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the 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이 아니고, 모양처럼 생긴 것(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하신 것입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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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the 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이 아니고, 모양처럼 생긴 것(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하신 것입니다.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이고,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즉 닮음, 유사함(similitude)입니다. As regards the “image,” 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 it is therefore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The spiritual man is an “image,” and the celestial man a “likeness,” or similitude.

 

※ 형상, 이미지를 그릇으로 보면, 모양, 닮음은 그 그릇에 담긴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 겉모습만 보면 얼핏 주님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그의 행실, 성품, 인성 등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주님을 닮았다, 안 닮았다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영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an image)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a son of light)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In this chapter the spiritual man i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the celestial. The spiritual man, who is an “image,” is called by the Lord a “son of light,” as in John: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36) He that walketh in the darkness knoweth not whither he goeth. While ye have the light, believe in the light, that ye may be sons of light. (John 12:35–36)

 

그를 일컬어 ‘친구(a friend)라고도 하시지요. He is called also a “friend”: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4-15) Ye are my friends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 (John 15:14–15)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a likeness)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a son of God)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But the celestial man, who is a “likeness,” is called a “son of God,” in John: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4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the power to becom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who were born not of bloods,4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John 1:12–13)

 

4, 헬라어는 ἐξ αἱμάτων입니다. 아래 374번 글 [3] 단락을 보세요. [편집자] The Greek is ex haimat¯on. See below, at n. 374[3]. [Rev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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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50,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AC.49-52)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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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교회는 ‘주님의 형상(the image of the Lord)이라는 표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서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한테는 영과 천사들이 최소한 둘씩 와 있다는 사실들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understood by the “image of the Lord” more than can be expressed. Man is altogether ignorant that he is governed of the Lord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that with everyone there are at least two spirits, and two angels.

 

※ 이 사실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천사들하고는 천국과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영들을 통한 영들의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그리고 천사들을 통한 천국과, 그리고 천국을 통한 주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이는 사람은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전적으로 이러한 결합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떠나가 버리면 사람은 즉시 소멸될 것입니다. By spirits ma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angels with heaven. Without communication by means of spirits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means of angels with heaven, and thus through heaven with the Lord, man could not live at all; his life entirely depends on this conjunction, so that if the spirits and angels were to withdraw, he would instantly perish.

 

※ 우리가 잠시라도 생존할 수 있으려면 이런 악한 영들하고도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참으로 우리는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이 우리의 태생적 생명이니 말입니다...

 

[2] 아직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 시작한 사람과는 사뭇 다른 다스림을 받습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와 함께하는 악한 영들이 매사 천사들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이때 천사들은 그가 가장 저급한 악 안으로 거꾸러져 들어가는 대신 어떤 선 쪽으로 구부러지도록 그를 그저 겨우 가이드만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사실, 그 사람의 탐욕을 가지고 선으로, 거짓된 감각을 가지고 진리로 구부리는 정도입니다. While man is unregenerate he is governed quite otherwise than when regenerated. While unregenerate there are evil spirits with him, who so domineer over him that the angels, though present, are scarcely able to do anything more than merely guide him so that he may not plunge into the lowest evil, and bend him to some good—in fact bend him to good by means of his own cupidities, and to truth by means of the fallacies of the senses.

 

※ 예를 들면, 자살하려고 최종 결심, 이제 막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든지 또는, 탐욕의 끝에 가서 갑자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추하게 느껴진다든지, 그리고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던 중 어느 순간, 그런 감각의 충족이 가져다주는 모든 쾌락이 헛것이요,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뭐 이런 경우들을 예로 들 수 있겠으며, 누가복음에 나오는, 아버지의 재산 중 제 몫을 먼저 달라 하여 그걸 가지고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하다가 굶어 죽게 되자 정신을 차리게 된 둘째 아들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경우가 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하고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천국하고는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그를 다스리기 때문이며, 이 경우, 천사들은 그들의 다스림을 외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He the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through the spirits who are with him, but not so much with heaven, because evil spirits rule, and the angels only avert their rule.

 

※ 천사가 뭘 하고 싶어도 사람이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나머지, 오직 악하고 거짓된 것만 마음먹기 때문에, 도무지 천사들이 무엇을 할 여지가, 그 결과, 도저히 천국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애정이 악한 것을 좋아하여 악한 영들과 호흡이 맞는 한, 천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설령 내가 뭘 잘못해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착각이요, 무지의 소치, 그리고 아주 위험한 생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그가 거듭남 가운데 있게 되면, 그는 모든 선과 진리에 대해서는 천사들의 다스림(rule)과 격려를 받지만,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 겉으로는 천사들이 다스리는(lead)것 같지만, 그들은 단지 사역자들일 뿐입니다.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는(governs)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먼저 복수(the plural number)로 이르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하는 것이며, 그러나 여전히 주님 홀로 다스리시며 다 하시기 때문에, 다음 구절에서는 단수(the singular number)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하시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이 이사야에서 분명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But when the man is regenerate, the angels rule, and inspire him with all goods and truths, and with fear and horror of evils and falsities. The angels indeed lead, but only as ministers, for it is the Lord alone who governs man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as this is done through the ministry of angels, it is here first said, in the plural numb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yet because the Lord alone governs and disposes, it is said in the following verse, in the singular number, “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This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Jehovah make all things, 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 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천사들은 더더욱 스스로 이렇게들 고백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오직 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입니다. The angels moreover themselves confess that there is no power in them, but that they act from the Lord alone.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는, 본문에 나오는 ‘우리’라는 표현을 저는 그동안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삼위 하나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 하나님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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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한 사람(a man)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멤버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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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한 사람(a man)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멤버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많은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은 나눌 때가 아닌 것 같고요,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이 ‘사람들(me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고 지각된(perceived)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In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the members of which the Lord conversed face to face, the Lord appeared as a man; concerning which much might be related, but the time has not yet arrived. On this account they called no one “man” but the Lord himself, and the things which were of him; neither did they call themselves “men,” but only those things in themselves—as all the good of love and all the truth of faith—which they perceived they had from the Lord.

 

※ 처음에 주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걸 본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후 자신들을 향해 감히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한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속한 것(of man)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오직 주님에게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These they said were “of man,” because they were of the Lord.  

 

[2] 그래서 선지서들에 나오는 ‘사람(man),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주님을,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는 지혜와 지성을, 즉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Hence in the prophets, by “man” and the “son of man,” in the supreme sense, is meant the Lord; and in the internal sense, wisdom and intelligence; thus everyone who is regenerate. As in Jeremiah: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3, 25)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3, 25)

 

이사야에서 ‘사람’은 속뜻으로는 거듭난 사람을, 가장 높은 뜻으로는 한 사람(the one man)이신 주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In Isaiah, where, in the internal sense, by “man” is meant a regenerate person, and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s the on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사45:11-12) Thus saith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Isa. 45:11–12)  

 

[3]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들에게 사람으로(as a man)나타나셨습니다. 에스겔입니다. The Lord therefore appeared to the prophets as a man, as in Ezekiel: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겔1:26) Above the expanse, as the appearance of a sapphire stone, the likeness of a throne, and upon the likeness of the throne was the likeness as the appearance of a man above upon it. (Ezek. 1:26)

 

다니엘은 두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인자(人子, the son of man), 즉 같은 말인데, 사람(the man)이라 하였습니다. And when seen by Daniel he was called the “son of man,” that is, the man, which is the same thing: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7:13-14) I saw, and behold, one like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came to the ancient of days, and they brought him near before him;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people, and nations, and languages should serve him.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which shall not pass away, and his kingdom that which shall not be destroyed. (Dan. 7:13–14)  

 

[4] 또한 주님은 자주 자신을 가리켜 ‘인자(the son of man), 즉, 사람이라 하시고, 다니엘에서처럼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The Lord also frequently calls himself the “son of man,” that is, the man, and, as in Daniel, foretells his coming in glory: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30) Then shall they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reat glory. (Matt. 24:30)

 

구름을 타고(The clouds of heaven)는 말씀(the Word)의 겉 글자의 뜻(the literal sense)인 반면, ‘능력과 큰 영광으로(power and great glory)는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인데요, 말씀의 모든 것은 그 속뜻으로는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오직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능력과 영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지요. The “clouds of heaven” are the literal sense of the Word; “power and great glory” are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hich in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has reference solely to the Lord and his kingdom; and it is from this that the internal sense derives its power and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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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때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다 하는데요, 이때 이 사람은 말을 할 때, 신앙과 관련된, 이해에 속한 어떤 원리로(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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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때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다 하는데요, 이때 이 사람은 말을 할 때, 신앙과 관련된, 이해에 속한 어떤 원리로(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스스로 확신합니다. 이때 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움직이는(animate) 것이며,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the fishes of the sea), ‘하늘의 새’(the fowl of the heavens)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해에 속한 신앙으로(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의지에 속한 사랑으로(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진리를 말하며 선을 행할 때, 그는 여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으며, 이때 그로 말미암는 것들을 가리켜 ‘생물(the living soul), ‘가축(the beast)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가 신앙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기를 시작할 때, 그는 영적 인간이 되며,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라 하는데, 이것이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Hence then it appears that man is in the fifth state of regeneration when he speaks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he true and in the good. The things then brought forth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es of the sea,” and the “fowl of the heavens.” He is in the sixth state, when 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he speaks truths, and does goods; what he then brings forth being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from love, as well as from faith,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of God,” which is the subject now treated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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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구절인 24절에서는,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순으로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지요,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the wild animal of the earth)을 만드시고, 마찬가지로 ‘가축(the beast)도 만드셨다고 말이지요.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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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말씀에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또한 앞 구절 말씀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에서는,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순으로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지요,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the wild animal of the earth)을 만드시고, 마찬가지로 ‘가축(the beast)도 만드셨다고 말이지요.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먼저, 그리고 나중에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the external)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the internal)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That these words contain arcana relating to regeneration, is evident also from its being said in the foregoing verse that the earth should bring forth “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whereas in the following verse the order is changed, and it said that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likewise “the beast”; for at first, and afterwards until he becomes celestial, man brings forth as of himself; and thus regeneration begins from the external man, and proceeds to the internal; therefore here there is another order, and external things are mentioned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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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beasts), 사람의 애정들, 곧 악을 수반하는 악한 애정들과 선을 수반하는 선한 애정들을 의미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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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beasts)이 사람의 애정들, 곧 악을 수반하는 악한 애정들과 선을 수반하는 선한 애정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수많은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요, 먼저 에스겔입니다. 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36:9, 11 거듭남을 다루면서) Behold, I am for you, and I will look back to you, 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 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Ezek. 36:9, 11, treating of regeneration)

 

요엘에서는 In Joel: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2:22) Be not afraid ye beasts of my field, for the dwelling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become grassy. (Joel 2:22)

 

시편에서도 In David also: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73:22) So foolish was I, I was as a beast before thee. (Ps. 73:22)

 

예레미야에서는, 거듭남을 다루면서 In Jeremiah, treating of regeneration: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27-28) 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 (Jer. 31:27–28)

 

[2] ‘땅의 짐승들(Wild animals)도 유사한 의미인데요, 호세아입니다. Wild animals” have a similar signification, as in Hosea: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 (Hos. 2:18)

 

욥기에서 In Job: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욥5:22-23) 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 (Job 5:22–23)

 

에스겔에서는 In Ezekiel: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겔34:25) 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Ezek. 34:25)

 

이사야에서 In Isaiah: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0)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 (Isa. 43:20)

 

에스겔에서 In Ezekiel: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겔31:6) 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 (Ezek. 31:6)

 

이것은 앗수르(the Assyrian)에 관한 말씀인데요,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의미하며, 영적 인간은 에덴동산으로 비유됩니다. This is said of the Assyrian, by whom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and who is compared to the garden of Eden.

 

시편입니다. In David: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시148:2, 7, 9-10) Glorify ye him, all his angels, glorify Jehovah from the earth, ye whales, fruit trees, wild animal, and every beast, creeping thing, and flying fowl. (Ps. 148:2, 7, 9–10)

 

여기서도 같은 것들이 언급되는데요, 바로 ‘용들(whales), ‘과수(the fruit tree), ‘짐승(wild animal), ‘모든 가축(the beasts),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입니다. 이것들이 사람 안에 있는 살아있는 원리들(living principles)을 가리킨 게 아니라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도록 호명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 tree,” “wild animal,” the “beast,” “creeping 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 선지서들은 ‘가축(beasts)과 ‘땅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earth), 그리고 ‘가축(beasts)과 ‘들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분하는데요, 그러면서 사람에게 있는 선들을 ‘가축(beasts)이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과 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들(animals)이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field.” 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주3)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1)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3) (Rev. 7:11)

 

※ 주3. 여기 이 단어는 ‘비스트(beasts, 짐승, 야수)가 아닌,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처럼 ‘애니멀(animals, 짐승, 동물)로 정확하게 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의 ‘(ζοόν, z¯oon)과, 라틴과 영어의 ‘애니멀’은 서로 정확히 대응하며, ‘생물(a living creature)이라는 의미에 맞기 때문입니다. 원전(the original) 해당 구절들에서 사용된 단어는 준이며, 만일 ‘비스트’ 사용을 의도했다면 썼을 법한 테르(θήρ, th¯er)나 테리온(θηρίον, th¯erion)이 아닙니다. This word is here correctly translated “animals” and not “beasts,” as in the authorized version, for z¯oon in Greek, and animal in Latin and English, precisely correspond to each other, and properly signify “a living creature.” Z¯oon is the word used in these passages in the original, and not th¯er or th¯erion, as would be the case if “beast” had been intended.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4)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 (Rev. 19:4)

 

또한 복음을 듣게 될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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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45, 창1:24-25,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AC.44-48)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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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시대(太古, the most ancient times)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관련된 것들을 이런 식으로 의미했는데요, 이런 이유로, 선지서들과 구약 말씀에서도 늘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걸 표현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두 종류가 있는데, 사람들을 해치는 짐승은 악하다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짐승은 선하다 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악들은 악한 짐승들, 가령, 곰, 늑대, 개 등으로 표현하는 반면, 선하고 온순한 것들은 같은 본성을 가진 짐승들, 가령, 어린 암소, 양, 어린 양 등으로 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짐승들(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것들이며, 그래서 애정들(affections)을 의미하는데요, 이 본문은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더 낮은 것들, 즉 몸(body)과 더 연결된 것들은 ‘땅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 하는데, 이는 탐욕들과 쾌락들을 말합니다. Those who lived in the most ancient times thus signified the things relating to the understanding and to the will;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and constantly in the Word of the Old Testament, the like things are represented by different kinds of animals. Beasts are of two kinds; the evil, so called because they are hurtful; and the good, which are harmless. Evils in man are signified by evil beasts, as by bears, wolves, dogs; and the things which are good and gentle, by beasts of a like nature, as by heifers, sheep, and lambs. The “beasts” here referred to are good and gentle ones, and thus signify affections, because it here treats of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The lower things in man, which have more connection with the body, are called “wild animals of that earth,” and are cupidities and pleas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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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땅처럼 자기 안에 먼저 신앙 관련 지식이 심기지 않고서는 어떤 선도 생산, 즉 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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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땅처럼 자기 안에 먼저 신앙 관련 지식이 심기지 않고서는 어떤 선도 생산, 즉 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의,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의지(will)의 일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는 않는 것은 마치 우리는 믿음대로 살지는 않지만 믿고는 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들음과 행함을 분리, 결국 일종의 나뉜 마음을 갖게 되며,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주님이 ‘어리석다(foolish)하신 사람들처럼 됩니다. Man, like the earth, can produce nothing of good unless the knowledges of faith are first sown in him, whereby he may know what is to be believed and done. It is the office of the understanding to hear the Word, and of the will to do it. To hear the Word and not to do it, is like saying that we believe when we do not live according to our belief; in which case we separate hearing and doing, and thus have a divided mind, and become of those whom the Lord calls “foolish” in the following passage: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4, 26) Whosoever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I will liken unto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a rock; but everyone that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not, I liken to a foolish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the sand. (Matt. 7:24, 26)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the fowl upon the earth, and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는 앞서 보여드린 대로 이해에 속한 것들을, 여기 ‘땅은 생물을 내되(the living soul which the earth produces), ‘가축과 기는 것(the beast and creeping thing), ‘땅의 짐승(the wild animal of that earth)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말합니다.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understanding are signified—as before shown—by 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and also by the “fowl upon the earth,” and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but those which are of the will are signified here by the “living soul which the earth produces,” and by the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also by the “wild animal of that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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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어마어마하게 결실하며 번성하는데요(fructifies and multiplies), 몸 안에 사는 이생뿐 아니라 사후 저생(the other life)에서는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to be fruitful)는 사랑에 속한 것들에 관한,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to multiply)는 신앙에 속한 것들에 관한 서술입니다.

 

22-23절,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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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어마어마하게 결실하며 번성하는데요(fructifies and multiplies), 몸 안에 사는 이생뿐 아니라 사후 저생(the other life)에서는 정말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to be fruitful)는 사랑에 속한 것들에 관한,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to multiply)는 신앙에 속한 것들에 관한 서술입니다. 사랑에 속한 ‘열매(fruit)에는 ‘(seed)가 들어 있는데, 이 씨로 말미암아 놀랍게 번성합니다. Everything that has in itself life from the Lord fructifies and multiplies itself immensely; 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ody, but to an amazing degree in the other life. To “be fruitful,” in the Word, is predicated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and to “multiply,” of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the “fruit” which is of love contains “seed,” by which it so greatly multiplies itself.

 

※ 들의 풀과 나무, 강과 바다의 물고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가령 해바라기는 그 넓은 둥그런 꽃 한 판에 얼마나 많은 씨가 있으며, 열매, 가령, 옥수수 한 자루엔 얼마나 많은 알갱이가, 벼나 보리, 수수 같은 곡식들 한 줄기 줄기엔 또 얼마나 많은 낱알이 맺히는지... 나무 한 그루도 보면, 가령 은행, 호두, 대추, 밤, 감, 사과 등등... 얼마나 많은 열매, 과일이 열리는지... 물고기는 또 어떤가요? 명란젓 만드는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은, 대구는, 오징어는? 등등... 또한 얼마나 그렇게 어마어마한지...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번성합니다 ^^

 

※ 인간과 달리 동, 식물의 경우, 주님의 이 정하신 복, 명령하신 축복이 예외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이유는, 동, 식물의 경우는 본능만 있을 뿐 스스로 무엇이 없어 주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거나 뒤집거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쓰임새 그대로 존재하며,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 판단하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최선인 줄을 알면서도 버젓이 악을 행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뒤집어 훼방을 놓고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으며, 오히려 주님의 복 받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화와 불행은 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오늘 본문 동, 식물의 이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가운데 살기를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능력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 스베덴보리(1688-1772)를 통해 주님이 알리신 이 아르카나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미미하게 세상에서 천대를 받고, 변죽만 울리고 있습니다. 홍수 후 고대교회 초창기에도, 아브라함 이후 유대교회 초창기에도, 주님 성육신 이후 기독교회 초창기에도 늘 시작은 아주 미미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은 저마다 오랜 세월 대하처럼 흐르는 시대별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이 주님의 새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각 시대 초기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에서 주님의 ‘(, blessing)은 풍성한 결실과 번성을 의미하는데요, 이런 생육과 번성이 모두 복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The Lord’s “blessing” also in the Word signifies fruitfulness and multiplication, because they proceed from it.

 

※ 복은 사람 안에 천국이 있는 상태이며, 피조물이 주님의 질서 안에 있는 문제이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 지난번 다룬 것처럼 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즉, 첫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르며,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세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 사람의 거듭남 풀코스 가운데서 사람은 비록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시며 동행하시지만, 그렇다고 늘 하하 호호한 상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사람의 연약함 때문인데요, 사람은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또 어느새 자아를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피조물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한데요, 심지어 천국의 천사들조차 이런 상태변화를 겪는다 하니 우리는 자신의 이런 연약함의 오르락내리락을 결코 이상하게, 또는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분명한 건, 천사들의 증언처럼, 오히려 이런 굴곡을 통해 더욱 예리해져 가며, 더욱 주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에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의 과정 가운데 이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반복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성장, 성숙해지며, 그래서 어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만큼, 그리고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내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만큼 그만큼 우리는 더 성장, 성숙해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우리가 우리를 포기할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됩니다. 힘을 다해 공부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사고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 지식에 힘쓰고, 그걸 선용(善用, 쓰임새, use), 천적 지혜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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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Fishes)은 앞서도 말했듯,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앙(faith from the Lord)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된, 그래서 살아있는 상태가 된 기억-지식들을 말합니다. 큰 바다짐승들(whales, 고래, 또는 고래와 같은 거대한 수중 생물들)은 그들, 즉 지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their general principles)을 말하는데, 이들은 세부 원리들이 이들과 종속 관계에 놓이거나(in subordination to), 말미암는(from) 그런 것들입니다.

 

21절, 하나님이 큰 바다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reated great whales, and every living soul that creepeth, which the waters caused to creep forth after their kinds, and every winged fowl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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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Fishes)은 앞서도 말했듯,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은 신앙(faith from the Lord)으로 움직이는 상태가 된, 그래서 살아있는 상태가 된 기억-지식들을 말합니다. 큰 바다짐승들(whales, 고래, 또는 고래와 같은 거대한 수중 생물들)은 그들, 즉 지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their general principles)을 말하는데, 이들은 세부 원리들이 이들과 종속 관계에 놓이거나(in subordination to), 말미암는(from) 그런 것들입니다. 이 우주에서는 존재(exist) 및 존속(subsist)을 할 수 있으려면 다 자기의 근원이 되는 그런 더 일반적인 원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래들(Whales), ‘큰 바다짐승들(great fishes)이 선지서에서 가끔 언급되는 이유는, 이들이 거기서 기억-지식들의 일반 원리들을 뜻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에스겔 29장 3절을 보면, 애굽 왕 바로를 가리켜 ‘큰 악어(great whale)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큰 악어’는 인간의 지혜, 지성, 즉 일반적으로 지식[scientia]을 말하는 것이지요. Fishes,” as before said, signify memory-knowledges, now animated by faith from the Lord, and thus alive.Whales” signify their general principles, in subordination to which, and from which, are the particulars; for there is nothing in the universe that is not under some general principle, as a means that it may exist and subsist. “Whales,” or “great fishes,” are sometimes mentioned by the prophets, and they there signify the generals of memory-knowledges. Pharaoh the king of Egypt (by whom is represented human wisdom or intelligence, that is, knowledge [scientia] in general), is called a “great whale.” As in Ezekiel: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겔29:3)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that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myself. (Ezek. 29:3)

 

[2] 그리고 다른 데서도 And in another place: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에 대하여 슬픈 노래를 불러 그에게 이르라 너를 여러 나라에서 사자로 생각하였더니 실상은 바다 가운데의 큰 악어라 강에서 튀어 일어나 발로 물을 휘저어 그 강을 더럽혔도다 (겔32:2) Take up a lamentation for Pharaoh king of Egypt, and say unto him, thou art as a whale in the seas, and hast gone forth in thy rivers, and hast troubled the waters with thy feet, (Ezek. 32:2)

 

이 말씀이 가리키는 바는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신앙의 신비들(the mysteries of faith) 안으로 들어가고자 무척 애를 쓰는 사람들인데요, 이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들인 겁니다. 이사야에서 by which words are signified those who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memory-knowledges, and thus from themselves. In Isaiah: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사27:1) In that day Jehovah, with his hard and great and strong sword, shall visit upon leviathan the longish [oblongum] serpent, even leviathan the crooked serpent, and he shall slay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 (Isa. 27:1)

 

여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slaying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는 것은 진리의 일반적 원리들조차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By “slaying the whales that are in the sea” is signified that such persons are ignorant of even the general principles of truth.

 

그래서 예레미야에서 So in Jeremiah: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렘51:34) Nebuchadnezzar the king of Babylon hath devoured me, he hath troubled me, he hath made me an empty vessel, he hath swallowed me as a whale, he hath filled his belly with my delicacies, he hath cast me out, (Jer. 51:34)

 

이는 큰 물고기가 요나에게 한 것처럼, ‘좋은 음식(delicacies)이라고 한 신앙의 지식들을 그가 삼켰다는 것입니다. ‘큰 뱀(a whale)은 신앙 지식들의 일반 원리들을 단지 기억-지식들로만 소유하고, 또 그런 식으로만 행동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denoting that he had swallowed the knowledges of faith, here called “delicacies,” as the whale did Jonah; a “whale” denoting those who possess the general principles of the knowledges of faith as mere memory-knowledges, and act in this manner.

 

※ 지식 중에서도 신앙에 관한 지식은 아주 값비싼 지식이며, 그중에서도 일반적 지식, 가령,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와 같은 말씀 지식은 가히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너무나도 귀한 생명의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걸 그저 지식으로만, 머리로만 알고 가볍게 여기며, 도무지 무슨 가슴 신앙으로 감동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자기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신앙인이다 하는 이런 사람들을 위 예레미야 본문에서는 ‘큰 뱀’이라 한 것입니다.

 

※ 세상 지식을 학습, 습득하면서도 그 원천이 주님이심을, 또 그 지식을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사용하여 천국 지성에 이르는 중에도 그 원천이 주님이심을 늘 시인하고, 지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고 싶으시면 그냥 간단히 허락만 하시면 될 것 같은데, 왜 주님은 이렇게 속 사람, 겉 사람, 내면, 외면, 기억-지식, 합리와 이성, 지성 등 복잡하게 조직하시며, 다 일일이 경험하게, 순서대로 모든 단계를 다 밟게 하실까요? 그것은 천국은 내면의 나라, 내적 상태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여도, 속으로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설령 주님의 허락이 있다 해도 사람은 천국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방열복을 안 입고 용광로 작업을 하는 것과 같아서, 천국에 들어갔는데도 지옥을 맛보게 되기 때문이며, 그래서 주님은 사전에 이렇게 아주 단단히 준비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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