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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6.08.01 AC.320 심화 1, ‘soul’과 ‘spirit’
  2. 2026.06.02 AC.41 심화 1, ‘천사적 영’

AC.320 심화

1. ‘soul’과 ‘spirit’

AC.320에는 흥미롭게도 ‘soul’과 ‘spirit’이라는 두 단어가 거의 나란히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먼저 ‘the life of souls’라고 말한 뒤 곧바로 ‘that is, of novitiate spirits’라고 덧붙입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soul과 spirit을 서로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존재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죽음 이후 계속 살아가는 동일한 인간을 서로 조금 다른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일반적으로 soul은 ‘영혼’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특히 AC.320의 ‘the life of souls’에서는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 또는 인간 자신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단순히 육체 안에 들어 있는 어떤 비물질적 ‘부분’으로 생각하면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말하려는 뜻을 충분히 살리기 어렵습니다. AC.320의 관심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이라는 두 부품으로 나누는 데 있지 않고, 육체가 죽은 뒤에도 인간 자신이 계속 살아간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반면 spirit은 ‘영’으로 옮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특히 ‘novitiate spirits’는 죽음 이후 처음 영계에 들어간 사람들을 가리키므로 ‘신참, 신생 영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그 ‘영’이 지상에서 살던 사람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AC.320이 이어서 설명하듯 그는 여전히 감각하고, 원하고, 생각하며, 자신을 전과 같은 한 사람으로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AC.320의 첫 문장은 ‘영혼이라는 어떤 것이 죽은 뒤 어떻게 되는가’를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인간은 처음 영계에서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소개하는 문장입니다. ‘soul’이라는 표현으로 사후에 계속되는 인간의 생명을 넓게 제시하고, 곧이어 ‘novitiate spirits’라는 표현으로 지금부터 다룰 대상이 죽음 직후 영계에 들어온 사람들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사후세계 이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영혼’이라고 하면 육체에서 빠져나온 희미한 무엇을 떠올리고, ‘영’이라고 하면 더욱 비현실적인 존재를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죽은 뒤에도 인간은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AC.320에서도 바로 그 때문에 새로 영계에 들어온 사람이 자신에게 ‘당신은 영입니다’라고 말하면 놀란다고 합니다. 자신은 여전히 감각하고 원하고 생각하며, 전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번역에서는 soul과 spirit의 차이를 완전히 지워 버릴 필요도 없고, 반대로 두 단어 사이에 지나치게 엄격한 존재론적 구별을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soul은 ‘영혼’, spirit은 ‘영’으로 구별하여 옮기되, 이 문맥에서는 둘 다 육체의 죽음 이후 계속 살아가는 동일한 인간을 가리킨다는 점을 기억하면 됩니다.

 

결국 AC.320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soul과 spirit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대답은 그보다 훨씬 단순합니다.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생각하고 사랑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바로 그 사람이 ‘나’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인간이 사라지고 영이라는 전혀 다른 존재가 생겨나는 사건이 아니라, 육체를 벗은 인간이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임을 발견하는 사건입니다.

 

 

 

AC.320, 심화 2,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AC.320.심화 2. ‘자신이 저세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임종, 그러니까 지상에서 숨을 거두는, 정말 수없이 다양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평안한,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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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20, 창4 앞,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AC.320-323)

영혼이나 영으로 산다는 것에 관하여 On The Nature Of The Life Of The Soul Or Spirit AC.320영혼(soul)으로서의 삶, 곧 죽은 뒤 처음 영계에 들어가는 신참, 신생 영들(novitiate spirits)의 삶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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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1 심화

1. ‘천사적 영’

 

AC.41에 ‘천사적 영’(angelic spirit)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처음 읽으면 조금 낯섭니다. ‘천사’라는 것인지 ‘영’이라는 것인지, 혹은 천사와 영 사이에 또 다른 종류의 존재가 있다는 뜻인지 궁금해질 수 있습니다.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천사적 영’을 단순히 ‘천사를 다른 관점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사후세계의 존재들을 설명하면서 ‘영들’(spirits), ‘천사적 영들’(angelic spirits), ‘천사들’(angels)이라는 표현을 문맥에 따라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따라서 ‘angelic spirit’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곧바로 ‘angel’과 완전히 같은 말로 바꾸어 읽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천사적 영’을 천사와 영 사이에 존재하는 완전히 별개의 제3종족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생물학적 종과 같은 구별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차이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사후의 인간을 ‘영’, ‘천사적 영’, ‘천사’ 등으로 말할 때에는 그 존재의 상태와 그가 속한 사회, 그리고 설명하고 있는 문맥이 함께 고려됩니다. 따라서 ‘천사적 영’이라는 표현에는 적어도 일반적인 ‘영’보다 천사적인 상태와 성질에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AC.41에서는 왜 굳이 ‘천사적 영’을 언급했을까요? 여기서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사실 ‘천사적 영이 정확히 어느 계층에 속하는가?’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의 중심은 ‘생명’입니다. 사람의 proprium에 속한 것은 그 자체로 생명이 없지만, 주님에게서 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그 실제적인 예로 천사적 영의 말과 생각을 듭니다.

 

스베덴보리는 천사적 영의 말 하나하나와 생각 하나하나, 심지어 생각의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 가장 작은 것 안에도 ‘주님에게서 나오는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대목을 읽을 때 우리의 관심도 ‘천사적 영은 천사인가 영인가?’라는 존재 분류에만 머물기보다, ‘왜 그의 생각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살아 있다고 하는가?’라는 AC.41의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AC.41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독법이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글에는 사후세계의 여러 존재와 상태를 가리키는 낯선 명칭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곧바로 완성된 영계의 계층표를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그 글이 지금 말하려는 중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AC.41에서 ‘천사적 영’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천사적 영’을 ‘천사와 완전히 같은 존재를 달리 부르는 말’이라고 고정하지도 않고, ‘천사와 영 사이의 별도 종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은 ‘천사적인 상태와 성질을 가진 영적 존재를 가리키는 스베덴보리의 표현’ 정도로 이해하면서, AC.41의 핵심인 ‘주님에게서 오는 애정이 생각과 말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살아 있게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면 충분합니다. 이후 AC를 계속 읽으면서 스베덴보리가 ‘영’, ‘천사적 영’, ‘천사’를 실제로 어떤 문맥에서 구별하여 사용하는지를 차츰 더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AC.41, 창1:20, ‘참된 생명의 근원 : 주님에게서 오는 것만이 살아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창1:20) AC.41 사람의 본성(own, proprium)에 속한 것은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으며, 그것을 눈으로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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