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7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8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눅22:7-13)
※ 다음은 유월절 관련 본문인 출애굽기 12장 본문 전반부입니다.
1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11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15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16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너희는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출 것이니라 17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18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19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20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출12:1-20)
오늘 말씀은 무교절이라고도 하는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시켜 유월절 만찬을 나눌 장소를 알아보신다는 이야기입니다.
※ 정확히는 유월절 다음날, 그러니까 유월절 해 질 무렵인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한 주간이 무교절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루는 해 질 무렵을 기준으로 24시간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을 무교절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애굽을 탈출하기 전날 밤, 여호와께서는 어린 양의 고기와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교병(無酵餠), 즉 누룩을 넣지 않은 빵(unleavened bread, 이스트, 곧 누룩을 넣지 않은 빵, 마짜)은 영적으로는 거짓 없는 순수한 선을 뜻합니다. 누룩은 거짓을 뜻하고, 빵은 선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은 이웃에게 선을 행할 때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그러할 때 비로소 거듭남이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7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7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영적 의미로 유월절은 신앙인에게는 거듭남의 단초(端初, 일이나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는 첫머리)가 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기를 전후로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이전의 삶이 애굽이라 하는 자아와 세상에 속한 것들에 매여있는 삶이라면, 유월절 이후의 삶은 진리가 이끄는 대로 자유를 찾아가는 삶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벗어나려면 각자에게 다가오는 영적인 유월절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월절은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만 옵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을 위해 준비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을 믿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주님이 주시는, 어린 양과 무교병으로 상징되는 순진함의 선과 거짓 없는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주님을 따라 애굽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8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유월절을 준비하라는 건 단순히 만찬 장소를 준비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제까지의 타성(惰性, 오래되어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애굽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나서는 데 무슨 준비가 필요한가 할 수 있지만, 신앙인들 가운데는 말로만 주님을 따를 뿐, 주님이 아무리 끌어당겨도 전혀 꿈쩍도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안락한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나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이끄실 때, 의심하지 않고 바로 늘 주님을 따라나설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런 마음이 되는 것, 그것이 유월절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베드로와 요한에게 준비를 맡기셨을까요? 그 두 사람이 신앙인의 영적 특성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서 베드로는 진리를 뜻하고, 요한은 사랑과 인애, 그러니까 체어리티(charity)를 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베드로로 표상되는 신앙인은 진리로 사는 사람이고, 요한으로 표상되는 신앙인은 사랑과 체어리티로 사는 사람입니다. 진리, 또는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과 체어리티, 그러니까 관용, 너그러움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진리보다는 사랑과 체어리티가 더 내적이지요. 그러나 주님의 교회가 서려면 그 두 성향 사람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둘과 함께 유월절을 준비하십니다.
9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유월절 준비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그것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먼저 성내(城內)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말씀에서 성(城)은 교회의 교리를 뜻합니다.
※ 성과 촌락의 구분은, 울타리, 그러니까 성벽의 유무입니다.
그러므로 성내로 들어가라는 건, 유월절을 위한 첫 번째 준비는 교리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배운다는 건 교리 관련 지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익히는 건 그것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배운 교리가 몸에 붙기 때문에, 곧 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할 때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은 누굴까요? 각자의 내면에서 말씀의 진리를 가지고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왜냐하면 물을 담은 물동이는 진리의 그릇으로서 말씀의 문자적인 지식을 의미하고, 속에 담긴 물은 그 문자적 지식 안에 있는 내적 진리를 의미하며, 그것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곧 주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집은 신앙인의 의지를 뜻합니다. 어떤 신앙인의 의지 안에 주님이 계시고, 그 주님이 물동이, 곧 그 안에 속뜻이 담긴 기록된 말씀을 붙들고 계신 모습이 상상이 되시지요?
주님께서 그 집주인에게 유월절을 먹을 방이 어디냐고 물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집이 신앙인의 의지라면, 당연히 집주인은 신앙인인 우리 자신이지요. 그 사람이 보인 행동은 무엇이었나요? 12절입니다.
12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한글 성경에는 다락방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영어 성경에는 어퍼 룸(upper room), 즉 윗방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윗방은 어떤 곳일까요? 집을 의지라 했을 때, 의지 안에 윗방, 아랫방이 있네요? 사람의 의지는 이른바 합리적 인간(rational man)이라고 하는, 영적 마음에 속한 내적 의지가 있고, 또 하나 겉 사람이라고 하는 자연적 인간(natural man)에 속한 외적 의지가 있는데, 이때 이 윗방은 바로 이 내적 의지를 뜻합니다. 겉 사람에 속한 외적 의지 안에는 눈과 귀 같은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불결한 욕망들이 가득하며, 그래서 만약 주님께서 진리를 가지고 그곳으로 가셔서 가르치신다면 그들이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이지 않겠죠. 그래서 주님은 윗방, 즉 영적인 걸 추구하는 내적 의지 안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당신의 생명인 순진함의 선과 거짓 없는 진리를 심어주십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드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이 심어진 후에 우리의 의지가 변화되는 모습을 ‘천국의 비밀’ 4884번 글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그의 생명이다. 사람이 진리를 즐거워할 때, 진리는 그의 생명의 문턱에 있으며, 진리를 자발적으로 행할 때, 온전히 그 사람 안에 있다. 그리고 사람이 진리를 자주 행동으로 옮길 때, 습관과 애정으로부터 진리가 반복해 소환되고, 그리하여 자유로부터 반복해 소환된다. (이순철 역) man’s will is his life. But when man wills the truth, it is then on the threshold of his life; and when from willing he does it, then the truth is in the whole man; and when he does it frequently, it not only recurs from habit, but also from affection, thus from freedom. (창38:19,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주석 중)
사람의 의지가 곧 그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의지가 가만히 있으면, 사람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의지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 비로소 사람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지는 그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세상 것들을 좋아하던 의지가 이제는 진리를 즐거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진리는 의지의 문턱에 있습니다. 그리고 의지가 자발적으로 진리를 행동으로 옮길 때, 문턱에 있던 진리가 그의 의지 안에 자리를 잡습니다. 진리가 온전히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다음에는 진리를 자주 행동으로 옮깁니다. 한두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자주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때 진리가 사람의 이성과 의지, 그리고 삶 가운데로 반복해서 소환되는데, 습관과 애정으로부터 소환된다고 합니다. 습관으로부터 소환된다는 건 진리가 몸에 배어가는 것을 말하고, 애정으로부터 소환된다는 건 진리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자유로부터 소환되는 건 어떤 억압도 없는 자발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진리는 그렇게 점진적으로 신앙인의 생명인 의지 안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것이 주님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나눠 먹은 다음 우리 내면에서 생기는 변화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 드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려고 하실까요? 그 이유를 ‘천국의 비밀’ 5114번 글 4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신성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깊은 내면은 신성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신성을 인정하고 사랑하여 자기 소유로 만들려는 성질이 있다. 그런 상호성으로 인해 사람은 신성 안에 심어진다. (이순철 역) as with man there is a connection with the Divine, and his inmost is of such a nature that he can receive the Divine, and not only receive it, but also make it his own by acknowledgment and affection, thus by reciprocation, he therefore can never die, because he has thus been implanted in the Divine, (창40: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주석 중)
한 마디로, 주님이 사람 안에 계시고, 사람이 주님 안에 있는 것은 주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성(相互性, reciprocality)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상호성은 자연계의 모든 것 가운데 사람에게만 있는 특성으로,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리는 특성입니다. 어떻게 돌려드릴까요? 주님의 생명을 받아 그 힘으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듯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신 것을 다시 주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상호성 때문에 주님은 유월절 음식을 제자들과 함께 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개중(個中)에는 상호성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을 받으려 하지 않거나, 받은 다음에는 돌려드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과는 유월절 음식을 함께 드실 수 없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주님께서는 다음 몇 가지를 권하십니다. 첫째는 새 교회의 교리인 말씀의 속뜻을 배우고 익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성내로 들어가라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말씀의 진리를 가지고 우리의 내적 의지 안으로 들어오실 때, 주님 앞에 서지 않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행여 주님을 가로막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물동이를 든 사람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주님과 함께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생명인 선과 진리를 우리의 생명인 의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주님을 따라 애굽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상호성으로 이웃과도 잘 지내야 합니다.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기만 하고 받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는 이웃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소중한 것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해야 합니다. 주고받을 때는 거짓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어린 양의 고기와 무교병을 나누어 먹는 것처럼 신앙인들끼리 순진하고 담백한 마음을 서로 나눠야 합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는 주님의 은혜가 성도들과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출12:15)
아멘
2022-10-16(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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