는 이유를 인간 안의 proprium에서 찾습니다. 즉, 바깥에서 들어온 거짓이 인간 안의 어떤 욕망과 자기 사랑과 만나 그래, 바로 이거야 하고 공명할 때, 비로소 그것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서 뱀은 먼저 등장하지만, 실제 대화와 수용의 중심은 여자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굉장히 깊습니다. 뱀은 감각적 추론과 외적 설득을 상징합니다. 즉,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너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지 않느냐?’ 같은 외적 유혹입니다. 그런데 그 유혹 자체만으로는 아직 인간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인간 안의 proprium과 연결될 때입니다.

 

그래서 속임의 실제 통로는 여자였다’라는 말은, 악이 인간 안의 자기중심 구조를 통해 받아들여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거짓은 단순히 밖에서 강제로 주입되지 않습니다. 인간 안에서 그것을 원하고 좋아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무엇이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이 힘을 가집니다. 이것이 악은 언제나 own 안으로 초대될 때 힘을 갖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굉장히 현실적인 인간 경험이기도 합니다. 같은 유혹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별 반응이 없고, 어떤 사람은 강하게 끌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스베덴보리식으로 말하면, 인간 안의 proprium이 그것과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즉, 바깥 거짓이 안의 자기 사랑과 만날 때, 비로소 속임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AC.152는 타락을 단순 외부 사탄의 공격 사건’처럼 설명하지 않습니다. 타락은 인간 안의 proprium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굳어지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내적 사건입니다. 뱀은 제안할 수 있지만, 인간 안의 own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타락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여자’라는 proprium의 비극성과 존엄성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그것은 원래 주님께서 자유로운 사랑과 응답을 위해 vivify하신 자기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구조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하면, 가장 깊은 속임의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게 proprium은 단순 악이 아니라, 인간 자유 전체가 걸려 있는 가장 위험하면서도 필수적인 구조입니다.

 

 

 

AC.152, 창2:22, ‘이 구절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창2:22) AC.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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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2, 심화 2, ‘왜 굳이 여자를 만들어 속게 하셨을까?’

AC.152.심화 2. ‘왜 굳이 여자를 만들어 속게 하셨을까?’ 그러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vivified된 own조차 결국 속임의 통로가 되었다는 거잖아요? 이렇게 좀 허무하게 끝날 것이었으면 그냥 오리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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