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12:3)

 

천국에서는 선에 거하는 사람들을 지혜롭다고 하며, 선에 거한다는 것은 주님의 진리를 직접 생활에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생활로 옮겨질 때 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HH.348)

 

In heaven people are called wise if they are engaged in what is good, and people are engaged in what is good when they involve divine truths directly in their lives, since divine truth becomes good when it becomes a matter of life. (HH.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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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실행된 진리 (3/31)  (0)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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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The Contents

 

131. 여기서부터는 태고교회의 후손 이야기로, 이들은 자신들의 오운(own, proprium)3을 향해 기울어진 사람들입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3 is here treated of.

 

※ ‘자신들의 오운을 향해 기울어진’(inclined to their own)이란 ‘자치권을 얻고자 분투한’(自治, 奮鬪, strove for autonomy), 즉 자기가 주인 노릇 하며 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는 말입니다.

 

Critical Notes

 

3.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은 원전 용어로, 이곳과 다른 곳들에서는 영어 ‘오운’(ow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형용사 ‘프로피우스’(propius)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개가 소유한’(one’s own), ‘적절한’(proper), ‘아무개 자신한테만 속한’(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special), ‘특정한’(particular), ‘특유한’(peculiar)입니다. 이 형용사의 중성 표현, 그게 바로 이 프로프리움인데, 이게 명사로 사용될 때는 그 의미가 ‘소유’(possession), ‘재산’(property)이며, 또 ‘어떤 특이한 점’(a peculiarity), ‘특징’(characteristic mark), ‘구별점’(distinguishing sign), ‘특징’(characteristic)입니다. 영어 형용사 ‘오운’(own)은 웹스터에 보면 그 의미가 ‘...에 속한’(belonging to), ‘...에 배타적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정한’(peculiar)인데, 그래서 우리가 채택한 이 ‘오운’이라는 말은 프로피우스에 정말 딱 맞는 말이며, 만약 라틴어 프로프리움을 대신하기 위해 이 오운을 명사로 사용한다 해도 정말 아주 근접한 번역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자 주]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132. 인간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만족하기보다 자기 자신과 세상, 혹은 자기 오운의 인도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런 인간에게 허용된 오운을 여기서 다룹니다. (18)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 ‘그런 인간에게 허용된 오운’(the own which was granted him)이란 ‘인류에게 양도하신 자치성’(the sense of autonomy yielded to humankind)을 말합니다.

 

※ 마치 둘째가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할 때, 잠자코 나누어 주신 아버지처럼 주님은 인류가 원하는 대로 주님의 인도 대신 제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133. 그래서 그로 하여금 먼저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에 대해 알도록 하십니다. 이것들은 주님이 그에게 기부하신, 즉 보탬이 되라고 거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 오운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19-20)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은 ‘긍정적인 느낌, 기분들과 참된 개념들’(the positive feelings and true concepts)입니다. 즉 이것이 바로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의 내적 의미라는 말입니다.

 

 

134. 이런 이유로, 그는 자기 오운에 깊이 잠긴 상태에 있게 되며, 어떤 오운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 오운은 여자로 빚어진 갈빗대로 묘사되고 있는 그 오운입니다. (21-23)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 ‘자기 오운에 깊이 잠긴 상태에 있게 되며, 어떤 오운이 그에게 주어지는데’(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란 ‘자치 상태가 되어 자치성이 부여된’(brought into a state of self-governance and are granted a sense of autonomy)이라는 말입니다.

 

 

135. 천적, 영적 생명은 인간의 고유본성과 아주 가까이, 마치 이들이 하나로 보일 정도로 붙어있습니다. (24)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이노센스가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드는데요, 이 이노센스는 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25절)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 즉 인간이 선을 넘지 못하도록,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고자 하여도 그것도 어느 정도지, 너무 지나쳐 무례를 범하거나 신성모독의 선을 넘어 망하지 않도록 주님은 이노센스를 마치 수증기처럼, 가랑비처럼 늘 공급하신다는 말입니다.

 

The Internal Sense

 

137. 창세기의 첫 세 장은 대체로 태고교회(太古敎會, the most ancient church)를 다루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 교회는 ‘사람’(man, homo)으로 불렸습니다. 이 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태고교회가 가장 융성했던 상태, 곧 천적 인간이었던 상태를 다루었다면, 이제 여기 후반부에서는 자기들의 본성과 그들의 후손으로 기울어진 사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 즉 주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갖은 노력을 다했던 태고교회 후손들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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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Verse 17.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 17절 속뜻

 

주님의 신비는 오직 퍼셉션으로만 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적인 것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126. 방금 다룬 16절 설명과 함께 이 말씀을 보면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곧 주님의 모든 퍼셉션을 가지고 참됨과 선함을 아는 것은 허용되지만, 자아와 세상의 것으로는 안 된다는 것, 즉 우리가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에 속한 것으로 들여다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랬다가는 신앙의 천적인 것이 파괴되기 때문이지요. These words, taken together with those just explained, signify that it is allowable to become acquainted with what is true and good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 but not from self and the world; that is, we are not to inquire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for in this case the celestial of faith is destroyed.

 

※ ‘감각과 기억에 속한 것’(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이란 ‘원초적 감각이나 팩트’(sense impressions or facts)로 아직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오감과 세상 지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사십일 금식기도나 천일 예배, 불교의 참선, 면벽 수련(달마의 구 년 면벽 같은), 오체투지(五體投地, 삼천 배, 오천 배 같은 불교의 절하는 법), 하안거, 동안거 등은 물론, 수많은 종교에 따른 수많은 종교적 수행 등은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 五慾: 수면욕, 식욕, 색욕, 명예욕, 재물욕, 七情: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오(惡), 욕(慾), 애(愛)) 문제를 좀 어떻게 건드려서 신의 세계에 들어갈까 하는 것으로, 아무리 극 초월적 극기 수행을 이룬다 하여도 이것으로 구원을 추구한다거나 천국 가기를 희망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모든 사람 다 추구하는 이 오욕칠정보다는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데에만 전념하고자 모든 걸 내려놓고 완전히 타인을 위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 가령 성 프란치스코라든지, 성 분도 요셉 라브르라든지 하는 분들의 경우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한 방편으로 이런 수도적 삶을 추구한 게 아니라 주님만 사랑하기에도 너무 바빠 자기를 사랑할 틈이 없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식, 곧 세상에서 지식을 추구하는, 그래서 학자 되기를 애쓰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27.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기억에 속한 것을 가지고 들여다보고자 함, 이것이 바로 다음 장에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 후손의 몰락의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교회가 몰락하는 원인입니다. 여기서 거짓들뿐 아니라 삶의 악들 또한 나오기 때문입니다. A desire to investigat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was not only the cause of 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 but it is also the cause of the fall of every church; for hence come not only falsities, but also evils of life.

 

※ 목회의 성공을 교인 수와 헌금 수입으로 가늠하고자 하는 일련의 세속적 태도는 뭐 말할 것도 없고, 말씀 풀이를 비록 ‘창조’라는 표현을 덧댔지만 어쨌든 ‘과학’으로 풀려는 시도 및 원어 연구를 통해 접근하려는 일련의 노력 등도 사실은 안전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계시보다는 감각과 세상 지식을 더 의존하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내적 세계의 일을 눈에 보이는 ‘감각적 증거나 세속적 지식’(sensory evidence or secular knowledge)으로 풀고자 하는 일체의 노력은 사람의 마음을 영적인 일에서 물러나게 하여 그 지적 시야를 아주 좁게 만듭니다.

 

 

128. 세속적이고 육적(肉的)인 사람은 속으로 말하길, ‘신앙과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해서, 나는 감각에 속한 것으로 나를 가르쳐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하지 않거나, 지식에 속한 것으로 나를 가르쳐 나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지 않으면, 나는 안 믿을 거야.’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연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서로 충돌할 리가 없다 스스로 확신합니다.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says in his heart, If I am not instructed concerning the faith, and everything relating to it,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so that I may see, or by means of 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so that I may understand, I will not believe; and he confirms himself in this by the consideration that natural things cannot be contrary to spiritual.

 

※ 세상과 몸의 지배 아래 있는(under the sway of the world and our bodies) 사람,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것만 믿겠다.’ 하는 사람이지요.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도마가 생각납니다.

 

그 결과, 이 사람은 천적이며 신에게 속한(celestial and Divine, 天, 神) 것을 감각적인 걸 가지고 접근하고자 아주 간절해지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이런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더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는 사실은 자신을 더욱더 소경이 되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에는 아무것도, 심지어 거기 영적인 어떤 것이 있는데도, 혹은 거기 영생이 있는데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Thus he is desirous of 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in what is celestial and Divine, which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for the more he desires to grow wise by such means, the more he blinds himself, till at length he believes nothing, not even that there is anything spiritual, or that there is eternal life.

 

이런 결과는 처음 그가 가정했던 원리에서 나옵니다. This comes from the principle which he assumes.

 

이런 것이 바로 ‘선, 악과 관련된 지식의 나무를 먹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먹으면 먹을수록, 그는 죽게 됩니다. And this is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of which the more anyone eats, the more dead he becomes.

 

그러나 주님으로는 지혜로워져도 세상으로는 아닌 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즉 주님이 말씀(the Word)에서 하신 말씀들은 반드시 믿어야 해, 왜냐하면, 진리이니까!’ 그리고 이 원리에 따라 그는 자기의 생각을 조정합니다. But 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 says in his heart that the Lord must be believed, that is, the things which the Lord has spoken in the Word, because they are truths; and according to this principle he regulates his thoughts.

 

그는 이성, 지식, 감각, 그리고 본능에 관한 것을 가지고 점점 더 확신 가운데 거하며,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것들을 그는 버립니다. He confirms himself 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and those which are not confirmatory he casts aside.

 

※ 여기 ‘확신’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입니다. 즉 세상 지혜가 아닌, 주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모든 이성적 논쟁, 사실적 지식, 감각적 증거 및 모든 물리적 현상들(rational argument, factual knowledge, sensory evidence, and physical phenomena)을 말씀을 확신하는 일에 사용한다는 말입니다.

 

 

129.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다 알고 있는데요, 인간은 자기가 세운 원칙, 심지어 그 원칙이 완전히 거짓이어도 그것의 지배를 받으며, 그의 모든 지식과 이성은 그가 세운 원칙에 호의적이라는 사실들 말입니다. 인간이 이토록 어처구니없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사실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마음에 계속 프리젠테이션 되면서 그는 그런 식으로 드디어 거짓된 것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Everyone may know that man is governed by the principles he assumes, be they ever so false, and that 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for innumerable considerations tending to support them present themselves to his mind, and thus he is confirmed in what is false.

 

※ ‘지식과 이성’(knowledge and reasoning)이라 했지만 사실은 ‘지식과 궤변’(knowledge and sophistry)입니다. 이것이 사실임은 좌파로 기울어진 사람들, 소위 주사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오랜 기간 쏟아놓는 궤변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 분명히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하셨고, 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셨으며, 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6:63) 등등 정말 많은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먹고 사는 것이다!’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런 거짓된 가정을 자신의 중심원리로 세운 사람한테는 다른 모든 권면이 다 쇠귀에 경 읽기가 되고 맙니다.

 

이런 이유로, ‘두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라는 걸 하나의 중심원리로 정한 사람은 결코 믿음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영적, 천적인 것들은 결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무슨 마음속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He therefore who assumes as 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 can never believe, becaus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cannot be seen with the eyes, or conceived by the imagination.

 

반면, 참된 질서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즉 말씀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후 모든 것이 뒤를 따르며, 이 사람은 눈이 밝아지는데 심지어 이성 및 그동안 습득한 지식에 관해서도 그렇게 됩니다. But the true order is 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 and he is enlightened even 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 즉, 그동안 역기능을 하며, 잘못된 쓰임새로 쓰임 받던 이성과 세상 지식이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사람이 세상이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기를 선택하면 더욱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성적 사고를 하게 되며, 그동안 학습하여 습득한 세상 지식 역시 그 쓰임새가 180도 달라져 자기 사랑, 세상 사랑에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그 방향이 확 바뀌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질서입니다.

 

이것은 결코 과학 배우기 금지가 아닙니다. 과학은 인간의 삶에 유익하며, 아주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며, 또 사람이 신앙 안에 있다고 해서 세상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하기 금지도 아닙니다. 대신 다음의 원리, 곧 ‘주님 말씀을 믿기’라는 원리로 해야 하는데요, 그래서 가능한 한, 자연적 진리들을 가지고 영적, 천적 진리들을 확증하되 학자들 세계에 친숙한 그런 용어들을 써서 해야 합니다. For it is by no means forbidden to learn the sciences, since they are useful to his life and delightful; nor is he who is in faith prohibited from thinking and speaking as do the learned of the world; but it must be from this principle—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 and, so far as possible,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

 

※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바리새 및 사두개 등 당시 종교 엘리트들의 지독한 지적, 교리적 논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으셨습니다.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매번 그들로 하여금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이 있으나 할 말이 없음) 할 수밖에 없게 만드셨습니다. 주님의 지혜, 천국 지혜는 다른 차원의 지혜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요셉도, 다니엘도 왕들과 나라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주님 편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오히려 어깨를 펴고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그의 모든 출발점은 주님이셔야 합니다.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니고요.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Thus his starting point must be the Lord, and not himself; for the former is life, but the latter is death.

 

 

130. 세상을 통해서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동산’을 위해 감각 및 기억-지식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그에게는 ‘에덴’이며, 그에게 있어서 ‘동쪽’은 서쪽, 혹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의 ‘유브라데 강’은 그가 가진, 비난받는 모든 세상 기억-지식이며, 그의 ‘두 번째 강’, 거기가 ‘앗수르’인데, 거짓을 지어내느라 정신이 나간 것입니다. 그의 ‘세 번째 강’, 거기는 ‘에디오피아’인데, 이것은 악과 악에서 나오는 거짓의 원리들로서, 이 원리들이 그가 가진 신앙의 지식들입니다. 그의 ‘네 번째 강’은 거기서 나오는 지혜인데, 말씀에서는 이걸 ‘마술’이라 부릅니다. 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 has for his “garden”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re his “Eden”; his “east” is the west, or himself; his “river Euphrates” is 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 his “second river,” where is “Assyria” is 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 his “third river,” where is “Ethiopia” is 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 his “fourth river” is the wisdom thence derived, which in the Word is called “magic.”

 

※ 주님의 참된 질서가 아닌, 정반대 질서, 곧 출발점을 주님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삼는 사람은 동방의 에덴동산과 그 네 강의 의미와 순서가 정확히 뒤집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애굽’은, 기억-지식, 후에 마술이 되고 마는 지식을 상징하는데, 애굽은 이런 사람을 상징합니다. 말씀에서 볼 수 있듯, 이런 사람은 스스로 지혜로워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And therefore “Egypt”—which signifies 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 signifies such a man, because, as may be seen from the Word, 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

 

이와 관련, 에스겔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Of such it is written in Ezekiel:

 

3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9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겔29:3, 9) Thus hath said the Lord Jehovih,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who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it for myself. And the land of Egypt shall be for a solitude, and a waste, and they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because he hath said, The river is mine, and I have made it. (Ezek. 29:3, 9)

 

같은 선지서를 보면, 또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지하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이라 하는데, 거기 보면 또 바로(Pharaoh), 혹은 애굽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적고 있습니다. Such men are also called “trees of Eden in hell,” in the same prophet, where also Pharaoh, or the Egyptian, is treated of in these words: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겔31:16, 18) When I shall have made him descend into hell with them that descend into the pit; to whom art thou thus made like in glory and in greatness among the trees of Eden? yet shalt thou be made to descend with the trees of Eden into the lower earth,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with them that be slain by the sword. This is Pharaoh and all his crew, (Ezek. 31:16, 18)

 

여기 ‘에덴의 나무들’은 말씀으로 말미암는 지식들을 가리키는데, 이 것을 저들은 이성으로 모독하는 것입니다. where the “trees of Eden” denote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 which they thus profane by reasonings.

 

※ ‘이성으로 모독한다는 것’은 이성을 악하게 사용하여 신성모독을 한다, 주님을 모독하기 위하여 주님이 주신 이성을 악하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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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6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Verse 16.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 우리말 번역은 원문에는 없는 ‘열매’를 추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라 함으로써 아케이나가 더욱 흐릿하게, 안 보이게 하는 아주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성경 번역자들이 말씀을 속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 16절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퍼셉션을 늘 공급하시되 마치 해가 대지를 환히 늘 비추듯 원 없이 누리게 하셨습니다. 천적 인간은 천지에 가득한 주님의 신성에 하늘의 천사들처럼 이 퍼셉션을 가지고 반응하였습니다.

 

 

125. ‘각종 나무를 먹는 것’은 퍼셉션을 가지고 선함과 참됨을 아는 것입니다. 앞서 관찰한 것처럼(cf. AC.103), ‘나무’는 퍼셉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o “eat of every tree” is to know from perception what is good and true; for, as before observed, a “tree” signifies perception.

 

※ 선함과 참됨을 알고 인지하기 위하여 퍼셉션에 의지하는 것(to depend on perception in order to know and recognize what is good and true)을 말합니다. 즉 퍼셉션이 있어야 무엇이 선이요 참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며, 그래서 천사들은 천국에 충만한 선과 진리를 역시 천국에 충만한 퍼셉션으로 밝히 아는 것입니다.

 

※ 103번 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여기 ‘나무들’이 퍼셉션을 상징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가 영적 인간이면 달라지는데요, 주제의 성격에 따라 서술되는 것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은 참된 신앙에 관한 지식을 계시(啓示)로 얻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대화하였고, 천사들하고도 그랬으며, 또한 비전과 꿈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비전과 꿈은 그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낙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ad the knowledges of true faith by means of revelations, for they conversed with the Lord and with angels, and were also instructed by visions and dreams, which were most delightful and paradisal to them.

 

※ 천사들이 바로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다음은 책 ‘천국과 지옥’(김은경 역), 266번, 267번 글의 일부입니다.

 

...천사들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처럼 공간과 시간의 개념에 의해 제한되거나 구속되지 않는다. 공간과 시간은 자연계에 속한 것이고, 자연계에 속한 것은 마음을 영적인 것에서 떼어 놓아 그에 합당한 지성을 박탈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사의 생각은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끌려 내려오지도, 생활의 염려로 방해를 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지상의 사람들처럼 그런 것으로 인해 지혜의 즐거움에서 멀어지는 일이 없다. 그들은 모든 것을 주께 값없이 받기 때문이다. 옷과 양식과 집을 모두 그냥 받는다. 그 밖에도 각자 주께 지혜를 받는 정도에 따라 그에 맞는 기쁨과 즐거움을 받는다... (HH.266.3)

 

...천사들이 그런 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다른 모든 완벽성과 마찬가지로 내적으로 갈수록 증가하므로, 내면이 열리는 정도만큼 지혜가 늘어나는 것이다... (HH.267)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퍼셉션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그래서 소중하게 여기던 어떤 기억이 떠오를 때면, 그들은 그 기억이 참되고 선한지를 바로 지각했으며, 만일 그 가운데 거짓된 것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들은 그것을 피할 뿐 아니라 몸서리를 칠 정도였습니다. 그건 또한 천사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They had from the Lord continual perception, so that when they reflected on what was treasured up in the memory they instantly perceived whether it was true and good, insomuch that when anything false presented itself, they not only avoided it but even regarded it with horror: such also is the state of the angels.

 

※ 빛 가운데서는 모든 것이 즉시 드러나듯 퍼셉션 가운데서는 선과 악, 진리와 거짓에 대한 분별이 즉시 이루어집니다. 지상의 경우처럼 흐릿, 애매한 경우가 없습니다.

 

태고교회의 이런 퍼셉션이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는 참되고 선한 것에 관한 지식으로 대체되어 계승되었는데, 이 지식은 앞서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 나중에 말씀에 계시된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In place of this perce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owever, there afterwards succeeded the knowledge [cognitio] of what is true and good from what had been previously revealed, and afterwards from what was revealed in the Word.

 

※ 천국 빛으로 말씀을 전하시는 분과 신학교에서 배운 설교학을 기반으로 3대지 설교, 4대지 설교 등 설교 기법에 의지하여 말씀을 전하시는 분의 차이입니다. 전자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의 설교이지만, 후자는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세상 지식으로 짜깁기한 판례 설교, 사례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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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Verse 15,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 15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주신 모든 것은 소유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천적 인간은 소유가 아닌 누림의 사람입니다.

 

 

122. ‘에덴동산’은 이미 설명한 대로, 천적 인간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의 의미는 그가 그 모든 것을 누리게는 하셨으나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금지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By the “garden of Eden” are signified all things of the celestial man, as described; by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is signified that it is permitted him to enjoy all these things, bu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because they are the Lord’s.

 

※ 천사들은 무엇을 소유하는 것엔 별 관심이 없고, 대신 그 쓰임새만 눈에 들어옵니다. 퍼셉션이라는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된 천사들은 주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쓰임새의 삶에 집중합니다.

 

 

123. 천적 인간은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그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합니다(acknowledges). 그가 그 사실을 지각하기(perceives) 때문입니다. The celestial man acknowledges, because he perceives, that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re the Lord’s.

 

※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in general and in particular)는 ‘absolutely’, 곧 ‘전적(全的)으로’, ‘틀림없이’라는 뜻입니다.

 

영적 인간 역시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입으로 합니다. 그가 그것을 말씀에서 배웠기(has learned) 때문입니다. The spiritual man does indeed acknowledge the same, but with the mouth, because he has learned it from the Word.

 

※ ‘perceive’와 ‘learn’의 차이입니다. 어린아이나 지적장애아들을 보면, 무슨 고도의 이성적 사고 같은 걸 할 수 없음에도 최소한 그들은 지금 이 사람이 자기를 사랑으로 대하는지 억지로 대하는지를 그냥 직관적으로 압니다.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생명이어서 그냥 느껴 아는 것이지 학습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 ‘perceive’와 ‘learn’의 차이, 곧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차이입니다.

 

세속적이고 육적(肉的, corporeal)인 인간은 그 사실을 인정(acknowledge)도, 마지못한 시인(admit)도 안 합니다. 자기가 가진 건 뭐든지 ‘이건 내 꺼야’라 하며, 만일 그걸 잃게 되면, 자기는 완전 죽을(perish) 것처럼 생각합니다.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neither acknowledges nor admits it; but whatever he has he calls his own, and imagines that were he to lose it, he would altogether perish.

 

※ ‘육적’(肉的, corporeal)이란 ‘body-centered’, 즉 ‘’, ‘육체’, ‘감각’, ‘물질’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겉만 사람일 뿐 사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영혼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124. 지혜, 지성, 이성, 그리고 지식은 사람의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가르치신 모든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자신을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농부들에게 세로 준’(마21:33) 집주인으로 비유하십니다. That wisdom, intelligence, reason, and knowledge [scientia] are not of man, but of the Lord, is very evident from all that the Lord taught; as in Matthew, where the Lord compares himself to a householder who planted a vineyard, and hedged it round, and let it out to husbandmen (21:33); and in John: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마21:33)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and in John: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16:13-14) The Spirit of truth shall guide you into all truth; for he shall not speak of himself, but what things soever he shall hear, he shall speak; he shall glorify me, for he shall receive of mine, and shall declare it unto you. (John 16:13–14)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3:27) A man can receive nothing except it be given him from heaven. (John 3:27)

 

이것이 과연 그렇다는 것은 천국 아케이나에 관하여 아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That this is really so is known to everyone who is acquainted with even a few of the arcana of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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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7(D1)-주일예배(2300, 창2,7, AC.94-97), '생기, 코, 생령'.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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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b7NPkHg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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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7(D1)-제10권13호통448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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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4절,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Verse 14,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yria; and the fourth river is Euphrates.

 

※ 14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세 번째, 네 번째 특징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의 합리적 영역으로 흐르는 이성과 그 경계인 지식, 세상 팩트에 기반을 둔 지식입니다.

 

※ 내용이 어렵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NCE 역을 병기합니다.

 

※ NCE 역은 New Century Edition으로서, 가장 최근인 2010년부터 Lisa Hyatt Cooper에 의해 라틴 원전 직접 번역, 현재 2권까지 나왔고, 3권 출시 예정이며, 총 15권으로 구성된 번역입니다. 현대 영어로 나름 쉽게 풀어쓴 번역입니다.

 

 

118. ‘힛데겔 강’은 이성(理性, reason), 혹은 이성적 사고의 명석함(clearsightedness)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 ‘이성’(reason)이란 ‘이성적 사고,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the ability to reason)을 말합니다.

 

앗수르’는 합리적 마인드(the rational mind)입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은 이 이성적 사고의 명석함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의 합리적 마인드로 흐른다는 말입니다. ‘프라’, 혹은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인데, 종단(終端, the ultimate), 혹은 경계(boundary)를 말합니다.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 ‘합리적 마인드’(the rational mind)란 ‘합리적 사고, 이성적 사고를 하는 마음’(the mind that does the reasoning)을, ‘겉 사람의 합리적 마인드’(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란 ‘겉 사람 안에 있으면서 합리적 기능을 하는, 마음의 영역’(the part of the mind that reasons, which is located in the outer self)을,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은 ‘팩트에 기반을 둔 지식’(factual knowledge)을, ‘종단(終端), 혹은 경계’(the ultimate or boundary)란 ‘마음의 끝단’(the final boundary of the mind)을 말합니다.

 

※ 즉 천적 인간의 마음의 네 가지 영역, 곧 지혜, 지성, 이성, 지식을 각각 이렇게 네 강인 비손, 기혼, 힛데겔 및 유브라데로 상징한 것입니다.

 

 

119. ‘앗수르’가 합리적 마인드, 혹은 인간의 합리적인 면을 상징하는 것은 선지서들, 가령 에스겔을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That “Asshur” 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 ‘합리적 마인드’(the rational mind)란 ‘합리적인 마음’(the reasoning mind)을, ‘인간의 합리적인 면’(the rational of man)이란 ‘사람이 가진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a person’s ability to think rationally)을 말합니다.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겔31:3-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합리적인 것(The rational)을 ‘레바논 백향목’이라 합니다. ‘굵은 가지들 가운데 있는 分枝’(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는 기억 지식들(the knowledges of the memory)을 상징하는데, 바로 이 언약(plight)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 “cedar in Lebanon”;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 ‘합리적인 것’(The rational)이란 ‘합리적인 능력’(The ability to reason)을, ‘기억 지식들’(the knowledges of the memory)은 ‘기억하고 있는 팩트 정보’(factual information in the memory)를, ‘바로 이 언약(plight) 안에 있는’(which are in this very plight)이란 ‘그런 가지를 닮은’(which resembles such a bough)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에서 훨씬 더 명료합니다.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사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이 구절과 다른 여러 구절에서, ‘애굽’은 기억-지식(memory-knowledges), ‘앗수르’는 이성(reason), ‘이스라엘’은 지성(intelligence)을 상징합니다. By “Egypt” 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 “Asshur” reason, and by “Israel” intelligence.

 

※ NCE 역으로는, ‘애굽’은 ‘사실 정보’(factual information), ‘앗수르’는 ‘논리적 사고력’(the ability to reason), ‘이스라엘’은 ‘이해력’(the ability to understand)입니다.

 

 

120. ‘애굽’은, 또 ‘유브라데’ 역시, 기억-지식들 및 또한 감각적인 것들(the sensuous things)을 상징합니다. 이 감각적인 것들에서 이런 것들이 나옵니다. As by “Egypt,” so also by “Euphrates,” are signified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 세속, 세상 지식(secular knowledge), 팩트(facts)와 이 팩트의 기반이 되는 감각적인 것들(the sensory impressions)을 말합니다.

 

이런 사실은 선지서, 가령 미가서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This is evident from the Word in the prophets, as in Micah: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미7:10-12) My she-enemy hath said, Where is Jehovah thy God? The day in which he shall build thy walls [macerias], that day shall the decree be far removed; that day also he shall come even to thee from Asshur, and to the cities of Egypt, and to the river [Euphrates]. (Micah 7:10–12)

 

그렇게 선지자들은 주님의 오심(the coming of the Lord)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사 천적 인간처럼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So did the prophets speak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who should regenerate man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 주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천국 주민들처럼(like heaven’s inhabitants) 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예레미야에, In Jeremiah: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렘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Egypt, to drink the waters of Sihor? Or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Asshur, to drink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Jer. 2:18)

 

여기 ‘애굽’과 ‘유브라데’는 같이 기억-지식을, ‘앗수르’는 거기서 나오는 합리적인 것들(reasonings)을 상징합니다. where “Egypt” and “Euphrates” likewise signify memory-knowledges, and “Asshur” reasonings thence derived.

 

※ ‘애굽’, ‘유브라데’ 둘 다 팩트를, ‘앗수르’는 그것들을 가지고 구축된 합리화(rationalizations)를 나타냅니다(stand for).

 

시편에, In David: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여기 ‘유브라데 강’은 감각적인 것(what is sensuous)과 기억에 속한 것(what is of the memory)을 상징합니다. where also the “river Euphrates” 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

 

※ ‘유브라데 강’, 감각적, 사실적 정보(sensory and factual information)를 말합니다.

 

기억 지식이 영적,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경계이듯, 유브라데는 앗수르 방향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였기 때문입니다. For the Euphrates was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as the knowledge of the memory is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 ‘기억 지식’(the knowledge of the memory)은 ‘기억 가운데 팩트들’(facts in the memory)을, ‘지성과 지혜의 경계’(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는 ‘이해와 지혜의 바깥쪽 경계’(the outer limit of understanding and wisdom)를 말합니다.

 

※ 내세에 들면, 즉 우리 영이 몸에서 들리면, 우리가 그동안 추상적으로 생각하던 추상 개념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요, 가령 선, 진리, 사랑, 신앙, 의지, 이해, 지혜, 지성, 지식 및 감각 등 수많은 추상 개념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속 사람, 곧 내적 존재가 되었으므로 내적 시야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명료하게 진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들은 말씀 또한 같은 걸 상징합니다. The same is signified by what was said to Abraham: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위 두 경계는 같은 걸 상징합니다. These two boundaries have a like signification.

 

 

121. 이 강들을 통해서 천적 질서의 본성, 혹은 생명에 관한 것들의 진행 방법은 다음과 같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즉 ‘’(東, East)이신 주님으로부터 시작, 주님으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지혜를 통해서 지성이, 지성을 통해서 이성, 그리고 그렇게 이성을 통해 기억 지식들이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or 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is evident from these rivers, namely, from the Lord, who is the “East,” and that from him proceeds wisdom, through wisdom intelligence, through intelligence reason, and so by means of reason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are vivified.

 

※ 천국인(天國人)의 내적 생명(the inner life of heavenly people)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혹은 그 구성 요소의 발전 순서(the order in which its constituent parts develop)를 이 네 종류의 강이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패턴은 먼저 ‘’(東, East)이신 주님으로부터 시작, 지혜(wisdom), 이해(understanding), 이성(reason)의 순이며, 그리고 이 이성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학습했던 팩트들이 살아나는(makes the facts we have memorized come alive) 그런 순서, 패턴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순서이며, 이런 사람들이 천적 인간들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천적 인간들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일컬어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신1:13, 15)이라 한 것입니다. This is the order of life, and such are celestial men; and therefore, since the elders of Israel represented celestial men, they were called “wise, intelligent, and knowing” (Deut. 1:13, 15).

 

13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5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신1:13, 15)

 

그래서 법궤를 짠 브살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Hence it is said of Bezaleel, who constructed the ark, that he was: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출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출35:31)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출36:1-2) Filled with the spirit of God, in wisdom, in understanding, and in knowledge [scientia], and in all work. (Exod. 31:3; 35:31; 36:1–2)

 

※ 항상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가 먼저 등장하는 것을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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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3절,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Verse 13,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 13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두 번째 특징은,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으로, ‘기혼’이라 하였으며, 이런 걸 담을 수 있는 천적 인간의 마음의 역량을 가리켜 ‘구스 땅’이라 하였습니다.

 

 

116. ‘기혼’이라 하는 ‘두 번째 강’은 선과 진리, 혹은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지식을, ‘구스 땅’은 마음(the mind) 혹은 역량(faculty)을 각각 상징합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마음은 의지와 이해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강에 대해 말한 것이 의지에 관한 것이라면, 이 두 번째 강은 이해에 관한 것으로, 선에 관한 지식, 진리에 관한 지식은 두 번째 강인 이해에 속합니다.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117. 게다가 ‘구스 땅’, 혹은 이디오피아는 금, 보석, 그리고 향신료들로 풍부했습니다. 이들은 앞서 말씀드린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의 경우처럼, 선, 진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정말 좋은(grateful) 것들을 상징합니다. The “land of Cush,” 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이런 사실은 위 113번 글에서 인용한 구절들인 사60:6, 마2:1, 11, 시72:15을 보면 분명합니다.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말씀에서 ‘구스’ 또는 ‘이디오피아’, 그리고 ‘시바’ 또한 유사한 것을 의미함은 가령 ‘구스의 강들’이 언급되는 스바냐 같은 선지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 “Cush” or “Ethiopia,” and also by “Sheba,”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 “rivers of Cush” are mentioned: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습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그리고 북방 왕과 남방 왕에 관해 말하는 다니엘에서도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하였는데, 여기서 ‘애굽’은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은 지식을 가리킵니다. where “Egypt” 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 “Ethiopians” knowledges.

 

[2] 에스겔에서도 그렇습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이들 역시 같은 식으로 신앙 지식을 상징합니다.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시편에서도 그런데요, 주님에 관하여, 결과적으로는 천적 인간에 관하여 말하면서,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이 말씀들은, 그 앞뒤 이어지는 연결 구절들을 보면 명백한 것처럼, 신앙의 천적인 면들을 상징합니다.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스바의 여왕에 의해서도 유사한 것들이 상징되었는데요, 그녀는 솔로몬을 찾아와 어려운 질문들을 하면서 그에게 향신료, 금, 그리고 보석들을 주었습니다.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2)

 

선지서 뿐만 아니라 말씀의 역사 파트에 해당하는 모든 것은 아케이나를 상징, 표현 및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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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17

 

11, 12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Verses 11, 12.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 11, 12절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첫 번째 특징은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지성이라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의 마음은 주님의 선과 진리로 충만합니다.

 

 

110. ‘첫 번째’ 강, 혹은 ‘비손’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지성(the intelligence of the faith)을, ‘하윌라 땅’은 마음(the mind)을, ‘’은 선을, ‘베델리엄과 호마노’는 진리를 각각 상징합니다. The “first” river, or “Pishon,” signifies 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the land of Havilah” signifies the mind; “gold” signifies goo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truth.

 

※ 주님 보시기에 천적 인간의 마음 상태가 이런가 봅니다...

 

※ ‘사랑에서 나오는’(from love)이란 그 신앙 지성의 출발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영적 인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주님을 신앙하지만, 천적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는 게 전부일 뿐 사실 신앙이라는 게 뭔지도 모릅니다. 천진난만 어린아이가 효(孝)가 뭔지도 모르면서도 그 어느 성인(成人)들보다도 더 부모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천적 인간은 모든 것을 주님 사랑으로 하는, 그야말로 사랑 덩어리인 것입니다.

 

’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금이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언급되는 이유는, 하나는 사랑의 진리를,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각각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Gold” is mentioned twice because it signifies the good of love and the good of faith from love; an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are mentioned because the one signifies the truth of love, and the other the truth of faith from love.

 

 사랑에서 두 가지, 선과 진리가 나오며, 선도 사랑의 선, 신앙의 선이 있고, 진리 역시 사랑의 진리, 신앙의 진리가 있군요!

 

이런 것이 천적 인간입니다. Such is the celestial man.

 

 

111. 하지만 이런 내용은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 있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faith from love)이라는 게 뭔지, 또 그런 신앙에서 나온다는(thence derived) 지혜와 지성이라는 게 뭔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It is however a very difficult matter to describe these things 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for at the present day no one knows what is meant by faith from love, and what by 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

 

그 이유는, 겉 사람들이 아는 거라곤 거의 기억-지식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기억-지식을 가지고 지성이다, 지혜다, 신앙이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external men scarcely know of anything but memory-knowledge, which they c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faith.

 

※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이란 주님으로 말미암은 계시가 아닌, 세상에서 자기 머리와 열심으로 땀 흘려 습득한 지식을 말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랑이라는 게 뭔지 조차 모릅니다. 많은 사람은 의지와 이해라는 게 뭔지, 그리고 이 둘이 한마음(one mind)을 이룬다는 게 뭔지 모릅니다. They do not even know what love is, and many do not know what the will and understanding are, and that they constitute one mind.

 

그렇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 명료합니다. 네, 정말 가장 명료하지요. 주님은 사랑과 신앙의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이점만큼이나 이 온 천국을 가장 명료하게 지으셨습니다. And yet each of these things is distinct, yea, most distinct, and the universal heaven is ordinated by the Lord in the most distinct mann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which are innumerable.

 

※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우리가 희미하다고 해서 주님 지으신 이 피조 세계도 덩달아 흐릿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내적 시야가 열리지 않아 못 보는 것일 뿐 실제로 주님 지으신 이 모든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세밀하고 명료합니다. 과연 그런지는 자연계는 고배율 현미경으로, 영계는 내적 시야로 보시면 됩니다.

 

 

112. 사랑에서 나온 게 아닌 지혜,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지혜는 없다는 사실,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지성,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지성은 없다는 사실도, 또 사랑에서 나온 게 아닌 선,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선은 없으며,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진리,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 진리는 없다는 사실 등, 이런 사실들이 더욱더 알려지게 하세요.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그러니까 주님한테서 나온 게 아닌데도 버젓이 사랑이다, 신앙이다 하는 것들이 있는데요, 이런 것들은 다 가짜입니다.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113. 말씀에서 지혜, 혹은 사랑의 선을 상징, 표현하는데 ‘’보다 더 일반적인 것은 없습니다.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 “gold.”

 

법궤, 성전, 금상, 촛대, 대접들 및 아론의 예복 등 이 모든 것에 있는 금은 지혜, 혹은 사랑의 선을 상징, 표현했습니다. 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선지서들에서도 그랬는데요, 에스겔입니다.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 분명히 말하기를, ‘금과 은’, 혹은 선과 진리가 지혜와 총명(intelligence)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법궤와 성전에서처럼, ‘’은 여기서도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 “gold and silver,” or the good and the true, for “silver” 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그래서 또한 Thus also: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서도 ‘황금’은 선을, ‘유향과 몰약’은 사랑과 신앙에서 나오는 것으로 인해 정말 감사한(grateful), 그래서 이를 가리켜 ‘여호와의 찬송’이라 하는 것들을 상징합니다. Here also “gold” 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 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 “the praises of Jehovah.”

 

그런 이유로, 시편에서도 이르기를 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114. 신앙의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precious stones)으로 상징,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론의 에봇 판결 흉패와 두 어깨 위 보석들처럼 말입니다. The truth of faith is signified and represented in the Word by precious “stones,” as by those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and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판결 흉패에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은 사랑에 속한 것들을, ‘보석’은 그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faith from love)에 속한 것들을 표현합니다. 금테에 물릴 호마노 둘, 에봇 두 어깨 위 두 ‘기념 보석’처럼 말이지요. In the breastplate, “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 represented such things as are of love, and the precious “stones” such as are of faith from love; as did likewise the two “stones of memorial” on the shoulders of the ephod, which were onyx stones, set in ouches of gold (Exod. 28:9–22).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출28:9-22)

 

보석들에 대한 이런 상징은 에스겔에서도 또한 분명한데요, 거기서 하늘의 부, 곧 지혜와 지성을 소유한 사람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This signification of precious stones is also plain from Ezekiel, where, speaking of a man possessed of heavenly riches, which are wisdom and intelligence, it is said: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겔28:12-13, 15)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thou hast been in Eden, the garden of God; every precious stone was thy covering, the ruby, the topaz, the diamond, the beryl, the onyx, and the jasper; the sapphire, the chrysoprase, the emerald, and gold; the workmanship of thy tabrets and of thy pipes was in thee; in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they were prepared; thou wast perfect in thy ways from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Ezek. 28:12–13, 15)

 

이 본문은 보석들이 아닌, 신앙의 천적, 영적인 것들을 상징하는 말씀임은 누가 보더라도 확실합니다. 과연, 모든 보석은 신앙의 어떤 에센셜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which words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do not signify stones, but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yea, each stone represented some essential of faith.

 

 

115. 태곳적 사람들은 을 말할 때, ‘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이해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가나안 땅과 시온산은 천국을 상징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장소들이 언급될 때마다 무슨 물리적 장소가 아닌 오직 그것이 상징하는 것, 곧 천국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이런 게 본문 ‘하윌라 땅’에도 해당됩니다. 이 하윌라는 창세기 25장 18절에도 다시 나오는데요, 이 구절은 이스마엘의 자손들 이야기인데, 거기서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거주하였더라’ 적혀 있습니다.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천국적으로 생각하는(are in a heavenly idea)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에서 나오는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들만 지각합니다. 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그래서 ‘비손이라는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에 나오는 ‘두르다’ 역시 그들은 흘러들어오는(a flowing in) 걸로 지각합니다. 출애굽기 28장 11절에 나오는, 금테로 물린 아론의 에봇 두 어깨의 호마노 역시 그들은 사랑의 선이 신앙의 진리 안으로 흘러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지각합니다.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다른 많은 경우들도 그렇습니다.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 거듭 진리는 선을 담는, 신앙은 사랑을 담는 그릇입니다. 진리 안에는 선, 곧 주님이 계시며, 신앙, 교리 안에도 사랑, 곧 주님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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