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국의 하나님은 주님이시다
The God of Heaven Is the Lord
HH.4
유아들은 천국의 삼 분의 일을 이루는데, 그들은 모두 주님이 자기들의 아버지이심을 인정하고 믿는 가운데로 인도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분이 만유의 주이시며, 곧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천국에서 자라나며, 지식을 통해 점점 완전해져 천사적 지성과 지혜에 이르게 되는 일은, 뒤의 장들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Infants, who form a third part of heaven, are all initiated into the acknowledgment and belief that the Lord is their Father, and afterwards that he is the Lord of all, thus the God of heaven and earth. That children grow up in heaven and are perfected by means of knowledges, even to angelic intelligence and wisdom, will be seen in the following pages.
해설
이 글은 매우 짧지만, ‘Heaven and Hell’ 전체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선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아들이 천국의 삼 분의 일을 이룬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상징적 과장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영계에서 본 실제 상태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모두 천국으로 가며, 그 수가 매우 많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교회 안팎의 구분이 없습니다. 유아는 아직 스스로 악을 선택하거나 진리를 거부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all initiated into the acknowledgment’라는 표현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완성된 천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되어 들어가게 됩니다’. 즉, 천국은 단번에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성장의 세계입니다. 아이들은 먼저 주님을 ‘아버지’로 배우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 교육이 아니라, 관계의 형성입니다. 어린 존재가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 관념은 ‘아버지’입니다. 사랑하고 보호하며 돌보는 분으로서의 주님을 먼저 경험합니다.
그다음 단계가 중요합니다. 그들은 이후에 주님이 ‘만유의 주’(the Lord of all)이시며 ‘하늘과 땅의 하나님’(the God of heaven and earth)이심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인격적 친밀성에서 시작하여 점차 우주적 통치의 주님으로 이해가 확장됩니다. 사랑의 관계가 먼저이고, 교리적 인식은 그다음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의 질서와 일치합니다. 항상 사랑이 먼저이고, 진리의 이해는 그다음입니다.
또 하나 매우 중요한 선언은, 아이들이 천국에서 ‘자라난다’(grow up)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상태를 정지된 상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에게 천국은 정체의 세계가 아니라 성장의 세계입니다. 아이들은 지식을 통해 점점 완전해지며, 마침내 천사적 지성과 지혜에 이릅니다. 여기서 ‘지식’(knowledges)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선과 진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 대목은 또한 인간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지상에서 그 가능성이 충분히 펼쳐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천국에서 계속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아의 죽음은 영적 성장의 단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순수한 환경에서 계속되는 시작입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HH.2와 HH.3에서 ‘주님을 어떻게 인정하느냐’가 천국과의 연결 문제로 제시되었는데, HH.4에서는 유아들이 자연스럽게 주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이는 주님 인식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보여 줍니다. 복잡한 교리 논쟁 없이, 관계적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결국 이 글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비는 어린 생명들을 완전히 품고 계시다는 것. 둘째, 천국은 완성된 자들의 박물관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학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거기서 배우고, 자라고, 지혜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중심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십니다.
이 부분은 목회적으로도 매우 큰 위로를 줍니다.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에게, 혹은 어린 생명의 의미를 묻는 이들에게, HH.4는 깊은 소망의 문을 열어 줍니다.
심화
1. ‘유아들은 천국의 삼 분의 일을 이루는데’
HH.4에서 스베덴보리가 ‘유아들이 천국의 삼 분의 일을 이룬다’고 말하는 부분은 많은 독자들에게 가장 놀라운 진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그런 비율이 가능한지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전제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비유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영계에서 본 실제 상태에 대한 관찰로 제시합니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서 유아기 혹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은 예외 없이 천국으로 인도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스스로 악을 확정적으로 선택하거나 진리를 고의적으로 거부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삼 분의 일’이라는 규모가 가능한가? 여기에는 몇 가지 현실적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역사적으로 인류의 사망률을 생각해 보면, 특히 고대와 중세, 근대 초기까지는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의료가 발달하기 전에는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살던 18세기에도 유아 사망은 매우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인구 통계적으로 보아도, 인류 전체 역사 속에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인구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둘째, 스베덴보리는 천국을 단일 시대의 공동체로 보지 않습니다. 천국은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모여든 모든 세대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친 인류의 흐름 속에서 축적된 영적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현재 지구 인구 비율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장구한 역사 전체를 배경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여기에는 신학적 의미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태어날 때는 선과 진리에 대한 가능성을 지닌 상태로 태어난다고 봅니다. 유아는 아직 자신의 자유를 통해 악을 확정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형성 중인 존재’로서 천국에서 계속 자라날 수 있습니다. HH.4 다음 부분들에서 그는 아이들이 천국에서 교육받고, 지식들을 통해 점점 완전해지며, 마침내 천사적 지성과 지혜에 이른다고 설명합니다. 즉, 천국은 완성된 자들만 모여 있는 정지된 세계가 아니라, 성장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삼 분의 일’이라는 표현을 상징적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경과 스베덴보리 저작 전반에서 ‘삼’은 완전함이나 충만함과 관련된 수입니다. 반드시 정확한 수학적 33.3%를 의미한다기보다, ‘결코 소수가 아니다’,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강조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대체로 자신이 본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강하므로, 완전히 상징으로만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균형 잡힌 이해는 ‘매우 많은 수’라는 실제적 진술로 보는 것입니다.
이 대목이 주는 목회적 의미는 매우 큽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어린 생명이 짧은 삶을 마치고 떠났습니다. HH.4는 그 생명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순수한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은 멈춘 존재가 아니라 계속 자라나는 존재입니다.
결국 ‘천국의 삼 분의 일’이라는 말은 단순한 통계 보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섭리의 광대함을 드러내는 진술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상실처럼 보이는 수많은 생명들이, 영적 질서 안에서는 잃어버려지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2. ‘아이들이 천국에서 자라나며’
많은 신앙인들이 막연히 ‘죽으면 상태가 고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면, 영원히 어린 모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가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HH.4에서 스베덴보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아이들은 천국에서 자라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영적 존재 이해를 뒤집는 선언입니다.
먼저 기본 원리를 보겠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가 아니라 영으로 존재합니다. 육체는 일시적 외적 형식이고, 영은 참된 인간입니다. 지상에서의 성장은 육체적 성장과 함께 이루어지지만, 본질은 영적 성장입니다. 즉, 사랑과 진리를 배우고, 의지와 이해가 형성되는 과정이 진짜 성장입니다. 그렇다면 육체가 없어졌다고 해서 성장이 멈출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외적 제약이 사라진 상태에서 더 순수한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천국에서 자란다는 말은, 그들이 단번에 완성된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시작하여, 천국의 질서 안에서 교육받고, 사랑을 배우고, 진리를 배우며, 점점 성숙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후 장들에서 천국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천사들이 있고, 그들이 매우 부드럽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인도한다고 설명합니다. 그 교육은 강압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흔히 ‘지상 생애가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상 생애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자유와 선택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상 생애가 ‘완성의 전부’는 아닙니다. 특히 아직 자유로운 악의 선택을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성장이 계속되는 장이 열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동시에 보여 줍니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영적 방향을 확정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천국에서 펼쳐집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놀라는 이유는, ‘죽음 이후는 정지된 상태’라는 관념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천국을 살아 있는 세계, 역동적인 세계로 묘사합니다. 거기에는 배움이 있고, 깊어짐이 있고, 점점 더 큰 사랑과 더 밝은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완성은 정지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더 충만해지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분과의 결합도 무한히 깊어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천국에서 자란다는 것은, 인간의 참된 나이는 육체적 나이가 아니라 영적 상태라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모든 천사는 결국 ‘젊음의 상태’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젊음은 사랑과 생명의 충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는 자라서 천사적 성숙에 이르며, 동시에 그 존재는 영원한 생명의 젊음 안에 머뭅니다.
결국 이 선언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성장은 지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차원에서 계속된다. 지상은 시작이고, 천국은 그 성숙이 더 순수하게 진행되는 장이다.
그러므로 어린 생명의 죽음은 성장이 중단된 사건이 아니라, 다른 환경에서 계속되는 사건입니다.
3. 응용 질문, ‘그러면 사후 열심히 노력하면 더 높은 천국으로 신분 상승 같은 걸 할 수 있나요?’
많은 초심자들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묻습니다. ‘천국에서도 더 노력하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나요?’, ‘일종의 영적 승진이 있나요?’ 이런 생각은 우리가 세상 구조에 익숙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세상에서는 노력하면 신분이 오르고, 성과가 있으면 승진합니다. 그래서 천국도 비슷한 구조일 것이라고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Heaven and Hell’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천국은 그런 ‘신분 상승 체계’가 아닙니다.
먼저 아주 중요한 원리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천국의 ‘높고 낮음’은 계급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랑의 질(quality)’의 차이입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국은 가장 내적 천국, 중간 천국, 가장 외적 천국처럼 구분되지만, 이것은 서열 구조가 아니라 사랑과 지혜의 깊이에 따른 차이입니다.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사랑 안에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사후에는 인간의 근본적 사랑이 드러납니다. 지상 생애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살았는지가 그 사람의 영적 본질이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지상 생애가 끝나면 그 기본 사랑이 확정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죽음 이후에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랑으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후에 열심히 노력해서 전혀 다른 단계의 천국으로 올라가는 식의 구조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확정’되었다고 해서 ‘성장이 멈춘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자기 사랑의 본질 안에서 끝없이 더 깊어집니다. 사랑은 더 정결해지고, 이해는 더 밝아지고, 기쁨은 더 커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종류의 천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천국 안에서 무한히 깊어지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과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영역 안에서 무한히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음악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그 본성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에서도 각자의 근본 사랑에 상응하는 영역이 있고, 그 안에서 완전해집니다.
천국은 경쟁 구조가 아니라 조화 구조입니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 애쓰는 곳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사랑 안에서 가장 충만해지는 곳입니다. 천국에서는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완전한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상에서는 신분 상승을 위해 애쓰지만, 천국에서는 ‘유익하게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는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리이며, 가장 많이 섬기는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높아진다’는 개념 자체가 세상과 다릅니다.
결론적으로, 사후에 노력해서 다른 계층으로 올라가는 개념은 스베덴보리의 천국 구조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 안에서의 성장은 끝이 없습니다. 그 성장은 서열 상승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의 심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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