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6.심화
1. ‘실제 경험 사례들인가?’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들이거나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로 여겨지기를 원하지만, 만일 ‘자신의 own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무엇이냐’(whether they know what it is not to have anything of their own)고 묻는다면, 그것은 곧 아무런 존재도 가지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own이 모두 제거된다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일 ‘주님으로부터 사는 것이 무엇이냐’(what it is to live from the Lord)고 묻는다면, 그것을 공상으로 여길 것입니다. 만일 양심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서민들을 억제하는 데 쓰이는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각(perception)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그것을 비웃으며, 광신적인 헛소리라 부를 것입니다. Although such persons desire to be regarded as gods, or as the wisest of men, if they were asked whether they know what it is not to have anything of their own, they would answer that it is to have no existence, and that if they were deprived of everything that is their own, they would be nothing. If they are asked what it is to live from the Lord, they think it a fantasy. If asked whether they know what conscience is, they would say it is a mere creature of the imagination, which may be of service in keeping the vulgar under restraint. If asked whether they know what perception is, they would merely laugh at it and call it enthusiastic rubbish. (AC.206)
위 내용은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경험한 것들 같아요.
네, 저도 AC.206을 읽으면 그런 인상을 받습니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조심해서 말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특정 개인들과 나눈 실제 대화를 그대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관찰한 인간 유형을 대표적으로 묘사한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작 전체를 읽어보면, 이 대목은 단순한 철학적 가정이라기보다 그가 오랫동안 직접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쓰고 있다는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AC.206의 논리가 지나치게 생생하다는 점입니다. 그는 단순히 ‘그들은 영적인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씩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의 own이 없는 상태가 무엇인지 아는가?’, ‘주님으로부터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양심이 무엇인지 아는가?’, ‘지각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리고 각각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마치 실제 사람들과 수없이 대화해 본 사람이 하는 설명처럼 보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묘사하는 이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own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으로부터 산다는 것은 공상이다’, ‘양심은 사회 질서를 위한 심리적 장치일 뿐이다’, ‘지각 같은 것은 광신이다’라는 생각은 18세기에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21세기에는 더 흔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AC.206을 읽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특정 시대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own을 절대화하는 인간 정신의 한 유형을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그가 비판하는 대상이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세상 학문에 뛰어난 사람들’, ‘가장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지식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스베덴보리 자신이 당대 유럽 최고의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AC.206을 읽을 때마다 스베덴보리가 영계 체험 이전의 과학자 스베덴보리와, 영계 체험 이후의 계시자 스베덴보리, 두 삶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학문과 철학의 세계도 깊이 알고 있었고, 동시에 영계에서 천사들과 영들과의 교류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단순한 교리적 주장이라기보다, ‘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의 생각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았다’는 증언처럼 읽히는 면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AC.206을 읽으며 곧바로 ‘세상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다 틀렸다’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학문을 최종 권위로 삼는 태도에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평생 쌓은 과학 지식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주님의 질서 안에서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AC.206은 단순한 논쟁문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오랜 세월 관찰한 인간 정신의 한 극단을 보여 주는 글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말씀처럼, 그 생생함 때문에 독자는 종종 ‘이건 실제로 스베덴보리가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느낌이 충분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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