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0.심화
3. ‘더 낮아졌지만 더 안전해진’
왜냐하면 이제 사람은 태고교회 사람들처럼 깊은 지각을 배반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AC.200 해설)
이 문장은 얼핏 보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깊은 지각을 가진 사람이 더 안전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처럼 ‘믿어야 한다’, ‘배워야 한다’, ‘연구해야 한다’의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직접 지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주님께 속한 것인지,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 어떤 것이 진리인지를 내적으로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여 알게 되는 것을 그들은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의 타락은 훨씬 위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르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은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태고교회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거스르는지 알면서도 그것을 거스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어떤 사람이 주님의 섭리를 의심한다면, 그 사람은 실제로는 주님의 섭리를 거의 보지 못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고교회 사람들은 주님의 인도를 내적으로 지각하면서도 자기 own을 사랑하는 쪽으로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배반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의식적인 반전(反轉)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여러 곳에서 말하는 ‘선과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거스르는 상태’의 위험성입니다. 그는 이런 상태를 영적 세계에서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상태 가운데 하나로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진리 자체가 악과 결합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면 홍수 이후 인간은 그렇게 높은 지각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배우고, 이해하고, 믿고, 실천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따라서 넘어질 수도 있고, 오해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한동안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회복될 여지도 훨씬 많습니다. 왜냐하면 태고교회 사람들처럼 깊은 지각 자체를 뒤집어 버리는 상태까지는 잘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배신하는 것과, 모든 사랑을 다 받고 자란 성인이 의식적으로 부모를 배신하는 것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후자의 배신이 훨씬 깊고 심각한 이유는, 무엇을 배반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홍수 이후 인간의 상태를 단순한 하락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분명 태고교회보다 낮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더 보호받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이전만큼 높이 오를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이전만큼 깊이 추락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왜냐하면 이제 사람은 태고교회 사람들처럼 깊은 지각을 배반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능력의 감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더 이상 태고교회 수준의 지각을 갖지 못하지만, 그 대신 그 지각을 완전히 뒤집어 멸망에 이르는 위험에서도 어느 정도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C.200의 맥락에서 보면, 홍수 이후 인간은 영적으로 더 낮아졌지만 동시에 더 안전해졌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세상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간 구조가 바뀌었다고 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서 어떤 것을 거두어 가신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보존하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 조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AC.200이 보여 주는 매우 깊은 섭리의 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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