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6/07/19)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9, ‘주 은혜를 받으려’, 85, ‘구주를 생각만 해도입니다.

 

오늘 3 일곱 번째, 본문은 창3:16-19이고, AC 글 번호로는 261번에서 279번입니다. 오늘로 창3 전체 세 마디 중 두 번째 마디(3:14-19)를 마칩니다. 다음 주부터는 마지막 세 번째 마디 시작합니다.  

 

먼저 본문입니다.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3:16-19)

 

제목은

 

주님을 떠난 사람,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

 

이며, 다음은 AC.261-279입니다. 그전에 먼저 오늘 범위에 대한 요약 설명 후, 전체 글 중 특별히 몇몇 글을 리딩하겠습니다.

 

먼저 요약입니다.

 

 

오늘 읽을 본문은 창3:16-19에 대한 AC.261-279의 해설입니다. 이 본문은 문자적으로는 여자의 임신과 출산의 고통, 남편의 다스림, 땅의 저주, 노동의 수고와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내려진 육체적 형벌의 기록으로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는 태고교회와 그 교회 안의 여러 마음 기능을 표상하며, 이 말씀 전체는 태고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점차 돌아서면서 겪게 된 영적 상태의 변화를 묘사합니다.

 

먼저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순수한 처음 상태의 교회가 아니라 proprium, 곧 자기에게 속한 것을 사랑함으로써 왜곡되기 시작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본래 선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 모두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퍼셉션으로 직접 알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 그리고 자기 지혜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외적인 범죄 하나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처럼 여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에서 ‘임신’은 마음 안에서 생각과 의도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고, ‘자식을 낳는 것’은 그렇게 형성된 생각으로부터 진리가 생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 이전에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평안하게 지각할 수 있었지만, proprium이 들어온 뒤에는 진리 하나가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삶으로 태어나는 일에도 싸움과 고통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임신의 고통은 진리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의 근심을, 출산의 고통은 그 진리를 실제 삶으로 살아 내는 과정의 영적 싸움을 뜻합니다.

 

이 싸움은 사람이 주님에게서 돌아서기 시작할 때, 악한 영들이 그 사람 안의 감각과 욕망을 강하게 자극하고, 동시에 천사들은 주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려고 애쓰면서 일어납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신뢰하게 만들고, 천사들은 사람 안에 보존된 리메인스를 통하여 선한 애정과 참된 생각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영적 유혹은 주님께서 사람에게 고통을 부과하시는 일이 아니라, 악이 사람을 끌어가려는 가운데 주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그를 붙드시고 구원하시는 과정입니다. 진리는 이 싸움 없이 사람의 실제 생명이 되기 어렵습니다.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에서 ‘남자’ 또는 ‘남편’은 rational을 의미합니다. 태고교회의 처음 상태에서 남자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총명을 표상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뒤에는 직접적인 퍼셉션과 참된 총명이 크게 손상되고 rational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rational은 총명 자체가 아니라 총명을 닮은 기능이며,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이어 주는 매개체입니다.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아 애정과 감각을 질서 있게 인도하면 유익하지만, proprium과 감각의 제안에 동의하면 오히려 속 사람과 겉 사람을 분리시키는 도구가 됩니다. 마치 이 유능한 오늘날 AI라 할지라도 선하게 사용되면 좋지만, 악하게 사용되면 인류에게 큰 폐해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라는 말씀은 단순히 남편이 아내의 말을 따랐다는 뜻이 아니라, rational이 proprium에서 나오는 욕구와 감각의 판단에 동의했다는 뜻입니다. 유혹은 감각에서 시작되었지만, rational이 그것을 승인할 때, 사람 전체의 질서가 무너집니다. 그 결과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땅’은 겉 사람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겉 사람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겉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스스로 돌아서고 분리됨으로써 저주받은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속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통로이며, 겉 사람은 애정과 기억, 생각과 행동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삶의 자리입니다. 선과 진리의 씨는 겉 사람의 애정과 기억 안에 심어지지만, 그 생명은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흘러옵니다. rational은 이 둘을 연결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rational이 감각과 proprium의 편에 서면 겉 사람은 속 사람의 빛을 받지 못하게 되고, 사람은 속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안에 보존된 선과 진리조차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에서 ‘먹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산다’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담 개인이 평생 힘들게 농사짓는다는 뜻이 아니라, 타락한 태고교회가 그 교회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비참하고 불안한 영적 상태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네 평생에’는 한 개인의 수명이 아니라 그 교회가 존속하는 모든 날, 곧 타락이 시작된 때부터 홍수로 그 교회가 끝날 때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합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저주와 황폐를 의미합니다. 열매 맺는 나무와 추수가 선과 진리의 번성을 뜻한다면, 그 반대인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선과 진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악과 거짓이 차지한 상태를 뜻합니다. 황폐는 주님께서 선과 진리를 거두어 가신 상태가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계속 거부함으로써 그것들이 삶 속에서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된 상태입니다. 열매가 맺혀야 할 겉 사람 안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는 것입니다.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이라는 말씀은 사람이 들짐승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참으로 사람 되게 하는 것은 뛰어난 추론 능력이나 육체의 형태가 아니라, 속 사람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의 생명을 받는 데 있습니다. 속 사람과 분리된 겉 사람은 욕망과 감각, 자기 보존과 쾌락을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들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도 여전히 rational을 사용하여 매우 예리하게 추론할 수 있지만, 그 rational은 주님의 빛을 섬기지 않고,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됩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에서 ‘먹을 것’, 곧 ‘떡’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시며, 사람과 천사는 모두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태고교회 말기의 사람들은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것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주님과 신앙 및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을 듣는 것조차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기쁨과 평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천적 양식을 반감과 수고 가운데 받아들이게 된 상태가 바로 ‘얼굴에 땀을 흘려 먹을 것을 먹는’ 상태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역시 단순히 육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흙’은 생명이 없는 가장 낮은 자연적 상태, 곧 주님으로부터 분리된 정죄와 지옥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주님의 얼굴에서 돌아서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호흡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거듭나기 이전의 겉 사람 상태로 되돌아가 마침내 영적으로 흙과 같은 상태에 이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버리신 결과가 아니라, 사람이 끝까지 주님으로부터 돌아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전체는 하나의 연속된 타락 과정을 보여줍니다. 감각이 천적인 것에서 돌아서고, proprium이 자기 욕구를 사랑하며, rational이 거기에 동의하자, 겉 사람은 속 사람으로부터 분리됩니다. 그 결과 진리는 싸움과 고통을 거쳐야만 태어나고, 삶은 수고와 불안으로 가득해지며, 선과 진리의 열매 대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랍니다. 마침내 사람은 천적인 것을 싫어하고, 자연적이며 감각적인 생명만을 따라 살다가 ‘흙’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단지 인간의 파멸에 관한 말씀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타락한 사람 안에서도 주님께서는 속 사람 안에 선과 진리의 리메인스를 보존하시며, 천사들을 통하여 그를 보호하십니다. 유혹과 고통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사람 안에 지켜야 할 영적 생명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는 생명을 회복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왜 주님께서 사람을 다시 결합시키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셔야 했는지를 준비하여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창3의 타락에 대한 이 긴 설명의 중심에는 결국, 스스로 주님에게서 돌아선 사람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속 사람과 겉 사람을 결합시키려 하시는 주님의 구원 역사가 놓여 있습니다.

 

 

이상 요약을 마치고, 아래는 AC 본문, 해설 및 심화입니다.

 

 

AC.261,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AC.261-26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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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2, 창3:16, ‘여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2‘여자’(woman)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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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3, 창3:16,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3그러므로 감각 파트(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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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4, 창3:16, ‘임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4말씀에서 ‘잉태’(co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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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5, 창3:16, ‘남편’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5‘남편’으로 옮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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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6, 창3:16, ‘창3:16에 담긴 결혼의 법의 의미’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6모든 법과 계명은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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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7,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AC.267-271)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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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8, 창3:17, ‘땅’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8‘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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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9, 창3:17,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9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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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0, 창3:17,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7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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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1, 창3:17, ‘네 평생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71‘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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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2,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AC.272-274)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창3:18)AC.272‘가시덤불과 엉겅퀴’(the t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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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3, 창3:18, ‘가시덤불과 엉겅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8)AC.273‘가시덤불과 엉겅퀴’(the thorn and the thistle)가 저주와 황폐(vastation)를 의미한다는 것은, 추수(harvest)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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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4, 창3:18,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8)AC.274‘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to eat the herb of the field), 곧 거친 음식(wild food)을 먹는다는 것은, 들짐승처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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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5, 창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AC.275-27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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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6, 창3:19, ‘먹을 것’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6‘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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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7, 창3:19, ‘내적 의미, 곧 말씀의 속뜻’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7이것이 내적 의미, 곧 말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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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8, 창3:19,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8‘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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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9, 창3:19, ‘창3:14-19 절별 요약’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9그러므로 이 모든 구절을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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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AC 리딩 본문 전체는 여기까지이고, 이 가운데 오늘의 흐름과 예배 리딩의 밀도를 함께 생각하면, 심화까지 포함하여 꼭 읽었으면 하는 글은 다음 세 부분입니다.

 

첫째는 AC.263과 그 해설입니다. 이 글은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가 왜 영적 싸움을 의미하는지 가장 실제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이 감각의 차원에서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면 악한 영들이 강하게 공격하기 시작하고, 함께 있는 천사들은 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는 설명은, 오늘 본문의 ‘고통’을 하나님의 형벌이나 단순한 심리적 괴로움으로 오해하지 않게 해줍니다. 또한 진리가 사람 안에 잉태되고, 삶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왜 싸움과 근심을 동반하는지도 밝혀 줍니다. 오늘 리딩의 전반부를 이해하는 핵심 글이므로, AC.263 본문과 해설은 반드시 읽는 편이 좋겠습니다.

 

 

AC.263, 창3:16,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AC.263그러므로 감각 파트(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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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AC.268과 심화 AC.118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교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나 고른다면 저는 이것을 택하겠습니다. AC.268은 ‘’이 왜 겉 사람을 의미하는지, 선과 진리의 씨가 왜 겉 사람의 애정과 기억 안에 심어지는지, 속 사람 안에는 무엇이 보존되어 있는지, 그리고 rational이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한꺼번에 설명합니다. 특히 rational이 본래는 속 사람의 빛을 겉 사람에게 전달하는 매개체이지만, 감각과 proprium에 동의하면 오히려 둘을 분리시키게 된다는 설명은 창3의 타락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여기에 심화 ‘AC.118’을 함께 읽으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 rational, 겉 사람으로 이어지는 본래의 인플럭스 질서와 창3에서 그 질서가 어떻게 무너졌는지가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AC.268, 창3:17, ‘땅’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7)AC.268‘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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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8, 심화 1, ‘AC.118’

AC.268.심화 1. ‘AC.118’ 스베덴보리가 AC.268에서 AC.118을 인용한 이유는, 방금 설명한 ‘rational은 겉 사람에 속하지만,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라는 가르침이 이미 창2의 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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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AC.276과 심화 21:5-6입니다. AC.276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를 단순한 노동의 고통이 아니라, 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싫어하고 멀리하게 된 상태로 해석합니다. ‘먹을 것’, 곧 ‘’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천적, 영적 생명의 양식이라는 설명과,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시라는 말씀은 오늘 본문의 결론을 주님 중심으로 모아 줍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 부르며 싫어한 민21:5-6 심화를 함께 읽으면, 천적인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타락한 사람이 그것을 부담스럽고 하찮게 여기게 되었다는 점이 매우 실제적으로 전달됩니다. 오늘날 사람도 세상적이고 감각적인 것은 즐거워하면서 말씀과 회개, 그리고 천국의 일은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는 적용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AC.276, 창3:19, ‘먹을 것’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9)AC.276‘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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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76, 심화 3, ‘민21:5-6’

AC.276.심화 3. ‘민21:5-6’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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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순서는 AC.263, AC.268과 심화 ‘AC.118’, AC.276과 심화 ‘21:5-6’이 가장 좋겠습니다. 첫 글에서는 영적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고, 둘째 글에서는 그 싸움이 일어나는 인간의 내적 구조를 이해하며, 셋째 글에서는 타락의 가장 깊은 결과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양식을 싫어하게 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읽으면 오늘 본문이 단순히 ‘고통, 저주, 노동, 죽음’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설 때,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어떻게 무너지고, 주님께서 그 가운데서도 어떻게 사람을 보호하고 다시 생명의 떡으로 이끄시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연결된 계시로 들릴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생명의 주님, 오늘도 창세기 3장의 깊은 말씀을 통하여 저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안에도 여전히 주님보다 자신을 의지하려는 proprium이 있고, 감각과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연약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저희를 버리지 않으시고, 천사들을 통하여 보호하시며, 리메인스를 보존하시고, 유혹을 허락, 새로운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rational이 감각과 자기 사랑을 따르지 않고, 언제나 주님의 빛을 받아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아름답게 이어 주는 통로가 되게 하시며, 저희 마음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아니라 선과 진리의 열매가 자라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주님과 주님 말씀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사모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고 배우고 행하는 일이 저희의 가장 큰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받은 말씀이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고 저희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 되게 하시며, 이번 한 주간도 모든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가운데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과 감사를 주님께 올려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그 거룩한 역사하심이, 오늘 창세기 316절로 19절의 깊은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설 때 속 사람과 겉 사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proprium으로 말미암아 수고와 유혹, 그리고 영적 황폐가 찾아오지만, 그 가운데서도 천사들을 통하여 저희를 지키시고, 리메인스를 보존하시며, 마침내 생명의 떡이 되시는 주님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오도록 쉬지 않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한없는 자비와 섭리를 아르카나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며, 오직 모든 생명과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만 흘러옴을 거듭 진심으로 아멘 하는 모든 성도들과, 감사와 기쁨으로 주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모든 손길 위에,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2659, 6, 창3.6, 2026-07-12(D1)-주일예배(창3,15, AC.250-260), ‘타락보다 먼저 주어진 구원의 약속’.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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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6/07/12, 창3:15, AC.250-260), ‘타락보다 먼저 주어진 구원의 약속’

※ 오늘(2026/07/12) 부를 찬송은 순서대로 찬38, ‘예수 우리 왕이여’, 찬84,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입니다. 오늘은 창3 여섯 번째, 본문은 창3:15이고, AC 글 번호로는 250번에서 260번입니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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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40. ‘28: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28:15) for you have said, We have cut a covenant with death, and with hell have we made a vision; when the whip of inundation passes through, it shall not come to us; for we will set a lie as our protection, and in falsity will we hide ourselves (Isa. 28:15).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영적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결핍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거짓과 악을 선택,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거부한 결과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다는 AC.290의 메시지를, 그 반대편에서 매우 강렬하게 증언하는 본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다’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죽음과 계약을 맺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에서 언약’은 결합을 의미하므로, 이것은 사람들이 영적 죽음과 스스로 결합하였음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생명이신 주님과 결합하기보다 악과 거짓을 자신의 삶의 원리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영적 죽음의 본질입니다.

 

또한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라’는 말은 자기 확신과 거짓된 안전감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교리, 그리고 생활 방식이 자신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AC.290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므로, 그분을 떠난 모든 안전은 결국 허상에 불과합니다.

 

이어지는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라는 말씀은 더욱 직접적입니다. 피난처는 본래 사람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리가 아니라 거짓을 보호막으로 삼았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거짓은 생명을 전달하지 못하며,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진리의 인플럭스를 막습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피난처로 삼는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입니다.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다’는 표현도 같은 의미를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악과 거짓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거짓된 사고 속에 자신을 숨깁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이러한 은폐가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거짓은 사람을 더욱 깊은 영적 죽음 속으로 이끌 뿐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영적 죽음이 외부에서 강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상태임을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인용된 요8:21과 요8:24를 잘 보완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선언하셨고, 이사야는 그 죄 가운데 머무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것은 거짓을 진리보다 사랑하고, 허위를 안전으로 여기며, 결국 사망과 결합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두 본문은 영적 죽음의 원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바로 뒤에 인용된 사25:8과도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28:15에서는 사람들이 사망과 스스로 언약을 맺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25:8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사망을 영원히 멸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사람은 거짓을 선택, 죽음과 결합하지만, 주님께서는 진리와 생명으로 그 죽음을 깨뜨리십니다. 이 대조는 생명의 근원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스베덴보리가 사28:15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영적 죽음의 실체와 그 원인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주님을 떠나 거짓과 악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순간 영적 죽음과 결합하게 됩니다. 반대로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오는 신적 진리와 선을 받아들일 때만 주어집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을 떠난 모든 거짓된 의지와 거짓된 신뢰는 결국 영적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오직 주님만이 생명의 유일한 근원이심을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창3:20, ‘산’(living)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0) AC.290 교회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mother of all living)라고 하는 것은, 생명 자체이신 주님에 대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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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39, ‘사25:8’

AC.290.심화 39. ‘사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25:8) 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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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39.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25:8) He shall swallow up death perpetually; and the Lord Jehovih shall wipe away the tear from all the faces; and the reproach of His people shall He remove from all the earth; for Jehovah has spoken (Isa. 25:8).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오직 여호와이신 주님만이 영적 죽음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참된 생명을 주실 수 있음을 예언하는 대표적인 말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께 있으며, 죽음을 이기시는 분도 오직 주님뿐이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아름답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육체의 죽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의 문맥과 스베덴보리의 해석에 따르면, 여기서 사망’은 주님으로부터 분리된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으로는 죽지만, 주님과 결합된 사람은 영적 죽음에 빠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사망을 멸하신다는 것은 영적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주어가 주 여호와’라는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영적 죽음을 이길 수 없으며, 어떤 천사나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생명 자체이시므로 죽음을 멸하실 수 있습니다. AC.290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생명은 사람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이어지는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라는 말씀도 단순히 슬픔을 위로하신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눈물은 영적 의미로는 악과 거짓으로 인해 겪는 고통과 시험, 그리고 주님과 분리된 상태에서 오는 비참함을 나타냅니다. 영적 죽음이 제거될 때, 이러한 슬픔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씻으시는 일은 사망을 멸하시는 역사와 하나의 구원 사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씀에서 수치’는 죄 자체보다도 죄와 거짓으로 인해 생긴 영적 불명예와 황폐한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악과 거짓의 지배 아래 있지 않게 되며, 그 결과 영적 수치도 제거됩니다. 따라서 사망의 제거와 수치의 제거는 모두 거듭남의 결과를 보여 줍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요5:25와 요8:51을 더욱 완성해 줍니다. 5:25에서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고 하였고, 8:51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는 그 모든 일을 하나의 예언으로 압축, 여호와께서 친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신약은 이 예언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는 선언 역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소망이나 예언자의 희망이 아니라, 생명 자체이신 여호와의 확실한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명의 회복은 인간의 노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친히 이루시고 보증하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AC.290이 생명을 주님의 고유한 속성으로 설명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성경의 선언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사25:8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생명과 죽음에 관한 성경 전체의 결론을 제시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스스로 영적 죽음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생명 자체이신 여호와,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영적 죽음을 영원히 멸하시고, 사람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며, 그 결과 모든 영적 슬픔과 수치를 제거하십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예언의 형태로 가장 장엄하게 선포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40, ‘사28:15’

AC.290.심화 40. ‘사28: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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