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1, 창1:4-5,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4-5절,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e light, that it was good; and God distinguished between the light and the darkness.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21

빛을 ‘’이라고 합니다. 빛은 주님으로 말미암으며, 주님은 선 그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모든 것, 곧 사람이 새롭게 잉태되어 태어나기 전, 그동안 빛처럼 보여 그런 줄 알았던 모든 걸 말하는데요,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기 전에는 악은 선처럼 보이고, 거짓은 진리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실상은 이들 악과 거짓은 어둠, 곧 사람한테나 어울리는, 그래서 여전히 사람 안에 있는 걸로만 구성되는 어둠입니다. 주님에게 속하는 건 그게 뭐든지 다 ‘’과 비교됩니다. 빛에 속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사람의 오운(own, proprium, 자아, 고유속성)은 뭐든지 다 ‘’과 비교됩니다. 어둠에 속하기 때문인데요, 이런 비교는 말씀에서 자주 나옵니다. Light is called “good,” because it is from the Lord, who is good itself, The “darkness” means all those things which, before man is conceived and born anew, have appeared like light, because evil has appeared like good, and the false like the true; yet they are darkness, consisting merely of the things proper to man himself, which still remain. Whatsoever is of the Lord is compared to “day,” because it is of the light; and whatsoever is man’s own is compared to “night,” because it is of darkness. These comparisons frequently occur in the Word.

 

※ 위 영어 'own'은 고민 끝에 그냥 발음 그대로 '오운'으로 표기합니다. 우리말로 옮기기가 참 쉽지 않아서 그런데요, 그런 게 여럿 있습니다. 가령, 영어 'perception'이 그렇고, 'charity' 또한 그렇습니다. 이들 역시 발음 그대로 '퍼셉션', '체어리티'로 보통은 옮기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들 단어들은 만일 어느 하나로 옮길 경우, 그밖의 더욱 풍부한 여러 뉘앙스들을 다 잃어버리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 다음은 이 '오운'에 대한 원전(原典, 라틴) 설명입니다.

 

라틴어 proprium은 원전에서 사용된 용어로, 여기와 다른 여러 곳에서 “own”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어 온 말입니다. propius의 사전적 의미는 형용사로서는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입니다. 이 proprium은 중성인데 명사로 사용되면, “possession,” “property”를 의미하며, 또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어 형용사 “own”은 웹스터에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를 의미하는 걸로 봐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이 “own”이라는 말은 proprius와 매우 정확히 일치하며, 라틴 proprium에 맞는 어떤 명사를 만들면, 아주 가까운 번역 효과를 얻지 싶습니다.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즉, 그 한 단어로 그것의 모든 걸 규정짓는, 그런 게 '오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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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0, 창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 거듭남이 시작된 사람의 첫 번째 상태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20

거듭남이 시작된 사람의 첫 번째 상태는 그가 선과 참이 뭔가 더 높은 것이라는 걸 알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거의 외적이기만 한 사람들, 그러니까 겉이기만 한 겉의 사람들은 선과 진리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데요, 그들은 자기 사랑(the love of self)과 세상 사랑(the love of the world)에 속한 모든 것이 선이며, 그런 사랑들한테 호의적인 게 진리라는 이상한, 뒤집힌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은 악이며, 그런 진리는 거짓임을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사람이 새롭게 잉태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 곧 자기의 선은 선이 아니며, 또한 그가 빛 가운데 더욱 들어갈수록, 이 빛은 주님이신데요, 주님은 선과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라는, 이런 사실들을 그는 처음으로 알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계시다(the Lord exists)는 사실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친히 가르치셨습니다. The first state is when the man begins to know that the good and the true are something higher. Men who are altogether external do not even know what good and truth are; for they fancy all things to be good that belong to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nd all things to be true that favor these loves; not being aware that such goods are evils, and such truths falsities. But when man is conceived anew, he then begins for the first time to know that his goods are not goods, and also, as he comes more into the light, that the Lord is, and that he is good and truth itself. That men ought to know that the Lord exists he himself teaches in John: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4) Except ye believe that I am, ye shall die in your sins. (John 8:24)

 

또 주님은 선 그 자체, 즉 생명이시며, 진리 그 자체, 즉 빛이시라는 사실과, 그 결과,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그 어떤 것도 선도, 진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Also, that the Lord is good itself, or life, and truth itself, or light, and consequently that there is neither good nor truth except from the Lord, is thus declared: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1:1, 3-4, 9)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God was the Word.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thing made that was made.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He was the true light, which lighteth every man that cometh into the world. (John 1:1, 3–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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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AC.17-19) -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의 속뜻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19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은 주님의 자비(the Lord’s mercy)를 의미하는데, 이를 가리켜 ‘운행하시니라(to move)라든지, 혹은 마치 암탉이 자기 알을 품듯 ‘품으시다(to brood)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주님이 사람 안에 숨겨 보석처럼 소중하게 보관해 오신 것들을 가리키는데요, 말씀 전반에 걸쳐 이것을 리메인스(remains), 혹은 ‘남은 자(a remnant)라 합니다. 이는 참과 선에 관한 지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리메인스라는 것은 겉의 일들이 황폐해질 때까지는 결코 빛, 즉 낮 가운데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 지식을 여기서는 ‘수면 위(the faces of the waters)라 하고 있습니다. By the “spirit of God” is meant the Lord’s mercy, which is said to “move,” or “brood,” as a hen broods over her eggs. The things over which it moves are such as the Lord has hidden and treasured up in man, which in the Word throughout are called remains or a remnant, consisting of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of the good, which never come into light or day, until external things are vastated. These knowledges are here called “the faces of the w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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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AC.17-19) - '깊음 위'의 속뜻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18

깊음 위’(The faces of the deep)는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의 탐욕(the cupidities of the unregenerate man)과 거기서 나오는 거짓인데, 그는 전적으로 이런 것들의 사람이며, 이런 것들 안에 완전히 잠긴 사람입니다. 이 상태는 빛이라는 게 전혀 없는 상태로, 그는 무슨 ‘깊음(a deep)과도 같은, 뭔가 희미하고 혼란스러운, 그런 상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말씀 여러 곳에서는 표현하기를 ‘깊음(deeps), ‘바다 깊은 곳(depths of the sea)이라 하는데, 이는 ‘말리신(dried up) 상태, ‘황폐해진(wasted)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이 거듭나기 전 상태이지요. 이사야입니다. The “faces of the deep” are the cupidities of the unregenerate man, and the falsities thence originating, of which he wholly consists, and in which he is totally immersed. In this state, having no light, he is like a “deep,” or something obscure and confused. Such persons are also called “deeps,” and “depths of the sea,” in many parts of the Word, which are “dried up,” or “wasted,” before man is regenerated. As in Isaiah:

 

9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사51:9-11) Awake as in the ancient days, in the generations of old. Art not thou it that drieth up the sea, the waters of the great deep, that maketh the depths of the sea a way for the ransomed to pass over? Therefore the redeemed of Jehovah shall return. (Isa. 51:9–11)

 

이런 사람은 또한 하늘에서 보면,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무슨 까만 덩어리로 보이는데요,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에는 인간의 황폐함(the vastation of man)이라는, 선지서에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거듭남의 선행 상태입니다. 사람은 참된 것을 알 수 있기 전에, 그리고 선한 것으로 영향받기 전에, 먼저 이런 것의 유입을 방해하고 저항하는 것들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이유로, 새 사람이 잉태될 수 있기 전에, 반드시 옛 사람이 먼저 죽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Such a man also, when seen from heaven, appears like a black mass, destitute of vitality. The same expressions likewise in general involve the vastation of man, frequently spoken of by the prophets, which precedes regeneration; for before man can know what is true, and be affected with what is good, there must be a removal of such things as hinder and resist their admission; thus the old man must needs die, before the new man can be conceived.

 

※ 위 '인간의 황폐함(the vastation of man)'이라는 표현에 사용된 영어 'vastation'은 사어(死語)에 가까운 말인지 사전에도 잘 안 나옵니다. NCE역에서는 이를 'overall spiritual devastation'으로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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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7,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AC.17-19) - '땅, 혼돈, 공허, 흑암'의 속뜻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e waters.

 

17

거듭남이 시작되기 전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the earth void and empty), 또 ‘(the ground)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직 그 안에 선과 진리가 하나도 씨 뿌려지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혼돈(void)은 선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공허(empty)는 진리가 하나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결과, ‘흑암(thick darkness) 상태, 즉 어리석은 상태가 되며, 주님 신앙(faith in the Lord)에 속한 모든 것에,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영적, 천적(天的, heavenly) 생명(삶)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해 무지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 사람에 관해 주님은 예레미야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Before his regeneration, man is called the “earth void and empty,” and also the “ground” wherein nothing of good and truth has been sown; “void” denotes where there is nothing of good, and “empty” where there is nothing of truth. Hence comes “thick darkness,” that is, stupidity, and an ignorance of all things belonging to faith in the Lord, and consequently of all things belonging to spiritual and heavenly life. Such a man is thus described by the Lord through Jeremiah:

 

22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렘4:22-23) My people is stupid, they have not known me; they are foolish sons, and are not intelligent; they are wise to do evil, but to do good they have no knowledge. I beheld the earth, and lo a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Jer. 4: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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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태초, 천지, 창조하다'의 속뜻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16

태고(太古, The most ancient time)를 ‘태초’(太初, the beginning)라고 합니다. 선지서 여러 곳에서는 이때를 ‘옛날’(the days of old, [antiquitatis])이라 하기도 하고, ‘영원’(the days of eternity)이라 하기도 합니다. ‘태초’는 또한 거듭나는 중인 사람의 첫 번째 시기, 기간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사람은 새롭게 태어나고, 생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남 자체를 사람의 ‘새 창조(a new creation)라고도 하지요 (고후5:17, 갈6:15). The most ancient time is called “the beginning.” By the prophets it is in various places called the “days of old” [antiquitatis] and also the “days of eternity.” The “beginning” also involves the first period when man is being regenerated, for he is then born anew, and receives life. Regeneration itself is therefore called a “new creation” of man.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6:15)

 

선지서들 가운데 거의 모든 곳에서 ‘창조하다(to create), ‘짓다(to form), ‘만들다(to make)라는 표현들은 그 상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다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이사야를 보면,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to “make,” in almost all parts of the prophetic writings signify to regenerate, yet with a difference in the signification. As in Isaiah: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그리고 그래서 같은 선지서에서 주님은 ‘구속자(the redeemer), ‘태에서부터 지으신 이(the former from the womb), ‘만드신 이(the maker) 및 ‘창조자(the creator)라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And therefore the Lord is called the “redeemer,” the “former from the womb,” the “maker,” and also the “creator”; as in the same prophet: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사43:15) I am Jehovah your holy one, the creator of Israel, your king. (Isa. 43:15)

 

시편에서는 In David: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시102:18) The people that is created shall praise Jah. (Ps. 102:18)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104:30) Thou sendest forth thy spirit, they are created, and thou renewest the faces of the ground. (Ps. 104:30)

 

(天, heaven)은 속 사람(the internal man)을, ‘(地, earth)는 아직 거듭나기 전인 겉 사람(the external man)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내용들(AC.1724:327)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That “heaven” signifies the internal man and “earth” the external man before regeneration may be seen from what follows.

 

※ 이 속 사람, 겉 사람 이야기와 관련, 지금까지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두 가지, 곧 사람을 영과 육으로 이해할 때의 속 사람, 겉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영만 말할 경우에도 그 안에 속 사람, 겉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앞으로 그때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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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5, 창1, '본문, 개요, 배경'(AC.6-15) - 천국 전체가 오직 '주님'외에 무슨 다른 아버지라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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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전체가 오직 주님 외에 무슨 다른 아버지라는 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시기 때문인데요, 이는 아래와 같이 그분 자신 친히 말씀하신 사실입니다. In the universal heaven they know no other father than the Lord, because he and the father are one, as he himself has said: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14:6, 8-11)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Philip saith, Show us the father Jesus saith to him, Am I so long time with you, and hast thou not known me, Philip? He that hath seen me hath seen the father how sayest thou then, Show us the father? Believest thou not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John 14:6,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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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4, 창1, '본문, 개요, 배경'(AC.6-15) - 피조세계 전체에서 '주님'이라는 이름의 의미와 위치

 

속뜻

THE INTERNAL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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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 가운데서 ‘주님(the Lord)이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그분만 의미합니다. 그분은 앞뒤 무슨 다른 이름을 덧붙이는 거 없이 오직 ‘주님’으로만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온 천국에 걸쳐 그분은 주님으로 인식되시며, 사랑과 공경을 받으십니다. 모든 천국과 지상에서 오직 그분만이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분은 제자들에게 친히 자신을 그렇게 부르라 명하셨습니다. In the following work, by the name Lord is meant the savior of the world, Jesus Christ, and him only; and he is called “the Lord” without the addition of other names. Throughout the universal heaven he it is who is acknowledged and adored as Lord, because he has all sovereign power in the heavens and on earth. He also commanded his disciples so to call him, saying,

 

너희가 나를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13:13) Ye call me Lord, and ye say well, for I am. (John 13:13)

 

그래서 그분의 부활 후, 제자들은 그분을 오직 ‘주님’으로만 불렀습니다. And after his resurrection his disciples called him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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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 창1, '본문, 개요, 배경'(AC.6-15) - '거듭나는 중인 사람들 대부분은 첫 번째 상태까지만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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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는 중인 사람들이 모두 이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대부분은 첫 번째 상태까지만입니다. 그중 일부만 두 번째, 그 밖의 사람들이 세 번째, 네 번째나 다섯 번째, 그리고 아주 적은 수가 여섯 번째에 이르고, 일곱 번째 상태에 도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do not all arrive at this state. The greatest part, at this day, attain only the first state; some only the second; others the third, fourth, or fifth; few th sixth; and scarcely anyone the seve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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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 창1, '본문, 개요, 배경'(AC.6-15) - 거듭남의 여섯 번째 상태,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때'

 

12

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때입니다. 그때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들을 일컬어 ‘생물’(living soul)과 ‘가축’(beast)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사람은 신앙과 사랑 둘 다를 가지고 바로 행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영적인 사람(spiritual man)이 되며, 이런 그를 일컬어 ‘형상’(image)이라고 합니다. 그의 영적인 삶(생활, 생명)은 신앙에 속한 지식들과 체어리티에 속한 행위들로 말미암아 기쁜 삶이 되며, 또 유지됩니다. 이런 지식들과 행위들을 일컬어 그의 ‘먹을거리’(food)라고 합니다. 반면, 그의 자연적 삶은 몸과 몸의 감각에 속한 것들로 말미암아 기쁜 삶이 되고 유지되는데, 바로 이 지점이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그의 안에서 사랑이 주(主, the dominion)가 되며, 그가 천적인 사람(天的, celestial man)이 될 때까지 말이지요. The sixth state is when, from faith, and thence from love, he speaks what is true, and does what is good: the things which he then brings forth are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at once and together from both faith and love,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His spiritu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such things as belo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nd to works of charity, which are called his “food”; and his natur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those which belong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nce a combat arises, until love gains the dominion, and he becomes a celestial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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