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2

 

1494. 19절,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Verse 19. Why saidst thou, She is my sister? And I might have taken her to me for a woman. And now behold thy wife; take her and go.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그때 그는 자기가 지성적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없었음을, Why saidst thou, She is my sister?” signifies that he then knew no otherwise than that he had intellectual truth;

 

※ 즉, 자기에게는 오직 지성적 진리만 있는 줄 알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 자기는 어린 시절 주님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지성적 진리(知的, intellectual truth, 포츠 역, 1888-1902)를 최근 쿠퍼 역에서는 직관적 진리(intuitive trut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그는 그래서 천적인 것하고만 결합해야 하는 진리를 하마터면 욕보일 뻔했다는 것, and I might have taken her to me for a woman” signifies that so he might have done violence to the truth that was to be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 여기 ‘천적인 것’(what is celestial)이란 쿠퍼 역에 의하면 ‘천국 퀄러티’(a heavenly quality), 즉, 쿠퍼는 이 진리를 세상이 아닌, 천국에 어울리는 진리라고 보았습니다. 참고로, 여기 아브람은 어린 시절 주님 및 남편으로서의 선을,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남편인 선과 함께 하는, 아내로서의 진리를 의미하며, 그래서 이 진리는 아주 특별한 진리, 곧 선이신 주님하고만 있어야 하는 그런 진리인데, 어린 시절 주님은 그 사실을 천진난만하게 모르신 것입니다 ^^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진리는 천적인 것하고만 결합해야 함을 각각 의미합니다. and now behold thy wife; take her and go” signifies that truth was to be conjoined with what is celestial.

 

 

1495.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Why saidst thou, She is my sister?

 

이 표현이, 그때 그는 자기가 지성적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게 없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은 ‘누이’의 의미가 지성적 진리인 것과, 또 아브람이 그렇게 (13절을 보면 분명한 것처럼) 말한 사실을 보면 분명합니다. 이것은 진리의 천적인 것이 욕을 당하고 해를 입는 대신 보호를 받고 보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that he then knew no otherwise than that he had intellectual truth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sister” as being intellectual truth; and also from the fact that Abram had said so (as is evident from verse 13), which was done to the end that the celestial might not suffer any violence, but might be saved.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7:6) 말씀처럼 세상 지식과 학문이 천적인 것을 중간 연결고리들 없이 바로 접하게 되면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주님이 기억-지식들을 배우셨을 때, 주님은 그저 아시기를, 이 지식들은 오직 지성적 인간을 위해서만 있는 줄, 즉, 이 지식들을 가지고 있으면 바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줄 아셨다는 것과, 그러나 나중에 밝혀지기를, 그게 아니고 지식들은 그로 하여금 천적인 것들을 얻게 하려고 존재한다는 것과, 그래서 천적인 것들이 해를 입지 않고 대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From all this it is evident that when the Lord as a child learned memory-knowledges, he first of all knew no otherwise than that those knowledges were solely for the sake of the intellectual man, that is, in order that he might get to know truths from them; but it was afterwards disclosed that they had existed in order that he might attain to celestial things; and this took place to prevent celestial things from suffering violence, and in order that they might be saved.

 

※ 우리 역시 처음엔 세상 학문과 지식이 풍성하면 바로 무슨 경지에 이른 듯하여 천국의 비밀과 신에 대하여 다 알게 될 것 같지만, 그러나 시간이 흘러 철이 들고 정신을 차리게 되면 그게 아니고, 세상 학문과 지식은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향하게 하려고, 그래서 한 단계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것이라는, 실상을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바로 천국에 대한 지식에 뛰어들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불행해지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보호하여 우리로부터 아케이나를 분리, 보호하시는 것은, 마치 유대인으로부터 아케이나를 철저히 봉하신 이유가 그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케이나를 접하게 되면 반드시 신성모독으로 멸망할 것을 아셨기 때문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교육을 받는 동안 어떤 진보, 나아감이 있는데요, 먼저 기억-지식에서 이성적 진리(rational truth)로, 이성적 진리에서 지성적 진리(intellectual truth)로, 지성석 진리에서 이윽고 천저 진리(天的, celestial truth)의 순이며, 이 천적 진리가 여기서 말하는 ‘아내’인 것입니다. When man is being instructed, there is a progression from memory-knowledges to rational truths; further, to intellectual truths; and finally, to celestial truths, which are here signified by the “wife.

 

※ 포츠 역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쿠퍼 역에서는 ‘사실’(fac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 ‘이성적’으로 번역한 ‘rational’은 역자마다 번역이 다양한, 즉 번역이 쉽지 않은 표현입니다. 사전에는 ‘합리적인’, ‘이성적인’으로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성적인’(理性)으로 번역하겠습니다.

 

이 진행에서 만일 지성적 진리가 중간 매체 역할을 하지 않고 기억-지식과 이성적 진리에서 바로 천적 진리로 가게 되면, 천적 진리는 욕을 당하게 되는데요, 중간 연결 매체인 지성적 진리가 없으면 천적 진리와, 기억-지식을 써서 얻어지는 이성적 진리 간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If the progression is made from memory-knowledges and rational truths to celestial truths without intellectual truths as media, the celestial suffers violence, because there can be no connection of rational truths—which are obtained by means of memory-knowledges— with celestial truths, except by means of intellectual truths, which are the media.

 

※ 그래서 제가 지인들께 무슨 사전 준비나 친절한 설명 없이 바로 아케이나를 말씀드리면 다들 어리둥절 못 알아들으시고, 경계하시거나 반감을 품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케이나 입장에서는 욕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복음서 주님의 여러 비유들처럼 사람들 눈높이에 맞춰 사례를 들어가며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야 합니다. 공용복 선생이 이런 걸 참 잘하셨습니다.

 

천적 진리가 무엇인지, 지성적 진리가 무엇인지는 곧 아시게 됩니다. What celestial truths are, and what intellectual truths are, will be seen presently.

 

[2]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아실 수 있도록, 질서(order)라는 것에 관해 뭔가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That it may be known how these things stand, something shall be said respecting order.

 

질서란, 천적인 것이 영적인 것 안으로 흘러들어 그것을 그 자체에 맞추는 것이며, 그렇게 이번에는 영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 안으로, 이성적인 것은 기억-지식 안으로 흘러들어 각각 그 자체에 맞추는 것입니다. The order is for the celestial to inflow into the spiritual and adapt it to itself; for the spiritual thus to inflow into the rational and adapt it to itself; and for the rational thus to inflow into the memory-knowledge and adapt it to itself.

 

※ ‘그것을 그 자체에 맞추다’, 즉, ‘영적인 것으로 하여금 그 본래의 목적에 맞추게 하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것 안으로 천적인 것이 흘러들어갈 때 일어나는 변화를 말하는 것으로, 영적인 것 본래의 목적, 곧, 영적인 것의 순기능인 주님께 나아가는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감당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식으로, 차례대로 영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 안으로, 이성적인 것이 기억-지식 안으로 흘러들어 갈 때 저마다 그 본래의 역할과 기능을 회복하게 되어 올바른 쓰임새들이 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질서’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주 어린 시절 막 배움을 시작했을 때는, 그때도 질서는 동일하지만, 그러나 보이기는 정반대인 것처럼, 즉, 먼저 기억-지식에서 이성적인 걸로, 이성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그렇게 해서 최종 천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But when a man is being instructed in his earliest childhood, the order is indeed the same, but it appears otherwise, namely, that he advances from memory-knowledges to rational things, from these to spiritual things, and so at last to celestial things.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가장 내적인 천적인 것을 향한 어떤 길이 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it so appears is that a way must thus be opened to celestial things, which are the inmost.

 

모든 가르침은 단순히 어떤 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열릴 때, 같은 말이지만, 그릇들이 열릴 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질서대로 그 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 있는데, 천적, 영적인 것에서 오는 이성적인 것이, 그리고 이 이성적인 것에는 천적, 영적인 것이, 그리고 이 천적, 영적인 것에는 천적인 것이 차례대로 흘러들어 옵니다. All instruction is simply an opening of the way; and as the way is opened, or what is the same, as the vessels are opened, there thus flow in, as before said, in their order, rational things that are from celestial spiritual things; into these flow the celestial spiritual things; and into these, celestial things.

 

이들 천적, 영적인 것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주고 있으며, 또 앞으로 열릴 그릇들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고 형성합니다. 이런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그들 안에서 보면 기억-지식과 이성적인 것은 죽은 상태라는 사실과, 그러면서도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 안으로 흘러들어 온 내적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Thes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are continually presenting themselves, and are also preparing and forming for themselves the vessels which are being opened; which may also be seen from the fact that in themselves the memory-knowledge and rational are dead, and that it is from the inflowing interior life that they seem to be alive.

 

※ 우리가 더 이상 세상 지식과 인간 이성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대신 자유롭게 영적, 천적 사고를 할 수 있다면, 그 상태가 바로 세상 지식과 인간 이성이 힘을 다한,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죽은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 실제로 우리의 사후(死後), 우리가 세상에서 습득한 모든 지식과 경험은 휴면상태에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위와 같은 일이 사후에는 이렇게 구현됩니다. 세상 지식과 경험, 겉 사람의 이성은 그 역할과 기능을 다 하였으므로 이제는 쓸데가 없어져 따로 보관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고와 판단력에 있어 누구에게나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This can become manifest to anyone from the thought, and the faculty of judgment.

 

※ 위 문장은 아래 단락 [3]에 포함되어야 할 듯...

 

[3] 이런 것들 안에 모든 예술과 과학의 심오한 아케이나가 감추어져 있으며,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그 만분의 일도 탐구 불가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꼭 성인들만의 일도 아닙니다. 어린아이들한테도 해당되며, 그 모든 사고와 거기서 나오는 모든 언어표현도 그들로 가득가득합니다. (이것은 사람은, 심지어 가장 위대한 학자라 할지라도 못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안의 천적, 영적인 것들이 이 모든 것을 향해 나오며, 흘러들고, 만들지 않는 한, 도저히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In these lie hidden all the arcana of analytical art and science, which are so many that they can never explored even as to the tenthousandth part; and this not with the adult man only, but also with children, whose every thought and derivative expression of speech is most full of them (although man, even the most learned, is not aware of this), and this could not possibly be the case unless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within were coming forth, flowing in, and producing all these things.

 

※ 즉 이 세상 모든 일에 하늘로부터 천적, 영적 흐름이 있어 겉으로 보이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 지성은 물론, 만물의 생장 등 모든 일상 활동의 배경에는 이런 천적, 영적 배경이 있다는 말입니다.

2021-10-22(D6)-매일예배(2217, AC.1494-1495, 창12,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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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ASC6cud4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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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그 타고난 유전 악에 의해 그 사람에게 특화된 악한 영들이 와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배설물에 파리 꼬이듯 지들이 알아서 온 것이지요.

 

이에 맞춰 주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선악간 균형을 잡아주시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둘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이라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그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천사들은 그 사람의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가 거하며, 그것들을 가지고 자기들이 또 무슨 이런저런 걸 합니다.

 

이때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자기들이 지금 어떤 사람 안에 들어와 있으며, 이 기억과 생각들이 누구의 것인지를 모른다는 것! 곧, 이들은 이 기억과 생각들이 자기 것인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내 안에서 무슨 악하고 어두운 생각들이 떠오를 때, 거기서 한발 물러나야 합니다. 그 생각은 내가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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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 blessing) (10/6)

이야기 2021. 10. 22. 06:58

복은 질서입니다.

 

우리 내면의 질서가 잘 정돈되어, 주님의 빛, 천국 빛이 우리 인생을 비추실 때, 하나도 새지 않는, 일체 누수 없이 다 제 자리를 잡고 뿌리내리는, 그리고 싹을 틔우고 결실하는 바로 이런 것이 복이요, 형통입니다.

 

복은 이처럼 우리의 내면이 천국의 질서대로 재편되는 것입니다.

 

봄철 햇볕이 산과 들, 숲과 대지를 비추면 거기서 만물이 생장하지만, 거름더미를 비추면 거기서는 부패가 진행되며 악취가 납니다.

 

질서가 거꾸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고루 햇볕과 비를 주시는 주님. 이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결실이 씨의 문제가 아니라 땅의 문제이듯 말입니다.

 

복은 질서, 곧 참된 회심,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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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Jc7dn1NpVA8

 

천국과 영생, 그리고 주님에 관한 신비(神祕, arcana)를 세속적 지식과 육체적 감각으로 접근하려는 일체의 시도들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창2:17)입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면 믿을 수 없다, 내가 가진 지식을 가지고 이해할 수 없으면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등등...

 

이런 열매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는 어두워지며, 결국엔 생명에서 끊어지는데, 주님은 이런 시도를 가리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19:24)

 

하셨습니다. 여기 부자는 세상 지식, 세속의 것으로 가득한 사람을 말씀하시며, 결국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지요.

 

우리의 거듭남은 개선, 개량이 아닌, 완전히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즉, 빛을 받아 완전 새로운 가치관으로 출발하는 것이지요.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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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요즘 여기저기서 ‘오징어’, ‘오징어’ 하는, 그 ‘오징어 게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 1편을 보다가, 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중 술래가 고개를 돌렸는데도 움직인, 그래서 걸린 사람들에 대한... 아이고... 그 장면에서 그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된 비명입니다...

 

어휴... 아직도 심장이!!!

 

요즘 드라마들이 다 이런가요? 숨이 막히고, 영이 닫히는 것 같아요... 아이고!

 

또, ‘대장동’이니, ‘화천대유’(맞나?)니 하는 것 천지라 또 몇몇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아이고, 이 또한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는 소식들이네요...

 

그래서 오늘 예배 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주님, 이미 충분히 악과 거짓의 삶을 살아 잘 익은 사람들일지라도 그 상태로 생을 마감하는 대신 이제라도 주님의 빛, 천국의 빛을 받아 정신이 돌아오게 하시고, 비록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지라도 사후(死後) 상황을 대비, 준비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들이 사후 상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과연 그런 무모한 게임에 뛰어들며, 그런 대담한 일들을 벌일까요?

 

육체와 감각의 일을 멀리하고, 대신 영의 일에 힘써,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으며, 생전엔 영과 육으로, 사후엔 영으로만 살게 되는데, 그 영원한 처지와 상태, 곧 그 사후 영의 상태는 오직 생전 삶의 내용으로만 결정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의 창조주이신 주님은 우리가 모두 천국에 올 수 있기를 원하시며, 또 일평생 도우신다는 사실을 더욱 힘써 가르치고 전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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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21-22)

 

주님은 온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이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로부터 선과 진리에 관한 것, 곧 주님의 신성을 받을 수 없으며, 그것은 곧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AC.10083:5)

 

우리 기독교인들에겐 너무나 초보적인 고백이지만... 실제로 우리의 일상은 이 고백의 울타리 안에 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16:23-24)

 

예배의 모든 것, 곧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의 모든 것이 바로 ‘주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습니다. (AC.2724:2)

 

주님의 이름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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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JIw_avJwPE

 

추석 연휴 끝날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는 쉼 가운데 계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음’은 어린 시절, 주님이 아버지(the Father)께 드린 외적 예배(external worship)를,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은 내적 예배(internal worship)를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통해서는 신성(神性, the Divine)을, 처녀 어머니를 통해서는 인성(人性, the Human)을 입으신 주님은 여느 어린이와 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시지만... 한 가지,

 

어려서부터 천적(天的, the celestial)인 것들을 목표로, 한눈을 파시거나 좌우 두리번거리지 않으시고, 곧장 정주행, 곧 악을 유전한 인성을 벗으시고,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이 되십니다

 

우리도 주님 본받아 매사에 한눈팔거나, 두리번거리거나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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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Rsvdjn4O3w

 

오늘 본문인 창12:5 입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다음은 같은 구절의 내적 의미(internal sense)입니다

 

어린 시절, 선이신 주님은 늘 곁에 있어온 진리와, 순진무구한 감각으로 받아들인 모든 진리, 그리고 비록 아직은 어슴푸레하지만 모든 기억-지식과 애정 및 생명의 에센셜들을 가지고 천국, 사랑의 여정을 시작, 결국 도달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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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오시면 매일예배의 원고가 그대로 올라가오니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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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0r2oir1Vy3w

 

다음은 우리가 읽는 말씀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다음은 같은 구절을 천사가 읽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인성(人性, human essence)이 신성(神性, Divine things)을 향하실 때, 주님의 육체적 감각들도 함께 하였으며, 그때는 아직 주님의 신성이 충분하지 않아 어슴푸레한 상태였다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눈이나 입으로 읽거나, 혹은 귀로 들을 때, 우리와 함께 있는 천사들은 위와 같은 내적 의미로 이해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비의(秘義, arcana)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감동 가운데 들어갑니다

 

참고로, ‘아브람’은 주님의 휴먼 에센스 측면을, ‘아브라함’은 주님의 디바인(Divine) 에센스 측면을 각각 표상합니다. (AC.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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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5F0zzW48tIU

 

주님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복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주님의 모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모든 선 안에 거하며, 그로 말미암는 모든 것을 누리게 됩니다. 복은 참 좋은 마음의 토양에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AC.1422)

 

주님은 저주는커녕, 누구를 미워하시지도, 벌하시거나 외면하시지도, 죽이시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셔서 본성상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며, 그때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악한 영들의 공격에 노출되고, 그래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저주는 모든 복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입니다. 복에 포함된 모든 것과 정반대되는 모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끊어지는 것, 그래서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 이것이 저주이며, 이것이 모든 저주 아래 놓인 자들의 처지입니다. (AC.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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