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어리티'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24.04.08 AC.439,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AC.438-442) 1
  2. 2024.04.03 AC.370, 창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AC.370-372)
  3. 2024.04.03 AC.369,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속뜻
  4. 2024.04.03 AC.367,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체어리티는 신앙의 '아우', 둘 사이 생득권, 장자권 분쟁
  5. 2024.04.03 AC.366,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속뜻
  6. 2024.04.03 AC.364, 창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AC.361-365) -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의 속뜻
  7. 2024.04.03 AC.362, 창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AC.361-365) - ‘가인’의 속뜻,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사람들
  8. 2024.04.02 AC.351, 창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AC.350-354) - ‘아벨’의 속뜻, 체어리티
  9. 2024.04.02 AC.348,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AC.346-349) - ‘땅의 소산’의 속뜻,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
  10. 2024.04.01 AC.344,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AC.341-345) -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체어리티

 에노스의 속뜻, 영적 인간(靈人, spiritual man)의 성향을 띤 평범한 인간, 체어리티를 신앙의 원리로 삼았던 어떤 교회

 

26절,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h: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439

’이 신앙, 곧 이 신앙을 통해서 체어리티가 오는 그런 신앙임은 선행구절에서 보여드렸습니다. 그의 아들, 곧 그 이름이 에노스였던 아들, 체어리티를 신앙의 원리로 삼았던 어떤 교회를 가리켜 에노스라 한다는 것은 앞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실들로도 분명한데요, 그 교회를 에노스라 한다는 것, 이 이름의 뜻 역시 사람(man)인데, 천적 인간(天人, celestial man)을 말하는 건 아니고, 대신 영적 인간(靈人, spiritual man)의 성향을 띤 평범한 인간을 의미하는, 이런 게 에노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는 말씀으로도 분명합니다. That by “Seth” is signified the faith through which comes charity was shown in the preceding verse. That by his “son, whose name was Enosh,” is signified a church that regarded charity as the principal of faith, is also evident from what has been said before, as well as from the fact that it is called “Enosh,” which name also means a “man,” not a celestial man, but that human spiritual man which is here called “Enosh.” The same is evident also from the words that immediately follow: “then began they to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Posted by bygracetistory
,

※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의 속뜻

 

9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And Jehovah said to Cain,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370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는 그들에게 체어리티, 혹은 ‘아우 아벨’에 관하여 일종의 딕테이트(dictate)를 준 어떤 퍼셉션 같은 것(perceptivity)을 말합니다. 가인의 대답,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는 신앙이 체어리티를 뭣도 아닌 걸로 여겼음을, 그리고 체어리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걸 마음에 내켜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체어리티와 관련된 모든 걸 거부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게 그들의 교리가 되었습니다. Jehovah said unto Cain” signifies a certain perceptivity from within that gave them a dictate concerning charity or the “brother Abel.” Cain’s reply,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signifies that faith considered charity as nothing, and was unwilling to be subservient to it, consequently that faith altogether rejected everything of charity. Such did their doctrine become.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69,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속뜻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9

그래서 이상으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본문,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의미인데요, 그것은 신앙과 체어리티는 둘 다 교리적으로는 신앙의 교리로부터 말미암았음에도 불구, 신앙, 얘가 문젠데... 곧 애써 자기를 사랑에서 분리 및 체어리티를 무시, 반드시 체어리티를 지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결국은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리고야 마는 게 신앙이라는 내용인데요, 오늘날의 경우, 체어리티의 실천은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바로 이런 걸로 그들은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리기 때문인데요, 아무리 그들이 사랑 없이 신앙 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입술로 고백할지라도 말입니다. From this then it follows that the words “Cain rose up against his brother Abel, and slew him,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ogether,” denote that while both faith and charity were from the doctrine of faith, yet faith separate from love could not but disregard and thereby extinguish charity; as is the case at the present day with those who maintain that faith alone saves, without a work of charity, for in this very supposition they extinguish charity, although they know and confess with their lips that faith is not saving unless there is love.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67,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체어리티는 신앙의 '아우', 둘 사이 생득권, 장자권 분쟁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7

체어리티가 신앙의 ‘아우’라는 것, 그리고 ‘’이 교리에 속한 것이면 무엇이든 의미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말고는 굳이 말씀 내 유사 구절들을 찾아 이들을 컨펌할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체어리티가 신앙의 아우라는 사실은 신앙의 본성이나 본질상 누구에게나 자명합니다. 이 형제지간이 에서와 야곱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생득권(生得權, the birthright) 및 그로 인한 주도권 다툼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유다로 말미암은 다말의 두 아들, 베레스와 세라로 (38:28-30),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로도 표현되었습니다 (48:13-14). 이 둘도 다른 유사한 경우들과 같이 장자권(長子權, the primogeniture)과 그로 인한 주도권 다툼이 있습니다. 신앙과 체어리티는 교회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남자라 합니다. 본 장 1절의 가인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체어리티는 아우라 합니다. 19:2, 13:14 및 다른 데서들처럼 말이지요. 신앙과 체어리티의 연합을 형제의 계약’(1:9)이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상징과 비슷한 것이 방금 말씀드린 야곱과 에서의 상징이었습니다. 야곱 또한 그의 형 에서를 대신하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그런데요, 호세아를 봐도 분명합니다. It is unnecessary to confirm these things by similar passages from the Word, except so far as to prove that charity is the “brother” of faith, and that a “field” signifies whatever is of doctrine. That charity is the “brother” of faith is evident to everyone from the nature or essence of faith. This brotherhood was represented by Esau and Jacob, and was the ground of their dispute about the birthright and the consequent dominion. It was also represented by Pharez and Zarah, the sons of Tamar by Judah (Gen. 38:28, 29, 30); and by Ephraim and Manasseh (Gen. 48:13, 14); and in both of these, as well as in other similar cases, there is a dispute about the primogeniture and the consequent dominion. For both faith and charity are the offspring of the church. Faith is called a “man,” as was Cain, in verse 1 of this chapter, and charity is called a “brother,” as in Isa. 19:2; Jer. 13:14; and other places. The union of faith and charity is called “the covenant of brethren.” (Amos 1:9) Similar to the signification of Cain and Abel was that of Jacob and Esau, as just said; in that Jacob also was desirous of supplanting his brother Esau, as is evident also in Hosea:

 

2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호12:2-3) To visit upon Jacob his ways, according to his doings will he recompense him; he supplanted his brother in the womb. (Hos. 12:2–3)

 

그러나 에서, 곧 에서로 표현된 체어리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내용이 그들의 아버지 이삭의 예언을 보면 나옵니다. But that Esau, or the charity represented by Esau, should nevertheless at length have the dominion, appears from the prophetic prediction of their father Isaac: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창27:40) By thy sword shalt thou live, and shalt serve thy brother;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thou hast the dominion, that thou shalt break his yoke from off thy neck. (Gen. 27:40)

 

또한 같은 건데요, 이방인들의 교회, 혹은 새 교회는 에서로, 유대인들의 교회는 야곱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형제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그렇게 자주 듣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교회, 혹은 원시 교회에서는 체어리티로 말미암아 모두 서로를 형제라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도 누가복음에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을 형제라 하고 계십니다. (8:21)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신앙의 사람들이요, 말씀을 행하는 사람들은 체어리티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서, 혹은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 행함은 없는, 혹은 체어리티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형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이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에 비유하셨기 때문입니다. (7:24, 26)  Or what is the same, the church of the gentiles, or new church, is represented by Esau, and the Jewish church is represented by Jacob; and this is the reason for its being so often said that the Jews should acknowledge the gentiles as brethren; and in the church of the gentiles, or primitive church, all were called brethren, from charity. Such as hear the Word and do it are likewise called brethren by the Lord (Luke 8:21); those who hear are such as have faith; those who do are such as have charity; but those who hear, or say that they have faith, and do not, or have not charity, are not brethren, for the Lord likens them unto fools (Matt. 7:24, 26).

 

 

28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창38:28-30)

 

13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창48:13-14)

 

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사19:2)

 

또 그들로 피차 충돌하여 상하게 하되 부자 사이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13:1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암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눅8:21)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4, 26)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66, 창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AC.366-369)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의 속뜻

 

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And Cain talked to Abel his brother; and it came to pass when they were in the field, that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366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는 일종의 시간 간격, 즉 시간이 흘렀음을 말합니다. 가인은 앞서 기술(記述)처럼,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을, ‘아벨은 체어리티, 곧 신앙의 아우를 말하며, 그래서 여기 그는 두 번 아우라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field)은 무엇이든지 교리에 속한 것이면 다 입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는 분리된 신앙이 체어리티의 불을 꺼트렸음을, 즉 체어리티를 소멸시켰음을, 끝장냈음을 말합니다. Cain spake to Abel” signifies an interval of time. Cain,” as before stated, signifies faith separated from love; and “Abel” charity, the brother of faith, on which account he is here twice called his “brother.” A “field” signifies whatever is of doctrine. “Cain rose up against Abel his brother, and slew him” signifies that separated faith extinguished charity.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64, 창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AC.361-365) -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의 속뜻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364

두 번째로,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는 만일 네가 선을 행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는 체어리티의 사람이 아니고 대신 악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가 안으로 들어가고자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인 악을 말한다는 사실입니다. 체어리티가 모두 사라지게 되면, 그때는 오직 무자비함과 증오, 결과적으로는 모든 악만 남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죄를 가리켜 악마(the devil)라고 하지요, 이 악마는 체어리티가 결핍된 사람에게 아주 가까이 와 있는, 지옥과도 같이 끔찍한 그의 동료입니다. 마음 문 앞에 와 있는 이 악마와 그의 동료를 쫓아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Secondly, it is sai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which signifies, If thou art not well disposed, there is no charity present, but evil. Everybody can see that “sin lying at the door” is evil ready and desirous to enter; for when there is no charity there are unmercifulness and hatred, consequently all evil. Sin in general is called the “devil,” who, that is, his crew of infernals, is ever at hand when man is destitute of charity; and the only means of driving away the devil and his crew from the door of the mind is love to the Lord and toward the neighbo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62, 창4:7,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AC.361-365) - 가인의 속뜻,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사람들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If thou doest well, art thou not exal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to thee is his desire, and thou rulest over him.

 

362

가인’이라 하는 신앙의 교리를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면 그 결과, 체어리티에서도 분리됩니다. 체어리티는 사랑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든지 교회가 있는 곳이면 이단들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신앙의 어떤 특별한 신조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다가 그만 그걸 메인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게 바로 인간 사고의 본성, 즉 사람은 어떤 것 하나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다가 그걸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이런 경향은 특히 그가 오버한 나머지 그걸 자신의 고유한 발견이라고 주장할 때라든지, 그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다 그것에 들어맞는 것 같고, 그것을 컨펌하는 것 같아서 그는 결국 그것이 맞다 맹세까지 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것이 거짓이더라도 말이지요. 바로 이런 식으로 가인이라 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사랑보다도 더 본질적인 걸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과적으로 사랑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삶에서 비롯된 자아와 환상 둘 다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은 어이없게도 그런 컨펌 가운데 있게 된 것입니다. The doctrine of faith called “Cain” is here described, which in consequence of separating faith from love, separated it also from charity, the offspring of love. Wherever there is any church, there arise heresies, because while men are intent on some particular article of faith they make that the main thing; for such is the nature of man’s thought that while intent on some one thing he sets it before any other, especially when his imagination claims it as a discovery of his own, and when the love of self and of the world puff him up. Everything then seems to agree with and confirm it, until at last he will swear that it is so, even if it is false. Just in this way those called “Cain” made faith more essential than love, and as they consequently lived without love, both the love of self and the fantasy thence derived conspired to confirm them in it.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51, 창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AC.350-354) - 아벨의 속뜻, 체어리티

 

4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And Abel, he also brought of the firstlings of his flock, and of the fat thereof.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351

아벨’은 체어리티임은 앞서 보여드렸습니다. 체어리티는 이웃을 향한 사랑, 그리고 자비입니다. 자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슬픔 중에 있는 이웃을 향해 마치 자신을 향해 하듯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That “Abel” signifies charity has been shown before. By charity is meant love toward the neighbor, and mercy; for he who loves his neighbor as himself is also compassionate toward him in his sufferings, as toward himself.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48,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AC.346-349) - 땅의 소산의 속뜻,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

 

3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And at the end of days it came to pass that Cain brought of the fruit of the ground an offering to Jehovah.

 

348

땅의 소산’이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을 의미한다는 건 또한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내용으로도 알 수 있는데요, 체어리티 없는 신앙 행위들은 절대 신앙 행위라고 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건 그저 겉 사람에게 속한 행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에 관해 예레미야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That by the “fruit of the ground” are meant the works of faith without charity, appears also from what follows; for the works of faith devoid of charity are works of no faith, being in themselves dead, for they are solely of the external man. Of such it is written in Jeremiah:

 

1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주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나중 일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렘12:1-2, 4) Wherefore doth the way of the wicked prosper? Thou hast planted them, they also have taken root; they have gone on, they also bear fruit; thou art near in their mouth, and far from their reins; how long shall the land mourn, and the herb of every field wither? (Jer. 12:1–2, 4)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들의 마음은 머니이다’는 체어리티와 분리된 신앙의 사람들, ‘이 땅이 슬퍼하며’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에 관한 걸 가리킵니다. 같은 예언서에서 이런 행위들을 행실대로라 하고 있습니다. Near in the mouth, but far from the reins” denotes those who are of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concerning whom it is said that “the land mourns.” In the same prophet such works are called the “fruit of works”: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9-10) The heart is deceitful [supplantativum] above all things, and it is desperate, who can know it? I Jehovah search the heart, I try the reins, even to give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ways, and according to the fruit of his works. (Jer. 17:9–10)

 

미가에서 In Micah: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미7:13) The land shall be desolate because of them that dwell therein, for the fruit of their works. (Micah 7:13)

 

이런 ‘열매’는 아무 열매도 아니며, 이런 ‘행위’는 죽은 행위라는 사실, 그리고 열매와 뿌리 둘 다 진멸된다는 선언이 아모스서에 나옵니다. That such “fruit” is no fruit, or that the “work” is dead, and that both fruit and root perish, is thus declared in Amos: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암2:9) I destroyed the Amorite before them, whose height was like the height of the cedars, and he was strong as the oaks; yet I destroyed his fruit from above, and his roots from beneath. (Amos 2:9)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왕이 그들의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의 자손을 사람 중에서 끊으리로다 (시21:10) Their fruit shalt thou destroy from the earth, and their seed from the sons of man. (Ps. 21:10)

 

그러나 체어리티의 행위들은 살아 있으며, 이런 행위들은 이사야에 보면 선포하기를, 그들은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라 하고 있습니다. But the works of charity are living, and of them it is declared that they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as in Isaiah: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사37:31) The remnant that is escaped of the house of Judah shall again take root downward, and bear fruit upward. (Isa. 37:31)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는 체어리티로 행하는 것입니다. 같은 예언서에서, 그런 열매를 일컬어 영화로운 소산이라 하고 있습니다. To “bear fruit upward” is to act from charity. Such fruit is called the “fruit of excellence,” in the same prophet: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사4:2) In that day shall the shoot of Jehovah be beautiful and glorious, and the fruit of the earth excellent and comely for them that are escaped of Israel. (Isa. 4:2)

 

이는 또한 ‘구원의 열매’로, 같은 예언서에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It is also the “fruit of salvation,” and is so called by the same prophet: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사45:8) Drop down, ye heavens, from above, and let the skies pour down righteousness; let the earth open, and let them bring forth the fruit of salvation, and let righteousness spring up together; I Jehovah will create it. (Isa. 45:8)

Posted by bygracetistory
,

 AC.344,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AC.341-345) -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체어리티

 

2절,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And she added to bear his brother Abel; and Abel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Cain was a tiller of the ground.

 

344

신앙, 즉, 기억-지식 [스키엔티아 scientia], 지식 [코그니시오 cognitio], 그리고 신앙의 교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고 있을까요? 신앙이 가르치는 가장 핵심은 바로 체어리티입니다. (막12:28-35; 마22:34-39) What avails faith, that is, the memory-knowledge [scientia], the knowledge [cognitio], and the doctrine of faith, but that the man may become such as faith teaches? And the primary thing that it teaches is charity. (Mark 12:28-35; Matt. 22:34-39)

 

※ ‘기억-지식(the memory-knowledge, scientia)은 학습한 지식, 책을 통해 습득한 지식인 반면, ‘지식(the knowledge, cognitio)은 경험으로 알게 된 지식, 경험을 통과한 스키엔티아라 할 수 있습니다.

 

28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35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막12:28-35)

 

34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4-39)

 

이것이 신앙이 지향하는 모든 것의 최종목표이며, 만일 이게 안 되면, 모든 지식이나 교리는 한낱 빈껍데기에 다름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This is the end of all it has in view, and if this be not attained, what is all knowledge or doctrine but a mere empty nothing?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