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
43. 22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Verse 22.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자기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은 엄청나게 결실하며(fructify), 번성합니다(multiply). 몸 안에 사는 동안뿐 아니라 내세에서조차 어리둥절할 정도로 그렇습니다. Everything that has in itself life from the Lord fructifies and multiplies itself immensely; 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ody, but to an amazing degree in the other life.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to be fruitful)라는 건 사랑에 속한 걸,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to multiply)라는 건 신앙에 속한 걸 각각 말하는 겁니다. 사랑에 속한 ‘열매’ 안에는 ‘씨’가 들어 있는데, 이 씨로 말미암아 놀랍게 배가합니다. To “be fruitful,” in the Word, is predicated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and to “multiply,” of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the “fruit” which is of love contains “seed,” by which it so greatly multiplies itself.
※ 들의 풀과 나무, 강과 바다의 물고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가령 해바라기는 그 넓은 둥그런 꽃 한 판에 얼마나 많은 씨가 있으며, 열매, 가령, 옥수수 한 자루엔 얼마나 많은 낱알갱이가, 벼나 보리, 수수 같은 곡식들 한 줄기 줄기엔 또 얼마나 많은 낱알들이 맺히는지... 나무 한 그루도 보면, 가령 은행, 호도, 대추, 밤, 감, 사과 등등... 얼마나 많은 열매, 과일이 열리는지... 물고기는 또 어떤가요? 명란젓 만드는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은, 대구는, 오징어는? 등등... 또한 얼마나 그렇게 어마어마한지...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번성합니다 ^^
※ 인간과 달리 동, 식물의 경우, 주님의 이 정하신 복, 명령하신 축복이 예외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이유는, 동, 식물의 경우는 본능만 있을 뿐 스스로 무엇이 없어 주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거나 뒤집거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쓰임새 그대로 존재하며,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 판단하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최선인 줄을 알면서도 버젓이 악을 행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뒤집어 훼방을 놓고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으며, 오히려 주님의 복 받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화와 불행은 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오늘 본문 동, 식물의 이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가운데 살기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능력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 스베덴보리(1688-1772)를 통해 주님 알리신 이 아케이나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미미하고 세상에서 천대를 받고 변죽만 울리고 있습니다. 홍수 후 고대교회 초창기에도, 아브라함 이후 유대교회 초창기에도, 주님 성육신 이후 기독교회 초창기에도 늘 시작은 아주 미미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은 저마다 오랜 세월 대하처럼 흐르는 시대별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이 주님의 새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각 시대 초기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또한 말씀에서 주님의 ‘복’(福, blessing)은 풍성한 결실과 번성을 상징합니다. 이런 ‘생육’과 ‘번성’이 모두 ‘복’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The Lord’s “blessing” also in the Word signifies fruitfulness and multiplication, because they proceed from it.
※ 이 원리가 동, 식물에게만 적용되겠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그 하는 모든 일에 형통, 크게 번성, 번창할 줄 믿습니다. 요셉이 주님으로 말미암게 되자 그 안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가 흘러 들어가 바로의 애굽 전역은 물론 주변국들까지 구원하는 큰일이 일어남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 복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 중심적으로 볼 때, 태양(해)의 질량은 지구의 약 33만 배, 즉 지구는 그만큼 정말 보잘것없는 행성입니다. 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지구 하나를 비추고 덥히기 위해 그 큰 태양을 태우는 건 정말 큰 낭비가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도 언제나 늘 변함없이 그렇게 하십니다. 해는 늘 이 지구를 비추지만 지구의 자전으로 어디는 낮일 때, 어디는 밤이 되고, 또 지구의 공전으로, 어디는 여름일 때, 어디는 겨울이 됩니다.
즉, 주님의 빛과 복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주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책임이라는 겁니다. 지구가 해를 바라볼 땐 낮이요, 봄, 여름이듯,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땐 주님의 빛과 복이 내 삶에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그게 바로 복 받는 삶인 것입니다.
23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Verse 23.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 지난번 다룬 것처럼 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즉, 첫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르며,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세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듭남 풀코스 가운데서 사람은 비록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시며 동행하시지만 그렇다고 늘 하하호호한 상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사람의 연약함 때문인데요, 사람은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또 어느새 자아를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피조물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한데요, 심지어 천국의 천사들조차 이런 상태 변화를 겪는다 하니 우리는 자신의 이런 연약함의 오르락내리락을 결코 이상하게, 또는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건, 천사들의 증언처럼, 오히려 이런 굴곡을 통해 더욱 예리해져 가며, 더욱 주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에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의 과정 가운데 이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성장, 성숙해져 가며, 그래서 어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리고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내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만큼 우리는 더 성장, 성숙해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2-23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속뜻)
주님은 마치 해가 잘 보이지도 않는 지구를 위해 늘 모든 정성을 다하듯 지으신 땅 위 모든 피조물을 위해, 즉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속 사람, 겉 사람을 위해 한결같으십니다. 주님의 질서 아래 있는 모든 동, 식물이 자기들 안에 있는 주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생육하고 번성하듯, 속 사람, 겉 사람 안에 거듭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이해, 이성과 합리, 지성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또 자아를 향해 눈을 돌림으로 저녁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밤은 없습니다. 곧 다시 새벽이 오며, 아침이 될 것입니다. 이는 거듭남의 완성, 곧 안식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그러나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우리는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우리가 우리를 포기할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됩니다. 힘을 다해 공부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사고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 지식에 힘쓰고, 그걸 선용(善用, 쓰임새, use), 천적 지혜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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