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1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들이며, ‘바다의 물고기’(fish of the sea)와 ‘하늘의 새들’(birds of the heavens)이라 불립니다. The fifth state is when the man discourses from faith,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ruth and good: the things then produced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heavens.”
해설
AC.10의 네 번째 상태에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으며,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AC.11의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그 신앙으로부터 실제로 말하는 상태가 나타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표현은 ‘신앙으로 말한다’입니다. 앞의 세 번째 상태에서도 사람은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선들은 아직 생기가 없었고, 네 번째 상태에 이르러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그 신앙으로부터 말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AC.11이 말하는 변화는 단순히 사람이 종교적인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건한 말 자체는 이미 앞 단계에서도 있었습니다. 차이는 그 말이 이제 ‘신앙으로부터’ 나온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AC.11이 다섯 번째 상태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제시하는 특징입니다.
이어지는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한다’는 표현은 조금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확증한다’는 말을 곧바로 ‘삶의 경험을 통하여 진리와 선이 참됨을 검증한다’고 풀 필요는 없습니다. AC.11 자체는 그렇게 구체적인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선 원문 그대로,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면서 진리와 선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확증한다’는 말 때문에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떠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문장의 대상이 분명히 ‘진리와 선 안에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말하면서 진리와 선 안에서 확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AC.11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이어집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세 번째 상태와 매우 중요한 대조를 이룹니다. AC.9에서는 사람이 경건하게 말하고 체어리티의 행위들과 같은 선을 행하면서도, 그것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 선들이 아직 ‘생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생기를 지닌 것들’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므로 ‘생기를 지닌다’는 표현은 다섯 번째 상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다만 이것을 근거로 ‘이제 주님의 생명이 그의 모든 말과 행동 속에 직접 흘러들어 실제적인 영적 생명력이 흐른다’는 식으로 세부적인 작동 과정을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AC.11이 직접 말하는 것은 네 번째 상태를 지나 신앙으로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사람에게서 이제 생기를 지닌 것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생기 있는 것들을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창1의 다섯째 날에 물에서 생물들이 나오고 새들이 하늘을 나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AC.11은 아직 ‘물고기는 정확히 무엇이고 새는 정확히 무엇인가’를 세부적으로 해설하는 단락이 아닙니다. 지금은 여섯 상태를 개괄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물고기를 특정한 종류의 기억 지식으로, 새를 특정한 종류의 고차원적 사고로 곧바로 세분하기보다, 다섯 번째 상태에서 산출되는 생기 있는 것들이 창1의 물고기와 새로 표현된다는 데 머무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뒤에서 다섯째 날의 본문을 해설할 때 더 자세히 밝혀집니다. 개요인 AC.11에서 뒤의 설명을 모두 앞당겨 넣으면 오히려 지금 스베덴보리가 보여 주려는 여섯 상태의 단순하고 선명한 흐름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AC.9의 ‘생기 없는 것들’과 AC.11의 ‘생기 있는 것들’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바로 AC.10의 네 번째 상태입니다. 거기에서 사람은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았으며,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습니다. 그 다음 상태인 AC.11에서 사람은 신앙으로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며,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생기를 지니게 됩니다.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상태에서는 이미 선한 말과 행위가 있었지만 아직 생기가 없었습니다. 네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으로부터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며 생기 있는 것들이 산출됩니다.
따라서 다섯 번째 상태를 단순히 ‘신앙이 지식에서 삶으로 바뀌는 단계’라고 요약하는 것도 조금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AC.11은 앞의 상태에서 신앙이 단순한 지식에 불과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 번째 상태에서 이미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다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상태의 특징은 그 다음에 나타나는 ‘신앙으로 말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함’, 그리고 ‘생기 있는 것들의 산출’입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사람의 자유와 책임이 얼마나 커지는지, 혹은 이때부터 사람이 자신의 신앙과 행동의 불일치를 얼마나 더 분명하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도 AC.11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내용이 스베덴보리의 다른 가르침과 연결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짧은 개요 안에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섯 번째 상태를 ‘아직 신앙이 중심이고 사랑은 뒤에 있으며, 다음 단계에서 사랑이 주도권을 잡는다’는 식으로 너무 구체적인 심리적 발전 과정으로 재구성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다음 AC.12가 여섯 번째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그 글 자체에서 충분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AC.11에서는 오히려 한 가지 매우 분명한 사실을 붙들면 됩니다.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사람이 산출하는 것들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있으면서도 ‘생기 없는 것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생기를 지닌 것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창조 이야기의 순서와 연결합니다. 셋째 날에는 땅에서 식물이 나왔고,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라는 살아 움직이는 존재들이 나타납니다. 거듭남의 개요에서도 이에 대응하여 세 번째 상태의 선들은 아직 생기가 없는 것으로 불렸고, 다섯 번째 상태에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으로 불립니다.
이 점은 창1의 창조 순서가 왜 스베덴보리에게 거듭남의 연속적인 상태들을 표현하는지가 조금씩 선명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자연계의 생물학적 창조와 영적 거듭남의 모든 세부를 일대일로 설명하려 하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직접 제시하는 대응 관계를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AC.11의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며,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이 생기를 지니게 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생기 있는 것들이 창1의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로 표현됩니다.
AC.11은 그 이상을 아직 요구하지 않습니다. 물고기와 새의 세부적인 의미도, 신앙과 사랑의 이후 관계도 뒤에서 각각 밝혀질 것입니다. 지금은 네 번째 상태에서 속 사람 안에 불붙은 신앙과 체어리티에 이어, 다섯 번째 상태에서 신앙으로 말하고 진리와 선 안에서 확증되며 생기 있는 것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는 흐름을 붙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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