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7

‘날들’(days)이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1장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거기서 창조의 ‘날들’은 다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는 모든 시간을 ‘날들’이라 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데, 이는 이 구절과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5, 8, 11, 14, 17, 20, 23, 27, 31절)에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상태들도 일반적으로 ‘날들’에 의해 의미됩니다. 그리고 ‘해들’(years)이 덧붙여질 때에는 그 해들의 시기들에 의해 상태들의 어떠함이 의미되며, 따라서 특별한 상태들이 의미됩니다. 태고인들은 숫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들로 교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을 의미했습니다. 이를테면 ‘셋’, ‘일곱’, ‘열’, ‘열둘’과 같은 숫자들과, 이것들과 다른 숫자들을 조합하여 만든 많은 수들이 있었고, 그것들로 교회의 상태들을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숫자들은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아르카나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상태를 헤아리고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말씀의 많은 곳, 특히 예언서들에도 나타납니다. 유대교회의 의식에도 시간과 측량에 관한 숫자들이 있었는데, 이를테면 희생 제사와 소제와 봉헌물과 그 밖의 것들에 관한 숫자들이 그러하며, 그것들은 적용되는 바에 따라 어디에서나 거룩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팔백’이라는 수와 다음 절의 ‘구백삼십’, 그리고 이어지는 여러 구절의 연수에 담겨 있는 것들, 곧 각 교회의 일반적인 상태에 적용된 그 교회의 상태 변화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습니다. 이 저작의 뒤에서 주님의 신적 자비로 ‘열둘’까지의 단순한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 줄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의 의미를 알기 전에는 조합된 숫자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That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was shown in the first chapter, where the “days” of creation have no other signification. In the Word it is very usual to call all time “days,” as is manifestly the case in the present verse, and in those which follow (5, 8, 11, 14, 17, 20, 23, 27, 31); and therefore the states of the times in general are likewise signified by “days”; and when “years” are added, then by the seasons of the years are signified the qualities of the states, thus states in special. The most ancient people had their numbers, by which they signified various things relating to the church, as the numbers “three,” “seven,” “ten,” “twelve,” and many that were compounded of these and others, whereby they described the states of the church; wherefore these numbers contain arcana which would require much time to explain. It was an account or reckoning of the states of the church. The same thing occurs in many parts of the Word, especially the prophetical.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lso there were numbers, both of times and measures, as for instance in regard to the sacrifices, meat offerings, oblations, and other things, which everywhere signify holy things, according to their application. The things here involved, therefore, in the number “eight hundred,” and in the next verse, in the number “nine hundred and thirty,” and in the numbers of years in the verses following—namely, the changes of state of their church as applied to their own general state—are too many to be recounted. In a future part of this work, of the Lord’s Divine mercy we shall take occasion to show what the simple numbers up to “twelve” signify, for until the signification of these is known, it would be impossible to apprehend the signification of the compound numbers.

 

해설

AC.487은 앞의 AC.482와 AC.486에서 제시한 원리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날들’은 교회의 상태를 일반적으로 나타내고, ‘해들’은 그 일반적인 상태 안에 들어 있는 특별한 상태와 그 어떠함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창5에 반복되는 ‘그의 모든 날은 몇 년이었다’는 표현은 속뜻에서 단순한 수명 계산이 아니라 한 교회가 존속하는 동안 겪은 전체적인 상태와 그 안의 여러 변화를 묘사하는 언어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첫 근거로 창1의 창조의 ‘날들’을 듭니다. 창조의 여섯 날이 거듭남의 연속적인 상태들을 의미했던 것처럼, 창5의 날들도 단순히 24시간 단위의 날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창1과 창5가 서로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창1에서 한 사람 또는 교회가 주님에 의해 거듭나는 상태들이 ‘날들’로 묘사되었다면, 창5에서는 태고교회와 그 후대 교회들이 거쳐 간 상태들이 다시 시간의 언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AC.487은 여기서 숫자 자체의 의미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태고인들은 ‘셋’, ‘일곱’, ‘열’, ‘열둘’과 같은 단순한 숫자들로 교회에 속한 여러 상태를 표현했고, 이 숫자들을 서로 조합하여 더 복잡한 상태들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창5의 800이나 930과 같은 큰 숫자를 곧바로 하나의 간단한 상응으로 바꾸어 ‘800은 이것, 930은 저것’이라고 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여러 단순한 수가 결합된 숫자이며, 그 안에는 각 교회가 겪은 복합적인 상태 변화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 자신도 여기서 800과 930의 의미를 하나하나 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포함된 교회의 상태 변화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씀의 숫자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절제의 원칙을 보여 줍니다. 숫자에 속뜻이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그 숫자의 모든 의미를 곧바로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먼저 셋, 일곱, 열, 열둘과 같은 기본적인 숫자의 의미와 그것들이 말씀 전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아야 조합된 숫자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유대교회의 희생 제사와 소제와 봉헌물 등의 숫자를 함께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에서 숫자는 단순한 계산상의 장식물이 아니라,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과 문맥에 따라 거룩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제물의 수, 기간, 측량 등이 예배의 영적 실재를 표상했던 것처럼, 창5의 연수 역시 태고교회와 그 후대 교회들의 내적 상태를 표현합니다. 숫자의 의미는 숫자만 떼어 내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에 적용되고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특히 ‘그것은 교회의 상태를 헤아리고 기록한 것이었다’는 설명은 창5의 족보를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바꾸어 놓습니다. 문자에서는 아담이 몇 살에 셋을 낳았고 이후 몇 년을 더 살았으며 모두 몇 세에 죽었는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뜻에서는 한 교회가 어떤 상태에서 시작하여 어떤 변화들을 거쳤으며 그 전체적인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헤아리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5의 숫자들은 사람의 나이를 세는 계산표라기보다 교회의 상태를 기록하는 영적 언어인 셈입니다.

 

이 점은 앞의 AC.483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등의 이름들이 각각 서로 다른 교회를 나타내고 그 교회들이 주로 퍼셉션의 차이로 구별되었다면, 각 이름 옆에 기록된 연수는 그 서로 다른 교회들의 상태와 그 상태의 변화를 표현합니다. 따라서 창5에서는 ‘이름’과 ‘숫자’를 따로 떼어 읽을 수 없습니다. 이름은 어떤 교회인지를 보여 주고, 숫자는 그 교회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묘사합니다.

 

결국 AC.487은 창5의 기이하게 긴 수명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매우 중요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고대 사람들이 정말 800년, 900년을 살 수 있었는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서 주님께서 왜 바로 그 숫자들을 사용하셨으며, 그것들을 통해 교회의 어떤 상태와 변화를 나타내셨는가가 핵심입니다. 아직 그 모든 숫자의 아르카나를 우리가 풀어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창5의 숫자들이 무의미한 장식도 아니고 단순한 연대 자료만도 아니라는 것, 그것들이 태고교회와 그 후대 교회들의 상태 변화를 담아내는 말씀의 정교한 언어라는 사실을 AC.487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AC.487 해설)

 

 

 

창5:4, AC.488, ‘천사들에게 시간은 상태와 그 변화’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8‘날들’(days)이 일반적인 상태를, ‘해들’(years)이 특별한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에스

bygrace.kr

 

창5:4, AC.486, '날들과 해들, 아들들과 딸들의 의미'(AC.486-491)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창5:3) AC.486‘날들’(days)은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창5:3)

 

AC.486

‘날들’(days)은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고, ‘해들’(years)은 특별한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며, ‘아들들과 딸들’(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by “years,” times and states in special;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perceived.

 

해설

AC.486은 매우 짧지만 창5의 계보를 읽는 데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열쇠를 한꺼번에 제시합니다. 창5:4에는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고 되어 있는데, 속뜻에서는 이 ‘날들’과 ‘해들’, 그리고 ‘아들들과 딸들’이 모두 교회의 내적 상태와 그 안에서 생겨난 선과 진리를 나타냅니다.

 

먼저 ‘날들’은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시간’은 단순히 달력 위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회가 거쳐 간 영적 상태의 지속과 변화를 포함합니다. 앞의 AC.482에서 이미 창5의 연수는 문자 그대로의 세속적 연수보다 교회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AC.486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날들’과 ‘해들’ 사이에도 의미의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해들’은 ‘특별한 시간과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날들과 해들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과 특별의 관계에 있습니다. ‘날들’이 한 교회가 지나온 상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표현이라면, ‘해들’은 그 전체 안에 포함된 보다 구체적인 상태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AC.482에서 가장 작은 시간과 가장 큰 시간 사이에도 유사성이 있다고 설명한 것과 연결됩니다. 전체가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일반적인 상태 안에는 여러 특별한 상태들이 들어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들과 딸들’입니다. 문자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자녀를 낳았다는 족보의 표현이지만, 속뜻에서는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아들들’은 진리들을, ‘딸들’은 선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한 교회가 ‘아들들과 딸들을 낳았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가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그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여러 진리와 선이 퍼셉션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AC.486은 단순히 ‘그들이 알고 있던 진리와 선’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 퍼셉션한 진리와 선’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AC.483과 직접 연결됩니다. 당시 여러 교회를 구별하는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고, 각 교회는 서로 다른 퍼셉션의 상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아들들과 딸들’은 외부에서 배워 기억 속에 저장한 교리적 지식이라기보다, 태고교회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내적으로 퍼셉션했던 진리와 선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보면 창5의 ‘낳음’이라는 표현도 더욱 깊어집니다. 앞에서는 한 교회가 다른 교회로 이어지는 것을 ‘낳음’으로 표현했다면, 여기서는 한 교회 안에서 퍼셉션된 진리와 선 역시 ‘아들들과 딸들’이라는 출생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말씀에서 영적인 생명이 실제 생명의 출생과 성장이라는 언어로 묘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면 사람과 교회 안에서 실제로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영적 생명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5:4의 한 구절 안에는 교회의 전체적인 상태와 그 안의 구체적인 상태들, 그리고 그 상태 가운데서 생겨난 진리와 선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날들’은 일반적인 상태를, ‘해들’은 그 안의 특별한 상태들을, ‘아들들과 딸들’은 그 교회가 퍼셉션한 진리들과 선들을 나타냅니다. 문자에서는 한 사람의 긴 생애와 많은 자녀가 보이지만, 속뜻에서는 한 교회가 일정한 상태를 지나면서 주님으로부터 수많은 선과 진리를 받아 풍성해지는 모습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AC.486 해설)

 

 

 

창5:4, AC.487, ‘날들과 해들에 기록된 교회의 상태 변화’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4) AC.487‘날들’(days)이 일반적인 시간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은 1장에서 보여 주었습니다. 거기서 창조의 ‘날들’은 다른 어떤

bygrace.kr

 

창5:3, AC.485, ‘창4의 셋과 창5의 셋은 서로 다른 교회’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5여기서 ‘셋’(Seth)이 앞에서 묘사된 교회(창4:25)와는 다른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AC.435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2026년 첫 주일입니다. 보통은 신년 주일이라 하여 설교도 그에 맞게 준비하지만, 저희는 당분간 아주 특별한 절기 외에는 오직 이 AC에만 전념하기로 한 점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는 창세기 5장입니다. 오늘부터 6주에 걸쳐 창세기 5장을 살피게 되며,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 1절로 3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1-3)

 

위 본문을 아래

창5 아담 계보의 속뜻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겉으로 보면 무슨 가계 족보의 서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경 전체에서 인간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인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아담의 계보’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이는 한 개인의 혈통 기록이 아니라, 태고교회라는 최초의 교회 상태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다음 상태로 넘어갔는지를 말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인간의 기원이 아니라, ‘사람됨의 기원’, 곧 교회의 기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혀 새로울 수 있는 이 관점을 아래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이 말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본문은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떤 한 사람의 족보를 떠올리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말씀은 그 기대를 깨뜨립니다.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어 ‘아담’(אָדָם, Adam)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사람’을 뜻하는 말이며, 성경은 이 ‘사람’을 단수로 말하면서도 동시에 복수로 취급합니다. 이는 분명히 어떤 한 개인,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류 최초의 인간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 것이지요.

 

성경에서 ‘사람’은 언제나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형성된 상태를 뜻합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합한 상태, 다시 말해 교회가 존재할 때, 그 상태를 성경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태고교회는 곧 ‘사람’이었고, 그 교회에 속한 이들은 개인이기 이전에 교회의 일부였습니다. 그들의 사고, 사랑, 퍼셉션(perception), 삶 전체가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아담의 계보’로 시작하는 것은, 인간 개인의 계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상태의 계승’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그 이름으로 불리던 교회가 어떤 상태로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가’를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며, 나 자신을 한 개인으로 보기보다, 지금 나는 어떤 교회 상태에 서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모양’은 즉각적 퍼셉션의 삶을 뜻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외적으로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살도록 지어졌다’는 뜻입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참인지를 배움과 학습을 통해서 알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즉각적으로 인식, 곧 지각(perception, 퍼셉션)했습니다. 이것을 스베덴보리는 ‘퍼셉션’이라 부릅니다. 아래는 관련 설명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483에서 창세기 5장에 나열된 이름들, 곧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렛’(Jared), ‘에녹’(Enoch), ‘므두셀라’(Methuselah), ‘라멕’(Lamech), ‘노아’(Noah)라는 이름들을 다시 한번 분명히 정리합니다. 셋에서 노아에 이르는 모든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교회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들 가운데 첫째이자 중심이 되는 교회를 ‘사람’이라 했습니다. 이는 앞서 여러 차례 보았듯이, 태고교회가 주님의 모양과 형상을 가장 온전하게 반영했던 교회였기 때문이지요. 이후에 나오는 모든 교회들은 이 ‘사람’의 상태에서 파생된 변형들이었습니다.

 

이 교회들의 가장 중요한 공통 특징은 바로 ‘퍼셉션’(perception)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퍼셉션이란, 지식이나 판단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내적 지각’을 의미합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선한지를 배워서 알지 않았고, 명령을 통해 분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곧바로 퍼셉션, 곧 지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 교회들 사이의 차이는 교리의 차이나 제도의 차이가 아니라, ‘퍼셉션의 차이’였습니다.

 

이 퍼셉션의 삶은 율법 이전의 삶이었고, 교리 이전의 삶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로 계산하지 않아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직관적으로 알았던 삶입니다. 그래서 태고교회는 규범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사랑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인간이 그와 같은 질서 안에 놓였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모양은 자동적으로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 퍼셉션의 삶은 점차 약해졌고, 결국 다른 방식의 교회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먼저 이 가장 완전한 상태를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 창조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상태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성경은 여전히 그 방향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셋째, ‘셋을 낳았다’는 것은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음을 뜻합니다

 

본문 3절에서 갑자기 시간이 흐르고, 아담이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셋’(Seth)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오해하기 쉽습니다. 마치 한 사람이 나이 들어 아들을 낳은 것처럼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새로운 교회 상태의 출현’을 말합니다.

 

태고교회의 완전한 퍼셉션의 상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고, 주님께서는 그 리메인스(remains)를 보존하시어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셨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셋’으로 대표, 표상됩니다. 이 교회는 태고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동일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랑이 여전히 중요했으나, 더 이상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했고, 신앙이 점점 더 전면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순수한 상태가 지나가도, 주님은 언제나 그다음 상태를 준비하십니다. 셋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섭리의 응답’입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회는 계속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 역시 셋의 교회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즉각적 퍼셉션의 삶을 살지 못하지만, 사랑과 신앙의 결합 안에서 여전히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결합입니다. 사랑이 신앙과 분리되지 않을 때, 교회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단지 존재하게 하시기 위해 창조하지 않으셨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무너져도 끝나지 않고, 언제나 다음 상태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계보 위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삶은 다음 상태를 낳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이 말씀 앞에서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우리 신앙의 핵심은 ‘속 사람의 상태’입니다. 천국도 지옥도 모두 이 속 사람의 상태를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무슨 시공간의 나라가 아니라 상태와 그 변화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무엇보다도 자기 속 사람의 상태 관리에 매진해야 합니다. 대신 ‘나는 교회 몇 년 다녔어’, ‘나는 예수님 영접 기도한 지 벌써 30년이나 된 사람이야’, ‘나는 교회에서 목사로, 장로로, 권사, 집사로 평생 섬겼어’ 등등 이런 다분히 겉 사람에 치우친 공로에 의지하시다가는 나중에 큰일 납니다.

 

동일한 원리로 우리는 성경도 이제는 겉이 아닌 속으로, 아니 겉도 보고 속도 보면서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엉뚱하게 해석하는 바람에 삼천포로 빠지지 않게 됩니다. 겉도 중요하지만, 속으로 읽는 훈련, 곧 천사들이 읽는 방식으로 읽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사랑의 주님,

 

오늘 신년을 맞아 창세기 5장 첫 본문으로 주님 음성에 귀 기울였습니다. 다소 생소하고 낯선 내용들이 혹시 있었을지라도 반발심 대신 주님을 사랑하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저마다 자기 내면을 들을 귀 있는 상태로 유지하고자 힘써 노력하는 심령들에게는 주님, 아낌없이 놀라운 하늘의 계시를 부어주시옵소서. 그래서 놀라운 일, 곧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결실의 기적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그렇지 못한 심령들에게도 주님, 저들을 어루만지사 부드러운 심령들 되게 하시기를, 그래서 다들 올 한 해 능히 주님의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심령들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다음 본문은 창5:4-20(AC.486-515)입니다.

 

 

 

설교

2026-01-0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632, 25. 창5.1, 2026-01-04(D1)-주일예배(창5,1-3, AC.469-485, 성찬), ‘창5 아담 계보의 속뜻’.pdf
0.33MB
성찬.pdf
0.14MB

 

 

 

 

주일예배(2026/01/11, 창5:4-20),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오늘은 창세기 5장 두 번째 시간, 4절로 20절입니다. 본문 함께 읽습니다.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

bygrace.kr

 

주일예배(2025/12/28, 창4:25-26),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