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6

신앙(faith) 뿐만 아니라 주님(the Lord) 자신도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으로 불리십니다. 이는 오직 주님만이 신앙을 주시며, 따라서 주님 자신이 곧 신앙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태어나시기를 기뻐하셨는데, 그것도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지옥적이며 마귀적인 own에 빠져 버린 그러한 교회(the church) 안으로 오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자신의 신적 능력(Divine power)으로 자신의 인성(human essence) 안에서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을 하나로 결합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분 안에서 이 둘이 하나(a one)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이러한 결합(union)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온 세상(the whole world)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이시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것(it)이 아니라 (he)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Not only is faith but also the Lord himself is called the “seed of the woman,” both because he alone gives faith, and thus is faith, and because he was pleased to be born, and that into such a church as had altogether fallen into an infernal and diabolical own through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in order that by his Divine power he might unite the Divine celestial own with the human own in his human essence, so that in him they might be a one; and unless this union had been effected, the whole world must have utterly perished. Because the Lord is thus the seed of the woman, it is not said “it,” but “he.”

 

 

해설

 

AC.256은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본문입니다. 많은 기독교 전통에서 이 구절은 이미 오래전부터 메시아 예언, 곧 장차 오실 주님에 대한 최초의 복음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이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이유를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이 단순히 주님께 대한 믿음이나 교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the Lord Himself)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신앙(faith)은 사람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주님 자신이 곧 신앙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사람은 신앙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함께 신앙을 사람 안에 흘려보내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어떤 세상에 오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주님은 아직 건강하고 순수한 교회 안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으로 거의 완전히 무너져 버린 교회 안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은 이미 창3에서 보았듯이 자기 감각과 자기 이성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의 own은 점점 지옥적이며 마귀적인 own으로 변해 가고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own을 본질적으로 지옥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며, 자신을 중심에 두고, 주님 없이 스스로 살고자 하는 사랑입니다. 만일 이 상태가 계속되었다면 인간은 더 이상 천국과 연결될 수 없었고, 결국 인류 전체는 영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님의 성육신이 필요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인간의 인성(human essence)을 입으심으로써 인간이 있는 바로 그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성 안에서 인간적 own과 신적 own 사이의 싸움을 직접 싸우셨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단순히 인간을 밖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 안으로 들어오셔서 그 본성을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AC.256의 가장 어려운 표현인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의 결합’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인성과 신성이 완전히 하나 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own과 주님의 생명이 서로 대립하지만, 주님 안에서는 인성이 완전히 신성화(glorification) 되어 신성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순히 하나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만일 이 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온 세상은 완전히 멸망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는 다시 천국으로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인간에게 내려와야 했고, 신성이 인성을 입어야 했으며, 주님께서 인간과 천국 사이의 새로운 연결점이 되어 주셔야 했습니다. 성육신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 존재 자체를 유지시키기 위한 우주적 필연성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성경이 여기서 ‘’, 곧 ‘후손’에 대해 ‘it’이라 하지 않고, ‘he’라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법 문제가 아닙니다. ‘여자의 후손’은 어떤 추상적 교리나 개념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한 인격, 곧 주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주님이며,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신 주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창3:15은 단순한 저주의 말씀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첫 번째 복음입니다. 인간이 가장 깊이 타락한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는 이미 ‘내가 너희에게 갈 것이다. 내가 너희의 자리까지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다시 나의 자리로 이끌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여자의 후손’의 가장 깊은 의미입니다.

 

 

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AC.256, 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AC.256.심화 1.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 그 목적은 자신의 신적 능력(Divine power)으로 자신의 인성(human essence) 안에서 신적 천적 own(Divine celestial own)과 인간적 own(human own)을 하나로 결합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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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7, 창3:15, ‘뱀의 머리’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7‘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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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5, 창3:15, ‘여자의 후손’(신앙)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5‘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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