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16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먹고 다 배불렀더라... (눅9:12-17)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속뜻으로는, 여기서 ‘떡’은 선, ‘물고기’는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 ‘다섯’은 조금, 약간, ‘둘’은 싸움, 전투를 뜻하므로, 그래서 이를 종합하면,
곧 ‘우리의 믿음이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가운데 선은 조금밖에 없고, 말씀에 관한 지식만 가지고 있는데, 이걸 가지고 우리는 지금 힘겨운 영적 전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뜻인데요,
이것만 보아도 말씀 읽는 방식에 있어 우리와 천사들의 방식이 참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앞서 남자만 세어도 한 오천 되는 무리를 떼를 지어 한 오십씩 앉히신 것은 ‘축사하시기’ 앞서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진리를 질서정연하게 정돈하시는 것이며,
‘축사하시는 것’은 그 많은 진리들,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들에게 주님의 선을 더하시며, 그리고 혹시 선은 있으되 참 진리가 없는 선은 주님의 진리를 더하시는 그런 과정, 즉 우리 안의 선과 진리들을 온전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먹고 다 배불렀더라’는 주님이 온전하게 하신 우리 안 선과 진리들을 통해 삶이 변화되어 우리 생명이 되는 걸 뜻합니다. ‘열둘’은 믿음과 체어리티(charity)에 관한 모든 것을, ‘바구니에 담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은 실천된 진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난 진리이기 때문에,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를 통해서는 사람들은 주님의 선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1998년 3월, 당시 평양을 방어하는 부대 소속 정치부 조직부 중좌(우리로 치면 중령급)로 있었던 심주일 씨의 놀라운 탈북 이야기입니다. 오늘 현재 2부까지 올라왔습니다.
친구 통해 건네받은 성경, 이 성경을 읽다가 북조선 주체사상이라는 게 이 성경에서 뽑아낸 것임을 간파, 이후 북을 떠나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치밀한 준비 끝에 신분증과 단검 하나 소지한 채 월경(越境), 여러 위기의 순간마다 참으로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이어 대련에서 호주 국적 목사님을 만나 제주 극동방송 및 국정원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무 정말 그 무엇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여전히 직접 나타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찬양, 또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 황해도 해주 상산 사시던 저희 선친(邊培根, 1907생, 1988졸)께서는 일정 때 서울 오장동으로 올라오신 후, 6.25 사변으로 이후 끝끝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셨는데요, 이분의 말투나 분위기에서 생전 아버님 모습이 많이 오버랩되어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43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눅8:40-48)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어떨 땐 매우 치욕적이지만, 주님(the Divine)앞에서는 완전히 다른데요,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자체로 온전한 예배(total prostration)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이 생각하기를, 힘과 능력, 지혜에 있어 오직 주님만이 전부이시며, 사람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모든 선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으며, 사람으로는 전혀, 오히려 악만 말미암는다 할 때 그렇습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이런 사실을 시인, 인정할 때, 그는 마치 그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같으며, 그래서 그 결과 그의 얼굴에 이런 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될 때, 그는 또한 자신의 본성(the proprium [what is his own])으로부터도 지워지게 되는데, 이 본성이라는 것은 본질상 완전히 악하기만 한 것입니다. (AE.77)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77번 글 인용이며, 이 글은 계시록 1장 17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중,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And I fell at his feet)에 관한 속뜻 주석입니다.
오늘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는, 주님의 인성과 신성의 하나 되심, 곧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말씀의 겉 글자로 표현된 자연적 진리 안에 속뜻인 내적 진리가 담길 때, 그때에도 역시 무한한 능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인데요, 그것을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이렇게 묘사, 표현한 것입니다. ‘옷 가’는 말씀의 자연적 진리, ‘손을 대는 것’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감,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는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와 이 여인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시고요, 오늘은 위 제목처럼, 주님이 많은 여인을 고치셨지만 유일하게 오늘 본문에서만 ‘딸’이라 호칭하신 이유를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예배 메시지에서 이것이 메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본문에 나오는 ‘옷 가’는 히브리어로 ‘찌찌트’(ציצית)라 하는 것으로, 다음 민수기 말씀에 나오는 ‘옷단 귀에 만드는 술’을 말합니다.
38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민15:38-40)
류모세 이스라엘 선교사의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보면, 이 ‘찌찌트’는 그 사람의 정체성, 모든 것, 인격 전체를 나타내며, 그래서 본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마치 지나가는 노인의 백발 수염을 잡아 흔드는 것과 같기 때문인데요, 만일 그랬다가는, 특히 유대 정결법에 저촉되는 사람이 만졌다가는 현장에서 돌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며, 이 여인이 몹시 두려워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정말 여인은 목숨을 걸고 주님의 ‘찌찌트’에 손을 댄 것인데요...
이런 사정을 아시고 주님은 복음서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 현장, 이 여인에게만큼은 ‘딸’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십니다. 아무리 유대 사회 영향력 있는 랍비라 하더라도 자기 피붙이가 자신의 ‘찌찌트’ 만지는 건 괜찮기 때문인데요, 주님의 이 기가 막힌 순간적 배려에 아마도 둘러섰던 모든 무리가 다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을 것이며, 이 여인은 그래서 온몸을 떨며 주님의 사랑과 애정, 다정하신 따뜻한 배려에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 스웨덴)는 계시록에 관한 두 개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록 속뜻’(Apocalypse Revealed, 1766)입니다. 전자는 후자보다 훨씬 전부터 써오고 있었으나 사후 출간된 저작이고, 후자는 생전, 익명 출간한 마지막 저작입니다. 이후 저작들은 본인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특별히 계시록 관련 저작이 둘인데요, 이 둘의 차이는, 먼저 ‘계시록 해설’은 창세기, 출애굽기 장, 절별 속뜻 주석인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처럼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장, 절 단위 속뜻으로 주석한 것인 반면, ‘계시록 속뜻’은 살짝 ‘계시록 해설’의 요약판 같은 그런 저작입니다.
참고로, 전자의 글 맨 끝 번호는 1232번이고, 후자는 962번입니다. 전자인 ‘계시록 해설’은 계시록 19장 10절에서 갑자기 멈추는데요, 만약 스베덴보리가 이 주석을 완성, 곧 계시록 22장 21절까지 하고 갔더라면 그 글 끝 번호는 더욱 늘어났겠지요. ‘천국의 비밀’은 10837번이고, ‘천국과 지옥’은 603번입니다.
‘계시록 속뜻’ 784번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계시록 18장 15절,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에 관한 속뜻을 밝히면서 ‘연옥’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상인들’이 누구인지를 밝히면서 말이지요.
본문의 ‘상인들’(merchants)은 ‘바벨론’이라는 여자로 말미암아 이익을 본 자들로, 바로 앞 절의,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과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을 교회의 여러 허락과 질서, 하늘의 약속과 법망을 최대한 활용, 치부한 자들을 말하는데, 여기엔 교회 내 높은 자들, 낮은 자들이 다 포함됩니다.
이들은 율법을 최대한 범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결혼하는 법, 이혼하는 법, 드러나지 않게 악을 행하는 법,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할 수 있는지, 면죄부라든지, 교회의 묵인하에 적당히 세속적 통치 권력, 행정 권력과 손잡는 문제, 어떻게 하면 교회와 수도원을 부유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 하는 일에 밝았고, 특히 부자들이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별의별 음모를 꾸며 그에게 지옥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으며, 그들의 재산을 갈취할 좋은 기회로 여겨 미사 희생을 약속하고, 연옥이라고 하는 고통의 장소에서 점진적으로 구출,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음은 위 784번 글 두 번째 단락에 대한 번역입니다. 관련 영역(※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라틴어로 되어 있음)은 아래 제 블로그에 올렸으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아래 번역 중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것입니다.
연옥에 관해서는,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한 바벨론식 허구이며,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고 말이지요. 모든 사람은 사후 맨 먼저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천국과 지옥 사이 중간지대이며, 여기서 각자 살아온 세상 삶에 따라 이후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가 준비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아무에게도 고통없는 곳이지만, 악인들의 경우, 그 준비가 끝나 지옥으로 가게 될 때, 그때 처음으로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곳엔 무수한 사회들(societies)이 있고, 또 각 사회마다 지상과 유사한 기쁨들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으며, 또 이들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이곳 영들을 통해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하시며, 그래서 지상 사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천국과 지옥에서 온 영들이 둘씩 배정되어 있습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영들과 천사들은 사람의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오고, 지옥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들은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와서는 그 기억과 생각이 자기들 것인 줄 압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모든 지옥스러운 생각들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의 악한 영들이 하는 것이며, 한편, 우리 안에 떠오르는 모든 천국스러운 생각들 역시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와 있는, 주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한 영들과 천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우리 안에 무슨 악하고 어두운, 숨이 막히고 지옥스러운 생각들이 일어나면 얼른 ‘이 생각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내 안의 악한 영들이 하는 거야!’ 하며, 그 생각들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시고, 즉 얼른 한 발 뒤로 물러나시고, 즉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천사들이 그 상황을 접수, 우리를 위해 그 상황을 수습합니다. 비록 우리 안에 주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도움을 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멀찍이 서서 우리를 위해 아주 최소한의 조치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시면 안 됩니다.
그들의 겉 사람, 곧 외면(externals)은 거기에서 연속적으로 벗겨지며, 즉 휴면상태에 들어가며, 그렇게 해서 그들의 속 사람, 곧 내면(internals)이 열리는데요, 이 과정은 그들의 주도적 사랑(the ruling love)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사랑은 실제로 해당 영의 생명과도 같은 사랑으로, 가장 깊은 것(the inmost)이고, 그들의 외면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드러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면목(real quality)이 나타나는데요, 그는 자기가 가진 이 사랑의 질(質, quality)에 따라 이곳 영들의 세계로부터 드디어 자기에게 맞는 곳으로, 즉 자기가 가진 그 사랑이 선하면 천국으로, 반대이면 지옥으로 보내집니다.
※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 육을 겉 사람, 영을 속 사람이라 할 수 있듯, 사후 영과 육이 분리되어 영만 남았을 때, 이 영 또한 겉과 속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영의 겉이 실제로는 우리 몸과 결합, 이렇게 우리의 영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 있을 수 있게, 혹은 육이라는 그릇에 담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하시려고 주님은 오랫동안 저로 하여금 그 세계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곳의 모든 것을 보게 하시며, 그렇게 그 모든 경험을 허락하셨는데요, 이런 지가 벌써 이십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연옥은 픽션, 허구이며, 악마스럽다 힘주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저 돈을 위해서이고, 사람들, 심지어 죽은 자의 영혼들까지 자기들의 지배하에 두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AR.784:2)
아래는 연옥에 대한 천주교 신부의 글인데요, 스베덴보리가 전하는 실상과 많이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아래는 위 784번 글에 대한 영역을 실은 제 블로그 글입니다. 영어 표현이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783
Verse 15. The merchants of these things, who became rich by her, shall stand afar off for fear of her torment, weeping and mourning signifies the state before damnation, and then their fear and lamentation, who have made gain by various dispensations and promises of heavenly joys. By “the merchants of these things,” namely, of the fruits of the soul’s desire, and of fat and splendid things, treated of in the verse next preceding, those are signified who by various dispensations, and promises of heavenly joys, became rich, that is, who made gain. By these “merchants” all are meant, as well the higher and the lower in their ecclesiastical order, who made gain by such things. That the higher are included, is manifest from verse 23 of this chapter, where it is said, “For thy merchants were the great ones of the earth”; that the lower ones also are included, from verse 11; see above (n. 771). By “standing afar off for fear of her torment, weeping and mourning” is signified while they are still in a state remote from damnation, and still at that time in fear of punishments, and in lamentation as above (n. 769), where similar things are said.
784
As regards the dispensations by which they make gain, they are various. There are dispensations in regard to contracting matrimony within the degrees prohibited by the laws; relating to divorces; relating to evils, even enormous ones, and then liberation from temporal punishments; then also by indulgences; dispensations relating to administrations without any power or authority of the secular rulers; among which also are confirmations of dukedoms and principalities; likewise by promises of heavenly joys made to those who enrich monasteries, and augment their treasuries, calling their gifts good works, in themselves holy, as also merits; to which they are led by the belief impressed concerning the power and help of their saints, and in the miracles performed by them. Especially do they plot against the rich when they are sick, and likewise infuse at that time a terror of hell, and so extort from them; promising the sacrifice of the mass for their souls according to the value of their legacy, and a gradual delivery thereby from the place of torment, which they call purgatory, and thus admission into heaven.
[2] As regards purgatory, I can aver that it is purely a Babylonish fiction for the sake of gains, and that it neither does nor can exist. Every man after death first comes into the world of spirits, which is midway between heaven and hell, and is there prepared either for heaven or for hell, everyone according to his life in the world; and in that world no one has torment; but the evil first come into torment, when after preparation they come into hell.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in that world, and joys in them similar to those on earth, for the reason that they who are there are conjoined with men on the earth, who are also in the midst between heaven and hell. Their externals are there successively put off, and thus their internals are opened; and this until the ruling love, which is indeed the life’s love, and the inmost, and the one that governs their externals, is revealed; and when this is revealed, the man’s real quality appears; and according to the quality of that love, he is sent forth from the world of spirits to his place, if good into heaven, and if evil, into hell. That it is so has been given to me to know of a certainty, because it has been granted to me by the Lord to be together with those who are in that world, and to see all things, and thus to relate it from experience itself; and this now for twenty years. Therefore I can assert that purgatory is a fiction, which may be called diabolical; because it is for the sake of gains, and for the sake of power over souls, even of the deceased, after de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