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의 속뜻 (2)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24-31) 28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9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30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31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Gen. 1:24-31)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천지창조 여섯째 날, 곧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에 관한 두 번째 내용이며, 이로써 1장을 마감하게 됩니다.

 

※ 제가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주석 원본을 가급적 원본 그대로 소개하는, 참 재미없고 고리타분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요즘 주일 설교라 할 수 없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쉽게 풀어 전하겠답시고 감히 손댔다가 완전 엉뚱한 소리 하는, 큰 참사가 날까 봐서입니다. 저는 아직은 그냥 살짝살짝 추임새 넣는 정도로도 충분하며, 이마저도 사실 제게 와있는 천사들의 퍼셉션(perception)을 조금 알아듣는 것이어서 안전하고,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그걸 수용하는 사람의 영적 역량, 곧 그 사람의 영적 눈높이에 맞춰 그 깊이가 조절되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 여전히 주석 원본은 볼드체로, 메시지를 겸한 설명, 곧 추임새는 ‘’로 구분합니다.

 

시작합니다.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C.55)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해(understanding)와 의지(will), 즉 신앙(faith)과 사랑(love) 간 결합을 일종의 결혼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이 결혼의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good)을 ‘생육’(fruitfulness), 모든 진리(truth)를 ‘번성’(multiplications)이라 하였습니다.

 

※ 실제로 천국 역시 남녀의 결혼이 있지만, 천국에서는 지상처럼 무슨 ‘아이를 낳는’ 몸 결혼이 아닌, 선과 진리가 생겨나는 마음의 결혼, 곧 전혀 다른 결혼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40장, ‘천국 안의 결혼(Marriages in Heaven)을 읽어보세요.

 

 

HH.366, 40장, '천국 안의 결혼'(HH.366-386)

40천국의 결혼Marriages in Heaven 366천국은 인류로 구성되고, 따라서 천사들도 남자와 여자가 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남자는 여자를 위해 창조되었고 둘은 서로에게 속한다. 이성에 대한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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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지서들에서도 그렇게 부르는데 예를 들면, 에스겔입니다.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36:11-12)

 

※ 위 구절 중 일부만 볼드인 이유는 원본에서는 거기만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람’(man)은 이스라엘이라 하는 영적 인간을, ‘전 지위’(ancient times)는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를, ‘처음’(beginnings)은 홍수 후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말합니다. 먼저 진리에 속한 ‘수가 많고’(multiplication)가 언급되고, 그다음에 선에 속한 ‘번성하게’(fruitfulness)가 언급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이미 거듭난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거듭나게 될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아직 거듭나는 중인 사람은 그 최종 목표가 영적 인간이며, 이때는 늘 진리가 먼저입니다. 그렇다는 건 거듭난 후 일곱째 날인 천적 인간이 되면 이때부터는 선이 먼저라는 말이 되겠지요. 일단은 신앙으로 출발, 나중엔 사랑으로라고 해도 같은 말입니다.

 

[2] 이해가 의지와, 즉 신앙이 사랑과 연합할 때, 주님은 이 사람을 일종의 ‘결혼한 땅’(married land)이라 하십니다. 이사야입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62:4)

 

이때 열리는 열매들이 진리에 속하였으면 ‘아들들’이라 하고, 선에 속하였으면 ‘딸들’이라 합니다. 이런 표현은 말씀에 아주 자주 나옵니다.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12:50)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데요, 이렇듯 지상 혈연의 천국 상응을 늘 염두에 두는 태도가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오바(over)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데요, 자기 사랑이라는 욕심에 잠식된 자녀 사랑이 아닌, 오직 주님 사랑 안에 잘 보존된 정말 깨끗하고 순결한 자녀 사랑, 내 자식, 내 손주를 보더라도, 또 내 부모, 내 조부모 등 내 가문을 보더라도 그걸 주님 나라의 선과 진리가 이 세상에 구현된 걸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며, 주님의 열두 제자같이 말입니다. 이건 영적 시야에 관한 문제라, 그리고 혈연이라는 건 평생에 걸친 문제라 정말 중요한 얘깁니다.

 

[3] 진리와 선이 많아졌을 때, 땅은 ‘충만한’(replenished) 상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됩니다. 주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실 때, 즉 사람을 돌보실 때는 선과 진리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13:31-32)

 

‘겨자씨 한 알’(A grain of mustard seed)은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기 전에 갖고 있던 선을 말하는데, 이것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the least of all seeds)입니다. 그 이유는, 그때는 그가 자기 스스로 그 선을 행하는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던 그가 거듭남의 어떤 상태 가운데 있게 되면서 그의 안에 뭔가 선한 게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작습니다.

 

[4] 결국 신앙이 사랑과 결합함으로써 점점 자라 ‘풀’(herb)이 되더니, 마침내 결합이 완성되면서 ‘나무’(a tree)가 되어, ‘공중의 새들’(the birds of the heavens)이 ‘그 가지에 깃들게’(build their nests in its branches) 됩니다. ‘공중의 새들’은 진리나 지적인 것들을, ‘그 가지에 깃들게’는 기억-지식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영적일 때뿐 아니라 영적 인간이 되는 동안은 그는 일종의 전투 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래서 이르시기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subdue the earth and have dominion) 하신 것입니다.

(AC.55)

 

 

2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C.56-57)

 

천적 인간(天的, The celestial man)은 천적인 것들(celestial things)로만 기뻐합니다. 그것들이 그의 생명에 맞기 때문인데, 이르기를 천적 양식(celestial food)이라고 합니다. 영적 인간(靈的, The spiritual man)은 영적인 것들(spiritual things)로 기뻐합니다. 그 이유 역시 그것들이 그의 생명과 맞기 때문이며, 이번엔 영적 양식(spiritual food)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적 인간(自然的, The natural man)은 자연적인 것들(natural things)로 기뻐합니다. 그에게는 이런 것들이 맞기 때문인데, 이르기를 양식(food)이라고 하며, 주로 기억-지식으로 구성됩니다.

 

※ 그러니까 영적 인간이 자연적 인간더러, 천적 인간이 영적 인간이나 자연적 인간더러 당신은 왜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느냐?’, 혹은 ‘당신은 왜 이런 걸 이해를 못하느냐?’라든지, 반대로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이나 천적 인간더러,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더러 ‘당신은 왜 그렇게 사느냐?’, 혹은 ‘당신은 왜 늘 천국, 천국만 하느냐?’라며 무시, 조롱, 비난, 멸시 같은 걸 하면 안 됩니다. 저마다 자기 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선과 진리에 관한 거라면 말입니다.

(AC.56)

 

 

‘씨 맺는 채소’(The herb bearing seed)는 쓰임새(use)와 관련된 모든 진리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the tree in which is fruit)는 신앙의 선인데, 여기서 ‘열매’(fruit)는 주께서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 ‘씨 가진 나무’(seed producing fruit)는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씨 가진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하시는 것입니다. 천적 양식을 나무의 열매라 하는 것은 다음 장을 보면 분명한데요, 다음 장에서는 천적인 사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여기서는 에스겔에서 하신 주님 말씀들만 인용합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47:12)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는 ‘성소’(the sanctuary)이신 주님의 생명과 자비를 의미합니다. ‘열매’는 그들의 양식이 될 지혜이며, ‘잎사귀’는 ‘약재료’(medicine)라는 이름으로 쓰임 받게 될 지성입니다. 한편, 영적 양식을 ‘풀’(herb)이라고 하는 건 시편을 보면 나옵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1-2)

 

※ 다음은 ‘쓰임새(use)와 관련된,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42장, ‘천국의 기쁨과 행복(Heavenly Joy and Happiness, HH.395-414) 402번 글입니다.

 

천국의 모든 즐거움은 쓰임새 안에 모아져 있고 나타나 있다. 그것은 쓰임새가 천사들이 지닌 사랑과 이타심에서 비롯된 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사는 그의 쓰임새에 맞게 그가 쓰임새를 사랑하는 정도만큼 즐거움을 누린다. 천국의 모든 즐거움이 쓰임새에서 나온 즐거움임은 사람 몸의 오감에 비해 보면 알 수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는 각기 그 쓰임에 따른 고유한 즐거움이 있다. 시각에는 아름다움과 형태가, 청각에는 조화된 소리가, 후각에는 향기가, 미각에는 맛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각각의 감각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고찰에 의해 알 수 있으며, 상응원리를 알면 그 기능을 더 완전하게 알 수 있다. 시각에 고유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시각이 사고력, 즉 내적 시각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청각에 고유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청각은 주의집중을 통해 사고력과 의지 둘 다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후각은 뇌와 폐에 작용하고, 미각은 위장을 거쳐 간접적으로 온몸에 영양을 공급하는 기능 때문에 각기 고유한 즐거움이 있다. 촉각의 더 순수하고 정묘한 즐거움인 결혼의 즐거움이 다른 모든 즐거움보다 뛰어난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증가와 그에 따른 천사의 증가에 공헌하는 쓰임새 때문이다. 그런 여러 가지 즐거움이 오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든 즐거움이 쓰임새 안에 있고, 쓰임새에 달려 있는 곳인 천국이 그 안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

(AC.57)

 

 

30절,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C.58-59)

 

동일인, 곧 영적 인간의 자연적 음식을 여기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적 인간의 자연적 속성을 ‘땅의 모든 짐승’(the wild animal of the earth)과 ‘하늘의 모든 새’(the fowl of the heavens)로 상징하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양식으로 채소와 푸른 풀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 시편을 보면, 거기 그의 자연적, 영적 양식 둘 다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04:14)

 

여기서 ‘가축’(beast)이라는 말이 같은 시편 앞 구절들인 11, 12절에서 언급한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둘 다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11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12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104:11-12)

(AC.58)

 

 

여기 자연적 인간의 양식으로 ‘채소와 푸른 풀’(the vegetable and the green of the herb)만 말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자연적 인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거듭나는 중인 사람의 자연적 속성, 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어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전투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며, 이런 이유로 주님의 교회를 ‘전투적’(militant)이라고 합니다. 거듭나기 전엔 탐욕이 지배적이기 때문인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전반적으로 그저 탐욕과 거기서 나오는 거짓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 안에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 아주 정상이며, 적어도 본인이 목회자라면 교인 하나하나, 성도 하나하나를 이런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모두 안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악과 거짓의 사람이 선과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태생적으로 지옥에 적합한 사람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천국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 사람은 의지와 이해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의지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그리고 이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각각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이렇게 천국과 지옥에서 파송된 두 종류의 천사들과 악한 영들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최소 두 명의 천사와 두 명의 악한 영들이 와 있는 상황에서, 본인의 의지와 이해로 매 순간 일평생 천국이나 지옥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일생이며,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입니다.

 

거듭나는 동안 이들 탐욕과 거짓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인데, 이들 탐욕과 거짓은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즉 그들은 일단 그의 탐욕을 자극, 그를 흥분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끊임없이 그러다 보면, 사람은 나중엔 그런 걸 지루해하며, 싫증을 느끼고 느슨해져서 결국은 주님에 의해 선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가 되고, 그렇게 해서 사람은 개혁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인생 막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회심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이지요. 악한 영들이 아무리 끈질겨도 그들이 우리 주님의 한결같으심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무슨 의로운 습관을 결심했지만 반나절이 못 되어 또 넘어지더라도, 그리고 똑같은 결심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더라도,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나는 나 자신을 정말 못 믿겠다 하더라도 이런 나를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을 믿고 다시 일어서며, 다시 결심, 다시 정진하는 태도, 자세가 필요합니다.

 

※ 주님은 우리와 달리 우리 안의 악을 한방에 어떻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 악조차 우리의 생명이심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놀라우심은 그 악조차 우리를 돌이키시는 재료로 사용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선하고 진실한 모든 것, 즉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 오직 이런 것들만 선하고 진실한데요, 이것은 그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아주아주 극도로 증오하는 악한 영들은 사람에게 양식이라고는 고작해야 ‘채소와 푸른 풀’에 비교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들과 달리 주님은 그에게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에 비교되는 양식도 주시는데요, 이는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이며, 주님은 이 양식을 일정 간격으로 사람에게 계속 주십니다.

 

※ 여기서 우리는 악한 영들의 정체와 그들이 주는 달콤한 것의 그 숨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그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결국은 보잘 없는 ‘채소와 푸른 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곧 그 안에 선과 진리가 있어 우리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하시는, 그래서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에 들게 하시는 분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즉 악한 영들이 주는 것은 짝퉁, 모조품, 가짜인 반면, 오직 주님이 주시는 것만이 진품, 정품, 진짜라는 것입니다.

 

[2] 주님이 사람을 매 순간, 아니 정말 눈 깜빡할 순간이라도 막아주지 않으셨으면, 인간은 즉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영들의 세계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 및 신앙과 관련된 것들을 향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지독한 증오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지난 수년간, (저는 분명히 몸 안에 있었음에도) 저세상의 영들, 특히 아주 못된 영들과 본의 아니게 어울려 왔습니다.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저는 수천의 영들에 둘러싸이기도 했고, 그들은 저를 향해 독을 뱉기도 했습니다.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은 저를 향해 우글거렸지요. 하지만 그들은 제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수 없었는데, 그것은 제가 주님의 보호 아래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해 경험으로, 저는 정말 영들의 세계와 그 본성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현재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영생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왜 반드시 견뎌야만 하는지 하는, 영적 전투에 대하여 정말 철저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주제,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도 전혀 의심 없이 믿기에는 일반적인 설명으로는 도저히 쉽지 않기 때문에, 주님은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이셨는데요, 그것은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다루겠습니다.

(AC.59)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AC.60-63)

 

앞의 상태들에 대해서는 단지 ‘좋았더라’(good)라고만 하시는 반면, 이 상태를 가리켜서는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하시는 이유는, 지금은 신앙에 속한 것들과 사랑에 속한 것들이 하나가 되어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이 마치 서로 결혼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AC.60)

 

 

신앙의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영적(靈的, spiritual)이라 하고, 주님 사랑, 이웃 사랑(love to the Lord and our neighbor)에 속한 모든 것을 천적(天的, celestial)이라 합니다. 전자는 사람의 이해에, 후자는 사람의 의지에 속합니다.

 

※ 조금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머리 신앙은 영적이요, 가슴 신앙은 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열의 문제라기보다는 태생적 특성에 가깝지만, 하여튼 주님은 천적 천사들은 가까이, 영적 천사들은 천적 천사들 다음으로 가까이하십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특성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가급적 너무 교리, 교리 하지 마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AC.61)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하여 그 시기와 상태를 일반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여섯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그의 창조의 날들(the days of his creation)이라 합니다. 전혀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서서히 그는 먼저 뭔가가 되고,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여섯째 날을 향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 여섯째 날에 그는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 됩니다.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형상(image)은 그릇, 모양(likeness)은 내용입니다. 즉 영적인 사람은 형상, 곧 주님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며, 천적인 사람은 그 영적인 사람 안에 담기는 주님이십니다.

(AC.62)

 

 

그를 위해 악과 거짓을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시는 한편, 주님은 이 전투를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서 확실하게 하십니다.

 

※ 다음은 이 ‘주님이 나를 위해 대신 악과 거짓에 대항하여 싸우심’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김은경 역) 60장, ‘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들(The Malice and Heinous Artifices of Infernal Spirits, HH.576-581) 577번 글입니다.

 

 

HH.576, 60장, '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HH.576-581)

60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들The Malice and Heinous Artifices of Infernal Spirits 576깊이 생각하는 사람과, 마음의 작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영들이 사람들보다 얼마나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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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에게 지혜와 지성이 있는 것처럼 지옥 영들에게는 그만큼의 악의와 교활함이 있다. 사람의 영은 몸을 벗어나면 그 자신의 선 아니면 악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사적 영이 그의 선 안에 있다면, 지옥적 영은 그의 악 안에 있다. 앞에서 자주 설명했듯이 모든 영이 그 자신의 선 아니면 악인 것은 영이 그 자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적 영은 그의 선에서, 지옥적 영은 그의 악에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악 자체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 악에 포함된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2] 사람이 몸을 입고 살 동안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받는 법의 제재와 이득, 명성, 평판을 얻을 희망 또는 그것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의 제재로 그 영의 악이 억눌려 있었고, 따라서 그 악의 참모습이 밖으로 터져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때는 사람의 영에 있는 악은 그가 세상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꾸미는 외적인 정직함, 올바름, 선과 진리에 대한 애정 등으로 포장되고 가려져 있다. 이런 가면 뒤에서 그 악은 너무도 단단히 밀폐되고 숨겨져 있어 그 자신도 자기 영이 그렇게 엄청난 악의와 교활함을 숨기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즉 사후에 영이 되면 드러날 자기의 본성이 악마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3] 사후에는 그런 악의가 스스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악하다. 악은 하나에서 수천 가지 종류가 파생하는데 그중에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는 내게 허락된 수많은 경험으로 그 악들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관찰할 수 있었다. 주께서 내게 영으로는 영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몸으로는 자연계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악은 너무도 엄청나서 그 천 분의 일을 기록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증언한다. 그 악이 너무도 커서, 만일 사람이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결코 지옥에서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는 천국에서 온 천사들과 지옥에서 온 영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위 292, 293번 글 참조). 그러나 사람이 신성을 인정하고 신앙과 이웃 사랑의 삶을 살지 않으면 주께서는 그를 보호하실 수 없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은 주님께 등을 돌리고 지옥 영들에게 돌아서며, 그렇게 되면 그의 영은 자기와 동질의 악의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을 그가 달라붙는 악에서, 그리고 지옥의 영들과 교류함으로써 스스로 끌어들인다고 할 수 있는 악에서 끊임없이 떼어내신다. 사람이 신성을 부인하면 양심의 내적 제재를 받지 못하는데, 사람이 양심의 내적 제재로 악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외적 제재로 떼어내신다. 외적 제재는 앞에서 말한 대로 법에 대한 두려움과 이득, 명성, 평판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의 즐거움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잃거나 빼앗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악에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영적 선으로 인도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영적 선을 대하면 그 즉시 남을 꾀고 속이려고 선함과 정직함과 올바름을 가장함으로써 그 선을 술책과 교활함으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교활함은 그의 영에 들어있는 악과 결탁하여 그 특성을 주입함으로써 악에 형태를 부여한다. (HH.577) //

 

전투의 때는 주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서는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빚으신 작품(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그의 모든 행위의 원리가 될 때까지, 이때 전투가 그치는데요,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이 일이 아주 순조롭게 되어 드디어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이 일어날 때가 바로 ‘심히 좋았더라’(very good) 하시는 때입니다. 이때 주님은 그를 주님의 모양대로(as his likeness) 행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거듭 ‘형상(image)은 그릇, ‘모양(likeness)은 내용입니다. 영적 인간은 그릇, 천적 인간은 내용입니다. 그릇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듯 주님의 목표, 즉 거듭남의 최종 목표는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천적 인간의 상태가 바로 안식의 상태요, 안식일입니다.

 

※ 천적 인간은 가슴 신앙이며, 매사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의 동기가 주님 사랑인 상태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의도하며,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이 여섯째 날 끝에 악한 영들은 떠나고, 선한 영들이 대신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천국, 혹은 천적 낙원(the celestial paradise)으로 인도됩니다. 이곳에 관하여는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 우리는 악을 직접 상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본성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악을 상대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와 있는 지옥의 영들을 상대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투는 주님과 악한 영들 간 싸움입니다. 우리가 거듭남의 최종단계에서 이제는 의지로도 주님을 사랑하여 매사에 주님 편에 서면 악한 영들은 더 이상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만 우리를 포기하고 떠납니다. 우리 안에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게 되어 드디어 싸움이 끝나고 쉼이 찾아오는데, 이 쉼은 주님의 쉼입니다. 우리 안에서 주님이 싸워오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주님이 쉬시는 걸 표상한 것이며, 그래서 주님은 안식일을 가리켜 ‘내 안식일’이라 하신 것입니다.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9:30) //

(AC.63)

 

 

이상으로 창세기 1장 여섯째 날에 관한 2주에 걸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섯째 날 전체 본문을 다시 한번 봉독합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24-31)

 

창조의 육(六) 일, 곧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에 관한 이 전체 이야기 중 특별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한가지는 셋째 날 풀, 채소, 나무 창조에서 다섯째 날 수중 생물과 공중의 새, 그리고 여섯째 날 땅의 짐승 창조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중간에 넷째 날 두 큰 광명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잘난 체하는 신앙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애정의 신앙으로 넘어가려면 중간에 사랑과 신앙이라는 불이 켜져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점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설교

2025-08-31(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8-31(D1)-주일예배(2613, 창1,24-31, AC.44-63), ‘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의 속뜻 (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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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8-31, AC.55-6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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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곳 소속과 교통을 결정하는 천국의 형태 The Form of Heaven That Determines Affiliations and Communications There

 

 

HH.200, 23장, '천국의 형태가 교통을 결정한다'(HH.200-212)

23그곳 소속과 교통을 결정하는 천국의 형태The Form of Heaven That Determines Affiliations and Communications There 200천국의 형태가 어떤지는 앞의 가름들을 보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천국은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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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천국 전체 모든 천사 사회는 주님의 신적 질서(His Divine order)에 따라 주님에 의해 정렬된다. 천국을 만드는 것은 천사들과 함께하는 주님의 신성(the Divine of the Lord)이기 때문이다 (AC.3038, 7211, 9128, 9338, 10125, 10151, 10157). The entire heaven in respect to all angelic societies, is arranged by the Lord in accordance with His Divine order, since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with the angels that makes heaven (n. 3038, 7211, 9128, 9338, 10125, 10151, 10157). 천국 형태에 관하여 (AC.4040–4043, 6607, 9877). Concerning the heavenly form (n. 4040–4043, 6607, 9877).

 

 

147. 천국의 형태는 신적 질서에 일치하는 형태다 (AC.4040–4043, 6607, 9877). The form of heaven is a form in accordance with the Divine order (n. 4040–4043, 6607, 9877).

 

 

148. 신적 진리는 질서에 관한 법이다 (AC.2447, 7995). Divine truths are the laws of order (n. 2447, 7995). 사람은 그가 질서를 따라 사는 만큼만, 즉 그가 신적 진리를 따라 선 안에 있는 만큼만 사람이다 (AC.4839, 6605, 6626). Man is a man to the extent that he lives in accordance with order, that is, to the extent that he is in good in accordance with Divine truths (n. 4839, 6605, 6626). 신적 질서의 모든 것은 사람 안에 모이며, 사람은 신적 질서가 사람 형태로 창조된 것이다 (AC.4219, 4220, 4222, 4223, 4523, 4524, 5114, 6013, 6057, 6605, 6626, 9706, 10156, 10472). All things of Divine order are gathered up in man and he is from creation Divine order in form (n. 4219, 4220, 4222, 4223, 4523, 4524, 5114, 6013, 6057, 6605, 6626, 9706, 10156, 10472). 사람은 선과 진리로 태어나는 게 아닌, 악과 거짓, 즉 신적 질서에 반(反) 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완전한 무지 상태로 태어난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새로 태어나야 할, 즉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일은 주님의 신적 진리로 일어나며, 이를 통해 그는 질서 안으로 인도될 수 있다 (AC.1047, 2307, 2308, 3518, 3812, 8480, 8550, 10283, 10284, 10286, 10731). Man is not born into good and truth, but into evil and falsity, that is, into the opposite of Divine order, and consequently into pure ignorance; and for this reason he must needs be born anew, that is, be regenerated, which is effected by means of Divine truths from the Lord, that he may be introduced into order (n. 1047, 2307, 2308, 3518, 3812, 8480, 8550, 10283, 10284, 10286, 10731). 주께서 사람을 새롭게 하실 때, 즉 거듭나게 하실 때, 주님은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질서 있게 하시는데, 이는 천국 형태대로 하신다는 뜻이다 (AC.5700, 6690, 9931, 10303). When the Lord forms man anew, that is, regenerates him, He arranges all things in him in accordance with order, which means, into the form of heaven (n. 5700, 6690, 9931, 10303).

 

 

149. 천국의 모두는 생명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이를 일러 생명의 익스텐션(extension)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저마다 가진 선의 양과 질에 따라 천사 사회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AC.8794, 8797). Everyone in heaven has communication of life, which may be called its extension into angelic societies round about, according to the quantity and quality of his good (n. 8794, 8797). 사고와 애정(Thoughts and affections)에는 그런 익스텐션이 있다 (AC.2470, 6598–6613). Thoughts and affections have such extension (n. 2470, 6598–6613). 이들은 그 지배적 애정에 따라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한다 (AC.4111). They are united and separated in accordance with the ruling affections (n. 4111).

 

 

150. 천국이든 이 세상이든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사는 오직 단 하나의 생명이 있다 (AC.1954, 2021, 2536, 2658, 2886–2889, 3001, 3484, 3742, 5847, 6467). There is only one Life, from which all, both in heaven and in the world, live (n. 1954, 2021, 2536, 2658, 2886–2889, 3001, 3484, 3742, 5847, 6467). 그 생명은 위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온다 (AC.2886–2889, 3344, 3484, 4319, 4320, 4524, 4882, 5986, 6325, 6468–6470, 9276, 10196). That life is from the Lord above (n. 2886–2889, 3344, 3484, 4319, 4320, 4524, 4882, 5986, 6325, 6468–6470, 9276, 10196). 그것은 어떤 놀라운 방식으로 천사들과 영들,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흐른다 (AC.2886–2889, 3337, 3338, 3484, 3742). It flows into angels, spirits, and men, in a wonderful manner (n. 2886–2889, 3337, 3338, 3484, 3742). 주님은 주님의 신적 사랑으로부터 흘러들어오시는데, 이 사랑은 자기 것이 다른 사람 것 되기를 의도하는 그런 사랑이다 (AC.3472, 4320). The Lord flows in from His Divine love, which is such that what is its own it wills should be another’s (n. 3472, 4320). 이런 이유로, 생명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사람 안에 있는 것 같고,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AC.3742, 4320). For this reason life appears to be in man, and not flowing in (n. 3742, 4320). 천사들의 기쁨을 나는 지각하였고(perceived), 그들이 내게 한 말, 곧 자기들은 자기들의 힘으로가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을 듣고 컨펌하였다 (AC.6469). Of the joy of angels, perceived and confirmed by what they told me, because of their not living from themselves but from the Lord (n. 6469). 악인들은, 생명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것이라는 사실 받아들이는 걸 매우 꺼려한다 (AC.3743). The evil are unwilling to be convinced that life flows in (n. 3743). 주님의 생명은 또한 악인들에게도 흘러들어온다 (AC.2706, 3743, 4417, 10196). Life from the Lord flows in also with the evil (n. 2706, 3743, 4417, 10196). 하지만 그들은 선을 악으로, 그리고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이며, 그런 게 그가 생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AC.4319, 4320, 4417), But they turn good into evil, and truth into falsity; for such as man is such is his reception of life, illustrated (n. 4319, 4320, 4417).

 

 

151. 생각은 주변 영들과 천사들의 사회들 안으로 퍼붓듯 쏟아진다 (AC.6600–6605). Thought pours itself into societies of spirits and of angels round about (n. 6600–6605). 그러면서도 그 사회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AC.6601, 6603). Still it does not move or disturb the thoughts of the societies (n. 6601, 6603).

 

 

152. 선은 자신의 진리를, 진리는 자신의 선을 인식한다 (AC.2429, 3101, 3102, 3161, 3179, 3180, 4358, 5704, 5835, 9637). Good recognizes its truth, and truth its good (n. 2429, 3101, 3102, 3161, 3179, 3180, 4358, 5704, 5835, 9637). 이런 식으로 선과 진리는 결합한다 (AC.3834, 4096, 4097, 4301, 4345, 4353, 4364, 4368, 5365, 7623–7627, 7752–7762, 8530, 9258, 10555). In this way good and truth are conjoined (n. 3834, 4096, 4097, 4301, 4345, 4353, 4364, 4368, 5365, 7623–7627, 7752–7762, 8530, 9258, 10555). 이것은 천국의 인플럭스로 인한 효과다 (AC.9079). This is effected by influx from heaven (n. 9079).

 

 

153. 주님의 직접 입류와 천국을 경유하는 간접 입류가 있다 (AC.6063, 6307, 6472, 9682, 9683). There is direct influx from the Lord and mediate influx through heaven (n. 6063, 6307, 6472, 9682, 9683). 만물의 가장 작은 것으로도 흐르는 주님의 직접 입류가 있다 (AC.6058, 6474–6478, 8717, 8728). There is a direct influx of the Lord into the minutest parts of all things (n. 6058, 6474–6478, 8717, 8728). 천국들을 경유하는 주님의 간접 입류 (AC.4067, 6982, 6985, 6996). Of the mediate influx of the Lord through the heavens (n. 4067, 6982, 6985, 6996).

 

24

천국 안의 다스림 Governments in Heaven

 

 

HH.213, 24장, '천국 안의 다스림'(HH.213-220)

24천국 안의 다스림Governments in Heaven 213천국은 여러 사회 공동체로 나뉘어 있고, 큰 공동체는 수십만의 천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HH.50), 그리고 한 공동체 내에서도 구성원들의 선함은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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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천적 천사들은 영적 천사들이 하듯 진리로부터 생각하고 말하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진리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주님으로 말미암는 퍼셉션이 있기 때문이다 (AC.202, 597, 607, 784, 1121, 1384, 1398, 1442, 1919, 7680, 7877, 8780, 9277, 10336). The celestial angels do not think and speak from truths, as the spiritual angels do, because they have from the Lord a perception of all things of truth (n. 202, 597, 607, 784, 1121, 1384, 1398, 1442, 1919, 7680, 7877, 8780, 9277, 10336). 진리에 관해서는 천적 천사들은 예, 예, 아니오, 아니오 한다. 반면, 영적 천사들은 진리에 대해 그게 옳은지 아닌지를 이성을 가지고 따진다 (AC.2715, 3246, 4448, 9166, 10786,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를 설명하는 글들). In respect to truths the celestial angels say, Yea, yea, or Nay, nay; but the spiritual angels reason about them whether they are true or not (n. 2715, 3246, 4448, 9166, 10786, where the Lord’s words, “Let your speech be Yea, yea, Nay, nay; what is beyond these is from evil” [Matt. 5:37] are explained).

 

 

155. 영적 나라 사람들은 진리 안에, 천적 나라 사람들은 선 안에 있다 (AC.863, 875, 927, 1023, 1043, 1044, 1555, 2256, 4328, 4493, 5113, 9596). Those in the spiritual kingdom are in truths, and those in the celestial kingdom are in good (n. 863, 875, 927, 1023, 1043, 1044, 1555, 2256, 4328, 4493, 5113, 9596). 영적 나라의 선은 이웃 사랑의 선이며, 이 선은 그 본질상 진리이다 (AC.8042, 10296). The good of the spiritual kingdom is the good of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nd this good in its essence is truth (n. 8042, 10296).

 

 

156. 말씀에서 ‘올바름(righteousness)은 선으로, ‘공평함(judgment)은 진리로 서술되며, 그래서 ‘올바름과 공평함으로 행함’은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 (AC.2235, 9857). In the Word “righteousness” is predicated of good, and “judgment” of truth, therefore “to do righteousness and judgment” means good and truth (n. 2235, 9857).큰 공평’은 신적 질서의 법, 곧 신적 진리를 의미한다 (AC.7206).Great judgments” means the law of Divine order, thus Divine truths (n. 7206).

 

 

157. 말씀 예언서 파트에 나오는 ‘다윗’은 주님을 의미한다 (AC.1888, 9954). By “David” in the prophetic parts of the Word, the Lord is meant (n. 1888, 9954).

 

 

158. 말씀에서 ‘시온’은 교회, 특히 천적 교회를 의미한다 (AC.2362, 9055). In the Word “Zion” means the church, and specifically the celestial church (n. 2362, 9055).

 

 

159. 모든 사람과 공동체, 또한 자기 나라와 교회, 그리고 범우주적 의미에서 주님의 나라는 일종의 이웃이며, 이들 상태에 맞춰 선을 사랑함으로 이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이웃 사랑이다. 즉 이웃은 이들의 선, 곧 반드시 먼저 고려 되어야 할 공동선(common good)이다 (AC.6818–6824, 8123). Every man and every community, also one’s country and the church and in the universal sense the kingdom of the Lord, is a neighbor, and to do good to these from love of good in accordance with their state is to love the neighbor; that is, the neighbor is the good of these, which is the common good that must be consulted (n. 6818–6824, 8123). 사회적 선(Civil good) 또한, 그러니까 정의(justice) 또한 하나의 이웃이다 (AC.2915, 4730, 8120–8123). Civil good also, which is justice, is a neighbor (n. 2915, 4730, 8120–8123). 그래서 이웃 사랑은 인간 삶의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으로 확장된다. 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선과 진리에 관한 사랑으로 선을 행하는 것, 또한 모든 역할(function)과 모든 일에 있어 공정함(what is just)에 대한 사랑으로 공정하게 행하는 것, 이 모두가 이웃 사랑이다 (AC.2417, 8121–8124). Therefore charity toward the neighbor extends itself to all things and each thing of the life of man; and loving good and doing good from love of good and truth, and also doing what is just from a love of what is just in every function and in every work, is loving the neighbor (n. 2417, 8121–8124).

 

 

160. 두 종류의 다스림이 있다. 하나는 이웃 사랑으로부터, 다른 하나는 자기 사랑으로부터다 (AC.10814). There are two kinds of rule, one from love toward the neighbor, the other from love of self (n. 10814). 이웃 사랑에서 나오는 다스림으로부터 모든 선과 모든 행복이 흐른다 (AC.10160, 10814). From the rule that is from love toward the neighbor flow all goods and all happinesses (n. 10160, 10814). 천국에서는 아무도 자기 사랑으로 다스리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모두 남을 섬기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이웃 사랑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가진 큰 능력의 근원이다 (AC.5732). In heaven no one desires to rule from the love of self, but all desire to minister, which means to rule from love to the neighbor; this is the source of their great power (n. 5732). 자기 사랑이라는 다스림으로부터 모든 악이 흘러들어온다 (AC.10038). From rule from the love of self all evils flow in (n. 10038).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정부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AC.7364, 10160, 10814). When the loves of self and the world had begun to prevail men were compelled to subject themselves to governments as a means of security (n. 7364, 10160, 10814).

 

 

※ 위 글번호들의 해당 글들은 아래 링크 중 Arcana Coelestia 해당 볼륨들을 다운 받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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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people who cite Swedenborg’s writings use what is currently known as the Standard Edition, the English translation produced in the early 1900s. In the 1990s, these translations were electronically input in order to create a new typeset version,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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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래는 해당 볼륨들의 창, 출 장 및 글 번호 범위들입니다. 참고하세요. 아, 그리고 위 링크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일일이 따로 링크 걸어드렸습니다. pdf 파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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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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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1114-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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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

2135-2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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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7

2894-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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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1

365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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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8

4229-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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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3

4954-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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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0

5728-6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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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6627-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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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

8033-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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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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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4-1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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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의 속뜻 (2025/8/23)

 

 

우리의 형상(our image)은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 곧 거듭남의 최종 목표인 영적 인간(spiritual man)을, ‘우리의 모양(our likeness)은 주님을 닮은, 곧 영적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천적 인간(celestial man)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서 ‘우리’는 각 사람, 특히 거듭남의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에게 와 있는 천사들을, ‘사람’은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인 안식일로 표상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각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와있는 천사들과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의 타고난 악과 거짓으로 부르지 않았는데도 와 있고, 천사들은 사람 안의 천국과 지옥 간 균형을 맞추시고자 주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가 있어 사람이며, 그래서 각각 최소 둘씩 와 있는 것입니다. 즉 ‘의지’에 대해 의지와 상응하는 천국에서 하나, 지옥에서 하나, ‘이해’에 대해서도 이해와 상응하는 천국에서 하나, 지옥에서 하나가 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입니다.

 

 

HH.291,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HH.291-302)

33천국과 인류의 결합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Human Race 291모든 선이 주께로부터 오고, 사람에게서 난 선은 하나도 없다는 것, 따라서 아무도 어떤 선이든 자기에게 근원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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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는,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이 모든 번거로운(?) 일, 곧 끊임없이 달래시며, 선과 진리를 향해 계속 나아가도록 격려하시고 힘주시는 이 모든 일이 천사들이 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겉보기엔 그렇지만, 사실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위 말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라는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 세 하나님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그런 거 아닙니다. 즉 삼신(三神) 사상을 가지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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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의 속뜻 (1)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1:24-27) 24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6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7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Gen. 1:24-27)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천지창조 여섯째 날, 곧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내용이 길어 부득불 2주에 걸쳐 다루게 되며, 오늘은 먼저 24절로 27절까지이고, 여전히 주석 원본은 볼드체로 구분합니다. 특별히 설명은 ‘’ 부호로 구분합니다.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C.44-48)

 

사람은 땅(the earth)처럼 자기 안에 먼저 신앙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이 심기지 않고서는 어떤 선도 생산, 즉 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의 일이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의지(will)의 일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는 않는 것은 마치 우리는 믿음대로 살지는 않지만 믿고는 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들음과 행함을 분리, 결국 일종의 나뉜 마음을 갖게 되며, 아래 구절에서 주님이 ‘어리석다’(foolish)하신 사람들처럼 됩니다.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4, 26)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앞서(20) 보여드린 대로 이해에 속한 것들을, 여기 ‘땅은 생물을 내되’, ‘가축과 기는 것’, ‘땅의 짐승’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말합니다.

(AC.44)

 

태고 시대(太古, the most ancient times)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관련된 것들을 이런 식으로 의미, 이해했는데, 그래서 선지서들과 구약 말씀에서도 늘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걸 표현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두 종류가 있는데 사람들을 해치는 짐승은 악하다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짐승은 선하다 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악들은 악한 짐승들, 가령, 곰, 늑대, 개 등으로 표현하는 반면, 선하고 온순한 것들은 같은 본성을 가진 짐승들, 가령, 어린 암소, 양, 어린 양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짐승’(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것들이며, 그래서 애정(affections)을 의미하는데, 이 본문은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더 낮은 것들, 즉 몸(body)과 더 연결된 것들은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 하는데, 이는 탐욕과 쾌락(cupidities and pleasures)을 말합니다.

(AC.45)

 

‘짐승’이 사람의 애정, 곧 악을 수반하는 악한 애정과 선을 수반하는 선한 애정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수많은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 구체적인 사례들은 첨부하는 주석 원본을 참조하세요.

 

선지서들은 ‘가축’과 ‘땅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earth), 그리고 ‘가축’과 ‘들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분하는데, 그러면서 사람에게 있는 선을 ‘가축’이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과 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animals)이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7:11)

 

AE.462에 의하면, 여기 ‘모든 천사(the angels)는 일층천, 즉 가장 낮은 천국 천사들을, ‘장로들(the elders)은 이층천, 즉 중간 천국 천사들을, ‘네 생물(the four animals)은 삼층천, 즉 가장 높은 천국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AC.46)

 

이들 말씀에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또한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에서는,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 순으로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지요,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만드시고, 마찬가지로 ‘가축’도 만드셨다고 말이지요.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the external)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the internal)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AC.47)

 

그래서 그때, 즉 겉에서 속으로 진행할 때,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다 하는데, 이 상태에서는 이 사람은 말을 할 때, 이해에 속한, 신앙 관련 어떤 원리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스스로 확신합니다. 이때 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움직이는’(animate) 것이며,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처음엔 이해에 속한 신앙으로 말을 하다가, 드디어 의지에 속한, 거기서 나오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 선을 행하기 시작하면, 드디어 그는 여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며, 이때 그로 말미암는 것들을 가리켜 ‘생물’(the living soul), ‘가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가 신앙뿐만 아니라 사랑으로도 행하기를 시작할 때, 그는 영적 인간이 되며,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라 하는데, 이것이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 그러니까 ‘머리 신앙’으로 신앙생활 하던 사람이 드디어 ‘가슴 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영적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가슴으로 한다는 건 생활 속 모든 말과 행동을 주님 신앙, 주님 사랑으로 하는 걸 말합니다.

(AC.48)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C.49-52)

 

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사람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구성원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많은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고요,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한테도 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고 지각된(perceived)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 처음에 주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걸 본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후 자신들을 향해 감히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한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오직 주님에게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들에게 있어 ‘사람’은 오직 주님뿐이셨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선지서들에 나오는 ‘사람’(man),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주님을,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는 지혜와 지성, 즉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4:23, 25)

 

※ 예레미야 당시 상황,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한 상황에 보니 ‘사람’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든 교회든 그 안에 리메인스, 곧 주님의 선과 진리가 남아 있어야 사람이요, 교회인데 당시 유대와 예루살렘은 그런 게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3]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들에게 사람으로(as a man) 나타나셨습니다. 에스겔입니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1:26)

 

다니엘은 두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인자’(人子, the son of man), 즉 같은 말인데, 사람(the man)이라 하였습니다.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7:13-14)

 

[4] 또한 주님은 자주 자신을 가리켜 ‘인자’(the son of man), 즉 사람이라 하시고, 다니엘에서처럼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4:30)

 

‘구름을 타고’(The clouds of heaven)는 말씀(the Word)의 겉 글자의 뜻(the literal sense)인 반면, ‘능력과 큰 영광으로’(power and great glory)는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인데요, 말씀의 모든 것은 그 속뜻으로는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오직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능력과 영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지요.

 

※ 태고교회가 주님을 경외하여 감히 자기를 가리켜 ‘사람’이라는 표현 사용하는 걸 삼갔다는 설명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이렇게 경외해야 하겠습니다.

(AC.49)

 

태고교회는 ‘주님의 형상’(the image of the Lord)이라는 표현으로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서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한테는 영들과 천사들이 최소한 둘씩 와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 이 사실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를 읽어보세요.

 

 

HH.291,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HH.291-302)

33천국과 인류의 결합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Human Race 291모든 선이 주께로부터 오고, 사람에게서 난 선은 하나도 없다는 것, 따라서 아무도 어떤 선이든 자기에게 근원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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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천사들하고는 천국과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영들을 통한 영들의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그리고 천사들을 통한 천국과, 그리고 천국을 통한 주님과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사람은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전적으로 이러한 결합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떠나가 버리면 사람은 즉시 소멸될 것입니다.

 

※ 여기서 말하는 ‘’들은 중간 영계의 영들을 말하며, 특별히 악한 영들을 말합니다. 중간 영계의 영들은 모두 천국 아니면 지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아직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 시작한 사람과는 사뭇 다른 다스림을 받습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와 함께하는 악한 영들이 매사 천사들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이때 천사들은 그가 가장 저급한 악 안으로 거꾸러져 들어가는 대신 어떤 선 쪽으로 구부러지도록 그를 그저 겨우 가이드만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사실, 그 사람의 탐욕을 가지고 선으로, 거짓된 감각을 가지고 진리로 구부리는 정도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하고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천국하고는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그를 다스리기 때문이며, 이 경우, 천사들은 그들의 다스림을 외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천사가 뭘 하고 싶어도 사람이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나머지, 오직 악하고 거짓된 것만 마음먹기 때문에, 도무지 천사들이 무엇을 할 여지가, 그 결과, 도저히 천국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애정이 악한 것을 좋아하여 악한 영들과 호흡이 맞는 한, 천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게 되며, 이때 천사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해야 그가 가장 지독한 지옥에서 덜 지독한 지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거밖에 없습니다.

 

[3] 그러나 그가 거듭남 가운데 있게 되면, 그는 모든 선과 진리에 대해서는 천사들의 다스림(rule)과 격려를 받지만,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 겉으로는 천사들이 다스리는(lead) 것 같지만, 그들은 단지 사역자들일 뿐입니다.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는(governs)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먼저 복수(the plural number)로 이르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하는 것이며, 그러나 여전히 주님 홀로 다스리시며 다 하시기 때문에, 다음 구절에서는 단수(the singular number)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하시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이 이사야에서 분명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44:24)

 

천사들은 더더욱 스스로 이렇게들 고백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오직 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입니다’

 

※ 위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라는 내용 앞에 양심이 찔립니다. 저는 분명 거듭남 가운데 있는 것 같은데도 악과 거짓에 대해 솔직히 저 정도는 아니거든요.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에 나오는 ‘우리’라는 표현을 저는 그동안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삼위 하나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 하나님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 삼신(三神)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삼위일체와 삼신 사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AC.50)

 

‘형상’(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likeness)이 아니고, 모양처럼 생긴 것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하신 것입니다.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이고,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즉 닮음, 유사함(similitude)입니다.

 

※ 형상, 이미지를 그릇으로 보면, 모양, 닮음은 그 그릇에 담긴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 겉모습만 보면 얼핏 주님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그의 행실, 성품, 인성 등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주님을 닮았다, 안 닮았다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영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image)인데,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a son of light)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12:35-36)

 

그를 일컬어 ‘친구’(friend)라고도 하시지요.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5:14-15)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likeness)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a son of God)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12-13)

(AC.51)

 

사람이 영적이면,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말씀에,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신 것입니다. 반면, 그가 천적인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되면, 그때는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반대로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이 시편에서 자신을,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모양인 천적 인간을 묘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8:6-8)

 

그래서 여기 먼저 ‘들짐승’이, 그리고 차례대로 ‘새’, ‘바다의 물고기’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출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의지(will)에 속한 사랑, 즉 무엇을 의도할 때,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 인간하고는 다른 점이, 영적 인간은 먼저 ‘물고기’와 ‘새’가 나오고, 나중에 ‘들짐승’이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이 물고기와 새는 이해(understanding)에 속하며, 이 이해는 곧 신앙에 속합니다.

 

※ 이 ‘영적’, ‘천적’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장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를 읽어보세요.

 

 

HH.20, 4장,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HH.20-28)

4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20천국에는 무한한 다양성이 있다. 완전히 동일한 사회는 하나도 없고, 심지어 단 한 천사도 다른 이와 똑같지 않다.주27 As there are in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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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2)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C.53-54)

 

여기 ‘형상’(image)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자기 형상’(his image)은 신앙을,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은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인 신앙은 이해(understanding)에 속하는 반면, 후자인 사랑은 의지(will)에 속하는데요, 이 사랑은 영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뒤따라 나오는 거지만, 천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AC.53)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가 의미하는 것, 그 속뜻을 태고교회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잃어버리면서, 이 비의(秘義, arcanum, 단수, 복수는 arcana) 역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그들 행복과 기쁨에 있어 최고의 원천이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결혼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지각하고자(perceive)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모두 결혼에 비유했습니다.

 

※ 가령, 햇볕, 곧 해의 빛과 열의 융합을 결혼으로, 자녀들 및 모든 동식물의 자식 및 열매들을 결혼의 결과로, 사람을 영과 육의 결혼으로, 삼위일체를 결혼으로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 ‘결혼’으로 보고 설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적(內的, internal)이었기 때문에, 오직 내적인 것들로만 기뻐했습니다.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육안으로는 그저 볼 뿐, 그러나 이게 뭘 표현하는 걸까 그 영적 천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 이는 참 부러운 특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말이지요.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외적(external)이요, 겉의 사람, 감각의 사람들이어서 영적 천적인 주의 말씀들도 오로지 감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가령, 신령한 사람은 방언도 유창하고 세련되게 해야 하며, 안수 기도를 하면 바로 눈앞에서 병이 척척 낫고, 각종 장애도 바로 나아야 하며, 예언 기도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 받기를 참 좋아하며, ‘’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고 무지하며, 내적(internal)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예 이해조차 못 하면서도 자기는 믿는 사람이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자기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므로 죽으면 천당 간다고 믿는 그런 현실입니다.

 

외적인 것들은, 그들에겐 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내적인 것들로 돌리게 하는, 그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내적인 것들에서 천적인 것들로, 그렇게 그들의 모든 것 되신 주님께로,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자기들 결혼의 행복의 근원으로 지각한(perceived) 천국의 결혼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인간의 이해를 남자(male), 의지를 여자(female)라 하였고, 이 둘이 하나로 움직일 때, 그걸 결혼이라 하였습니다.

 

※ 태고교회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실이 일치할 때, 그는 이해와 의지가 결혼한 상태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나중에 관습이 된 말들이 나왔는데요, 선에 관한 교회의 애정으로부터 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딸’(daughter), ‘처녀’(virgin), 이 경우, ‘시온의 처녀’(the virgin of Zion), ‘예루살렘의 처녀’(the virgin of Jerusalem) 등으로 묘사했지요, 그리고 또한 ‘아내’(wife)라 하였습니다. 이들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장 23절과 3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AC.54)

 

 

이상으로 오늘 본문의 전반부인 24절로 27절의 속뜻을 살피며, 중간중간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으로 필요한 메시지를 대신했습니다. 후반부인 28절로 31절은 다음 주인 31일 주일에 다루겠습니다.

 

거듭남의 최종 목표는 영적 인간, 곧 주님을 사랑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여섯째 날 상태이며, 여기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 안식일 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육일 간의 상태들은 모두 여기까지 오기 위한 단계별 과정들이었으며, 그 하나하나에 있었던 일들은 거듭나는 중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였습니다.

 

이 창세기 1장 설교 원고를 여러 번 숙독, 충분히 이해하셔서, 저마다 주님이 돕고 계시는 자신의 거듭남 전 과정에 열심히 협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2025-08-2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8-24(D1)-주일예배(2612, 창1,24-31, AC.44-63), ‘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의 속뜻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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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4-27, AC.44-5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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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천국 안의 표상과 외관 Representatives and Appearances in Heaven

 

 

 

HH.170, 19장, '천국의 표상과 외관'(HH.170-176)

19천국의 표상과 외관Representatives and Appearances in Heaven 170자연적 빛에 의해서만 생각하는 사람은 천국에도 지상의 사물과 같은 사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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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천사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표상이다 (AC.1971, 3213–3226, 3342, 3457, 3475, 3485, 9457, 9481, 9576, 9577). All things that are visible to the angels are representative (n. 1971, 3213–3226, 3342, 3457, 3475, 3485, 9457, 9481, 9576, 9577). 모든 천국은 표상으로 충만하다 (AC.1521, 1532, 1619). The heavens are full of representatives (n. 1521, 1532, 1619). 천국의 모든 표상은 더 내적일수록 더욱 아름답다 (AC.3475). The representatives are more beautiful as they are more interior in the heavens (n. 3475). 그곳 모든 표상은 천국 빛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그들은 실물 외관(real appearances)이다 (AC.3485). As the representatives there are from the light of heaven they are real appearances (n. 3485). 신성 입류(The Divine influx)는 더 높은 천국들에서 표상들로 바뀌며, 그렇게 해서 더 낮은 천국들에서도 그렇다 (AC.2179, 3213, 9457, 9481, 9576, 9577). The Divine influx is turned into representatives in the higher heavens, and therefrom in the lower heavens also (n. 2179, 3213, 9457, 9481, 9576, 9577). 그런 것들을 표상이라고 하는데, 천사들 눈앞에 마치 자연 안에 있는 것 같은, 즉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AC.9457). Those things are called representative that appear before the eyes of the angels in such form as are in nature, that is, such as are in the world (n. 9457). 그렇게 해서 내적인 것들이 외적인 것들로 바뀐다 (AC.1632, 2987–3002). Internal things are thus turned into external (n. 1632, 2987–3002). 천국에 있는 표상이라는 게 뭔지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예들을 보면 명료하게 이해가 된다 (AC.1521, 1532, 1619–1628, 1807, 1973, 1974, 1977, 1980, 1981, 2299, 2601, 2761, 276, 3217, 3219, 3220, 3348, 3350, 5198, 9090, 10276). What representatives in the heavens are; this made clear by various examples (n. 1521, 1532, 1619–1628, 1807, 1973, 1974, 1977, 1980, 1981, 2299, 2601, 2761, 276, 3217, 3219, 3220, 3348, 3350, 5198, 9090, 10276). 천국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상응에 따른 것이며, 이름하여 표상이라 한다 (AC.3213–3226, 3342, 3475, 3485, 9457, 9481, 9576, 9577). All things seen in the heavens are in accordance with correspondences and are called representatives (n. 3213–3226, 3342, 3475, 3485, 9457, 9481, 9576, 9577). 상응하는 모든 것이 표상이며, 마찬가지로 모든 표상은 그 상응하는 바를 의미한다 (AC.2896, 2987, 2989–2991, 3002, 3225). All things that correspond also represent and likewise signify what they correspond to (n. 2896, 2987, 2989–2991, 3002, 3225).

 

 

128. ‘정원(A garden)이나 ‘공원(park)은 지성과 지혜를 의미한다 (AC.100, 108, 3220). A “garden” or “park” signifies intelligence and wisdom (n. 100, 108, 3220).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과 ‘여호와의 동산(the garden of Jehovah)이 의미하는 것 (AC.99, 100, 1588). What is meant by “the garden of Eden” and “the garden of Jehovah” (n. 99, 100, 1588). 내세의 공원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장엄한지 (AC.1122, 1622, 2296, 4528, 4529)! How magnificent the things seen in parks are in the other life (n. 1122, 1622, 2296, 4528, 4529).나무(Trees)는 퍼셉션과 지식, 거기서 나오는 지혜와 지성을 의미한다 (AC.103, 2163, 2682, 2722, 2972, 7692).Trees” signify perceptions and knowledges, from which wisdom and intelligence are derived (n. 103, 2163, 2682, 2722, 2972, 7692).열매(Fruits)는 사랑의 선과 체어리티의 선을 의미한다 (AC.3146, 7690, 9337).Fruits” signify goods of love and goods of charity (n. 3146, 7690, 9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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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이 입은 것처럼 보이는 옷 The Garments with Which Angels Appear Clothed

 

 

HH.177, 20장, '천사들의 옷'(HH.177-182)

20천사들이 입은 것 같이 보이는 옷The Garments with Which Angels Appear Clothed 177천사들은 사람이고, 천사들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듯이 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옷과 집과 그 밖의 소유가 있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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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상응으로 말씀에서 ‘(garments)은 진리를 의미한다 (AC.1073, 2576, 5319, 5954, 9212, 9216, 9952, 10536). From correspondence “garments” in the Word signify truths (n. 1073, 2576, 5319, 5954, 9212, 9216, 9952, 10536). 진리가 선을 옷 입는 이유 (AC.5248). For the reason that truths clothe good (n. 5248).(A covering, 49:11)은 뭔가 지적인 걸 의미한다. 지성은 진리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AC.6378). A “covering” signifies something intellectual, because the intellect is the recipient of truth (n. 6378).빛나는 세마포 옷(Shining garments of fine linen, 41:42)은 신성으로 말미암는 진리(truths from the Divine)를 의미한다 (AC.5319, 9469).Shining garments of fine linen” signify truths from the Divine (n. 5319, 9469).불꽃(Flame, 3:2)은 영적 선을, 거기서 나오는 빛은 그 선에서 나오는 진리를 의미한다 (AC.3222, 6832).Flame” signifies spiritual good, and the light therefrom truth from that good (n. 3222, 6832).

 

 

130. 천사들과 영들은 옷을 입은 것처럼 나타나는데, 이 옷은 그들이 가진 진리에 따라, 그래서 그들이 가진 지성에 따라 다르다 (AC.165, 5248, 5954, 9212, 9216, 9814, 9952, 10536). Angels and spirits appear clothed with garments in accordance with their truths, thus in accordance with their intelligence (n. 165, 5248, 5954, 9212, 9216, 9814, 9952, 10536). 어떤 천사들의 옷은 반짝반짝 빛나지만, 다른 천사들은 그렇지 않다 (AC.5248). The garments of some angels are resplendent, others are not (n. 5248).

 

 

131. 말씀에서 ‘광택 흰색(glistening white)과 ‘무광택 흰색(white)은 진리를 의미하는데 둘 다 천국의 빛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AC.3301, 3993, 4007). In the Word “glistening white” and “white” signify truth because they are from light in heaven (n. 3301, 3993, 4007).

 

 

132. 천국의 색들은 그곳 빛의 다양성이다 (AC.1042, 1043, 1053, 1624, 3993, 4530, 4742, 4922). Colors in heaven are variegations of the light there (n. 1042, 1043, 1053, 1624, 3993, 4530, 4742, 4922). 색들은 지성과 지혜에 관한 다양한 것들을 의미한다 (AC.4530, 4677, 4922, 9466). Colors signify various things pertaining to intelligence and wisdom (n. 4530, 4677, 4922, 9466). 우림과 둠밈의 보석들은 그들의 색에 따라 천국 선에서 오는 진리의 모든 걸 의미한다 (AC.9865, 9868, 9905). The precious stones in the Urim and Thummim signified, in accordance with their colors, all things of truth from good in the heavens (n. 9865, 9868, 9905). 붉은색을 띠면 선을, 흰색을 띠면 진리를 의미한다 (AC.9466 25:4). So far as colors partake of red they signify good; so far as they partake of white they signify truth (n. 9466 25:4).

 

 

133. 가장 내적 천국의 모든 것은 이노센스이며, 그래서 네이키드(naked)로 나타난다 (AC.154, 165, 297, 2736, 3887, 8375, 9960). All in the inmost heavens are innocences, and in consequence appear naked (n. 154, 165, 297, 2736, 3887, 8375, 9960). 이노센스는 천국에서는 벌거벗음으로 보인다 (AC.165, 8375, 9960). Innocence is presented in heaven as nakedness (n. 165, 8375, 9960). 순진무구하고 순결한 벌거벗음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공격적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AC.165, 213, 8375). To the innocent and the chaste nakedness is no shame, because without offense (n. 165, 213, 8375).

 

 

134. ‘예루살렘’은 정품(genuine) 교리가 그 안에 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AC.402, 3654, 9166).Jerusalem” signifies a church in which there is genuine doctrine (n. 402, 3654, 9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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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거처와 집 The Places of Abode and Dwellings of Angels

 

 

HH.183, 21장, '천사들의 거처와 집'(HH.183-190)

21천사들의 거처와 집The Places of Abode and Dwellings of Angels 183천국에 많은 공동체가 있고, 거기서 천사들이 사람들 살듯이 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집이 있다. 그들의 집은 각자의 삶의 상태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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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천사들한테 도시, 궁전, 집이 있다 (AC.940–942, 1116, 1626–1631, 4622). Angels have cities, palaces, and houses (n. 940–942, 1116, 1626–1631, 4622).

 

 

136. ‘(Houses)은 그 안에 있는 것들과 함께 사람한테 있는 것들, 곧 사람의 마음(mind)에 속한, 그러니까 그의 내면(interiors)에 속한 것들을 의미한다 (AC.710, 2233, 2331, 2559, 3128, 3538, 4973, 5023, 6639, 6690, 7353, 7848, 7910, 7929, 9150).Houses,” with their contents, signify the things in man that belong to his mind, thus his interiors (n. 710, 2233, 2331, 2559, 3128, 3538, 4973, 5023, 6639, 6690, 7353, 7848, 7910, 7929, 9150); 결과적으로 선과 진리에 관련된 것들이다 (AC.2233, 2331, 2559, 4982, 7848, 7929). consequently the things relating to good and truth (n. 2233, 2331, 2559, 4982, 7848, 7929).(Rooms)과 ‘침실(bed chambers)은 거기 있는 내적인(interior) 것들을 의미한다 (AC.3900, 5694, 7353).Rooms” and “bed chambers” signify interior things there (n. 3900, 5694, 7353).집의 지붕(The roof of a house)은 가장 내적인 걸 의미한다 (AC.3652, 10184). The “roof of a house” signifies what is inmost (n. 3652, 10184).나무로 만든 집(A house of wood)은 선과 관련된 것을, ‘돌로 지은 집(a house of stone)은 진리와 관련된 걸 의미한다 (AC.3720). A “house of wood” signifies what relates to good, and a “house of stone” what relates to truth (n. 3720).

 

 

137. 가장 높은 뜻으로, ‘하나님의 집(the house of God)은 신적 선에 관한 주님의 신적 인성을, ‘성전(the temple)은 신적 진리에 관한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는, 이 둘은 선과 진리에 관한 천국과 교회를 의미합니다 (AC.3720 28:17). In the highest sense “the house of God” signifies the Lord’s Divine human in respect to Divine good, and “the temple” the same in respect to Divine truth; and in a relative sense, heaven and the church in respect to good and truth (n. 3720 28:17).

 

 

138. ‘예루살렘(Jerusalem)은 참된 교리가 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AC.402, 3654, 9166).Jerusalem” signifies the church in which is genuine doctrine (n. 402, 3654, 9166).(Gates)은 교회 교리에 대한 소개를, 그리고 교리를 통한 그 교회 소개를 의미한다 (AC.2943 23:10, 4477, 4478).Gates” signify introduction to the doctrine of the church, and through doctrine introduction into the church (n. 2943 23:10, 4477, 4478).기초(Foundation)는 천국, 교회, 그리고 교리가 기초한 진리를 의미한다 (AC.9643 26:19).Foundation” signifies the truth on which heaven, the church, and doctrine are founded (n. 9643 출26:19).

 

 

139. 말씀에서 내적인(interior) 것은 더 높은 걸로 표현되며, 더 높은 것은 내적인 걸 의미합니다 (AC.2148, 3084, 4599, 5146, 8325). In the Word what is interior is expressed by what is higher and what is higher signifies what is interior (n. 2148, 3084, 4599, 5146, 8325).높다(high)는 건 내적인(internal) 거, 그리고 마찬가지로 천국을 의미합니다 (AC.1735, 2148, 4210, 4599, 8153). What is “high” signifies what is internal, and likewise heaven (n. 1735, 2148, 4210, 4599, 8153).

 

 

140. 천국의 산, 언덕, 바위, 골짜기 및 평지는 세상에 있는 것들과 정말 똑같아 보인다 (AC.10608). In heaven, mountains, hills, rocks, valleys, and lands are seen exactly the same as in the world (n. 10608). 산에는 사랑의 선 안에 있는 천사들이, 언덕에는 체어리티의 선 안에 있는 천사들이, 바위에는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천사들이 지낸다 (AC.10438). On the mountains angels who are in the good of love dwell, on the hills those who are in the good of charity, on the rocks those who are in the good of faith (n. 10438). 그래서 말씀에서 ‘(mountains)은 사랑의 선을 의미한다 (AC.795, 4210, 6435, 8327, 8758, 10438, 10608). Therefore in the Word “mountains” signify the good of love (n. 795, 4210, 6435, 8327, 8758, 10438, 10608).언덕(Hills)은 체어리티의 선을 의미한다 (AC.6435, 10438).Hills” signify the good of charity (n. 6435, 10438).바위(Rocks)는 신앙의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 (AC.8581, 10580).Rocks” signify the good and truth of faith (n. 8581, 10580).(Stone)은 바위로 되어 있는데, 마찬가지로 신앙의 진리를 의미한다 (AC.114, 643, 1298, 3720, 6426, 8609, 10376).Stone,” of which rock consists, in like manner signifies the truth of faith (n. 114, 643, 1298, 3720, 6426, 8609, 10376). 이것이 ‘(mountains)이 천국을 상징하는 이유다 (AC.8327, 8805, 9420). This is why “mountains” signify heaven (n. 8327, 8805, 9420). 그리고 ‘산 정상(the summit of a mountain)은 천국의 가장 높은 데를 의미한다 (AC.9422, 9434, 10608). And “the summit of a mountain” signifies the highest part of heaven (n. 9422, 9434, 10608). 또한 고대인들이 왜 산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렸는가 하는 이유다 (AC.796, 2722). Also why the ancients had their holy worship on mountains (n. 796, 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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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공간

Space in Heaven

 

 

HH.191, 22장, '천국의 공간'(HH.191-199)

22천국의 공간Space in Heaven 191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이 세상과 똑같이 장소와 공간 안에 위치한 듯 보인다. 그러나 천사들은 장소나 공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이 말이 모순처럼 들릴 것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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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말씀에서 장소와 공간은 상태를 의미한다 (AC.2625, 2837, 3356, 3387, 7381, 10580). In the Word places and spaces signify states (n. 2625, 2837, 3356, 3387, 7381, 10580); 내 경험에 의하면 (AC.1274, 1277, 1376–1381, 4321, 4882, 10146, 10580). from experience (n. 1274, 1277, 1376–1381, 4321, 4882, 10146, 10580). 거리는 생명 상태의 차이를 의미한다 (AC.9104, 9967). Distance signifies difference of state of life (n. 9104, 9967). 영계에서 장소 간 이동과 변화는 생명 상태의 변화다. 이런 것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AC.1273–1275, 1377, 3356, 9440). In the spiritual world movements and changes of place are changes of the state of life, because they originate in these (n. 1273–1275, 1377, 3356, 9440). 어디를 다니는 것 또한 같다 (AC.9440, 10734). The same is true of journeyings (n. 9440, 10734); 경험을 통해 설명하자면 (AC.1273–1277, 5605). illustrated by experience (n. 1273–1277, 5605). 이런 이유로 ‘어디를 다닌다는 것(to journey)은 말씀에서는 생명 안에서 지내며 나아가는 것이며, ‘어디에 머문다는 것(to sojourn) 역시 같은 의미다 (AC.3335, 4554, 4585, 4882, 5493, 5605, 5996, 8345, 8397, 8417, 8420, 8557). For this reason “to journey” signifies in the Word to live and progress in life; and “to sojourn” has a like meaning (n. 3335, 4554, 4585, 4882, 5493, 5605, 5996, 8345, 8397, 8417, 8420, 8557). 주님과 함께 간다는 건 주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다 (AC.10567). To go with the Lord means to live with Him (n. 10567).

 

 

142. 사람은 몸으로는 그 장소에 그대로 있으면서도 영으로는 먼 거리를 상태의 변화로 주님에 의해 인도될 수 있다. 이 또한 경험한 바에 의하면 (AC.9440, 9967, 10734). Man may be led a long distance in respect to his spirit by means of changes of state, while his body remains in its place, also from experience (n. 9440, 9967, 10734).영에 의해 다른 장소로 인도됨’이라는 게 무엇인지 (AC.1884)? What it is to be “led by the spirit to another place” (n. 1884).

 

 

143. 장소와 공간은 천사와 영들의 내면(interiors) 상태에 따라 시야에 전개된다 (AC.5605, 9440, 10146). Places and spaces are presented to the sight in accordance with the states of the interiors of angels and spirits (n. 5605, 9440, 10146).

 

 

144. 말씀에서 ‘길이(length)는 선을 의미한다 (AC.1613, 9487). In the Word “length” signifies good (n. 1613, 9487).넓이(Breadth)는 진리를 의미한다 (AC.1613, 3433, 3434, 4482, 9487, 10179). “Breadth” signifies truth (n. 1613, 3433, 3434, 4482, 9487, 10179).높이(Height)는 그 등급에 맞는 선과 진리를 의미한다 (AC.9489, 9773, 10181). “Height” signifies good and truth in respect to their degrees (n. 9489, 9773, 10181).

 

 

145. 주님과 천사 간 결합과 임재(presence)는 주님의 사랑과 체어리티에 대한 그들의 수용 정도에 따른다 (AC.290, 681, 1954, 2658, 2886, 2888, 2889, 3001, 3741–3743, 4318, 4319, 4524, 7211, 9128). The conjunction and presence of the Lord with the angels is according to their reception of love and charity from Him (n. 290, 681, 1954, 2658, 2886, 2888, 2889, 3001, 3741–3743, 4318, 4319, 4524, 7211, 9128).

 

 

※ 위 글번호들의 해당 글들은 아래 링크 중 Arcana Coelestia 해당 볼륨들을 다운 받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Redesigned Standard Edition Downloads - Swedenborg Foundation

Most people who cite Swedenborg’s writings use what is currently known as the Standard Edition, the English translation produced in the early 1900s. In the 1990s, these translations were electronically input in order to create a new typeset version, and

swedenborg.com

 

그리고 아래는 해당 볼륨들의 창, 출 장 및 글 번호 범위들입니다. 참고하세요. 아, 그리고 위 링크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일일이 따로 링크 걸어드렸습니다. pdf 파일들입니다.

 

arcana_coelestia_01

1-9

1-1113


arcana_coelestia_02

10-17

1114-2134


arcana_coelestia_03

18-22

2135-2893


arcana_coelestia_04

23-27

2894-3649


arcana_coelestia_05

28-31

3650-4228


arcana_coelestia_06

32-38

4229-4953


arcana_coelestia_07

39-43

4954-5727


arcana_coelestia_08

44-50

5728-6626


arcana_coelestia_09

1-12

6627-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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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

8033-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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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8

9112-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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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0

9974-1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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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6:2)의 속뜻 (2025/8/20)

 

6:1-8은 홍수 전 사람들의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인류 첫 교회 시대인 태고교회 시대, 곧 첫 교회인 아담에서 마지막 교회인 라멕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 교회의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the sons of God)은 신앙에 관한 교리적인 것(the doctrinal things of faith), 즉 신앙에 관한 가르침(the teachings of faith)을 말합니다. 원래 태고교회는 퍼셉션(perception)의 시대여서 이런 표현,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모습은 천적(天的, celestial, heavenly)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딸들(the daughters of man)은 갈망(yearnings, cravings), 즉 간절히 원하되 눈이 돌아갈 정도로 원하는 걸 말합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고교회는 완전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교회였기 때문이지요.

 

보통 진리, 교리, 가르침 같은 건 이해(understanding)를 거쳐 의지(will)로 들어옵니다. 이 둘 사이에는 합리(rational, 이성, 추론)가 다리 역할을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홍수 직전 사람들의 상태는 갈 데까지 간 상태여서 중간에 필요한 합리와 이성을 생략, 바로 신앙의 신비로 직행하고자 했습니다.

 

그 최종 상태가 바로 ‘네피림(Nephilim)입니다. 자신의 교만과 탁월함에 맛이 간 나머지 모든 거룩하고 참된 것을 가볍게 여긴 자들, 곧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생각한 자들이지요. 이런 일은 사람들 속에, 교회 안에  리메인스(remains)가 완전히 고갈될 때 일어납니다.

 

사람, 곧 교회가 이 상태, 이 지경이 되면 주님은 기존 교회를 닫으시고, 새 교회를 여십니다. 이때 각 교회 시대마다 주님이 남겨두시는 남은 자’, 곧 리메인스’의 역할을 담당하던 사람들을 데리고 여십니다. 이때는 바로 노아(Noah)라는 사람들이 이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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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수중 생물들과 새들’의 속뜻 (1:20-23)

 

 

20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1:20-23) 20And God said, Let the waters cause to creep forth the creeping thing, the living soul; and let fowl fly above the earth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of the heavens. 21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ul that creepeth, which the waters caused to creep forth after their kinds, and every winged fowl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2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23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Gen. 1:20-23)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그 다섯 번째 시간, 곧 다섯째 날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한 속뜻을 중간중간 그 적절한 설명과 함께 살펴봅니다.

 

20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AC.39-41)

 

먼저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좀 살펴보면, ‘하나님’은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도 않았거나 거듭나는 중인 사람이 주님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창세기 1장은 그 최종 목표가 영적 인간(靈的, spiritual man), 곧 여섯째 날 상태가 되는 것이므로, 1장 내내 주님은 ‘하나님’으로만 나오십니다. 반면, ‘여호와’는 거듭남이 완료된 상태, 곧 일곱째 날 안식일 상태가 된 천적 인간(天的, celestial man)이 주님을 부르는 호칭이며, 그래서 창세기 24절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옵니다. ‘여호와’와 ‘하나님’은 둘 다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에 대한 호칭이지만, 전자는 신성에 대한 천적 호칭, 후자는 영적 호칭입니다.

 

참고로, 주님의 신적 인성(人性, The Divine Human)에 대한 호칭인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도, ‘예수’는 주님의 신적 인성에 대한 천적 호칭이고, ‘그리스도’는 영적 호칭입니다.

 

천적인 것들은 사랑(love), 선(good), 해(sun) 등이고, 영적인 것들은 신앙(faith), 진리(truth), 달(moon) 등입니다. 가장 내적 천국인 삼층천은 천적 천국인 반면, 중간 천국인 이층천은 영적 천국입니다. 일층천은 자연적 천국입니다. 천적 천국은 주님의 신성 중 선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천사들로 구성되는 반면, 영적 천국은 진리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천사들로 구성됩니다.

 

다음은 전에 작성한 제 블로그 글 일부 인용입니다.

 

 

AC.14 설명, 주님의 ‘호칭’ 관련

AC.14 설명, 주님의 ‘호칭’ 관련 (2024/6/8)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김은경 역) 제1장, ‘천국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The God of Heaven Is the Lord)를 보면, 이 ‘주님’이라는 호칭 관련,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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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삼아 말씀드리면, 보통 개신교 주일예배 마칠 때 하는 축도를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고린도후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13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에서 시작된 기도문인데요, 저는 이 표현이 어쩐지 삼신 사상을 부채질하는 것 같아 다음과 같이 수정해서 사용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이지요. 이 표현 안에 구주 되신 한 분 주님, 그리고 주님의 신성과 신적 인성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령은 어디 계시냐 하시겠지만, 다음은 이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True Christian Religion(1771)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기술 일부 인용인데요,

 

All those of the clerical order who have cherished any right idea of the Lord our savior, when they enter the spiritual world (which generally takes place on the third day after death), receive instruction at first about the Divine trinity, and particularly about the Holy Spirit, that it is not a God by itself, but that the Divine operation proceeding from the one and omnipresent God is what is meant in the Word by the Holy Spirit. (TCR.138)

 

번역하자면,

 

우리 구주이신 주님에 관한 올바른 생각을 그동안 품어온 모든 성직자는 그들의 사후, 영계에 들어올 때, 이는 보통 사후 3일 차 때 일어나는데요, 먼저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 특히 성령(the Holy Spirit)에 대한 소개를 받습니다. 즉 성령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아니라 유일, 편재하시는 하나님(the one and omnipresent God)으로부터 나와 진행하는 신적 활동(the Divine operation)이며, 이것이 말씀에 나오는 성령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영과 육이 있고, 또 활동이 있듯이, 주님도 영 또는 속 사람이신 여호와 하나님, 육 또는 겉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활동이신 성령으로 되어 있는 분이시라는 것이지요. 사람을 자기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신 창조주이시니 사람을 보면 주님을 아실 수 있게 말입니다.

 

아, 그리고 우리가 그러나 분명히 성령을 통해 어떤 인격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이 주님의 어떤 활동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성령을 통해 우리는 주님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

 

다음은 20절 관련 주석들(AC.39-41)입니다.

 

큰 광명체들이 불이 붙어 속 사람 안에 배치된 후, 그 빛을 겉 사람이 받으면서 일단 사람은 살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선을 행하면서도 그걸 자기가 하는 줄로, 진리를 말하면서도 그걸 자기가 말하는 줄로 여겼는데요, 사람이 이렇게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한, 사람은 소위 살아왔다고 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은 죽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 안에는 악하고 거짓된 것밖에는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유로, 사람이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선 그 자체인 그런 선을 사람은 자기 힘으로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선한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선한 것을 의도하는 것조차 절대 불가능하며, 그 결과,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선한 것을 절대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신앙의 교리를 보면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13:37) He that soweth the good seed is the son of man (Matt. 13:37).

 

또 다른 데서 하신 주님 말씀처럼 선은 그 유일하신 참 근원 되시는 분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올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8:19) None is good save one, God (Luke 18:19).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 주님은 사람을 소생시키실 때, 즉 그로 하여금 생명을 향해 거듭나게 하실 때, 주님은 먼저 그가 선을 행하는 것도 자기요, 진리를 말하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걸 허락하시는데요, 그 이유는 그때는 사람이 그밖에 무슨 다른 걸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며, 또 그때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선과 진리는 오직 홀로 한 분이신 주님으로부터만 나온다는 사실을 믿도록(to believe), 그리고 나중에는 지각하도록(to perceive) 그를 인도할 무슨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동안은 그에게 있는 진리와 선은 ‘풀’과 ‘씨 맺는 채소’, 그리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 곧 못 움직이는 것(inanimate)에 비유되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가 사랑과 신앙으로 생생해져서(vivified) 자기가 행하는 모든 선과 말하는 모든 진리를 역사하시는 분이 주님이심을 믿기 때문에, 그는 먼저 ‘물에서 번성하는 생물들’(the creeping things of the water), 이어서 ‘땅 위를 나는 새들’(the fowls which fly above the earth), 끝으로 ‘짐승들’(beasts), 곧 이 모든 움직이는 것들, 그래서 ‘생물’(living souls)이라 하는 것으로 비유됩니다. (AC.39)

 

‘물들이 번성하게 하는 생물’은 겉 사람에게 속한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을, ‘새들’은 보통은 합리적이고 지성적인(rational and intellectual) 것들을 의미하는데, 후자는 속 사람에게 속한 것입니다. (AC.40)

 

40번 글은 많은 관련 구절을 인용, 그렇게 사용된 예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첨부하는 주석 원본을 참고하세요.

 

사람한테나 어울리는(proper to man) 것은 그게 무엇이든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게 제법 메인으로 보일지라도 천사들이 볼 때는 무슨 딱딱한 뼈나 까만 덩어리로 보이지요.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는(from the Lord) 것은 그게 무엇이든 거기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적 천적인 것이 들어 있으며, 만일 볼 수 있도록 재현될 때는 휴먼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정말 믿기 어렵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참된 사실은, 천사 같은 영(an angelic spirit)의 모든 표현 하나, 모든 아이디어 하나, 그리고 모든 지극히 사소한 생각까지도 살아 있는(alive) 상태라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조각들 안에도 생명 그 자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애정을 포함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으로 말미암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들 안에 주님을 향한 신앙이 들어있기 때문인데요, 이들이 여기서 말하는 ‘생물’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또한 일종의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여기서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 ‘기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이들 진리는 사람에게는 아직 너무나 깊은 비밀들(deep secrets)임에도 살짝 말씀드리는 것은 본문에 ‘생물’(the living soul), ‘스스로 움직이는 것’(the thing moving itself)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AC.41)

 

천사에 대한 세 가지 다른 표현이 가끔 나오는데요, 각각 ‘’, ‘천사 같은 영’, ‘천사’입니다. 이는 각각 일층천, 이층천 및 삼층천에 상응합니다. 아마 처음 천적 천국밖에 없던 시절을 염두에 둔, 그래서 진정한 천사는 천적 천사들뿐이라는 생각으로 사용하던 표현 같습니다.

 

윗글은 ‘그게 무엇이든’, ‘모든 표현 하나’, ‘모든 아이디어 하나’, ‘모든 지극히 사소한’, ‘가장 작은 조각들’ 등 뭔가 가장 작은 걸 표현하려고 애쓰는 걸 봅니다. 아마 ‘분자’, ‘원자’ 단위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이 ‘분자’라는 개념은 찾아보니 1811년에 처음 시작되었더군요. 스베덴보리는 1772년에 별세하였으므로 그때까지는 없었던 개념이었고, 그래서 이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나 봅니다. 근접한 성경 표현으로는 ‘일점일획’이 있겠습니다.

 

21절,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C.42)

 

‘물고기들’은 앞서도 말했듯,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앙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된, 그래서 살아있는 상태가 된 기억-지식들을 말합니다. ‘큰 바다짐승들’(whales, 고래, 또는 고래와 같은 거대한 수중 생물들)은 그들, 즉 기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their general principles)을 말하는데, 이들은 세부 원리들이 이들과 종속 관계에 놓이거나(in subordination to), 말미암는(from) 그런 것들입니다. 이 우주에서는 존재(exist) 및 존속(subsist)을 할 수 있으려면 다 자기의 근원이 되는 그런 더 일반적인 원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래들’(Whales), ‘큰 바다짐승들’(great fishes)이 선지서에서 가끔 언급되는 이유는, 이들이 거기서 기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AC.42)

 

마찬가지로 자세한 인용 구절들은 첨부하는 주석 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생물 분류 용어로는 일반적으로 ‘(, Kingdom), ‘(, Phylum 동물, Division 식물), ‘(, Class), ‘(, Order), ‘(, Family), ‘(, Genus), ‘(, Species)이 있습니다. 이중 스베덴보리와 교류가 있었던 린네 때는 ‘’과 ‘’, 두 가지 분류만 있었고, 그래서 스베덴보리도 이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42번 글은 이런 분류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식물계, 동물계, 광물계가 있고, 식물계 아래 또 수많은 분류가 있으며, 맨 아래 ‘’ 아래 수많은 ‘’이, ‘’ 아래 또 수많은 개체가 있듯, 기억-지식을 포함, 주님의 수많은 선과 진리 역시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정리, 정돈되다는 말이지요.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근원, 단 하나의 뿌리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습니다. 모든 분류의 정점에 홀로 주님이 계십니다.

 

22-23절,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C.43)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어마어마하게 결실하며 번성하는데요(fructifies and multiplies), 몸 안에 사는 이생뿐 아니라 사후 저세상에서는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to be fruitful)는 사랑에 속한 것들에 관한,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to multiply)는 신앙에 속한 것들에 관한 서술입니다. 사랑에 속한 ‘열매’(fruit)에는 ‘씨’(seed)가 들어 있는데, 이 씨로 말미암아 놀랍게 번성합니다.

 

들의 풀과 나무, 강과 바다의 물고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가령 해바라기는 그 넓은 둥그런 꽃 한 판에 얼마나 많은 씨가 있으며, 열매, 가령, 옥수수 한 자루엔 얼마나 많은 알갱이가, 벼나 보리, 수수 같은 곡식들 한 줄기 줄기엔 또 얼마나 많은 낱알이 맺히는지... 나무 한 그루도 보면, 가령 은행, 호두, 대추, 밤, 감, 사과 등등... 얼마나 많은 열매, 과일이 열리는지... 물고기는 또 어떤가요? 명란젓 만드는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은, 대구는, 오징어는? 등등... 또한 얼마나 그렇게 어마어마한지...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번성합니다. 이 세상도 이 정도인데 사후 저 천국은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로 생육하고 번성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인간과 달리 동, 식물의 경우, 주님의 이 정하신 복, 명령하신 축복이 예외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이유는, 동, 식물의 경우는 본능만 있을 뿐 스스로 무엇이 없어 주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거나 뒤집거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쓰임새 그대로 존재하며,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 판단하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최선인 줄 알면서도 버젓이 악을 행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뒤집어 훼방을 놓고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으며, 오히려 주님의 복 받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화와 불행은 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오늘 본문 동, 식물의 이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능력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또한 말씀에서 주님의 ‘복(, blessing)은 풍성한 결실과 번성을 의미하는데요, 이런 생육과 번성이 모두 복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AC.43)

 

복은 사람 안에 천국이 있는 상태이며, 피조물이 주님의 질서 안에 있는 문제이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상이 오늘 본문의 속뜻이며, 다음은 그 가운데 특별히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는, 주님처럼 큰 그림을 보자는 겁니다.

 

이 창세기 1장, 거듭남의 여섯 단계, 즉 상태는 대략적인 것입니다. 사실은 각 단계와 단계 사이 그 사이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상태들이 있지만, 큰 틀에서 큼직큼직 주님은 이렇게 보신다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각 단계별 의도하시는 주님의 목표일 수도 있겠어요. 이런 큰 목표, 큰 그림들을 붙들고 가는 것의 유익은, 그래야 사이사이 자잘한 것들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을 보면, 사이사이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데, 그 하나하나에 너무 진지하다 보면 금방금방 실망하고 낙심하고, 그래서 그만 마음이 쉬 식기 때문입니다. 오래 가려면 멀리, 큰 그림을 보며 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기억-지식, 곧 세상 지식도 거듭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속뜻 얘기를 하다 보면 살짝 속과 관련된 것만 중요하고, 겉 관련된 건 모두 별 무가치한 듯한 착각을 할 수도 있는데요, 그게 절대 아닌 것은, 겉이 결국 속의 완성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영이 중요하다고 영, 영만 하면, 결국 사람에 대한 이상한 이해를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영은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육이라는 옷을 입어야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이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 이 세상 삶에서는 겉이라는 옷을 입어야 하며, 그래서 그 겉의 일부인 이 세상 지식, 곧 기억-지식 역시 기회 있을 때, 부지런히 습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자 하셔도 우리 안에 뭔가 기초가 있어야 그걸 일종의 불쏘시개 삼아 불을 피우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세상 지식은 어디까지나 쓰임새, 곧 주님께 쓰임을 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지식조차도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세상 지식은 그걸 소유한 사람을 얼마나 망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네, 이렇게 해서 창세기 1장 다섯째 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틈틈이 복습하셔서 창세기 1장부터 다들 전문가가 되시길, 그래서 그 기초를 아주 튼튼히 놓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

2025-08-17(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8-17(D1)-주일예배(2611, 창1,20-23, AC.39-43), ‘다섯째 날, 수중 생물들과 새들’의 속뜻.pdf
0.45MB
창1,20-23, AC.39-43.pdf
0.41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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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하면서 스마트폰 보는 거, 굉장히 멍청한 짓입니다 (2025/8/15)

 

제목 그대롭니다.

 

그때 천국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천국에서 흘러들던 입류가 끊기고, 대신 세상 입류가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치 계속 파란불이어서 안 서고 좀 주욱 갔으면 좋겠는데, 신호 때문에 계속 가다 서다 반복하는 것하고도 같고, 늘 들어오던 월급이나 연금이 끊기는 것하고도 같습니다.

 

천국 입류는 나만 정신 차리면 언제든 재개 가능하지만, 못 받은 그만큼 큰 손해 아닌가요?

 

차라리 그 시간에 말씀 한 구절 더 암송하고, 말씀 한 챕터 더 리딩하시거나 천국에 대해, 말씀의 속뜻에 대해 배운 것들을 생각하시거나, 아니면 따로 기도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스베덴보리처럼 제게도 가끔 천국을 경험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의지가 너무 약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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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서 선한 사람, 모르면서 악한 사람, 나는 어느 쪽일까? (2025/8/13)

 

제목 그대롭니다.

 

모르면서 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르지만 착한 사람들입니다. 겸손하고 순진하며, 주위를 환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한테서는 좋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반면, 모르면서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르는데다 나쁘기까지 합니다. 교만하고 약삭빠르며, 주위를 어둡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한테서는 나쁜 기운이 느껴집니다. 같이 있고 싶지 않고, 마음이 불편하며 싫습니다.

 

이런 건 종교, 학력, 소유, 정치 이념하고도 별로 상관없는 거 같습니다. 교회를 다니니 안 다니니, 대학을 나왔니 안 나왔니, 부자니 가난하니,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니 사회, 공산 민주주의니 하고도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아, 이 정치 이념은 좀... 다른가요?

 

자칭 기독교인이다, 나는 교회 다닌다 하여도 악인이 있는가 하면, 타 종교인이어도 선한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또 대학을 나왔어도 악인이 있는가 하면, 안 나왔어도 선인이 있는 걸 보면, 그리고 부자이면서도 선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악한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소위 좌파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정치 이념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네, 이 경우는 좀... 뭘 모르고 좌파하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알고 하는 사람들은... 그냥 악과 거짓의 화신들인 것 같아요. 이들은 살아생전 이미 지옥에 속한, 자기에게 맞는 지옥 특정 사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건 자기 사랑, 자아 사랑(the love of self)의 사람, 그러니까 잘난 체하는 사람, 곧 주님의 자리에 자기가 올라서고자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로 결정 나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종교, 정치 이념, 학력, 소유 등을 전부 자기를 사랑하는 용도로 그럴듯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과 천국, 영계, 속 사람, 내면세계 등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에 속한 나라에 대해 거의 모르면서도 ‘’이 아닌 ‘’ 얘기를 하면 화를 내고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을 통해서 ‘’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데도 말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모르면서 선해도, 그러니까 선해 보여도 그 뿌리가 주님 사랑(the love of Lord)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겉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 사람이 선해야 합니다. 천국은 속 사람이 선한 사람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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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네 방위 The Four Quarters in Heaven

 

 

HH.141, 16장, '천국의 네 방위'(HH.141-153)

16천국의 네 방위The Four Quarters in Heaven 141천국과 지상에는 각기 그곳의 해에 의해 결정되는 동서남북 네 방위가 있다. 천국에서는 천국의 해이신 주님에 의해서, 지상에서는 세상 해에 의해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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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가장 높은 뜻으로, 주님은 동방(the east [oriens])이시다. 주님은 천국의 해이시며, 늘 떠오르시고 결코 지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AC.101, 5097, 9668). In the highest sense the Lord is the east [oriens], because He is the sun of heaven, which is always rising and never setting (n. 101, 5097, 9668).

 

 

113. 천국의 모두는 주님을 향해 몸을 돌린다 (AC.9828, 10130, 10189, 10420). In heaven all turn themselves to the Lord (n. 9828, 10130, 10189, 10420). 그럼에도 주님을 향해 몸을 돌리는 것은 천사들이 아니다. 주님이 천사들로 하여금 주님을 향해 돌아서게 하시는 것이다 (AC.10189). Nevertheless, it is not the angels that turn themselves to the Lord, but the Lord turns the angels to Himself (n. 10189). 천사들이 주님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천사들과 함께하시는 것이다 (AC.9415). It is not that the angels are present with the Lord, but the Lord is present with the angels (n. 9415).

 

 

114. 영계에서는 모두가 항상 자신들의 사랑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리고 그곳의 방위들은 얼굴에서 시작하고 얼굴로 결정된다 (AC.10130, 10189, 10420, 10702). In the spiritual world all constantly turn themselves to their loves; and the quarters there have their beginning in the face and are determined by it (n. 10130, 10189, 10420, 10702). 얼굴은 내면(the interiors)에 대한 상응으로 형성된다 (AC.4791–4805, 5695). The face is formed to a correspondence with the interiors (n. 4791–4805, 5695). 그래서 내면은 얼굴로 빛난다 (AC.3527, 4066, 4796). Therefore the interiors shine forth from the face (n. 3527, 4066, 4796). 천사들한테는 얼굴과 내면이 하나다 (AC.4796, 4797, 4799, 5695, 8250). With angels the face makes one with the interiors (n. 4796, 4797, 4799, 5695, 8250). 얼굴과 그 근육들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내면의 입류 (AC.3631, 4800). The influx of the interiors into the face and its muscles (n. 3631, 4800).

 

 

115. 이마는 천국 사랑에 상응한다. 그래서 말씀에서 ‘이마’는 사랑을 의미한다 (AC.9936). The forehead corresponds to heavenly love; therefore in the Word the “forehead” signifies that love (n. 9936). 눈은 이해에 상응한다. 이해는 내적 시각(internal sight)이기 때문이다 (AC.2701, 4410, 4526, 9051, 10569). The eye corresponds to the understanding, because the understanding is internal sight (n. 2701, 4410, 4526, 9051, 10569). 이런 이유로, ‘눈을 든다(to lift up the eyes), ‘본다(to see)는 이해, 지각 및 보는 것(to observe)을 의미한다 (AC.2789, 2829, 3198, 3202, 4083, 4086, 4339, 5684). For this reason “to lift up the eyes” and “to see” signifies to understand, perceive, and observe (n. 2789, 2829, 3198, 3202, 4083, 4086, 4339, 5684).

 

 

116. 말씀에서 ‘주님의 살(the Lord’s flesh)은 주님의 신적 인성(His Divine human)을, 그리고 주님 사랑의 신적 선(the Divine good of His love)을 의미한다 (AC.3813, 7850, 9127, 10283). In the Word “the Lord’s flesh” signifies His Divine human, and the Divine good of His love (n. 3813, 7850, 9127, 10283). 그리고 ‘주님의 피(the Lord’s blood)는 신적 진리와 신앙의 거룩함(Divine truth and the holy of faith)을 의미한다 (AC.4735, 4978, 6978, 7317, 7326, 7846, 7850, 7877, 9127, 9393, 10026, 10033, 10152, 10210). And “the Lord’s blood” signifies Divine truth and the holy of faith (n. 4735, 4978, 6978, 7317, 7326, 7846, 7850, 7877, 9127, 9393, 10026, 10033, 10152, 10210).

 

 

117. 말씀에서 ‘(, the east)은 분명하게 지각된 사랑을 (AC.1250, 3708); In the Word the “east” signifies love clearly perceived (n. 1250, 3708);(西, the west)는 흐릿하게 지각된 사랑을 (AC.3708, 9653); the “west” love obscurely perceived (n. 3708, 9653);(, the south)은 빛, 즉 지혜와 지성의 상태를 (AC.1458, 3708, 5672); the “south” a state of light, that is, of wisdom and intelligence (n. 1458, 3708, 5672);(, the north)은 불명료한 상태를 의미한다 (AC.3708). and the “north” that state in obscurity (n. 3708).

 

 

118. 악마라고 하는 자들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그리고 악령이라고 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무엇인지 (AC.947, 5035, 5977, 8593, 8622, 8625). Who and what those are who are called genii, and who and what those are who are called spirits (n. 947, 5035, 5977, 8593, 8622, 8625).

 

 

119.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 안에 있는 자들은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린다 (AC.10130, 10189, 10420, 10702). Those that are in the loves of self and of the world turn themselves backwards from the Lord (n. 10130, 10189, 10420, 10702).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천국을 만드는 반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은 지옥을 만든다. 이 둘은 서로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AC.2041, 3610, 4225, 4776, 6210, 7366, 7369, 7490, 8232, 8678, 10455, 10741–10745). Love to the Lord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 make heaven, while love of self and love of the world make hell, because the two are opposite (n. 2041, 3610, 4225, 4776, 6210, 7366, 7369, 7490, 8232, 8678, 10455, 10741–1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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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 Changes of State of the Angels in Heaven

 

 

HH.154, 17장, '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HH.154-161)

17천국 천사들의 상태 변화Changes of State of the Angels in Heaven 154천사들의 상태 변화라는 것은 그들의 사랑과 신앙, 거기서 나온 지혜와 지성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삶의 상태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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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천국에는 아침 전 새벽에 상응하는 상태는 있지만, 밤에 상응하는 상태는 없다 (AC.6110). In heaven there is a state corresponding to the dawn that precedes morning, but no state corresponding to night (n. 6110).새벽’은 처음 상태와 마지막 상태 사이 중간 상태다 (AC.10134). The “dawn” signifies a middle state between the last and the first (n. 10134).

 

 

121. 이 세상 하루 중 시간들처럼 천국에서 일어나는 각성과 지각(enlightenment and perception) 관련, 상태들의 교대 (AC.5672, 5962, 6110, 8426, 9213, 10605). Alternations of state in respect to enlightenment and perception occur in heaven, like the times of day in the world (n. 5672, 5962, 6110, 8426, 9213, 10605). 말씀에 나오는 ‘’과 ‘’는 일반적으로 모든 상태를 의미한다 (AC.23, 487, 488, 493, 893, 2788, 3462, 4850, 10656). In the Word “day” and “year” signify all states in general (n. 23, 487, 488, 493, 893, 2788, 3462, 4850, 10656).아침’은 어떤 새로운 상태의 시작, 그리고 사랑의 상태를 의미한다 (AC.7218, 8426, 8427, 10114, 10134).Morning” signifies the beginning of a new state, and a state of love (n. 7218, 8426, 8427, 10114, 10134).저녁’은 빛과 사랑이 기우는 상태를 의미한다 (AC.10134, 10135).Evening” signifies a state of declining light and love (n. 10134, 10135).’은 사랑이나 신앙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AC.221, 709, 2353, 6000, 6110, 7870, 7947).Night” signifies a state of no love or faith (n. 221, 709, 2353, 6000, 6110, 7870, 7947).

 

 

122. 사람의 본성(own [proprium])은 자아를 사랑하는 것이다 (AC.694, 731, 4317, 5660). Man’s own [proprium] is loving self (n. 694, 731, 4317, 5660). 주님은 인간 본성에 관한 것(what is man’s own)이 옆으로 비켜서지 않는 한 임재하실 수 없으시다 (AC.1023, 1044). The Lord cannot be present unless what is man’s own is set aside (n. 1023, 1044). 사람은 주님에 의해 선 안에 머무를 때라야 실제로 옆으로 비켜설 수 있게 된다 (AC.9334–9336, 9447, 9452–9454, 9938). It is actually set aside when one is held in good by the Lord (n. 9334–9336, 9447, 9452–9454, 9938).

 

 

123. 천사들은 영원히 완벽해져 간다 (AC.4803, 6648). The angels are being perfected to eternity (n. 4803, 6648). 천국에서는 한 상태가 다른 상태와 똑같은 경우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완벽해지는 과정이 절대 멈추지 않는다 (AC.10200). In the heavens one state is never just like another, and from this there is an unceasing process of perfection (n. 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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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시간

Time in Heaven

 

 

HH.162, 18장, '천국의 시간'(HH.162-169)

18천국의 시간Time in Heaven 162천국에도 지상에서와 같이 모든 것이 계속되고 진행되지만, 천사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what time and space are)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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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말씀에서 시간은 상태를 의미한다 (AC.2788, 2837, 3254, 3356, 4814, 4901, 4916, 7218, 8070, 10133, 10605). Times in the Word signify states (n. 2788, 2837, 3254, 3356, 4814, 4901, 4916, 7218, 8070, 10133, 10605). 천사들은 시공간에 관한 생각에서 물러나 생각한다 (AC.3404). Angels think apart from the idea of time and space (n. 3404); 그 이유들 (AC.1274, 1382, 3356, 4882, 4901, 6110, 7218, 7381). the reasons why (n. 1274, 1382, 3356, 4882, 4901, 6110, 7218, 7381). 말씀에서 ‘(a year)의 의미 (AC.487, 488, 493, 893, 2906, 7828, 10209). What a “year” signifies in the Word (n. 487, 488, 493, 893, 2906, 7828, 10209).(a month)의 의미 (AC.3814). What a “month” (n. 3814).(a week)의 의미 (AC.2044, 3845). What a “week” (n. 2044, 3845).(a day)의 의미 (AC.23, 487, 488, 6110, 7680, 8426, 9213, 10132, 10605). What a “day” (n. 23, 487, 488, 6110, 7680, 8426, 9213, 10132, 10605).오늘(today)의 의미 (AC.2838, 3998, 4304, 6165, 6984, 9939). What “today” (n. 2838, 3998, 4304, 6165, 6984, 9939).내일(tomorrow)의 의미 (AC.3998, 10497). What “tomorrow” (n. 3998, 10497).어제(yesterday)의 의미 (AC.6983, 7114, 7140). What “yesterday” (n. 6983, 7114, 7140).

 

 

125. 사람들은 영원을 생각할 때 시간과 관련짓지만, 천사들은 시간으로부터 물러난다 (AC.1382, 3404, 8325). Men have an idea of eternity associated with time, but angels apart from time (n. 1382, 3404, 8325).

 

 

126. 사람은 천사들처럼 시간 개념에서 물러나 생각하지 않는다 (AC.3404). Man does not think, as angels do, apart from the idea of time (n. 3404).

 

 

※ 위 글번호들의 해당 글들은 아래 링크 중 Arcana Coelestia 해당 볼륨들을 다운 받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Redesigned Standard Edition Downloads - Swedenborg Foundation

Most people who cite Swedenborg’s writings use what is currently known as the Standard Edition, the English translation produced in the early 1900s. In the 1990s, these translations were electronically input in order to create a new typeset version, and

swedenborg.com

 

그리고 아래는 해당 볼륨들의 창, 출 장 및 글 번호 범위들입니다. 참고하세요. 아, 그리고 위 링크로 갈 필요 없이 바로 직접 받으실 수 있도록 일일이 따로 링크 걸어드렸습니다. pdf 파일들입니다.

 

arcana_coelestia_01

1-9

1-1113


arcana_coelestia_02

10-17

1114-2134


arcana_coelestia_03

18-22

2135-2893


arcana_coelestia_04

23-27

2894-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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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1

365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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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8

4229-4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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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3

4954-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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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0

5728-6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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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6627-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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