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

 

마음이 문자적 의미, 그러니까 기록된 겉 글자에만 붙어 있는 동안에는, 그 안에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 어떤 사람도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첫 장들에서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세상의 창조, 낙원이라고 하는 에덴동산, 그리고 처음 창조된 사람이라는 아담에 관한 이야기뿐입니다. 누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 곧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뒤따르는 페이지들에서 충분히 입증될 텐데요, 곧 이 내용들 안에는 지금까지 결코 드러난 적이 없는 비밀들(arcana)이 들어 있으며, 실상 창세기 1장은 그 속뜻으로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새로운 창조, 즉 그의 거듭남에 관한 것을, 구체적으로는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그 장의 가장 작은 표현 하나까지도 이런 내용들을 표상하고 의미하며, 그 속에 품고 있을 정도라는 사실입니다. While the mind cleaves to the literal sense alone, no one can possibly see that such things are contained within it. Thus in these first chapters of Genesis, nothing is discoverable from the sense of the letter other than that the creation of the world is treated of, and the garden of Eden which is called paradise, and Adam as the first created man. Who supposes anything else? But it will be sufficiently established in the following pages that these matters contain arcana which have never yet been revealed; and in fact that the first chapter of Genesis in the internal sense treats in general of the new creation of man, or of his regeneration, and specificall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is in such a manner that there is not the least expression which does not represent, signify, and enfold within it these things.

 

 

해설

 

AC.4는 스베덴보리가 앞선 AC.1, 2, 3에서 제시한 원리를, 구체적인 성경 본문, 곧 창세기 1, 2, 3장에 직접 적용하는 첫 단락입니다. 여기서 그는 더 이상 추상적인 말씀론이나 원리 설명에 머물지 않고, 독자가 실제로 손에 쥐고 있는 성경 텍스트를 정면으로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매우 솔직한 인정입니다. 마음이 문자적 의미, 곧 기록된 겉 글자에만 매여 있는 한, 그 안에 담긴 깊은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독자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누가 그 외의 다른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독자가 창세기 초반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이해를 그대로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세상의 창조, 에덴동산, 아담이라는 최초의 인간, 이것이 기록된 겉 글자에서 보이는 전부입니다. 다시 말해, 겉 글자만으로, 겉뜻으로만 읽는 독자는 잘못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거기까지’만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멈출 때 발생합니다. AC.3에서 이미 말했듯이, 글자는 겉 사람에 해당하며, 속 사람이 누락될 경우, 살아 있다 할 수 없습니다. AC.4는 이 구조를 성경 본문에 직접 대입합니다. 창세기 1, 2, 3장을 오직 우주론적 기원 이야기나 고대 신화적 서사로만 읽을 경우, 그 본문은 겉 사람의 차원에만 머물게 됩니다. 형태는 있으나 생명이 감지되지 않지요.

 

이제 스베덴보리는 결정적인 주장을 제시합니다. 창세기 첫 장은 그 속뜻에 있어, ‘인간의 새로운 창조’, 곧 ‘거듭남’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창조’는 우주의 물질적 시작이 아니라, 인간 속 사람의 형성과 질서를 뜻합니다. 빛과 어둠, 물의 분리, 땅과 식물, 해와 달, 생물의 창조라는 일련의 과정은, 한 인간이 무질서한 상태에서 점차 질서를 회복하며 주님과 결합해 가는 영적 과정을 상응(相應, correspondence)으로 표현합니다.

 

더 나아가 스베덴보리는 이 장이 ‘구체적으로는 태고교회’를 다룬다고 말합니다. 이는 창세기 이야기가 단지 개인의 내면 변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한 교회의 영적 상태를 동시에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태고교회는 주님과의 직접적인 결합 속에서 사랑을 중심으로 살았던 교회이며, 창세기 1장의 질서와 조화는 바로 그 교회의 내적 상태를 반영합니다. 이처럼 말씀은 개인과 공동체, 내면과 역사라는 여러 층위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이 단락에서 가장 강렬한 표현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가장 작은 표현 하나까지도 이러한 것들을 표상하고, 의미하며, 그 안에 품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선언은, 스베덴보리 해석학의 절대적 일관성을 보여 줍니다. 그는 어떤 단어는 속뜻이 있고, 어떤 단어는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표현이 예외 없이 속뜻을 지니고 있으며, 그 속뜻은 거듭남과 태고교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자에게 큰 전환을 요구합니다. 창세기 초반을 ‘이미 다 아는 이야기’로 읽는 태도에서,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하는 이야기’로 읽는 태도로의 전환입니다. 문자에 머물면 익숙함만 남지만, 속뜻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 세계가 자신의 개인적 통찰이 아니라, 앞으로의 설명을 통해 ‘충분히 입증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AC 전체가 하나의 증명 과정임을 미리 밝히는 선언입니다.

 

결국 AC.4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과거의 이야기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할 거듭남의 이야기로 읽을 것인가. 겉 사람의 눈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속 사람이 깨어나 그 속뜻을 인식하도록 허락할 것인가. 스베덴보리는 후자를 선택하도록 초대하며, ‘Arcana Coelestia’의 본격적인 여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심화

 

1.표상’(表象, representative)

 

 

AC.4, 심화 1, ‘표상’(表象, representative)

AC.4.심화 1. ‘표상’(表象, representative)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은 스베덴보리 사상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개념이지만, 처음 들으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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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상응’(相應, correspondence)

 

 

AC.4, 심화 2, ‘상응’(相應, correspondence)

AC.4.심화 2. ‘상응’(相應, correspondence) ‘상응’(correspondence)은 스베덴보리 사상을 이해하는 데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처음 들으면 굉장히 어려운 철학 용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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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 서문, '이 모든 말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

AC.5 이 모든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리 말씀드릴 것은,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로 말미암아, 저는 이제 수년 동안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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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 서문, '말씀의 겉과 속, 사람의 겉 사람과 속 사람'

AC.3 이러한 생명이 없다면, 겉 글자만 보겠다는 말씀은 죽은 것입니다. 이 경우는 기독교 세계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인간이 내적 인간(internal man, 속 사람)과 외적 인간(external man, 겉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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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

 

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는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그리고 그와 연결된 모든 걸 가리킨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 곧 겉 글자만으로는, 그러니까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그저 유대교회의 외적 의식들과 규례들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실상은 그 말씀 전체 곳곳에는 외적인 것들, 곧 그런 겉 글자 상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어떤 내적인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다만 극히 일부만이 주님에 의해 사도들에게 드러나고 설명되었을 뿐인데요, 예를 들면, 희생 제사들은 주님을 상징하며,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은 천국을 상징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천국의 가나안’,하늘의 예루살렘이라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낙원도 그렇고요. From the mere letter of the Word of the Old Testament no one would ever discern the fact that this part of the Word contains deep secrets of heaven, and that everything within it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bears reference to the Lord, to his heaven, to the church, to religious belief, and to all things connected therewith; for from the letter or sense of the letter all that anyone can see is that—to speak generally—everything therein has reference merely to the external rites and ordinances of the Jewish church. Yet the truth is that everywhere in that Word there are internal things which never appear at all in the external things except a very few which the Lord revealed and explained to the apostles; such as that the sacrifices signify the Lord; that the land of Canaan and Jerusalem signify heaven—on which account they are called the heavenly Canaan and Jerusalem—and that paradise has a similar signification.

 

 

해설

 

이 서문 첫 문장은 ‘Arcana Coelestia(天界秘義, 1749-1756, 라틴, , 출 속뜻 주석, 약어 AC,  10,837개 글)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이자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처음부터 독자에게, 이 저작이 단순한 성경 주석이나 경건한 묵상서가 아니라, ‘성경의 문자 아래 감추어진 하늘의 질서와 주님의 섭리를 해명하는 작업’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구약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는 사람이라면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는데, 이는 독자의 지적 능력이나 신앙의 진실성을 문제 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자적 의미라는 읽기의 층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핵심 구분은 외적 의미와 내적 의미입니다. 겉뜻과 속뜻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외적 의미는 역사적 사건, 율법, 의식, 규례, 인물들의 행위와 같은 형태로 나타나며, 실제로는 유대 교회의 종교사나 민족사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내적 의미는 그러한 외적 형식 안에 담긴 ‘영적 실재의 구조’, 곧 천국의 질서, 교회의 본질, 인간 내면의 상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중요한 점은 내적 의미가 외적 의미와 나란히 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의미가 내적 의미를 담고 표현하는 그릇이라는 사실입니다. 문자만 붙들면 그릇은 보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가 바로 ‘상응(相應, correspondence)입니다. 상응이란 외적인 사물이나 사건, 제도와 내적인 영적 실재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 있는 대응 관계를 말합니다. 제사는 단순한 고대 종교의식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자기희생, 그리고 인간과의 결합을 상응적으로 표현합니다. 가나안 땅은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선과 진리가 거하는 상태, 곧 천국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한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교회의 중심 진리,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적 진리가 질서 있게 거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낙원 또한 신화적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가 조화를 이루는 내적 생명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계시하신 ‘몇 가지 예외’를 특별히 언급합니다. 이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시거나, 성전과 제사, 떡과 포도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신 장면들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의 내적 의미를 부분적으로 열어 보인 책이며, ‘Arcana Coelestia’는 그 열림을 체계적으로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저작은 신약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신약이 열어 둔 문을 끝까지 따라 들어가는 시도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표현은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라는 말입니다. 이는 스베덴보리 해석학의 엄격함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성경의 어떤 사건뿐 아니라, 어떤 단어, 어떤 이름, 어떤 반복, 어떤 숫자도 우연이 아니며, 각각이 고유한 영적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이는 임의적 알레고리가 아니라, 천국과 인간 정신의 구조가 질서 있게 상응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그래서 AC를 읽다 보면 때로는 지나치게 세밀해 보일 정도의 해설이 이어지지만, 그것은 과잉 해석이 아니라 일관된 세계관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결국 이 서문은 독자에게 하나의 방향 선택을 요구합니다. 성경을 역사적 기록이나 도덕적 교훈의 모음으로만 읽을 것인지, 아니면 그 안에 담긴 하늘의 언어를 배우려 할 것인지의 선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후자를 택했으며, ‘Arcana Coelestia’는 그 배움의 여정 전체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첫 단락은 이후 수천 개의 단락을 읽어 나가며 길을 잃지 않도록 세워 둔 나침반과 같습니다. 문자에 머무르지 말고, 그 안에서 주님과 천국과 교회를 보라는 요청, 이것이 AC 서문 1번이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입니다.  

 

 

심화

 

1. religious belief

 

 

AC.1, 심화 1, ‘religious belief’

AC.1.심화 1. ‘religious belief’ AC.1에서 ‘religious belief’는 말씀의 내적 의미가 무엇을 다루는지를 설명하는 열거 가운데 등장합니다. 그 문장은, 겉 글자만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그 안에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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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층위

 

 

AC.1, 심화 2, ‘층위’

AC.1.심화 2. ‘층위’ ‘층위’라는 말은 일상 한국어에서는 자주 쓰이지 않지만, 스베덴보리 신학에서는 거의 구조를 떠받치는 기둥 같은 개념입니다. 먼저 ‘층위’란 무엇인가를 가장 간단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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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층위에 대한 원어 표현

 

 

AC.1, 심화 3, ‘층위’에 대한 원어 표현

AC.1.심화 3. ‘층위’에 대한 원어 표현 ‘층위’라는 한국어는 번역어이기 때문에, 원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의미의 뉘앙스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 저작에서 ‘층위’에 해당하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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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적 진리

 

 

AC.1, 심화 4, ‘신적 진리’

AC.1.심화 4. ‘신적 진리’ ‘진리’와 ‘신적 진리’가 같은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 체계 안에서는 분명한 구별이 있습니다. 먼저 가장 단순한 구별부터 말씀드리면,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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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 서문, '말씀은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들어 있다'

AC.2 그러나 기독교 세계는 아직도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아니 가장 작은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 가장 미세한 점 하나에 이르기까지도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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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라틴 Arcana Coelestia, 영어 Secrets of Heaven, 天界秘義, 1749-1756, 창, 출 속

본 글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의 대표 저작인 ‘Arcana Coelestia’(약어 AC)에 대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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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스베덴보리(1688-1772, 스웨덴)의 대표 저작인 ‘Arcana Coelestia’(약어 AC)에 대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

다음은 제가 번역하는 책들의 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입니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출생, 웁살라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광물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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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스베덴보리의 수십 권에 달하는 저작들은 전부 약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AC는 ‘천계비의(天界秘義, Arcana Coelestia, 1749-1756, 라틴)의 약어이고, HH는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1758), CL은 ‘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 1768)의 약어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서들(Writings)

다음은 스베덴보리의 저서목록(Writings)입니다. 인류사에 존재했던 사람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는 밀턴, 괴테 그리고 스베덴보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 생전에 가장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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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보통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속뜻을 풀어낸 책’으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목적을 가진 저작입니다. 이 책은 성경의 문장을 하나하나 해석하는 주석서이면서 동시에, 성경이 어떤 책인지, 왜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불리는지, 그리고 그 말씀이 인간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체계적인 신학서입니다. 저자인 스베덴보리는 이 책을 통해 ‘성경은 단순한 종교 문헌이 아니라,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언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칩니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전제는 ‘성경에는 문자로 보이는 의미 너머에 속뜻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 이야기, 도덕 교훈, 종교 규범의 모음으로 읽습니다. 물론 그런 읽기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성경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자에 드러난 이야기들은 겉모습일 뿐이며, 그 안에는 인간의 내면 상태, 신앙의 성장 과정,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이 숨겨진 차원을 그는 ‘아르카나’, 곧 ‘비밀’이라고 부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이야기를 과거의 사건으로만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과학적 보고서가 아니라, 한 인간이 무질서한 상태에서 질서를 회복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설명합니다. 빛과 어둠의 분리, 물과 땅의 구분, 생명의 점진적 등장 등은 모두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단계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그때 거기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고 이해됩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은 ‘상응’입니다. 상응이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 있는 연결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은 단순한 물리적 빛이 아니라 진리를, ‘’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를, ‘’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경의 거의 모든 사물과 사건은 영적인 의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이 상응의 법칙을 통해 성경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구조로 읽어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익숙한 성경 이야기가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단순한 최초의 남녀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상태를 나타내며, 에덴동산은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사랑과 지혜가 조화를 이루는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뱀은 실제 동물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상징합니다. 이런 해석은 처음에는 낯설고 심지어 거부감을 줄 수도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임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원리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이 단순한 상징 해설서와 다른 점은, 모든 해석이 결국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점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 따르면 성경의 모든 내용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주님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성경이 살아 있는 이유도 그 안에 주님을 향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구절이든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문자 차원에 머물러 있는 이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또한 인간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통찰을 제공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을 ‘겉 사람’과 ‘속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겉 사람은 우리가 일상에서 드러내는 생각과 행동의 차원이고, 속 사람은 그 배후에 있는 사랑과 의도의 차원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성경 이야기가 바로 이 속 사람의 변화와 회복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성경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집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책이 신앙을 지식이나 교리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을 삶과 분리된 개념으로 보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사랑과 행동으로 드러나며, 인간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에서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은, 진리는 반드시 선과 결합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이론서이면서 동시에 매우 실천적인 책이기도 합니다.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성경을 읽는 새로운 눈을 열어 준다는 데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본문이 살아 움직이며, 반복되는 이야기와 긴 족보, 복잡한 율법들조차도 의미를 갖게 됩니다. 성경이 갑자기 ‘지루한 책’에서 ‘끝없이 깊어지는 책’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으며, 단번에 이해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성경이 원래 그런 책이라고 말합니다. 천국과 연결된 책이기에, 한 번에 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독자에게 어떤 믿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믿어라’라고 명령하기보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언제나 주님과의 더 깊은 만남, 그리고 삶의 변화가 놓여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교리를 배우는 것이라기보다, 성경을 통해 자기 자신과 삶, 그리고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 아래 링크는 그 첫 번째 글인 AC.1번 글로 이어지는, AC를 시작하는 링크입니다. 라틴어 원본 대신 Potts 영역(1888-1902)으로 대신하였으며, 각 글 하단에 이해를 돕기 위해 원본에는 없는 해설들을 제가 달아 나가고 있으니, 읽어 보시고 도움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혹시 특정 번호의 글을 검색하실 때에는 글 목록 우측 상단 돋보기를 클릭, 왼쪽 목록에서 '태그'를 선택하신 후, 'AC 3' 형식으로 찾으시거나 '제목'에서 특정 키워드로 찾으시면 되겠습니다. 'AC 3'처럼 가운데 한 칸 띄는 이유는 이 검색기가 특수 문자 사용을 불허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처음부터 태그 입력을 저런 형태로 해놓았습니다.

 

 

AC.1, 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을 시작하며' (AC.1-5)

AC.1 구약의 말씀을 단순히 겉 글자로만 보아서는, 그 안에는 하늘의 깊은 비밀들이 들어 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주님과 주님의 천국, 교회, 종교적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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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相應, correspondence)이란 무엇인가 (2025/7/22)

 

오늘은 상응(相應, correspondence)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스베덴보리를 처음 알게 된 8년 전만 해도 ‘상응’이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물론 그냥 일상 용어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술 그 밑바탕에 깔린, 그러니까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 원리라는 건 몰랐다는 말씀인데요, 그의 저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1758, 김은경 역)을 중심으로 그 관련 내용들을 좀 살펴보면,

 

먼저, 서문입니다.

 

...이 말씀(24:29-31)을 글자 그대로(the sense of the letter) 해석하는 사람은 ‘최후의 심판’(the final judgment)이라 부르는 마지막 날에 이 모든 일이 그대로 일어나리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며, 주의 징조가 하늘에 나타나고, 주께서 나팔 든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게 된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구절에서 예언되었듯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파괴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긴다고 믿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교인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말씀의 각 세부에 숨겨진 속뜻(the arcana)이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말씀의 모든 부분에는 속뜻(an internal sense)이 있다.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보면, 자연적 차원, 세상의 일을 다루고 있지만, 그 속뜻은 영적 차원, 천국의 일을 다루고 있다. 더욱이 이것은 각 구절만이 아니라 각 낱말에도 해당되는 사실이다.3 성경은 그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 내적인 뜻을 담게 할 목적으로 오직 상응(correspondences)으로만 쓰였기 때문이다.4

 

3. 말씀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속뜻, 혹은 영적인 뜻이 있다 (AC.1143, 1984, 2135, 2333, 2395, 2495, 4442, 9048, 9063, 9086).

 

※ 여기 이 HH.1, AC.1143 같은 표기는 각각 Heaven and Hell 1번 글, Arcana Coelestia 1143번 글이라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작들은 국제적 약어가 있어 그 약어로 보통은 표기합니다. 마치 신구약 성경을 그 약어로 표기하듯 말입니다.

 

4. 말씀은 오직 상응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말씀은 그 안에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 어떤 영적인 의미들을 갖게 된다 (AC.1404, 1408, 1409, 1540, 1619, 1659, 1709, 1783, 2900, 9086).

(저자 서문, HH.1)

 

다음은 12장, ‘천국의 모든 것과 사람의 모든 것 간에는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HH.87-102)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이 상응(相應, correspondence)인지 모르고 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으로 인해 천국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 것에만 관심이 있다. 세상 것이 그의 외적 감각(the external senses)을 즐겁게 하고, 그의 성향(the natural longings)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적 감각(the internal senses)과 정신(the mind)을 만족케 하는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너무 고차원적이라고 거부한다. 고대인들(the ancient people)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상응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 of correspondences)이 가장 중요한 지식이었다. 상응의 지식에 의해 그들은 지성(intelligence)과 지혜(wisdom)를 얻었고, 상응의 지식은 천사들의 지식이므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상응 지식에 의해 천국과 교통했다. 가장 오래전 사람들인 태고인(太古人)들은 천적인 사람들(天的, celestial men)이었으므로 천사들처럼 상응 자체로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천사와 대화했고, 주님도 자주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지금은 상응에 대한 지식이 완전히 상실되어 상응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된 것이다.72

 

72. 상응의 지식은 그 밖의 다른 지식을 얼마나 초월하는가 (AC.4280) 상응 지식은 태고인의 지식 중 첫째였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잊어버린 지식이 되었다 (AC.3021, 3419, 4280, 4749, 4844, 4964, 4966, 6004, 7729, 10252). 상응 지식은 동방 여러 나라들과 이집트에서 번창했다 (AC.5702, 6692, 7097, 7779, 9391, 10407).

(HH.87)

 

그러므로 상응의 개념과 본질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a perception of what correspondence is)을 모르면, 영계(the spiritual world), 영계에서 자연계(the natural world)로 흘러드는 입류(inflow), 영계와 자연계의 상관관계, 사람의 영혼(the spirit of man, which is called the soul)과 그것이 몸에 작용하는 방식, 사람의 사후 상태(man’s state after death) 등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응에 대한 설명은 앞으로 나올 내용의 기초이기도 하다.

(HH.88)

 

먼저 상응이 무엇인지 설명하겠다. 자연계 전체는 영계에 상응하는데, 단지 일반적으로만이 아니라 세부적인 모든 것이 상응한다. 따라서 영계로부터 나와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계와 상응한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자연계는 영계로부터 생겨나고(springs from) 영계에 의해 지속된다(has permanent existence from)는 것이다. 이 관계는 정확히 결과와 원인의 관계와 같다. 여기서 자연계는 태양 아래 그 빛과 열을 받는 모든 것과 그 전체 범위를 말한다. 거기서 형성돼 지속되는 모든 것이 자연계에 속한다. 그러나 영계는 천국을 말하고, 천국의 모든 것은 영계에 속한다.

(HH.89)

 

사람은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57번 글 참조)이자 자연계이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영계와 자연계가 공존한다. 그의 마음에 속하는 내적 차원(the interior things), 즉 사고력과 의지(understanding and will)에 관계되는 것은 그의 영계를 이루고, 몸에 속하는 외적 차원, 즉 몸의 감각과 행동에 관계되는 것은 자연계를 이룬다. 따라서 그의 영계에서 비롯된 그의 자연계에 속한 것은 모두 그 사람의 영계의 상응이다.

(HH.90)

 

사람의 얼굴을 보면 상응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꾸밈없는 얼굴에는 그 마음의 모든 성정(all the affections of the mind)이 눈에 보이는 물질적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얼굴을 마음의 표지(the index of the mind)라 부른다. 즉 얼굴은 자연계에 드러난, 사람의 영계인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사람의 사고력에 속한 것(what pertains to the understanding)은 그의 말에 나타나고, 의지에 속한 것은 몸의 행동에 나타난다. 따라서 얼굴이건 말이나 행동이건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상응이다.

(HH.91)

 

이러한 관찰로 ‘속 사람’(the internal man)과 ‘겉 사람’(the external)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속 사람은 영적이고, 겉 사람은 자연적이다. 또한 양쪽은 천국이 이 세상과 다른 것처럼 서로 구별된다. 나아가서 겉 사람, 즉 자연적 사람 안에 형성되고 지속되는(take place and come forth) 모든 것은 속 사람, 즉 영적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HH.92)

 

속 사람, 즉 영적 사람과 겉 사람, 즉 자연적 사람 간의 상응에 대해서는 이만 줄이고, 이제 천국 전체와 사람의 각 부분과의 상응을 다루겠다.

(HH.93)

 

앞에서 천국에 관해 말한 것을 상기해 보자. 천국 전체는 한 사람의 모습이고, ‘가장 큰 사람’(the greatest man)이라 불린다. 천국을 이루는 천사 공동체들은 사람의 사지와 기관과 내장의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머리, 가슴, 팔 등과 그 안의 세부를 이루는 공동체가 각기 다르다 ( 59 - 72 참조). 결과적으로, 천국의 어느 한 부위를 이루는 공동체는 사람의 그 부위에 상응한다. 즉 천국의 머리 부분에 있는 공동체는 사람의 머리에, 가슴은 가슴에, 팔은 팔에, 이런 식으로 몸 각 부분이 천국과 상응한다. 이 상응으로 인해 사람은 존재를 지속할 수 있는(permanent existence) 것이다. 사람에게는 천국 아닌 어떤 존재의 근원도 없기 때문이다.

(HH.94)

 

또 천국이 두 나라로 구분되어 각각 천적 나라, 영적 나라로 불린다는 것도 앞서 밝혔다. 천적 나라는 사람의 심장과 심장에 관계된 몸 안의 모든 것에 상응한다. 영적 나라는 폐와 폐에 관계된 몸 안의 모든 것에 상응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렇게 천국의 두 나라로 말미암은 심장과 폐는, 심장은 동맥과 정맥을 통해, 폐는 신경과 운동섬유를 통해 연합하여 모든 작동과 움직임에 관련된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의 영적 사람, 즉 영계에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의지이고, 또 하나는 사고력(the understanding)이다. 의지는 선에 대한 애정을 통해, 사고력은 진리에 대한 애정을 통해 다스린다. 이 두 나라는 실제로 몸속 심장과 폐에 상응한다. 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천적 나라는 천국의 의지 부분(the voluntary part)이고, 거기서는 사랑의 선이 주관한다. 영적 나라는 천국의 지성(the intellectual part)을 담당하고, 거기서는 진리가 다스린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심장과 폐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 상응으로 인해 성경 말씀의 심장은 의지와 사랑의 선을, 폐의 호흡은 사고력과 신앙의 진리를 의미한다. 같은 이유로, 애정이 실제 심장 안에 있지도, 거기서 나오지도 않는데도 사람들은 애정이 심장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73

 

73. 심장과 폐와 가장 큰 사람, 곧 천국 간 상응, 경험으로부터 (AC.3883–3896) 심장은 천적 나라 안에 있는 것들과, 폐는 영적 나라 안에 있는 것들과 상응한다 (AC.3885–3887).심장의 것과 같은, 그리고 폐의 것과 같은, 그러나 내적인(interior) 맥박과 호흡이 천국에 있다 (AC.3884, 3885, 3887). 심장의 펄스는 사랑의 상태에 따라, 그리고 호흡은 체어리티와 신앙의 상태에 따라 다양하다 (AC.3886, 3887, 3889). 말씀에서 ‘심장’은 의지를, 그리고 ‘심장으로부터’는 의지로부터를 의미한다 (AC.2930, 7542, 8910, 9113, 10336). 말씀에서 ‘심장’은 또한 사랑을, 그리고 ‘심장으로부터’는 사랑으로부터를 의미한다 (AC.7542, 9050, 10336).

(HH.95)

 

천국의 두 나라와 심장과 폐와의 상응은 천국과 사람 간의 일반적인 상응이다. 그보다 덜 일반적인 상응이 몸의 사지와 기관과 내장에 이루어진다. 그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천국, 즉 ‘가장 큰 사람’의 머리 부분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덕목(every good)에서 남보다 뛰어나다. 즉 그들은 사랑, 평화, 순수, 지혜, 지성, 그리고 그에 따른 기쁨과 행복 속에 있다. 이런 것이 사람의 머리와 머리에 속하는 것들로 유입되고, 그에 상응한다. 천국, 즉 ‘가장 큰 사람’의 가슴 부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웃 사랑과 신앙의 선에 거하고, 위와 같은 식으로 사람의 가슴에 유입되며, 그에 상응한다. 한편 천국, 즉 ‘가장 큰 사람’의 허리와 생식 기관(the organs devoted to generation)을 이루는 사람들은 결혼애(marriage love) 안에 산다. 발 부위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의 가장 낮은 선인 영적-자연적 선 안에 있다. 팔과 손 부위에 있는 이들은 선에서 비롯된 진리의 능력을, 눈 부위의 사람들은 사고력을, 귀 부위 사람들은 주의력과 복종을, 코 부위 사람들은 지각을, 입과 혀 부위 사람들은 사고와 지각을 이용한 대화 능력을 담당한다. 신장 부위 사람들은 조사하고, 분별하고, 교정하는 진리 안에 거한다. 간장, 췌장, 비장 부위 사람들은 선과 진리의 다양한 정화 능력 안에 있다. 그 밖에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같은 부위에 유입되고, 그 부위와 상응하는 것이다. 천국의 이러한 입류는 몸의 각 부위의 기능과 쓰임새 안으로 들어간다. 쓰임새는 영계로부터 오기 때문에 자연계에 있는 사물을 통해 형체를 갖추고, 그리하여 스스로를 결과 안에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원리로 인해 상응이 존재한다.

(HH.96)

 

이런 까닭에, 성경에 나오는 사지, 기관, 내장에도 위와 같은 의미가 있다. 성경 안의 모든 것은 상응에 따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머리’는 지성과 지혜, ‘가슴’은 이웃 사랑, ‘허리’는 결혼애, ‘팔과 손’은 진리의 힘, ‘발’은 자연성, ‘눈’은 사고 능력, ‘코’는 감지 능력(perception), ‘귀’는 순종, ‘콩팥’은 진리의 검토를 각각 의미한다.74 또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도 명석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보통 ‘머리가 있다’고 하고, 인자한 사람을 ‘가슴이 푸근하다’, 사고력이 뛰어나면, ‘눈이 날카롭다’, 느낌으로 알아채기를 잘하면, ‘냄새를 잘 맡는다’, 능력이 있으면, ‘팔이 길다’, 사랑으로 바라는 것을 ‘심장에서 우러난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일반적 표현이 상응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러한 것은 모두 영계에서 온 것이다.

 

74. 말씀에서 ‘가슴’은 체어리티를 의미한다 (AC.3934, 10081, 10087). ‘허리’와 생식 기관(organs of generation)은 결혼애(結婚愛, marriage love)를 의미한다 (AC.3021, 4280, 4462, 5050–5052). ‘팔’과 ‘손’은 진리의 능력을 의미한다 (AC.878, 3091, 4931–4937, 6947, 7205, 10019). ‘발’은 자연성(the natural)을 의미한다 (AC.2162, 3147, 3761, 3986, 4280, 4938–4952). ‘눈’은 이해(understanding, 이해하는 능력, 이성)를 의미한다 (AC.2701, 4403–4421, 4523–4534, 6923, 9051, 10569). ‘코’는 퍼셉션(perception, 지각하는 능력, 통찰력)을 의미한다 (AC.3577, 4624, 4625, 4748, 5621, 8286, 10054, 10292). ‘귀’는 순종, 복종을 의미한다 (AC.2542, 3869, 4523, 4653, 5017, 7216, 8361, 8990, 9311, 9397, 10061). ‘콩팥’은 진리에 관한 정밀한 조사와 교정을 의미한다 (AC.5380–5386, 10032).

(HH.97)

 

천국의 모든 것이 사람의 모든 것과 그렇게 상응한다는 것을 나는 많은 체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체험이 셀 수 없이 많아서 이것이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모든 체험을 다 기록할 필요도 없지만, 분량 때문에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이라는 책에 상응, 표상(representations), 영계에서 자연계로의 입류(influx), 영과 육의 상호 작용 등을 다룬 부분에 이미 기록한 바 있다.75

 

75. 몸의 모든 지체와 가장 큰 사람, 곧 천국 간 상응, 일반적이든 세부적이든, 경험에 의한 기록 (AC.3021, 3624–3649, 3741–3750, 3883–3895, 4039–4054, 4218–4228, 4318–4331, 4403–4421, 4523–4533, 4622–4633, 4652–4660, 4791–4805, 4931–4953, 5050–5061, 5171–5189, 5377–5396, 5552–5573, 5711–5727, 10030). 영계에서 자연계로, 즉 천국에서 이 세상으로의 입류 및 영혼에서 몸의 모든 것으로의 입류, 경험을 통한 기록 (AC.6053–6058, 6189–6215, 6307–6326, 6466–6495, 6598–6626). 영혼과 육체 간 상호 작용, 경험에 의한 기록 (AC.6053–6058, 6189–6215, 6307–6327, 6466–6495, 6598–6626).

(HH.98)

 

사람 몸에 속한 모든 것이 천국의 모든 것과 상응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천국의 형상인 까닭은 외적 형태 때문이 아니라 내적 형태(internal form) 때문이다. 사람의 내면(interiors)은 천국을 받고, 외면은 세상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내면이 천국을 받아들이면, 그는 가장 큰 형상을 따르는 가장 작은 형태의 천국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이 천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천국이 아니고, 가장 큰 형상을 따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외면은 세상을 받기 때문에, 물질계의 원리(the order of the world)를 따를 수 있고, 따라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다. 몸에 속한 외적인 아름다움(outward beauty)은 부모와 태내에서의 형성으로 비롯되고, 그 후 세상의 일반적 입류(general influx from the world)에 의해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는 그의 영체의 모습과 크게 다를 수가 있다. 나는 여러 번 사람 속의 영을 보도록 허락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겉모습은 아릅답고 매력적이었지만, 그 영은 일그러지고, 어둡고 괴물 같아(deformed, black and monstrous) 가히 지옥의 형상이라 할 만큼 결코 천국 형상은 아니었다. 한편 다른 이들은 겉모습은 아름답지 않았지만, 그 영은 매우 아름답고 맑고 천사 같았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세상에 살 때 몸 안에 있던 영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HH.99)

 

그러나 상응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훨씬 광범위하게 확장된다. 천국들 사이에 상응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내적인 삼층천에 중간인 이층천이 상응하고, 그 이층천에 가장 외적인 일층천이 상응하며, 이는 사람의 사지, 기관, 내장 등 몸의 형태에 상응한다. 따라서 천국이 최종적으로 끝맺는 곳, 즉 천국이 확립되는 바탕이 사람의 몸인 것이다. 이 신비에 대해서는 따로 자세히 다룰 것이다.

(HH.100)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가 있다. 천국과의 모든 상응은 바로 주님의 신적 인성(the Lord’s Divine human)과의 상응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밝혔듯 주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이 있고, 주님이 천국이시기 때문이다. 신적 인성이 세상의 모든 것에 유입되지 않으면, 사람도 천사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을 보아도 왜 주님이 사람이 되셨고, 당신의 신성을 완전히 인성으로 입히셨는가가 분명해진다. 그것은 천국의 기초인 인간이 질서를 약화시키고 파괴하여 주님 오시기 전의 신적 인성으로는 더 이상 만물을 유지하실 수 없게 되었었기 때문이다. 주님 오시기 전의 신적 인성이 어떠했고, 당시 천국의 상태가 어땠는가에 대해서는 다음 장의 부록에 발췌되어 있다.

(HH.101)

 

모든 것의 근원이 신성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여기고, 천국의 수많은 경이가 집결된 사람의 몸을 자연의 산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천사들은 매우 놀란다. 사람이 조금만 그 마음을 고양하면, 모든 것이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자연계는 단지 영계의 옷이자 영계가 그 상응하는 형태로 질서의 외적인 최종단계(the outmost of order)에 드러난 것임을 알 수 있는데도, 사람의 지성(the rational part of man)이 자연에서 발생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천사들은 더욱 놀란다. 천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어둠 속에서는 보지만 빛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올빼미에 비유한다.

(HH.102)

 

내용이 너무 길어져 지치실 것 같아 여기서, 그러니까 ‘천국과 지옥12장으로 끊겠습니다. 혹시 갑작스런 중단이 아쉬우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그다음 내용들을 향해 계속 나아가시기를 권합니다.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HH) '목차' (Contents)

‘목차’ Contents Editor’s Preface ‘저자 서문’ (Author’s Preface, 1) HH.1, '저자 서문(序文)'(Author’s Preface)(HH.1)※ HH는 'Heaven and Hell'의 약어(略語)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공용 약어가 있습

heavenanditswondersandhell.tistory.com

 

그러니까 한마디로 요약하면, 12장 제목처럼, ‘천국의 모든 것과 사람의 모든 것 사이에 어떤 상응이라는 게 있다(There Is a Correspondence of All Things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Man)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말입니다. 이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한 이유는, 초창기, 그러니까 제가 스베덴보리를 처음 접한 그다음 해, 그러니까 7년 전이네요. 제가 속했던 어느 수도원의 새해 원단 금식 프로그램에 참석, 그 수도원을 도우시던 참 신실하신 장로님과 천국 이야기를 하던 중, 제가 너무 천진난만하게 ‘장로님, 천국 전체 모습은 우리 사람처럼 생겼어요’라는 말씀을 드렸다가 그만... 이후 그분이 저를 계속 피하시는 바람에 다시는 그분과 교제할 수 없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입니다. 어휴...

 

다음은 이 상응’ 관련, 제게 한 발 더 성큼 나아가게 한 아르카나입니다.

 

상응에는 모든 능력이 들어있는데요, 이 상응을 따라 땅에서 행해지는 것은 하늘에서도 소용이 될 정도로 말입니다. 그 이유는, 상응은 신성(the Divine)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상응 안에 있는 건데요, 그래서 신성, 곧 주님이 이들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선과 신앙의 선이 신성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상응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그 일점일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하나 천국에 있는 것들과 상응하도록 기록되었고, 그 결과 말씀에 신성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천국과 이 세상, 곧 하늘과 땅을 결합하게 하는데요, 땅에서 말씀이 읽힐 때, 천국 천사들은 그 속뜻 안에 있는 거룩함 가운데로 들어가기 때문, 곧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AC.8615:3, 17:12, ‘해가 지도록’)

 

특히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은 상응으로 행해진 것(All the miracles recorded in the Word were done by means of correspondences)이라는 대목에서 눈이 번쩍 뜨였던 것입니다. 이때가 지난 622일 주일예배 설교이니 이제 한 달쯤 되어가네요. 지난 한 달 매 순간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솔직히 저는 아직 상응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상응에 대한 기술, 기록을 읽을 땐 이해가 되는 듯하나 일상 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원합니다. 오, 주님, 저로 하여금 상응 아래 살게 하여 주세요. 남은 삶을 상응으로 살게 하여 주세요. 그래서 저의 영육간 모든 것이 상응의 권능, 곧 천국의 해당 공동체들의 활기와 생명 힘입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기도를 시작한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이 있지만, 기간이 너무 짧아 나중에 절대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아님이 분명해질 때까지는 나누는 걸 좀 자제하겠습니다.

 

끝으로, 쓰임새는 상응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요, 이와 관련된 글 하나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천국과 세상이 상응에 의해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도 몇 마디 언급하겠다. 주의 나라는 목적의 나라(a kingdom of ends)이고, 그 목적은 쓰임새(uses)다. 쓰임새의 나라(a kingdom of uses)이고, 그 쓰임새가 목적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어디에서나 쓰임새가 물질의 옷을 입고 행동, 또는 결과로 나타나도록 만드신 것이다. 이것은 먼저 천국에, 그 다음엔 이 세상에, 단계적이고 연속적으로 내려와 자연계의 최종단계에 이른다. 따라서 쓰임새를 통해 자연계와 영계, 즉 세상과 천국이 상응하고 결합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쓰임새가 입고 있는 형상은 그것이 쓰임새의 형상인 정도만큼만(just to the extent that they are forms of uses) 상응이 되고, 결합의 수단이 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 중 질서에 맞는 것은 모두 쓰임새의 형태이고, 쓰이기 위해 그 용도대로 형성된 결과물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계의 존재들이 상응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가 신적 질서(Divine order)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도만큼만 그의 행위는 쓰임새의 형상이 되고, 또 그를 천국과 연결시켜 주는 상응물이 된다.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to perform uses).83 나아가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자연계를 영계에 연결하는 수단, 즉 결합의 매개체(the medium of conjunction)라는 사실이다 ( 57번 글 참조). 그러므로 사람이 영적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 결합의 매체가 되고, 반면 자연적이기만 하고, 영적이지 않은 사람은 결합의 매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을 통하지 않아도 따로 신성의 입류(a Divine influx)가 계속 세상으로 흘러들며, 이 입류는 사람의 물질적 측면 안으로는 유입되지만, 사람의 합리적 기능(man’s rational faculty) 안으로는 유입되지 않는다.

 

83. 모든 선은 쓰임새로부터, 그리고 쓰임새를 따라 그 즐거움과 퀄러티를 가지는데, 그래서 이런 게 쓰임새이고, 이런 게 선이다 (AC.3049, 4984, 7038). 천사들의 생명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 즉 쓰임새 수행으로 이루어진다 (AC.454). 주님이, 그리고 그 결과 천사들이 사람에 관해 보는 것은 오직 그 목적, 곧 쓰임새다 (AC.1317, 1645, 5854). 주님의 나라는 쓰임새의 나라, 곧 목적의 나라이다 (AC.454, 696, 1103, 3645, 4054, 7038).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쓰임새를 수행하는 것이다 (AC.7038). 사람한테 있어 개별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일이란 쓰임새를 수행해 온 일이다 (AC.3626, 4104, 5189, 9297). 또한 쓰임새로부터, 즉 쓰임새는 사람 안의 장기(臟器)들, 바로 쓰임새가 수행되는 장기들보다 우선하는데, 쓰임새란 주님의 흘러들어오심으로부터 천국을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 (AC.4223, 4926). 더욱이 사람의 내면은, 이는 그의 마음으로 구성되는데, 그가 성숙해지면서 쓰임새로 말미암아, 그리고 쓰임새를 위해 형성된다 (AC.1964, 6815, 9297). 결론적으로, 사람은 쓰임새와 함께하는 그런 존재이다 (AC.1568, 3570, 4054, 6571, 6935, 6938, 10284). 쓰임새란 쓰임새를 위한 목적이다 (AC.3565, 4054, 4104, 6815). 쓰임새는 처음이자 나중, 곧 사람의 모든 것이다 (AC.1964).  

(HH.112)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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