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중에서 속뜻(internal sense, inner meaning)이 있는 성경, 곧 그 안에 주님의 아르카나(arcana, 秘義, 말씀의 내적 의미)가 담긴 성경을 말씀(The Word, 총 34권)이라 하며, 스베덴보리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 : 창, 출, 레, 민, 신, 수, 삿, 삼상, 삼하, 왕상, 왕하, 시,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29권)

 

신약 : 마, 막, 눅, 요, 계 (5권) (AC.10325)

 

10325. The books of the Word are all those which have an internal sense; and those which have not an internal sense are not the Word. The books of the Word in the Old Testament are the five books of Moses, the book of Joshua, the book of Judges, the two books of Samuel, the two books of Kings, the Psalms of David, the Prophets Isaiah, Jeremiah, Lamentations, Ezekiel, Daniel, Hosea, Joel, Amos, Obadiah, Jonah, Micah, Nahum, Habakkuk, Zephaniah, Haggai, Zechariah, and Malachi; and in the New Testament the four Gospels, Matthew, Mark, Luke, and John; and Revelation.

 

그러므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성경들, 곧 내적 존재인 천사들이 보았을 때, 아무 아르카나도 없는 성경들인 구약의 , 대상, 대하, , , , , , , 등 10권과, 신약의 , , 고전, 고후, , , , , 살전, 살후, 딤전, 딤후, , , , ,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등 22권에서 어떤 교리를 뽑아내는 것은, 안전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지난 교회사의 오랜 정경화(正經化) 작업은 그만큼 인류가 주님의 신성이 깃든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퍼셉션(perception, 현재 천국 천사들과 주님간 커뮤니케이션 방법, 이것이 지상에도 있었던 시대를 태고교회라고 함. 아담으로 시작된 이 시대는 노아의 홍수로 마감됨)이 없어, 어떤 성경이 참된 말씀인지를 보는 영적 역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글들이 현 성경 66권에 포함된 것은, 마치 태고교회 시절, 에녹이라는 교회가 자신들의 모호하고 흐릿해진 퍼셉션을 보완할, 그 시대에는 아직 있어서는 안 되는, 교리라는 것들을 만들 때, 주님이 그것을 아예 시작도 못하도록 막지는 않으신 것과 유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시대는, 비록 갈수록 사람들의 악과 거짓으로 퍼셉션이 희미해져 갔지만, 여전히 퍼셉션의 시대, 즉 주님이 직접 그들을 가르치는 시대, 사람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걸 주님으로 말미암은 퍼셉션으로 직접 아는 시대였지, 무슨 인간이 만든 교리, 세상으로 말미암은 걸로 공부하여 아는, 학습하여 아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만든 걸 후대가 사용하도록 따로 보관하셨습니다. 퍼셉션이 사라진 인류, 즉 홍수 후 인류는 주님의 퍼셉션으로 살았던 홍수 전 인류와 달리 주님을 교리로 배워 알아야 하는 신 인류였고, 그래서 이들 후대를 위해 폐기 대신 따로 보관하셨는데요, 이것이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에 담긴 아르카나입니다.

 

천사들은 내적(內的) 존재여서 오직 내적인 것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는 자연적 존재여서 자연계에 있는 것들만 볼 수 있는 것과 같지요. 이는 주님이 정하신 많은 원칙들 중 하나인데요, 그럼에도 가끔 천사들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육의 눈으로 본 게 아니고, 영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오직 주님의 허락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자연계의 사물을 보는 것 역시 사람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천사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경은 오직 속뜻이 있는 성경, 곧 말씀 뿐이라는 걸 상기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천사들이 우리를 통해 가령, 룻기나 역대서, 사도행전이나 로마서 같은, 그 안에 속뜻, 곧 내적 의미가 없는 글들, 아르카나가 담기지 않은 글들을 읽을 땐, 그때는 그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출애굽기나 마태복음, 계시록 등 주님의 신성이 담긴 말씀들을 읽을 땐, 그때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기 담긴 주님의 무궁하신 신성을 접하며, 온몸으로 감동, 감격합니다. 이런 사실은 매우 놀랍지만, 그러나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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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 사제요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으면서도 로마 카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95개 논제를 붙임으로써 이후 ‘이신칭의’를 기치로 종교개혁의 물꼬를 튼, 그러나 참 쉽지 않은 삶을 살다 간 마르틴 루터라든지...

 

유대교의 가르침, 곧 모세의 율법을 전혀 자기들 방식, 즉 사두개와 바리새 등의 방식으로 따르지 않고, 하나님 나라, 천국 복음을 오직 신성한 증거와 능력, 권능으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을 것을 가르치시다가 저들이 보기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만(오, 주님, 이런 참람한 표현을 용서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후 그의 제자들의 순교적 삶이라든지...

 

이런 불세출의 위인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사의 마이너리티로 오히려 루터, 츠빙글리, 캘빈보다도 더 앞서 오랫동안 참된 신앙 집단으로 살며 순교의 삶을 살다간 많은, 당시 로마 카톨릭 입장에서는 이단들이었던 분들이라든지...

 

이런 분들의 예를 들었다고 무슨 제가 감히 저런 분들의 반열에 든다 말씀드리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아이고, 그 무슨...

 

다만 그 어떤 거대한 흐름과 시대 조류에 함께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 대신 자신의 옳다 여긴 바를 진정성 있게 추구한, 그러나 당연히 그에 따른 시대적 값지불은 개의치 않았다는 점에서 저처럼 개신교 목사로서 스베덴보리를 하는 자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여 예로 든 것뿐입니다.

 

현 기독교, 그리고 개신교 시대에 개신교 목사가, 아니 꼭 목사,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여도 마찬가지... 중간에 저처럼 스베덴보리를 하게 되면, 아니, 스베덴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지어 수도사, 수도원, 성인전 같은 걸 찾기만 해도 일어나는, 제가 경험하고 있는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사랑하는 지인들의 소리소문없는 절교, 단절, 멀리함이요, 혈육 및 가족 역시 영육간 서먹해짐이요...

 

지금은 ‘왜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나는지 저는 그 이유를 모르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주님, 저를 인도해주세요...’ 하며, 그저 모든 걸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섭리 아래 주님의 이노센스만 꼭 붙잡고 가고자 늘 주님의 빛을 구할 뿐입니다.

 

둘째는, 점점 내면이 열림에 따른 내적 시야의 개안(開眼)과 함께, 그렇지 않은 주변의 외적 사고 및 겉 사람 신앙, 감각 및 세속 신앙에 대한 또렷한 인식 등 맑고 밝은 빛 가운데 있다는 확신과 생생해짐, 무엇보다 근원적 평화, 마치 천사처럼 말이지요...

 

셋째는, 기도와 치유, 축사 등의 능력입니다. 영육 간 원리 및 지상과 천국, 인체와 천국 간 상응 원리 등을 알게 되어 그렇게 요란을 떨거나 애를 쓰지 않아도 권능의 삶이 시작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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