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

 

53.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Verse 27.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여기 ‘형상’에 대한 언급이 두 번 반복되는 이유는, 신앙을 가리켜서는 ‘자기 형상’이라 하고, 사랑을 가리켜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전자는 이해(the understanding)에 속하며, 후자는 의지(the will)에 속하지요. 이때 후자인 이 ‘사랑’은 영적인 사람한테서는 뒤따라 나오는(come after) 것이지만 천적인 사람한테서는 먼저 나오는(precede) 것입니다. The reason why “image” is here twice mentioned is that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is called “his image”; whereas love, which belongs to the will, and which in the spiritual man comes after, but in the celestial man precedes, is called the “image of God.

 

※ 영적인 사람의 경우는 신앙, 곧 교리, 진리가 먼저요, 사랑, 선이 나중이지만, 천적인 사람은 반대로 사랑, 선이 먼저고, 신앙, 진리는 나중이기 때문입니다.

 

 

54.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남자와 여자’의 의미, 그 속뜻을 태고교회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 가운데에서 말씀의 내면적 뜻을 잃어버렸을 때, 이 아케이나 역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What is meant by “male and female,” in the internal sense, was well known to the most ancient church, but when the interior sense of the Word was lost among their posterity, this arcanum also perished.

 

그들, 태고교회라 일컫는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結婚, marriage)은 그들 행복(happiness)과 기쁨(delight)의 최고의(chief) 원천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든 그것이 비교의 용도로 사용할 수만 있으면 다 결혼에 비유했는데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결혼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Their marriages were their chief sources of happiness and delight, and whatever admitted of the comparison they likened to marriage, in order that in this way they might perceive its felicity.

 

※ 가령, 햇볕, 곧 해의 빛과 열의 융합을 결혼으로, 자녀들 및 모든 동식물의 자식 및 열매들을 결혼의 결과로, 사람을 영과 육의 결혼으로, 삼위일체를 결혼으로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 ‘결혼’으로 보고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내적인(internal)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직 내적인 일들을 가지고만 기뻐했습니다. Being also internal men, they were delighted only with internal things.

 

외적인 일들에 관해서는, 그들 역시 우리처럼 두 눈으로 보기는 하지만, 그러나 속으로 이게 뭘 표현하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External things they merely saw with the eyes, but thought of what was represented.

 

※ 내면을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겉의 일들, 겉의 것들을 가지고 흥분하고, 감격하고, 추구하고, 모든 걸 걸고 하지만, 태고 시대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겉의 일들 때문에 좌지우지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겉의 일들은 그들에겐 별 게 아니었습니다. 겉의 일들은 그들에겐 그저 그들의 관심을 속의 일들을 향해 돌리게 하는, 즉, 내적 시야를 갖도록 하는 그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적 시야를 통해서, 천적 시야를, 천적 시야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모든 것 되신 주님, 그리고 그 결과, 천국의 결혼이라는 시야로까지 확대할 수 있었는데요, 그들은 자기들의 결혼의 행복이 바로 여기서 온다는 것을 지각했습니다. So that outward things were nothing to them, save as these could in some measure be the means of causing them to turn their thoughts to internal things, and from these to celestial things, and so to the Lord who was their all, and consequently to the heavenly marriage, from which they perceived the happiness of their marriages to come.

 

그래서 그들은 영적인 사람한테 있는 이해를 ‘남자’라, 의지를 ‘여자’라 하였고, 그리고 이 둘이 하나로(as a one) 움직일 때, 그걸 가리켜 결혼이라 하였습니다. The understanding in the spiritual man they therefore called male, and the will female, and when these acted as a one they called it a marriage.

 

※ 즉, 태고교회인들은 어떤 사람의 말과 행실이 일치할 때, 그가 이해와 의지가 결혼한 상태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교회에 대한 관례적 표현들이 왔고, 여기서 교회를 ‘’, ‘처녀’, ‘시온의 처녀’, ‘예루살렘의 처녀’처럼, 그리고 ‘아내’라 하였습니다. 이는 선에 속한 교회의 애정에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From that church came the form of speech which became customary, whereby the church itself, from its affection of good, was called “daughter” and “virgin”—as the “virgin of Zion,” the “virgin of Jerusalem”—and also “wife.

 

이 주제에 관해서는 다음 장 23절과 3장 15절에서 보시게 됩니다. But on these subjects see the following chapter, at verse 23, and chapter 3, verse 15.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7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속뜻)

거듭남이 진행 중인 영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신앙, 즉 이해에도 주님의 이미지가, 그의 사랑, 즉, 의지에도 주님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가는데, 특히, 태고교회인들은 이를 가리켜 각각 남자와 여자로 부르며, 이 둘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을 결혼이라 하였습니다.

 

https://youtu.be/wvsIFhFvSio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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