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
44. 24절, 25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Verse 24. 25,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사람은 땅처럼 먼저 자기 안에 신앙에 관한 지식이 심기지 않고는 어떤 선도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Man, like the earth, can produce nothing of good unless the knowledges of faith are first sown in him, whereby he may know what is to be believed and done.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가,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의지(will)가 하는 일입니다. It is the office of the understanding to hear the Word, and of the will to do it.
말씀을 듣고 있지만 그걸 행하지는 않는다는 건, 마치 실제론 믿음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말로는 믿는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들음과 행함을 분리, 결국 일종의 나뉜 마음이 되는 것이며, 주님이 다음 구절들에서 '어리석다' 하신 사람들처럼 되는 겁니다. To hear the Word and not to do it, is like saying that we believe when we do not live according to our belief; in which case we separate hearing and doing, and thus have a divided mind, and become of those whom the Lord calls “foolish” in the following passage: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4, 26) Whosoever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I will liken unto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a rock; but everyone that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not, I liken to a foolish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the sand. (Matt. 7:24, 26)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앞서 보여드린 대로, 이해에 속한 것들을, 여기 ‘땅은 생물을 내되’,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understanding are signified—as before shown—by 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and also by the “fowl upon the earth,” and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but those which are of the will are signified here by the “living soul which the earth produces,” and by the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also by the “wild animal of that earth.”
45. 태고(太古)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관한 것을 그렇게 상징했고, 그런 이유로, 예언서들과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것, 곧 이해와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Those who lived in the most ancient times thus signified the things relating to the understanding and to the will;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and constantly in the Word of the Old Testament, the like things are represented by different kinds of animals.
짐승은 두 종류, 악한 짐승과 선한 짐승이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고, 후자는 우리에게 무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Beasts are of two kinds; the evil, so called because they are hurtful; and the good, which are harmless.
사람 속 악들은 악한 짐승들, 예를 들면, 곰, 늑대, 개 등으로 상징되고, 반면, 사람 속 선하고 부드러운 것들은 같은 본성을 가진 짐승들, 곧 어린 암소, 양, 어린 양 등으로 상징됩니다. Evils in man are signified by evil beasts, as by bears, wolves, dogs; and the things which are good and gentle, by beasts of a like nature, as by heifers, sheep, and lambs.
여기 언급된 ‘짐승’(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것들이며, 그래서 애정(affections)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는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beasts” here referred to are good and gentle ones, and thus signify affections, because it here treats of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사람 속 더 아래에 있는 것들, 즉, 몸(body)에 더 연결된 것들을 가리켜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 하고, 탐욕(cupidities), 쾌락(pleasures)이라 합니다. The lower things in man, which have more connection with the body, are called “wild animals of that earth,” and are cupidities and pleasures.
46. ‘짐승’이 사람의 애정, 곧, 악을 지닌 악한 애정과 선을 지닌 선한 애정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 속 많은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에스겔입니다. 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36:9, 11 거듭남을 다루는) Behold, I am for you, and I will look back to you, 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 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Ezek. 36:9, 11, treating of regeneration)
요엘서입니다. In Joel: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2:22) Be not afraid ye beasts of my field, for the dwelling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become grassy. (Joel 2:22)
다윗 또한 In David also: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73:22) So foolish was I, I was as a beast before thee. (Ps. 73:22)
예레미야입니다. 거듭남을 다루는 가운데 In Jeremiah, treating of regeneration: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27-28) 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 (Jer. 31:27–28)
[2] ‘땅의 짐승’ 역시 유사한 상징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Wild animals” have a similar signification, as in Hosea: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 (Hos. 2:18)
욥기에 In Job: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욥5:22-23) 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 (Job 5:22–23)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겔34:25) 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Ezek. 34:25)
이사야는 In Isaiah: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0)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 (Isa. 43:20)
다시 에스겔입니다. In Ezekiel: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겔31:6) 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 (Ezek. 31:6)
이것은 앗수르에 대한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상징하며, 에덴동산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This is said of the Assyrian, by whom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and who is compared to the garden of Eden.
다윗입니다. In David: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시148:2, 7, 9-10) Glorify ye him, all his angels, glorify Jehovah from the earth, ye whales, fruit trees, wild animal, and every beast, creeping thing, and flying fowl. (Ps. 148:2, 7, 9–10)
여기서도 같은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용’(whales), ‘과수’(fruit tree), ‘짐승’(wild animal), ‘가축’(beasts),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 등, 이것들이 사람 속 생명의 원리들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일컬음 받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 tree,” “wild animal,” the “beast,” “creeping 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 선지자들은 ‘가축’과 ‘땅의 짐승’, 그리고 ‘가축’과 ‘들의 짐승’을 조심스럽게 구분했습니다. 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field.”
하지만 사람 안의 선들은 ‘가축’이라 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animals)이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에스겔과 계시록 두 군데 다에서 말입니다. 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4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7:11; 19:4)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 (Rev. 7:11; 19:4)
또한 자신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
47. 이들 워딩에(these words)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앞 구절 말씀을 잘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을 보면,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을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는데,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만드셨다, 그리고 ‘가축’도... 등등,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먼저, 그리고 나중에 천적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That these words contain arcana relating to regeneration, is evident also from its being said in the foregoing verse that the earth should bring forth “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whereas in the following verse the order is changed, and it said that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likewise “the beast”; for at first, and afterwards until he becomes celestial, man brings forth as of himself; and thus regeneration begins from the external man, and proceeds to the internal; therefore here there is another order, and external things are mentioned first.
48. 사람이 이해에 속한 어떤 신앙 원리를 가지고 말을 하며, 그리고 그때 자기는 지금 진리 안에 있고, 선 안에 있다 확신하고 있다면,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분명히 지금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Hence then it appears that man is in the fifth state of regeneration when he speaks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he true and in the good.
이때 그를 통해서 일어난 일들을 가리켜 살아 있다(animate) 하시고,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라 하신 것입니다. The things then brought forth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es of the sea,” and the “fowl of the heavens.”
이 사람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해에 속한 신앙뿐 아니라 이 신앙에서 나오는, 의지에 속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선도 행할 때, 그때 그는 여섯 번째 상태에 있는 것이며, 이때 그의 모든 행실을 가리켜 ‘생물’이다, ‘가축’이다 하는 것입니다. He is in the sixth state, when 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he speaks truths, and does goods; what he then brings forth being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이제 그는 사랑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행하기를 시작합니다. 비로소 영적 인간이 된 것이지요. 주님은 이를 가리켜 일종의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 하셨고, 이것이 지금 다룬 주제입니다.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from love, as well as from faith,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of God,” which is the subject now treated of.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4-25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속뜻)
주님의 최종 목적은 사람이 자원함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의 이 긴 거듭남의 과정을 도우시며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거듭남의 여섯 번째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의 의지에 관한 일을 하십니다. 곧 사람의 안에 있는 두 종류의 애정들에 관한 일인데, 육체와 가까운 저급한 애정들에서 영과 가까운 고급한 애정들까지, 그리고 선한 애정, 악한 애정에 관한 일들입니다. 다만 거듭남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주로 선한 애정과 깊이 관련됩니다. 사람은 처음엔 자기 힘으로 무엇을 말하고 무슨 일을 하지만 점차 이 모든 일이 주님으로 말미암음을 깨닫고 그 일의 순서가 바뀝니다. 즉, 주님을 시인하고, 주님을 앞세우며, 자기는 뒤로 물러납니다. 그는 예전엔 그저 머리로만 알던 것을 이제는 가슴으로 시인하고 자원함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는 거듭남의 마지막 단계, 영적 인간이 되며, ‘하나님의 형상’이 됩니다.
※ 사람 일생이 백 년이라면, 이 백 년에 걸친 거듭남의 풀코스를 한결같으신 마음으로 우리를 돌보시며, 건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파노라마를 창세기 1장을 통해 맨 먼저 보여주시는 주님의 뜻을 눈으로 확인하며, 오늘 좀 흔들렸다고 좌절하는 그런 모습을 이젠 버리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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