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 사랑과 신앙을 의미, ‘해, 달, 별들(sun, moon, and stars)이라고도 함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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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은 사랑과 신앙을 의미하며, ‘해, 달, 별들(sun, moon, and stars)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은 에스겔 같은 선지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great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and are also called “sun, moon, and stars,”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Ezekiel:

 

7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8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32:7-8) When I shall extinguish thee, I will cover the heavens and make the stars thereof black; I will cover the sun with a cloud, and the moon shall not give her light; all the luminaries of the light of heaven will I make black over thee, and I will set darkness upon thy land. (Ezek. 32:7–8)

 

이 구절에 나오는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말씀에서 그저 감각이요, 지식일 뿐인 원리(the principle of mere sense and of mere knowledge [sensuale et scientificum])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감각과 지식일 뿐인 것들을 통해 사랑과 신앙이 끝나버렸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에서도 그렇습니다. In this passage Pharaoh and the Egyptians are treated of, by whom are meant, in the Word, the principle of mere sense and of mere knowledge [sensuale et scientificum]; and here, that by things of sense and of mere knowledge, love and faith had been extinguished. So in Isaiah: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0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13:9-10) The day of Jehovah cometh to set the land in desolation, for the stars of heaven and the constellations thereof shall not give their light; the sun is darkened in his going forth, and the moon shall not cause her light to shine. (Isa. 13:9–10)

 

다시, 요엘에서 Again, in Joel:

 

1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10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욜2:1-2, 10) The day of Jehovah cometh, a day of darkness and of thick darkness; the earth trembleth before him, the heavens are in commotion; the sun and the moon are blackened, and the stars withdraw their brightness. (Joel 2:1–2, 10)

 

[2] 다시 이사야에서, 주님의 오심(the advent of the Lord)과 이방인들, 결과적으로는 일종의 새로운 교회이지요,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받아 거듭나고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이 밝아짐에 관해 말하면서 Again, in Isaiah, speaking of the advent of the Lord and the enlightening of the gentiles, consequently of a new church, and in particular of all who are in darkness, and receive light, and are being regenerated:

 

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20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사60:1-3, 20) Arise, shine, for thy light is come; behold darkness covers the earth, and thick darkness the peoples, and Jehovah shall arise upon thee, and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y light, and kings to the brightness of thy rising;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thy sun shall no more go down, neither shall thy moon withdraw itself, for Jehovah shall be to thee a light of eternity. (Isa. 60:1–3, 20)

 

그래서 시편에서 So in David:

 

5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5-9) Jehovah in intelligence maketh the heavens; he stretcheth out the earth above the waters; he maketh great luminaries, the sun to rule by day, the moon and stars to rule by night. (Ps. 136:5–9)

 

3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4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48:3-4) Glorify ye Jehovah, sun and moon, glorify him, all ye stars of light, glorify him, ye heavens of heavens, and ye waters that are above the heavens. (Ps. 148:3–4)

 

[3] 이들 모든 구절에서 ‘광명체들(luminaries)은 사랑과 신앙을 의미합니다. 유대교회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끊임없이 등불이 타오르게 하신 이유는 바로 이것, 곧 ‘광명체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을 표상하고 상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교회의 모든 규례가 주님에 관한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었기 때문인데요, 이 등불(luminary, 광명체)에 대하여 기록된 바로는 In all these passages, “luminaries” signify love and faith. It was because “luminaries” represented and signified love and faith toward the Lord that it was ordained in the Jewish church that a perpetual luminary should be kept burning from evening till morning, for every ordinance in that church was representative of the Lord. Of this luminary it is written:

 

20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21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출27:20-21) Command the sons of Israel that they take oil for the luminary, to cause the lamp to ascend continually: in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without the veil, which is before the testimony, shall Aaron and his sons order it from evening even until morning, before Jehovah. (Exod. 27:20–21)

 

이런 것들이 사랑과 신앙을 상징한다는 것, 곧 주께서 거기에 불을 붙이셔서 먼저 속 사람에게 빛을 비추시고, 그렇게 속 사람을 통해서 이번에는 겉 사람을 비추시는 이런 주님의 신성하신 자비(the Lord’s Divine mercy)에 대해서 앞으로 해당 말씀에서 보시게 됩니다. That these things signify love and faith, which the Lord kindles and causes to give light in the internal man, and through the internal man in the external, will of the Lord’s Divine mercy be shown in its proper place.

 

※ 짐작하셨겠지만, ‘표상(表象, representative)이란 어떤 것을 가지고, 정확히는 지상의 사물을 가지고 주님과 주님께 속한 것을 가리키는, 나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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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의 의미는 먼저 신앙의 본질과, 그리고 새롭게 빚어지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그 진행 과정을 알기 전까지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본질과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은 한 분 주님뿐이신데요,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님 친히 요한복음에서 선언하신 것처럼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17절,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distinguish between the day and the night; and let them be 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let them be for luminaries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And God made two great luminaries, the greater luminary to rule by day, and the lesser luminary to rule by night; and the stars.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And God set them in the expanse of the heavens, to give light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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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광명체들(great luminaries)의 의미는 먼저 신앙의 본질과, 그리고 새롭게 빚어지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그 진행 과정을 알기 전까지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앙의 본질과 생명 그 자체이신 분은 한 분 주님뿐이신데요,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님 친히 요한복음에서 선언하신 것처럼 생명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What is meant by “great luminaries” cannot be clearly understood unless it is first known what is the essence of faith, and also what is its progress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 The very essence and life of faith is the Lord alone, for he who does not believe in the Lord cannot have life, as he himself has declared in John: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He that believeth on the son hath eternal life, but he that believeth not on the son sha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shall abide upon him. (John 3:36)

 

[2] 새롭게 빚어지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볼 수 있는 신앙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맨 처음, 그들에게는 생명이라는 게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선과 진리 안에만 있고, 악과 거짓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신앙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데요, 먼저는 기억 신앙(faith of the memory)입니다. 일종의 지식일 뿐인 신앙(a faith of mere knowledge [fides scientifica])이지요. 다음은 머리 신앙(faith in the understanding)으로, 일종의 지적 신앙(an intellectual faith)입니다. 끝으로 가슴 신앙(faith in the heart)입니다. 사랑 신앙(the faith of love), 구원 신앙(saving faith)이라고도 하지요. 앞 첫 두 종류의 신앙을 3절로 13절에서는 못 움직이는(inanimate) 것으로, 사랑으로 활기찬 신앙을 20절로 25절에서는 움직이는(animate)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랑과 거기서 나오는 신앙을 여기서 먼저 다루는 것이며, 이르시기를 ‘광명체들(luminaries)이라 하시고, 이때 사랑을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체(the greater luminary which rules by day),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을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체(the lesser luminary which rules by night)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단수로 언급됩니다. ‘광명체들이 있으라(Let there be luminaries) be동사의 라틴어 표현을 보면 sit입니다. 복수 표현인 sint가 아니지요. The progression of faith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 is as follows. At first they have no life, for it is only in the good and the true that there is life, and none in the evil and the false; afterwards they receive life from the Lord by faith, first by faith of the memory, which is a faith of mere knowledge [fides scientifica]; next by faith in the understanding, which is an intellectual faith; lastly by faith in the heart, which is the faith of love, or saving faith. The first two kinds of faith are represented from verse 3 to verse 13, by things inanimate, but faith vivified by love is represented from verse 20 to verse 25, by animate things. For this reason love, and faith thence derived, are now here first treated of, and are called “luminaries”; love being “the greater luminary which rules by day”; faith derived from love “the lesser luminary which rules by night”; and as these two luminaries ought to make a one, it is said of them, in the singular number, “Let there be luminaries” [sit luminaria], and not in the plural [sint luminaria].

 

[3] 속 사람의 사랑과 신앙은 육체를 가진 겉 사람에게 있어서는 열과 빛 같은 건데요, 이런 이유로, 전자는 후자로 표현되며, 이것이 광명체들을 일컬어 ‘하늘의 궁창에 있다(set in the expanse of heaven), 즉 속 사람 안에 있다 하는 이유입니다. 큰 광명체는 속 사람의 의지(will)에, 작은 광명체는 속 사람의 이해(understanding)에 말입니다. 그러나 햇빛은 그 빛의 수용체가 있어야만 볼 수 있듯 이들은 의지와 이해 안에서만 나타납니다. 의지를 사랑으로, 그리고 이해를 진리, 즉 신앙으로 영향을 끼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자비입니다. Love and faith in the internal man are like heat and light in the external corporeal man, for which reason the former are represented by the latter. It is on this account that luminaries are said to be “set in the expanse of heaven,” or in the internal man; a great luminary in its will, and a lesser one in its understanding; but they appear in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only as does the light of the sun in its recipient objects. It is the Lord’s mercy alone that affects the will with love, and the understanding with truth or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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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9, 창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11-13절,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nd the fruit tree bearing fruit after its kind, whose seed is in itself, upon the earth; and it was so.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the earth brought forth the tender herb, the herb yielding seed after its kind, an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was in itself,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29

(the earth), 즉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천적(天的, celestial)인 씨앗을 받아 뭔가 선하고 참된 열매를 맺을 준비가 되면, 이제 주님은 먼저 무슨 부드러운 것, 곧 ‘(the tender herb)을, 그리고 뭔가 좀 더 유용한, 그 안에 씨를 맺을 수 있는 것, 곧 ‘씨 맺는 채소(the herb yielding seed)를, 그리고 끝으로 열매까지 맺을 수 있는 어떤 선한 것, 곧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를 각기 종류대로 나게 하십니다. 거듭나는 중인 사람의 처음 상태, 퀄러티(quality)는 다음과 같은데요, 그는 자기가 행하는 선과 말하는 진리가 자기한테서 나오는 줄로 압니다. 모든 선과 모든 진리가 실제로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건데도 말입니다. 누구나 다 이렇게 선과 진리가 자기로 말미암는 줄로 아는 한, 그 사람은 아직 참된 신앙의 생명(생활)(the life of true faith) 가운데 있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그는 나중에는 이런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이런 게 주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아직은 믿을 수 없는, 그는 이제 겨우 신앙의 생명(생활)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단계, 상태에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를 여기서는 못 움직이는(inanimate) 걸로,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상태에서는 움직이는(animate) 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When the “earth,” or man, has been thus prepared to receive celestial seeds from the Lord, and to produce something of what is good and true, then the Lord first causes some tender thing to spring forth, which is called the “tender herb”; then something more useful, which again bears seed in itself, and is called the “herb yielding seed”; and at length something good which becomes fruitful, and is called the “tree bearing fruit, whose seed is in itself,” each according to its own kind. The man who is being regenerated is at first of such a quality that he supposes the good which he does, and the truth which he speaks, to be from himself, when in reality all good and all truth are from the Lord, so that whosoever supposes them to be from himself has not as yet the life of true faith, which nevertheless he may afterwards receive; for he cannot as yet believe that they are from the Lord, because he is only in a state of preparation for the reception of the life of faith. This state is here represented by things inanimate, and the succeeding one of the life of faith, by animate things.

 

[2] 주님이 복음서 여러 본문에서 마지못해 친히 언급하신 것처럼, 주님은 씨 뿌리는 농부요, ‘(the seed)는 그분의 말씀이고, ‘(the earth)은 사람입니다. (마13:19-24, 37-39; 막4:14-21; 눅8:11-16) The Lord is he who sows, the “seed” is his Word, and the “earth” is man, as he himself has deigned to declare (Matt. 13:19–24, 37–39; Mark 4:14–21; Luke 8:11–16).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20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마13:19-24, 37-39)

 

같은 취지로, 주님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태셨습니다. To the same purport he gives this description:

 

26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4:26-28) So is the kingdom of God, as a man when he casteth seed into the earth, and sleepeth and riseth night and day, and the seed groweth and riseth up, he knoweth not how; for the earth bringeth forth fruit of herself, first the blade, then the ear, after that the full corn in the ear. (Mark 4:26–28)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일반적으로는 천국 전체(the universal heaven)를, 그보다 덜 일반적으로는 주님의 참된 교회(the true church)를, 그리고 특별하게는 참된 신앙(true faith)의 사람, 즉 신앙생활을 통해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또한 ‘천국(heaven)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그의 안에 천국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안에 있기 때문인데요, 주님이 친히 이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입니다. By the “kingdom of God,” in the universal sense, is meant the universal heaven; in a sense less universal, the true church of the Lord; and in a particular sense, everyone who is of true faith, or who is regenerate by a life of faith. Wherefore such a person is also called “heaven,” because heaven is in him; and likewise the “kingdom of God,”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in him, as the Lord himself teaches in Luke: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21) Being demanded of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should come, he answered them, and said,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neither shall they say, Lo here! or, Lo there!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Luke 17:20–21)

 

이것은 사람의 거듭남 연속 단계 중 세 번째 상태인데요, 이 상태는 뉘우침의 상태, 곧 그늘에서 빛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진행하는 상태와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13절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하신 것입니다. This is the third successive stage of the regeneration of man, being his state of repentance, and in like manner proceeding from shade to light, or from evening to morning; wherefore it is said (verse 13),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third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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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8, 창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10절,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called the dry [land] earth, and the gathering together of the waters called he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8

(waters)을 가지고는 지식들(knowledges, 체험적 지식 및 학문적 지식, [cognitiones et scientifica])을, 그리고 그 결과, ‘바다(seas)를 가지고는 그런 지식들을 한데 모아놓은 걸 의미하는 것이 말씀에서는 아주 흔한 일입니다. 이사야입니다. It is a very common thing in the Word for “waters” to signify knowledges [cognitiones et scientifica], and consequently for “seas” to signify a collection of knowledges. As in Isaiah: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9) The earth shall be full of the knowledge [scientia] of Jehovah, as the waters cover the sea. (Isa. 11:9)

 

그리고 이사야 다른 데서는 지식들의 결핍(a lack of knowledges [cognitionum et scientificorum])을 다루면서 And in the same prophet, where a lack of knowledges [cognitionum et scientificorum] is treated of:

 

5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사19:5-6) The waters shall fail from the sea, and the river shall be dried up and become utterly dry, and the streams shall recede. (Isa. 19:5–6)

 

학개에서는, 새로운 교회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In Haggai, speaking of a new church: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6-7)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the sea and the dry [land]; and I will shake all nations; and the desire of all nations shall come; and I will fill this house with glory. (Hag. 2:6–7)

 

그리고 스가랴에서는 거듭남의 과정 가운데 있는 사람과 관련하여 And concerning man in the process of regeneration, in Zechariah:

 

7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슥14:7-8) There shall be one day, it is known to Jehovah; not day, nor night; but it shall come to pass that at evening time it shall be light; and it shall be in that day that living waters shall go out from Jerusalem, part of them toward the eastern sea, and part of them toward the hinder sea. (Zech. 14:7–8)

 

시편 또한 지금은 황폐한 상태이나 앞으로는 거듭나 주님을 경배하게 될 사람을 묘사하면서 David also, describing a vastated man who is to be regenerated and who will worship the Lord:

 

33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 자기로 말미암아 갇힌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나니 34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시69:33-34) Jehovah despiseth not his prisoners; let the heavens and the earth praise him, the seas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therein. (Ps. 69:33–34)

 

스가랴를 보면 ‘(the earth)은 일종의 리시피언트(recipient, 그릇, 用器)로 나옵니다. That the “earth” signifies a recipient, appears from Zechariah: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경고의 말씀이라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 (슥12:1) Jehovah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 of the earth, and formeth the spirit of man in the midst of him. (Zech.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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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27, 창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s under the heaven be gathered together in one place, and let the dry [land] appear; and it was so.

 

27

두 가지, 곧 속 사람과 겉 사람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진리와 선이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으로 흘러들어온 다음 이번엔 속 사람으로부터, 즉 속 사람을 통해서 겉 사람으로 흐른다는 사실, 비록 겉보기에는 그리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 저들 진리와 선, 곧 거듭나고 있는 사람 안에 있는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 그의 기억 안에 쌓이며, 그 지식들(knowledges [scientifica])사이로 분류됩니다. 겉 사람의 기억 속으로 밀어 넣어지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그게 자연적이든 영적이든, 아니면 천적이든 기억-지식(memory-knowledge)이라는 것으로 그곳에 머물며, 그 후 주님에 의해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 지식이 ‘한 곳으로 모인 물(the waters gathered together into one place)이며, 부르기를 ‘바다(seas)라고 합니다. 그러나 겉 사람 자체는 ‘(the dry [land])이라 하며, 지금은 이어지는 10절에서처럼 ‘(earth)이라고 합니다. When it is known that there is both an internal and an external man, and that truths and goods flow in from, or through, the internal man to the external, from the Lord, although it does not so appear, then those truths and goods, or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the good in the regenerating man, are stored up in his memory, and are classed among its knowledges [scientifica]; for whatsoever is insinuated into the memory of the external man, whether it be natural, or spiritual, or celestial, abides there as memory-knowledge, and is brought forth thence by the Lord. These knowledges are the “waters gathered together into one place,” and are called “seas,” but the external man himself is called the “dry [land],” and presently “earth,” as in what fo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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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6, 창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8절,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econd day.

 

26

저녁(evening), ‘아침(morning)및 ‘(day)의 의미는 위 5절에 있습니다. The meaning of “evening,” of “morning,” and of “day,” was shown above at verse 5.

 

※ 창1 개요 중 ‘둘째 날’, 곧 ‘두 번째 상태’에 대한 글인 8번 글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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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 창1:6-7,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AC.24-25)

 

6-7절,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25

땅을 펼치며 하늘을 펴는(To 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거듭남을 다룰 때, 선지서에서 흔히 말하는 일종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이사야입니다. To “spread out the earth and stretch out the heavens,” is a common form of speaking with the prophets, when treat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A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am Jehovah that maketh all things,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lone, that spreadeth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그리고 다시, 주의 오심(the advent of the Lord)을 드러내어 말하는 데를 보면, And again, where the advent of the Lord is openly spoken of: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42:3) A bruised reed shall he not break, and the smoking flax shall he not quench; 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unto truth; (Isa. 42:3)

 

즉, 주님은 사람들의 거짓을 멈추시지도, 탐욕을 끄지도 않으시고 대신, 그것들을 진리와 선 쪽으로 구부리십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that is, he does not break fallacies, nor quench cupidities, but bends them to what is true and good; and therefore it follows: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Jehovah God createth the heavens, and stretcheth them out; he spreadeth out the earth, and the productions thereof; he giveth breath unto the people upon it, and spirit to them that walk therein. (Isa. 42:5)

 

내용이 같은 구절들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Not to mention other passages to the same pur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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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 창1:6-7,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AC.24-25)

 

6-7절,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24

하나님의 영, 즉 주님의 자비로 진리와 선에 관한 지식이 낮 안에 생긴 다음, 처음으로 빛이 비취는데요, 이 빛은 곧 주님이시지요, 주님은 선 그 자체, 진리 그 자체이신 분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어떤 선과 진리도 없는 그런 분이십니다, 그 후, 주님은 속 사람과 겉 사람 간 일종의 어떤 구분, 구별을 두시는데, 이는 결과적으로는 속 사람에게 있는 지식과 겉 사람에게 있는 기억-지식(2)간 구별이 됩니다. ‘궁창은 속 사람을 말하며, ‘궁창 위의 물은 속 사람에게 있는 지식을, 그리고 ‘궁창 아래의 물은 겉 사람에게 있는 기억-지식을 각각 말합니다. After the spirit of God, or the Lord’s mercy, has brought forth into day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of the good, and has given the first light, that the Lord is, that he is good itself, and truth itself, and that there is no good and truth but from him, he then makes a distinction between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consequently between the knowledges [cognitiones] that are in the internal man, and the memory-knowledges [scientifica] that belong to the external man.(2) The internal man is called an “expanse”; the knowledge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called “the waters above the expanse”; and the memory-knowledges of the external man are called “the waters beneath the expanse.

 

[2] 사람은, 거듭남이 진행되기 전에는 무슨 속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조차, 하물며 속 사람이라는 것의 본성 및 퀄러티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릅니다. 그는 속 사람, 겉 사람이라는 것은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몰라 하기도 합니다. 그 자신,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그는 속 사람에게 속한 것들까지도 그동안 가라앉게 했기 때문이며, 심지어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것들까지도 무슨 혼란스럽고 흐릿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먼저 이르시기를,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으라 하시고, 이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신 것입니다. 뒤에 나오는 구절들에서처럼,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라 먼저 말씀하신 게 아니고 말입니다. Man, before he is being regenerated, does not even know that any internal man exists, much less is he acquainted with its nature and quality. He supposes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to be not distinct from each other. For, being immersed in bodily and worldly things, he has also immersed in them the things that belong to his internal man, and has made of things that are distinct a confused and obscure unit. Therefore it is first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then,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but not,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which a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are above the expanse,” as is afterwards said in the next verse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1:7-8)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Gen. 1:7–8)

 

[3] 이런 이유로, 거듭나는 중인 사람이 그 다음 관찰하게 되는 것은, 속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즉 속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은 선과 진리라는 것, 오직 주님께만 속한 선과 진리라는 것이 이 속 사람이라는 것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겉 사람은 거듭나고 있을 때, 선을 행해도 자기가 하는 줄로, 진리를 말해도 자기가 하는 줄로 아는 그런 본성 가운데 여전히 있지만, 사실은 주님에게 속한 이 선과 진리에 의해 인도 받고 있는 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궁창 아래의 물이라는 일종의 구별이 먼저 언급되고, 나중에 궁창 위의 물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천국에 관한 일종의 아르카눔(arcanum, 秘義, 감추어진 비밀, 신비, 복수는 아르카나 arcana)인데요, 인간은 자신의 오운(own, proprium, 자아, 고유속성)에 속한 것들에 의해, 그리고 감각에 속한 거짓과, 뿐만 아니라 온갖 탐욕에 의해 살아가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진리와 선 쪽으로 인도되며 구부려진다는 사실, 그래서 거듭남과 관련된 모든 움직임과 순간들이, 일반적으로든 아니든,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데, 그런 식으로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에서 하늘로 진행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궁창, 즉 속 사람을 하늘이라 하는 것이지요. The next thing therefore that man observes in the course of regeneration is that he begins to know that there is an internal man, or that the thing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goods and truths, which are of the Lord alone. Now as the external man, when being regenerated, is of such a nature that he still supposes the goods that he does to be done of himself, and the truths that he speaks to be spoken of himself, and whereas, being such, he is led by them of the Lord, as by things of his own, to do what is good and to speak what is true, therefore mention is first made of a distinction of the waters under the expanse, and afterwards of those above the expanse. It is also an arcanum of heaven, that man, by things of his own, as well by the fallacies of the senses as by cupidities, is led and bent by the Lord to things that are true and good, and thus that every movement and moment of regeneration,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proceeds from evening to morning, thu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or from “earth” to “heaven.” Therefore the expanse, or internal man, is now called “heaven.

 

 

2. 지식은 우리가 “나는 단지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게 아냐. 나는 그걸 알고 있어.”라고 말할 때처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지식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신학을 비롯, 기타 온갖 종류의 아주 박식한 지식을 말합니다. 이런 말들에 대한 스베덴보리 자신의 정확한 정의는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27, 896, 1486, 2718, 5212번 글 및 리바이저의 서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Knowledges [cognitiones] are what we really know, as when we say “I do not merely think so, I know it.” Memory-knowledges [scientifica] are what we have in the external memory—a vast accumulation of all kinds, theological and otherwise. For precise definitions of these words by Swedenborg himself, see Arcana Coelestia, n. 27, 896, 1486, 2718, 5212. See also the Reviser’s Prefatory Notes. [Rev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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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창1: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AC.22-23)

 

5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23

말씀에서 ‘(day)을 가지고 때(time)를 가리키곤 하는 것만큼 더 흔한 것은 없는데요, 이사야입니다.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day” to be used to denote time itself. As in Isaiah:

 

6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9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22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사13:6, 9, 13, 22) The day of Jehovah is at hand. Behold, the day of Jehovah cometh.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her place in the day of the wrath of mine anger. Her time is near to come, and her days shall not be prolonged. (Isa. 13:6, 9, 13, 22)

 

7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 15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사23:7, 15) Her antiquity is of ancient days. And it shall come to pass in that day that Tyre shall be forgotten seventy years, according to the days of one king. (Isa. 23:7, 15)

 

’을 가지고 때를 가리키곤 하기 때문에, 이는 또 그때 상태를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곤 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As “day” is used to denote time, it is also used to denote the state of that time, as in Jeremiah: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6:4) Woe unto us, for the day is gone down, for the shadows of the evening are stretched out. (Jer. 6:4)

 

20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렘33:20, 25) If ye shall make vain my covenant of the day, and my covenant of the night, so that there be not day and night in their season. (Jer. 33:20, also 25)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애5:21) Renew our days, as of old. (Lam.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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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2, 창1: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AC.22-23)

 

5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rst day.

 

22

저녁’이 의미하는 바와 ‘아침’이 의미하는 바를 이제 알 수 있는데요, ‘저녁’은 모든 선행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그늘 상태, 즉 거짓의 상태, 불신앙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은 모든 뒤따르는 상태입니다. 한 종류 빛이나 진리, 그리고 신앙 지식이 되는 상태이지요. ‘저녁’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오운(own, proprium, 자아, 고유 속성)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하는 반면, ‘아침’은 아래 시편 말씀처럼, 무엇이든지 다 주님에게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What is meant by “evening” and what by “morning” can now be discerned. “Evening” means every preceding state, because it is a state of shade, or of falsity and of no faith; “morning” is every subsequent state, being one of light, or of truth and of the knowledges of faith, “Evening,” in a general sense, signifies all things that are of man’s own; but “morning,” whatever is of the Lord, as is said through David:

 

2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삼하23:2-4) The spirit of Jehovah spake in me, and his word was on my tongue; the God of Israel said, the rock of Israel spake to me. He is as the light of the morning, when the sun ariseth, even a morning without clouds, when from brightness, from rain, the tender herb springeth out of the earth. (2 Sam. 23:2–4)

 

저녁’은 불신앙의 때요, ‘아침’은 신앙의 때이기 때문에, 주님이 세상에 오심은 ‘아침’, 주님의 떠나심, 그때는 불신앙의 때이므로, ‘저녁’이라 합니다. 다니엘입니다. As it is “evening” when there is no faith, and “morning” when there is faith, therefore the coming of the Lord into the world is called “morning”; and the time when he comes, because then there is no faith, is called “evening,” as in Daniel:

 

14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26이미 말한 바 주야에 대한 환상은 확실하니 너는 그 환상을 간직하라 이는 여러 날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단8:14, 26) The holy one said unto me, Even unto evening when it becomes morning, two thousand and three hundred. (Dan. 8:14, 26)

 

같은 식으로, 말씀에서 ‘아침’은 모든 주님의 오심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곤 하는데, 결과적으로는 새 창조에 관한 표현입니다. In like manner “morning” is used in the Word to denote every coming of the Lord; consequently it is an expression of new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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