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여러 재미난 특징 중 하나는 천국은 자기의 내면이 열린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데라는 겁니다

 

이걸 좀 응용하면, 그래서 사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데가 천국이라는 말이지요 ^^

 

자기 역량만큼만 담을 수 있으며 누릴 수 있는 덴데, 우리 주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이셔서 항상 부어주시거든요! 할렐루야!

 

자기가 아주 조그만 종지이든, 또는 태평양을 다 담을 정도이든 주님은 얼마든지 부어 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뭐뭐만큼이라는 원리(?)를 삶에 조금 응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에서 좀 생각을 해 보면... 늘 아래와 같은 시선을 갖는 겁니다

 

지금 이분이 듣고자 하시는 대답, 또는 이 애가 듣고싶어 하는 말이 뭘까?

 

지금 이분이 원하시는 게, 이 애가 바라는 게 뭘까?

 

무슨 아첨을 하라는 게 아니지요. 주님의 자녀들은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면 안 되지요... ^^

 

지혜롭게, 그리고 살피는 시선을 가지며,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섬김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오지랖의 경계를 잘 판단하시고... ^^

 

지금 저분의 역량이 어느 정도일까, 이 아이의 눈높이가 어느 정도일까를 살펴 대하라는 것입니다

 

감당하실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무엇을 하면, 아무 유익도 없거니와 오히려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신 걸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알리고 전할 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자, 이걸 또 역으로 적용하면,

 

지금 나는 저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싶을 때, 화를 내거나 싸늘해지는 대신,

 

왜 이런 얘길 주님은 나로 하여금 듣게 하실까? 주님은 왜 나한테 저런 사람을 허락하셨을까? 등등...

 

또는

 

주님, 저는 이 모든 일이 주님의 허락하심, 주님의 섭리로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주님, 지금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또는 왜 저런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지... 제게 빛을 비춰 깨닫게 해주셔요

 

이렇게 매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여쭙는 것이 좋습니다 ^^

 

만물이 다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이웃 사랑은, 이웃 안에 담겨 있는 주님 닮은 형상, 곧 주님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은 곧 주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웃 안에 있는 주님의 신성, 곧 이웃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신 주님, 이웃으로, 부모자식으로, 선후배, 동료, 상사와 부하 등으로 내게 나타나신 주님께 피조물로서 예의바르게 행하는 것, 더욱 만물에 깃든 주님의 신성을 마치 주께 하듯 ‘대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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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3

 

1549. 2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Verse 2. And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in silver, and in gold.

 

아브람에게 가축이 풍부하였더라’, 그때 주님에게 풍부하셨던 선(goods)을, ‘’, 진리(truths)를, ‘’, 진리로 말미암는 선을 각각 의미합니다.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signifies the goods with which the Lord was then enriched; “in silver” signifies the truths; “and in gold” signifies the goods from truths.

 

 

1550. 아브람에게 가축이 풍부하였더라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이것의 의미가 선인 것은 ‘가축’(cattle)과 ‘양 떼’(flock)의 의미가 선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is signifies good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cattle,” and of “flock,” as being good (concerning which above, n. 343, 415).

 

 

1551. 은이 In silver.

 

이것의 의미가 진리인 것은 ‘’의 의미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is signifies truth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silver” as being truth.

 

태고인(太古人)들은 사람에게 있는 선과 진리를 금속에 비유했습니다. 가장 내적, 천적 선은, 이것은 주님 사랑에 속한 선인데, 금(金, gold)에, 이 선으로 말미암는 진리는 은(銀, silver)에, 가장 낮은, 자연적 선은 동(銅, copper)에, 더 낮은 진리는 철(鐵, iron)에, 그들은 그저 단순히 비유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the goods and truths in man to metals; the inmost or the celestial goods, which are of love to the Lord, to gold; the truths which are from these, to silver; but the lower or natural goods, to copper; and the lower truths, to iron; nor did they simply compare them, but they likewise called them so.

 

그래서 기간들, 시대들 역시 같은 금속으로 비유되었는데, 각각 황금, 은, 동, 그리고 철 시대라 했습니다. 이 순서는 시대들이 이 순서로 다른 것의 뒤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Hence periods of time were also likened to the same metals, and were called the golden, the silver, the copper, and the iron ages; for the ages followed one another in this order.

 

황금 시대는 태고 교회 때를 말하는데, 태고 교회는 천적 인간이었습니다. 은 시대는 고대 교회 때를 말하며, 고대 교회는 영적 인간이었습니다. 동 시대는 그 다음 교회 때였으며, 그 다음이 철 시대였습니다. The golden age was the time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a celestial man; the silver age was the time of the ancient church, which was a spiritual man; the copper age was the time of the succeeding church; and to this succeeded the iron age.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이 본 우상도 유사한 걸 상징하고 있습니다. Similar things are also signified by the statue seen by Nebuchadnezzar in a dream, whose “head was of good gold, the breast and arms of silver, the belly and thighs of brass, the legs of iron” (Dan. 2:32–33).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단2:32-33)

 

이런 것이 시리즈로 전개되는 거나, 교회의 기간들, 시대들이 이 순서로 서로 이어지는 것이 같은 선지자, 같은 장을 보면 거기에 나옵니다. That this was to be the series, or that the periods of the church succeeded one another in this order, is evident from the same prophet, and in the same chapter.

 

[2] 말씀에서 ‘’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 속뜻은 진리를, 그 반대는 거짓을 각각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구절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That in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silver,” wherever named, signifies truth, and in the opposite sense falsity, is evident from the following passages.

 

이사야에서 In Isaiah:

 

내가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으로 삼으며 공의를 세워 감독으로 삼으리니 (사60:17) For brass I will bring gold, and for iron I will bring silver, and for wood brass, and for stones iron; I will also make thine officers peace, and thine exactors righteousness; (Isa. 60:17)

 

이 본문에서 각 금속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where it is evident what each metal means.

 

거기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곧, 주님의 오심과 주님의 천적 나라, 그리고 교회입니다. ‘금을 가지고 놋을 대신하며’, 자연적 선 대신 천적 선을, ‘은을 가지고 철을 대신하며’, 자연적 진리 대신 영적 진리를,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육(肉)적 선(corporeal good) 대신 자연적 선을, ‘철로 돌을’, 감각적 진리(sensuous truth) 대신 자연적 진리를 각각 의미합니다. The Lord’s coming, and his celestial kingdom and church, are there treated of; “gold for brass” is celestial good instead of natural good; “silver for iron” is spiritual truth instead of natural truth; “brass for wood” is natural good instead of corporeal good; “iron for stones” is natural truth instead of sensuous truth.

 

같은 데서 In the same: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5:1) Ho, everyone that thirsteth, go ye to the waters; and he that hath no silver; go ye, buy and eat; (Isa. 55:1)

 

돈 없는 자’, 교회 내 많은 사람들처럼, 그리고 교회 밖 나라들처럼 진리에 대해선 무지하지만 체어리티의 선(the good of charity, 이웃 사랑의 선, 즉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he that hath no silver” is he who is in ignorance of truth, and yet in the good of charity, like many within the church, and the nations outside the church.

 

[3] 이번에도 같은 데서 In the same: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먼 곳에서 네 자손과 그들의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라 (사60:9) The isles shall wait for me, and the ships of Tarshish in the beginning, to bring thy sons from far, their silver and their gold with them, unto the name of Jehovah thy God, and to the holy one of Israel. (Isa. 60:9)

 

여기서는 새 교회, 특별히는 이방인의 교회를, 보편적으로는 주님의 나라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스의 배들’, 지식을, ‘’, 진리를, ‘’, 선을 각각 가리킵니다. 이들은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Here a new church, or that of the gentiles, is treated of specifically, and the Lord’s kingdom universally; “the ships from Tarshish” denote knowledges; “silver,” truths; and “gold,” goods; for these are the things which they shall “bring to the name of Jehovah.

 

에스겔에서 In Ezekiel:

 

네가 또 내가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겔16:17) Thou didst take the vessels of thine adorning of my gold and of my silver, which I had given thee, and madest for thee images of a male. (Ezek. 16:17)

 

여기 ‘’은 천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은 영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각각 가리킵니다. Here “gold” denotes the knowledges of celestial things; “silver,” those of spiritual things.

 

같은 데서 In the same: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겔16:13) Thou wast adorned with gold and silver, and thy raiment was fine linen and silk, and broidered work. (Ezek. 16:13)

 

이는 예루살렘에 관한 내용인데, 예루살렘은 주님의 교회를 상징하며, 그 꾸밈, 단장이 여기 묘사되고 있습니다. This is said of Jerusalem, by which the Lord’s church is signified, and the adornment of which is thus described.

 

다시 Again:

 

3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3-4) Behold, thou art wise, there is no secret that they have hidden from thee;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to thy treasures. (Ezek. 28:3–4)

 

이 본문은 두로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 ‘’은 지혜의 풍부함을, ‘’은 많은 총명을 가리킴이 명백합니다. This is said of Tyre, and it is plain that here “gold” is the wealth of wisdom, and “silver” the wealth of intelligence.

 

[4] 요엘에서 In Joel: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욜3:5) Ye have taken my silver and my gold, and have carried into your temples my goodly desirable things. (Joel 3:5)

 

이 본문은 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에 관한 겁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신전으로 옮긴 ‘은과 금’은 지식을 의미합니다. This is said concerning Tyre, Zidon, and Philistia; by which are signified knowledges, which are “the gold and the silver” that they have carried into their temples.

 

학개에서 In Haggai: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7-9) The choice of all nations sha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the silver is mine, and the gold is mine; the glory of this latter house shall be greater than that of the former; (Hag. 2:7–9)

 

이 본문은 주님의 교회에 관한 건데, 특별히 ‘’과 ‘’에 대해 서술된 부분이 그렇습니다. where the Lord’s church is treated of, concerning which “gold” and “silver” are predicated.

 

말라기에서 In Malachi: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3:3) He shall sit as a smelter and purifier of silver, and shall purify the sons of Levi; (Mal. 3:3)

 

이 본문은 주님의 오심에 관한 본문입니다. where the Lord’s coming is treated of.

 

다윗의 글에서 In David: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12:6) The discourses of Jehovah are pure discourses, silver smelted in a crucible of earth, smelted seven times; (Ps. 12:6)

 

일곱 번 단련한 은’, 신적 진리를 가리킵니다. the “silver purified seven times” denotes Divine truth.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갈 때, 그들에게 내리신 명령에 관하여 In respect to the command given to the sons of Israel, when they were to go out of Egypt: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3:22); 2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출11:2-3);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출12:35-36) Every woman shall borrow of her neighbor, and of her that is a guest in her house, vessels of silver and vessels of gold, and garments; and ye shall put them upon your sons, and upon your daughters, and shall spoil the Egyptians; (Exod. 3:22; 11:2–3; 12:35–36)

 

이 말씀에 몇 가지 아케이나가 들어 있지 않았으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훔치고, 취했다는 말을 듣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는데, 그래서 보면, 아케이나라 할 수 있는 것이, ‘’, ‘’ 및 ‘의복’, 그리고 ‘애굽’의 의미이지 싶고, 또 알 수 있는 게, 여기 묘사된 것과 너무나 똑같은 정황이, 아브람이 애굽에서 얻은 은금이 풍부하였다는 오늘 본문에서도 반복되는 걸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everyone can see that the sons of Israel would by no means have been told thus to steal, and to spoil the Egyptians, unless some arcana were thus to be represented; but what the arcana are may be seen from the signification of “silver,” of “gold,” and of “garments,” and of “Egypt”; and it may also be seen that much the same was there represented as is here represented by Abram, who was rich in silver and gold from Egypt.

 

[5]’은 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래서 정반대로는 거짓을 의미합니다. 거짓의 사람들은 거짓을 진리라 여기는데, 예언서들을 보면 나옵니다. As “silver” signifies truth, so in the opposite sense it signifies falsity; for they who are in falsity think that falsity is truth; as is also evident in the prophets.

 

신명기에 In Moses:

 

25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26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것과 같이 진멸 당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멀리하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 (신7:25-26) Thou shalt not covet the silver and the gold of the nations, nor take it unto thee, lest thou be snared therein; for it is an abomination to Jehovah thy God; detesting thou shalt detest it; (Deut. 7:25–26)

 

그들의 금’은 악을, 그들의 ‘’은 거짓을 각각 가리킵니다. the gold of the nations” denotes evils, and their “silver” falsities.

 

다시 Again: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출20:23) Ye shall not make with me gods of silver, and gods of gold shall ye not make unto you; (Exod. 20:23)

 

속뜻으로 이 본문은 거짓과 광적 갈망(狂的, yearnings) 말고 다른 걸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은 신상’, 거짓을, ‘금 신상’, 광적 갈망을 각각 의미합니다. by which in the internal sense nothing else is signified than falsities and yearnings; “gods of silver” are falsities; and “gods of gold” are yearnings.

 

이사야에서 In Isaiah: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사31:7) In that day shall they cast away every man his idols of silver and his idols of gold, which your own hands have made unto you for a sin; (Isa. 31:7)

 

은 우상, 금 우상’, 앞에 나오는 것과 유사한 것을, ‘자기 손으로 그들을 만들었다’, 그런 것이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각각 의미합니다. idols of silver and idols of gold” denote similar things as before; “your own hands have made them” means that they are from man’s own.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8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9다시스에서 가져온 은박과 우바스에서 가져온 금으로 꾸미되 기술공과 은장색의 손으로 만들었고 청색 자색 옷을 입었나니 이는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거니와 (렘10:8-9) They are become brutish and foolish; a teaching of vanities is that stock; silver beaten out is brought from Tarshish, and gold from Uphaz, the work of the artificer and of the hands of the founder; blue and crimson are their clothing, it is all the work of the wise; (Jer. 10:8–9)

 

이 역시 같은 걸 가리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denoting the like things, as is very evident.

 

 

1552. And in gold.

 

이것의 의미가 진리로 말미암는 선이라는 것은 ‘’의 의미가 천적 선, 혹은 지혜의 선, 사랑의 선임을 생각하면 분명합니다. 방금 막 본 것과, 또 전에 본 것을 보면 말이지요. (AC.113) That this signifies goods from truths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gold” as being celestial good, or the good of wisdom and of love, as is evident from the things just shown, and also from those shown before (n. 113).

 

여기, 선이 진리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앞 장에서 말씀드린 것, 곧 주님이 지성적 진리들과 천적인 것들을 결합하셨다는 내용에 이어집니다. That the goods here are from truths follows from what was said in the foregoing chapter, that the Lord conjoined intellectual truths with celestial things.

 

 

※ 이상으로, 오늘 본문 13장 2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속뜻)

어린 시절 주님은 선과 진리, 그리고 그 진리로 말미암는 선이 풍부하셨다

 

※ 비록 어린 시절이었어도 주님은 영적, 천적 목표가 뚜렷, 한눈팔지 않으신 결과, 선과 진리, 그리고 그 진리에 따른 선이 풍부하신 것을 보며, 우리도 주님 주신 어떤 영적 목표를 붙들고 망설임 없이, 거침없이 직진, 시간과 세월을 아껴 무슨 쓰임새의 삶을 살다 가야 하겠습니다.

 

2021-11-02(D3)-매일예배(2225, AC.1549-1552, 창13,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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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_9mOJR8U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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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창세기, 출애굽기에서 출발,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한 천사적 이해, 천국적 지각 가운데 우리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창세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하는데, 그런데 그에 앞서 선행 학습(?)으로 다루어야 할 중요 주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의 진리(Truth Divine)의 여러 단계(degree, 등급, 레벨, 차원... 등 번역이 좀...)와 그 가운데서 지상의 언어로 기록된 말씀(the Word in the letter)의 위치

 

말씀의 겉뜻과 속뜻

 

영계의 구조

 

삼위일체

 

등등... 이 외에도 무척 많으나 다른 다양한 주제는 별도 이야기로 다른 요일에 다루기로 하고요, 오늘은 위 첫 번째만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은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출16:10) 말씀에 대한 주석 ‘아케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Truth Divine)는 하나가 아닌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나오는데, 이것은 천사들의 이해(angelic understanding)조차 초월합니다. 세 번째인 신적 진리(truth Divine) 3등급은 가장 내적 천국, 곧 삼층천 진리이며, 그러나 사람은 그 추호(秋毫)도 도저히 이해불가한 진리입니다. 네 번째인 4등급은 중간 천국, 곧 이층천 진리이며, 이 역시 사람에겐 이해불가입니다. 주님의 진리 다섯 번째, 5등급 진리는 가장 바깥 천국, 곧 일층천 진리이며, 이것은 몇몇 빛을 받은 사람들이 살짝 지각할 수는 있는 그런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여전히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불가인데, 혹시라도 어떤 영감으로 떠오르게 되면, ‘아, 그런 거구나!’ 지각하여 믿게 되는 그런 천재성이 나오게 됩니다. 끝으로, 여섯 번째인 6등급 신적 진리는, 이것이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적합한 진리이며, 그래서 말씀의 겉 글자로 표현이 된 것입니다... (AC.8443)

 

창세기 이야기 시작에 앞서 이런 아케이나(arcana, 秘義)를 먼저 살피는 이유는,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주님의 진리의 그 광대함과 깊이, 그리고 인간의 미천함의 현주소... 등을 통해 마음의 준비를 좀 먼저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 같아선 정말 처음부터 우리에게 천사들의 수준으로 진리를 부어주고 싶으셨겠지만 우리의 내면이 닫히고, 우리의 그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너무나도 정말 아니어서 할 수 없이 이 너무나도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 지상의 글자를 빌려 말씀을 기록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인간은 계속 주님과 연결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네, 뭐, 하여튼 앞으로 이렇게 매주 월요 오후는 창세기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아, 그리고 부언하여 말씀드리면, 여기 제가 말씀드리는 거의 모든 문장은 사실은 ‘...라고 합니다. 하더군요. 라고 들었습니다. 읽었습니다...’ 등으로 끝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배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계시를 받거나 경험한 게 아니기 때문이며, 아주 살짝, 아주 조금, 혹시 도움되실까 저 나름의 해석을 붙여 풀이를 보태는 경우들이 있기는 할 겁니다만 저 역시 그저 옮기는 수준입니다. 이 옮기는 것 조차도 아주 떨림의 연속이지만요... ^^

 

주께서 내내 천국의 빛 비춰 주셔서 이 이야기들을 접할 때, 심령이 환하여지며, 닫혔던 내면이 열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주 예수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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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D1)-제9권44호통427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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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사람들, 곧 태고 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 사람들에게 처음 나타나신 주님은 사람(The Human)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태고인들은 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고, 감히 자신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참 사람이십니다. 작품은 그 작가를 표현하듯, 그래서 주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 안에는 이 사람 형태가 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세계인 천국 역시 그래서 당연히 사람 형태이며, 각 천국을 구성하는 수많은 공동체들 역시 사람 형태이고, 각 공동체의 구성원인 천사들 역시 사람 형태입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천국과 상응하며, 그래서 당연히 지상의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천국과 상응합니다

사람의 심장은 천적 천국과, 사람의 폐는 영적 천국과... 하는 식으로, 사람의 모든 장기와 신체가 천국과 서로 상응합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이해는 천국에 대한 모든 아케이나(arcana, 秘義)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천국은 잠시 후면 우리 모두가 가서 영원히 살 곳입니다. 옆 나라 살러 갈 때도 사전 준비를 해야 하듯, 천국 역시 그렇습니다

앞으로 금요일 오후마다 천국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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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3

 

1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And Abram went up out of Egypt, he and his wife, and all that he had, and Lot with him, toward the south. 2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And Abram was very rich in cattle, in silver, and in gold. 3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And he went according to his journeys from the south and even to Bethel, unto the place where his tent was at the first, between Bethel and Ai. 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Unto the place of the altar which he had made there in the beginning; and there Abram called on the name of Jehovah. 5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And Lot also, who went with Abram, had flock and herd, and tents. 6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And the land was not able to bear them that they might dwell together, for their substance was great, so that they could not dwell together.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And there was strife between the herdmen of Abram’s cattle and the herdmen of Lot’s cattle; and the Canaanite and the Perizzite were then dwelling in the land.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And Abram said unto Lot, Let there be no contention, I pray, between me and thee, and between my herdmen and thy herdmen, for we are men brethren.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Is not the whole land before thee? Separate, I pray, from me; if to the left hand, then I will go to the right; or if to the right hand, then I will go to the left.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And Lot lifted up his eyes, and saw all the plain of Jordan, that it was all well watered, before Jehovah destroyed Sodom and Gomorrah, like the garden of Jehovah, like the land of Egypt in coming to Zoar.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And Lot chose him all the plain of Jordan; and Lot journeyed from the east; and they were separated, a man from his brother.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Abram dwelt in the land of Canaan, and Lot dwelt in the cities of the plain, and pitched his tent as far as Sodom. 13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And the men of Sodom were wicked and sinners against Jehovah exceedingly.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And Jehovah said unto Abram, after that Lot was separated from him, Lift up now thine eyes, and look from the place where thou art, northward, and southward, and eastward, and westward.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For all the land which thou seest, to thee will I give it, and to thy seed, forever.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And I will make thy seed as the dust of the earth; so that if anyone can number the dust of the earth, then shall thy seed also be numbered.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Arise, walk through the land, in the length of it and in the breadth of it; for unto thee will I give it.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And Abram pitched his tent, and came, and dwelt in the oak groves of Mamre, which are in Hebron, and built there an altar unto Jehovah.

 

내용

The Contents

 

1535. 이 장은 주님 안에 있는 겉 사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겉 사람은 그분의 속 사람과 합쳐질 예정이었습니다. This chapter treats of the external man in the Lord which was to be conjoined with his internal man.

 

겉 사람은 인성(人性, the human essence), 속 사람은 신성(神性, the Divine essence)입니다. The external man is the human essence, the internal is the Divine essence.

 

전자가 여기서 롯(Lot)으로, 후자는 아브람(Abram)으로 각각 표상(表象)되고 있습니다. The former is here represented by Lot, but the latter by Abram.

 

 

1536. 여기서는 겉 사람의 상태, 곧 어린 시절, 처음 지식[시엔티피카 에 코그니시오네스, scientifica et cognitiones, 학문과 지식]을 흠뻑 접하신 후, (1-4절) 속 사람과 함께 하시고자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심에 관한 설명입니다. There is here described the state of the external man such as it was in childhood, when first imbued with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that it thence advanced more and more to conjunction with the internal man (verses 1 to 4).

 

 

1537. (5-7절) 그러나 그의 겉 사람 안에는 결합을 지연시키는 것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8-9절) 주님은 이런 것들에게서 분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But that there were still many things in his external man that impeded the conjunction (verses 5 to 7); from which, however, he desired to be separated (verses 8, 9).

 

 

1538. (10-13절) 겉 사람이 주님에게 나타났습니다. 속 사람과 결합했을 때는 아름답게, 결합하지 못했을 때는 그땐 또 그렇게 말이죠. That the external man appeared to the Lord such as it is in its beauty when conjoined with the internal; and also such as it is when not conjoined (verses 10 to 13).

 

 

1539. (14-17절) 겉 사람이 속 사람과 결합했을 때, 즉 주님의 인성이 주님의 신성과 결합했을 때, 모든 힘과 권세[포테스타스 potestas]가 주님에게 주어지리라는 약속 A promise that when the external man was conjoined with the internal, that is, when the Lord’s human essence was conjoined with his Divine essence, all power and authority [potestas] should be given to him (verses 14 to 17).

 

(18절) 주님의 내적 퍼셉션에 관하여 Concerning the Lord’s interior perception (verse 18).

 

속뜻

The Internal Sense

 

1540.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앞장인 12장 말씀부터는 실제 역사의 시작,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The true historicals of the Word began, as before said, with the foregoing chapter—the twelfth.

 

그 시점까지, 그러니까 에벨까지는 꾸민 역사, 스토리 텔링입니다. Up to that point, or rather to Eber, they were made-up historicals.

 

※ 지금까지 밝혀진 지질학적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 전후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시작, 곧 이 행성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아브라함 전까지 일어난 일을 모두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역사책일 필요가 있나요? 이런 몇 가지 이유로, 이 긴 역사를 짧게 스토리 텔링 식으로 요약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속뜻으로는, 여기 계속되는 아브람 관련 실제 기록은 사실은, 주님, 특히 주님의 일생 중 처음 시절을 의미하는데, 이때는 주님이 아직 겉 사람이 속 사람과 하나로 결합하시기 전, 그러니까 겉 사람이 천적(celestial), 신적(Divine)이 되는 것과 비슷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 기록입니다. In the internal sense, the historicals here continued respecting Abram are significative of the Lord, and in fact of his first life, such as it was before his external man had been conjoined with the internal so as to make one thing; that is, before his external man had been in like manner made celestial and Divine.

 

이 실제 기록들은 주님에 관한 표현입니다. 기록들 자체는 표현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미입니다. The historicals are what represent the Lord; the words themselves are significative of the things that are represented.

 

그러나 실제 기록이기 때문에, 마치 무슨 과거 일지를 읽는 것 같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마음이 속뜻을 생각할 수 없으며, 오늘날은 특히나 더 사람들 대부분이,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거기에 속뜻이, 심지어 모든 단어에도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명백히 보여드린 대로, 속뜻이 있다는 것은 사실임에도 불구,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의 존재를 인정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속뜻이 글자의 뜻으로부터 너무 물러가 거의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며, But being historical, the mind of the reader cannot but be held in them; especially at this day, when most persons, and indeed nearly all, do not believe that there is an internal sense, and still less that it exists in every word; and it may be that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internal sense has been so plainly shown thus far, they will not even now acknowledge its existence, and this for the reason that the internal sense appears to recede so far from the sense of the letter as to be scarcely recognized in it.

 

※ 이것은 마치 길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그 안의 영은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겉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리기 때문인데, 이처럼 성경 말씀도 그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고 재미있어 그만 그 겉모습에 푹 빠져들고 말지, 예를 들어, 요셉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속에 속뜻도 함께 읽기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겉 이야기는 말씀의 몸, 속뜻은 말씀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들 실제 기록들이 그들에게 말씀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은 그저 다음과 같은 사실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성경 구절이 속뜻으로부터 분리되면 거기엔 더 이상 무슨 신성이 들어 있지 않아 여느 실제 있었던 일과 다를 바 없는 단순한 일지 수준의 기록물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 말입니다. 성경 구절을 성언(聖言)으로 만드는 것은 속뜻, 내적 의미(internal sense)이기 때문입니다. And yet that these historicals cannot be the Word they might know from the mere fact that when separated from the internal sense there is no more of the Divine in them than in any other history; whereas the internal sense makes the Word to be Divine.

 

[2] 속뜻이 말씀 그 자체라는 사실은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마2:15)와 같은, 지금까지 밝혀진 많은 구절들로부터 분명합니다. 이 말고도 다른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That the internal sense is the Word itself is evident from many things that have been revealed, as “out of Egypt have I called my son” (Matt. 2:15); besides many others.

 

또 주님 자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자기에 관하여 어떻게 기록하였는지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걸 볼 때, 말씀에 기록된 내용이 주님과 주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에 관한 게 아니면 말씀이라 할 수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The Lord himself also, after his resurrection, taught the disciples what had been written concerning him in Moses and the prophets (Luke 24:27); and thus that there is nothing written in the Word that does not regard him, his kingdom, and the church.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24:27)

 

말씀에는 영적, 천적인 것들이 있습니다만 글자의 뜻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대부분 세속적, 육체적, 그리고 땅에 속한 것들이어서 절대로 주님의 말씀을 만들 수 없습니다. These are th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of the Word; but the things contained in the literal sense are for the most part worldly, corporeal, and earthly; which cannot possibly make the Word of the Lord.

 

이 시대 사람들은 그런 것 밖에 무슨 다른 걸 지각하지 못하며, 그래서 영적, 천적인 것들의 경우, 그들에게는 거의 금시초문, 듣도 보도 못 한 것들입니다. At this day men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y perceive nothing but such things; and what spiritual and heavenly things are, they scarcely know.

 

하지만 반면, 태고 교회와 고대 교회 사람들의 경우, 그들도 그 시대에 살면서 말씀을 읽었지만 오히려 겉 글자의 뜻에 대해서는 전혀, 마치 허공을, 무(無)를 쳐다보듯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반면, 속뜻에 대해서는 정반대였습니다. It was otherwise with the men of the most ancient and of the ancient church, who, had they lived at this day, and had read the Word, would not have attended at all to the sense of the letter, which they would look upon as nothing, but to the internal sense.

 

그들은 누군가는 말씀을 다른 식으로 지각한다는 사실에 까무러칠 듯 놀랍니다. They wonder greatly that anyone perceives the Word in any other way.

 

그래서 고대인들의 책들은 모두 그 속뜻 안에 겉 글자의 뜻과는 다른 의미를 갖도록 기록되었습니다. All the books of the ancients were therefore so written as to have in their interior sense a different meaning from that in the letter.

2021-10-29(D6)-매일예배(2223, AC.1535-1540, 창13), '창13, 내용, 속뜻'.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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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QYnGWzsg5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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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1장부터 11장까지는, 정확히는 에벨까지는 상응(相應, correspondence), 곧 이야기로, 12장부터는 실제 역사, 곧 실제 있었던 일로 기록된 말씀(The Word)입니다

 

어떤 글이나 말이 말씀이 되려면 그 모든 일점일획에 세 가지, 곧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에 대한 아케이나(arcana, 秘義, 속뜻, internal meaning)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모두 주님을 표상하며, 개별적으로는, 아브라함은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 인간을, 이삭은 영적 인간을, 그리고 야곱은 자연적 인간을 각각 표상합니다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란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무대를 내려가 실제 사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무대 위에서는 자기가 맡은 어떤 인물을 대신 표현하는 배우들처럼 말입니다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을, 사래는 선과 함께한 진리를, 롯은 주님의 겉 사람을... 등등 모든 인물은 어떤 형태로는 주님을 표상하기 때문에, 말씀에 등장하며, 말씀에 기록된 것입니다

 

주님과 천국, 그리고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 문장과 단어, 글자는 말씀으로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엔, 그저 이야기일 뿐이어서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접하게 된 아케이나는

 

주님의 어린 시절 상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주님 역시 여느 어린이들과 같은 배움을 시작하셨지만, 주님은 처음부터 천적인 것을 목표로 정주행, 한눈팔지 않으셨습니다

 

지식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그 순서는 주님-천적-영적-지성적-이성적-자연적입니다. 이 순서를 주님의 질서(Divine order)라 합니다

 

위 질서에 따라 모든 지식은 그 방향이 최종적으로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곧 그 지식 추구를 통해 주님께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 모든 단계의 쓰임새입니다

 

이 쓰임새를 벗어난 지식 추구는 마치 쭉정이와 같아 때가 되면 불에 던져 사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신 주님 말씀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다음 장인 창세기 13장은 롯과 아브람, 곧 주님의 겉 사람과 속 사람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빛 비춰주셔서 말씀 깊이 보관된 이 아케이나를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 내면을 열어주셔서 담을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https://youtu.be/zeIBSeGl-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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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98. 20절,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Verse 20.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and his wife, and all that he had.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음을, ‘그의 아내와’,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로부터도 떠났음을, ‘그의 모든 소유를’,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도 떠났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and his wife” signifies that they also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and all that he had”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 창12부터는 실제 역사요, 이후 끝장인 50장까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이지만 이들 모두 한 분 주님을 표상하며, 특히 아브라함은 천적 인간, 이삭은 영적 인간, 그리고 야곱은 자연적 인간을 각각 표상합니다.

 

특히, 창12 아브람은 주님의 어린 시절 상태를 표상합니다. 표상이란, 대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무대 위 배우들처럼, 실제 모습이 어떠하든 무대 위에서는 주어진 배역에 충실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499.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이 표현이,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의미인 것은, 기억-지식들이라는 ‘바로’의 의미와, 또한 지성적인 것들이라는 ‘사람들’의 의미로부터 분명합니다. (앞서 보여드린 158번 글처럼) That this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Pharaoh,” as being memory-knowledge; and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men,” as being intellectual things (as before shown, n. 158).

 

여기 ‘사람들’은 바로(Pharaoh) 혹은 기억-지식의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되는 지성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The men” here, because attributed to Pharaoh, or to memory-knowledge, signify intellectual things adapted thereto.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것은 이런 얘깁니다. As regards memory-knowledges leaving the Lord, the case is this.

 

천적인 것들과 지성적인 진리들 사이에 결합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래서 후자가 천적이 되어갈 때, 비어 있는 모든 것, 즉 결합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은 스스로 소멸됩니다. 천적인 것의 본성에는 이런 특성도 있습니다. When celestial things are being conjoined with intellectual truths, and these are becoming celestial, then all things that are empty are dissipated of themselves; this is in the nature of the celestial.

 

※ 지성적인 진리들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가 들어 있어야 천적인 것들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천적인 것은 사랑과 체어리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지성적인 진리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보니 겉만 그런 건 알아서 사라지게 됩니다.

 

 

1500. 그의 아내와 And his wife.

 

이것이, 그들이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을 떠났음에 대한, 즉 기억-지식들이 그들을 떠났음에 대한 의미라는 것은, ‘아내’의 의미가 천적인 것과 결합한 진리인 것과(위에서 언급한), 방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that is to say,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m,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ife” as being truth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spoken of above), and also from what has just been said.

 

속이 텅빈 기억-지식들이 천적인 것들을 떠나가는 것은 마치 무익한 것들이 늘 지혜를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마치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굳은살과 피부 딱지들 같습니다. Empty memory-knowledges leave celestial things, as vain things are wont to leave wisdom; they are as crusts and scales that separate themselves of their own accord.

 

 

1501. 그의 모든 소유를 And all that he had.

 

이것의 의미가 그들이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떠났다라는 것임이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follows in the series.

 

 

1502. 이 모든 것으로부터 이제 분명한 건, 아브람의 애굽 체류는 주님, 실제로는 주님 어린 시절 배움 말고 다른 걸 표현하거나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From all this it is now evident that Abram’s sojourn in Egypt represents and signifies nothing else than the Lord, and in fact his instruction in childhood.

 

이것은 또한 호세아 및 마태복음의 말씀으로도 확인이 되는데요, This is also confirmed by what is said in Hosea: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호11:1)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2:15) Out of Egypt have I called my son; (Hos. 11:1; Matt. 2:15)

 

또 출애굽기 말씀에서도 and again from what is said in Moses:

 

40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41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12:40-41) The dwelling of the sons of Israel who dwelt in Egypt was thirty years and four hundred years; and it came to pass at the end of the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it came to pass on the selfsame day, that all the armies of Jehovah went out from the land of Egypt; (Exod. 12:40–41)

 

위 사백삼십 년이라는 햇수는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부터가 아닌, 아브람의 애굽 체류 때부터 센 기간입니다. which years were not reckoned from Jacob’s going down into Egypt, but from the sojourning of Abram in Egypt, counting from which the years were four hundred and thirty.

 

그래서 ‘애굽에서 불러낸 아들’(호11:1)은 그 속뜻으로는 주님을 의미합니다. Thus by the “son out of Egypt” (in Hosea 11:1) in the internal sense is signified the Lord.

 

이것은 말씀에서는 ‘애굽’의 의미가 기억-지식이라는 사실(AC.1164-1165, 1462에서 보여드린 대로)로 더욱 확실해집니다. This is further confirmed by the fact that in the Word “Egypt” signifies memory-knowledge (as shown, n. 1164–1165, 1462).

 

[2] 이런 아케이나가 들어 있음은, 아브람의 경우, 이번엔 블레셋 체류 때 또 아내를 누이라 한 사례(창20:1-18)와, 이삭의 경우도 그가 블레셋에 체류할 동안 그 역시 아내를 누이라 한 사례(창26:6-13)들로부터도 분명합니다. And that these arcana are contained is also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same is said of Abram during his sojourn in Philistia, namely, that he called his wife his sister (Gen. 20:1–18); and similar things are said of Isaac when he also was sojourning in Philistia, in that he too called his wife his sister (Gen. 26:6–13).

 

1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아비멜렉이 그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9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12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 13하나님이 나를 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 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14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17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창20:1-18)

 

6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창26:6-13)

 

이런 일들은 그 안에 아케이나가 들어 있지 않았으면 말씀과 관련되는 대신 거의 유사 상황들로 정리되었을 겁니다. These things would not have been related in the Word, and with almost the same circumstances, unless these arcana had been concealed within them.

 

게다가 이건 주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그 안에 주님에 관한 어떤 내적 의미, 속뜻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어떤 생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Moreover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which can in no wise have any life, unless there is an internal sense that has regard to him.

 

[3] 이런 일들 안에 보관되어 있는 아케이나는, 블레셋 체류 시절, 아브람과 이삭에 관한 내용에도 있는 것처럼, 주님의 인성이 신성과 어떻게 결합하였는지, 또는 같은 말이지만, 주님이 어떻게 인성에 대하여까지도 여호와가 되셨는지, 그리고 이런 일이 주님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고,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등의 내용입니다. The arcana which lie stored up in these things, as also in those said concerning Abram and Isaac in Philistia, are—how the Lord’s human essence was conjoined with his Divine essence, or what is the same, how the Lord became Jehovah as to his human essence also; and that his inauguration went on from childhood, which inauguration is here treated of.

 

여기에 더해 더 엄청난 것들, 곧 사람의 믿음조차 초월하는 심오한 아케이나가 들어 있는데, 그 내용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서 아예 아무 내용도 없다 할 정도입니다. Moreover these things also involve more arcana than man can ever believe; but those which can be told are so few as to be almost nothing.

 

주님에 관한 가장 심오한 아케이나 외에도 거기엔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으로 하여금 거듭나게 하여 천적 인간이 될 수 있게 하는 아케이나도, 또한 마찬가지로 사람을 가르치고 거듭나게 하여 이번에는 영적 인간이 될 수 있게 하는 아케이나도, 그리고 보통은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를 가르치는 것도 포함됩니다. Besides the most profound arcana concerning the Lord, they also involve arcana concerning the instruction and regeneration of man, that he may become celestial; as also concerning his instruction and regeneration, that he may become spiritual; and not only concerning the instruction of the individual man, but also concerning that of the church in general.

 

그리고 더 나아가 거기에는 천국에 있는 어린이들에 대한 커리큘럼 아케이나 등 한 마디로, 주님의 이미지와 형상을 닮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 관한 커리큘럼 아케이나가 포함됩니다. And, further, they involve arcana concerning the instruction of little children in heaven; in a word, concerning the instruction of all who become images and likenesses of the Lord.

 

이런 것들은 겉뜻, 글자 상으로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역사 서술이 이런 아케이나를 베일로 가려 흐릿하게, 모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케이나는 오직 속뜻, 내적 의미로만 나타납니다. These things do not at all appear in the sense of the letter, for the reason that the historical narrative veils them over and obscures them; but they appear in the internal sense.

 

 

※ 이상으로, 오늘 본문 20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속뜻)

주님이 질서를 따라 어린 시절에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시려 하자 그동안 함께 했던 세상 지식들이 주님도, 주님과 함께 해야 하는 진리도, 그리고 천국과 관련된 모든 것도 다 떠났다

 

※ 즉, 얼핏 보기에는 유익할 것 같았던 세상 기억-지식들이 그러나 주제가 영적으로 옮겨지면 본색이 드러나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6:24 참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2021-10-27(D4)-매일예배(2221, AC.1498-1502, 창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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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eIBSeGl-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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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

 

1498. 20절,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Verse 20.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and his wife, and all that he had.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음을, ‘그의 아내와’,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로부터도 떠났음을, ‘그의 모든 소유를’,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으로부터도 떠났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and his wife” signifies that they also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and all that he had”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1499.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를 보내었더라 And Pharaoh commanded the men concerning him; [and they sent him away].

 

이 표현이,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의미인 것은, 기억-지식들이라는 ‘바로’의 의미와, 또한 지성적인 것들이라는 ‘사람들’의 의미로부터 분명합니다. (앞서 보여드린 158번 글처럼) That this signifies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Pharaoh,” as being memory-knowledge; and also from the signification of “men,” as being intellectual things (as before shown, n. 158).

 

여기 ‘사람들’은 바로(Pharaoh) 혹은 기억-지식의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되는 지성적인 것들을 의미합니다. “The men” here, because attributed to Pharaoh, or to memory-knowledge, signify intellectual things adapted thereto.

 

기억-지식들이 주님을 떠났다는 것은 이런 얘깁니다. As regards memory-knowledges leaving the Lord, the case is this.

 

천적인 것들과 지성적인 진리들 사이에 결합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래서 후자가 천적이 되어갈 때, 비어 있는 모든 것, 즉 결합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은 스스로 소멸됩니다. 천적인 것의 본성에는 이런 특성도 있습니다. When celestial things are being conjoined with intellectual truths, and these are becoming celestial, then all things that are empty are dissipated of themselves; this is in the nature of the celestial.

 

※ 지성적인 진리들 안에 사랑과 체어리티가 들어 있어야 천적인 것들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천적인 것은 사랑과 체어리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지성적인 진리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보니 겉만 그런 건 알아서 사라지게 됩니다.

 

 

1500. 그의 아내와 And his wife.

 

이것이, 그들이 천적인 것들과 결합한 진리들을 떠났음에 대한, 즉 기억-지식들이 그들을 떠났음에 대한 의미라는 것은, ‘아내’의 의미가 천적인 것과 결합한 진리인 것과(위에서 언급한), 방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the truths that were conjoined with celestial things, that is to say, that memory-knowledges left them,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ife” as being truth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spoken of above), and also from what has just been said.

 

속이 텅빈 기억-지식들이 천적인 것들을 떠나가는 것은 마치 무익한 것들이 늘 지혜를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마치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굳은살과 피부 딱지들 같습니다. Empty memory-knowledges leave celestial things, as vain things are wont to leave wisdom; they are as crusts and scales that separate themselves of their own accord.

 

 

1501. 그의 모든 소유를 And all that he had.

 

이것의 의미가 그들이 천적 진리들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떠났다라는 것임이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they left all things that belonged to celestial truths follows in the series.

 

2021-10-26(D3)-매일예배(2220, AC.1498-1501, 창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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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XiMxqGt08o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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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그 사람 고유의 유전 악 때문에, 부른 적이 없는데도 알아서 찾아온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거듭거듭 말씀드렸습니다

 

귀신 등 심령 괴기, 혹은 음란, 혹은 살인과 폭력 등, 내 취향에 맞는 성향에 따라 코드가 맞는 영들이 찾아와 우리 안에 둥지를 트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안에 깃든 악한 영을 여러 해 전, 주님의 허락으로 본 적이 있는데, 이에 관한 약간 상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사람의 경우, 죽는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래서 사실 주님 또한 우리 평생 우리를 대신하여 이들과 싸우시느라 쉬지를 못하십니다

 

우리의 거듭남이 완성단계에 들어가면 그때는 악한 영들이 무슨 짓을 해도 더 이상 우리는 속지 않으며, 주님 사랑하는 마음의 중심이 요동치 않게 됩니다

 

이때 악한 영들은 비로소 우리를 포기, 우리에게서 물러납니다. 즉, ‘아, 이 사람은 도저히 지옥으로 끌고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포기하자...’ 하는 것이지요

 

한쪽이 항복을 선언하고 떠났으므로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어 대신 쉼과 안식의 상태가 시작됩니다. 이 상태를 창세기 1장과 2장 처음에서,

 

창조 여섯째 날 및 일곱째 날, 안식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그 속뜻으로는 한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여섯 단계와 상태로 묘사한 것입니다

 

우리 대신 싸우시는 분은 주님이시며, 그래서 쉼과 안식에 들어가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안식의 참된 의미이며, 그래서 안식일의 주인이 주님이신 겁니다

 

거듭남의 전 과정은 보통은 평생에 걸친 지난(至難)한 과정이며, 우리 각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한, 주님과 천사들의 결코 쉼 없으신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모든 악과 거짓 앞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정말정말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천국은 주님의 신성(神性)의 나라입니다. 주님의 신성은 선과 진리가 하나로 융합된 상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성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는 아직 살아있는 동안,

 

부지런히 이 그릇의 크기를 키우며, 또 깨끗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될 천국은 이 그릇의 크기만큼만, 그릇에 담긴 신성의 량만큼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며, 동행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늘 우리를 주님의 신성의 빛으로 환히 비추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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