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2023/7/25, 눅12:1-7),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즐겨찾기/한결같은교회.예배 2023. 7. 25. 10:3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1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눅12:1-7)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어떤 일에 대해 이 일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아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았다 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그 둘이 똑같기 때문이지요. 오직 주님만 구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후에는 다릅니다. 거기서는 이 일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AE.794:3) In this world no one can determine whether works are from the Lord or from man, since in external form the two kinds appear alike, but they can be distinguished by the Lord alone, and after man’s life in the world their origin is disclosed (Matt. 10:26, 27; Mark 4:22; Luke 8:17; 12:2, 3, 8, 9). (AE.794:3)
우리 사회 전반에 종북(從北) 또는 종중(從中) 좌파의 사람들이 주도하는 거짓 선동의 거대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후쿠시마 오염수 선동, 양평 IC 선동이 있습니다. 이번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사례는 다행히 교사들 스스로 전교조의 개입을 원천 차단, 저들이 무슨 선동질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들의 모든 움직임을 선동 또는 괴담이라 하는 이유는 저들의 주장이 거의 다 사실과 진실이 심각하게 결여된, 거짓 뉴스이기 때문입니다.
4.15 부정선거로 다수당이 된 게 99% 분명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 문재인 전 정권 사람들, 그리고 민노총을 비롯, 방송, 언론 노조와 정부 각 부처 산하 곳곳에 심어놓은 저들 좌파의 사람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모두 다 거짓과 위선, 곧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른 모습들을 봅니다. 물론 우파 보수라 하여 이 거짓과 위선의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위선자들의 행동과 관련하여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794번 글 3항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요,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어떤 일에 대해 이 일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아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았다 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그 둘이 똑같기 때문이지요. 오직 주님만 구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후에는 다릅니다. 거기서는 이 일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AE.794:3)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이 있고,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이 있는데, 겉으로 보면 비슷,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일을 함에 있어 선 또는 진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은 겉으로는 선과 진리이신 주님의 일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 속에 사사로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은 언제나 진실하고, 인간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은 언제나 거짓된 위선의 일입니다. 위선자들의 행동은 건전한 사람들의 이성을 파괴하고 분별력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미워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위선을 조심하라 하십니다. 1절입니다.
1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무리 수만 명이 모였는데 서로 밟힐 만큼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무리’(multitude)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무리가 모였다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선은 없고 진리만 많이 있다는 뜻인데요, 교회 안에 선은 없고 진리만 있을 때는, 그런 교회에서는 교인들끼리 서로 다투고, 서로에 대한 중상과 비방으로 심하면 교회가 분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의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예견,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조심하라 하십니다. 진리만 있고 선이 없는 사람들은 자칫 위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위선자들은 자신도 해치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해치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특별히 경계하셨습니다. 2절, 3절입니다.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남을 비방하거나 중상하는 사람들은 대개 대놓고 비방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누가 들을까 아주 은밀하게 하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고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하셨습니다.
※ 다음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8장, ‘두고 가는 것은 육체밖에 없다’(After Death Man Is Possessed of Every Sense, and of All the Memory, Thought, and Affection That He Had in the World, Leaving Nothing Behind except His Earthly Body) 462번 글로, 여기에 바로 이 구절들에 대한 의미가 나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기억 전체를 유지한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경우를 통해 보아왔다. 기록할 만한 많은 것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 세상에서 지은 자기 죄와 악행을 부인하는 영들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 결백하다고 믿지 못하도록 그들의 기억에서 생의 초기부터 말년까지의 모든 행위가 차례로 꺼내져 재현되었는데 주로 간음과 음탕한 행위들이었다.
악한 기술로 남을 속이고 훔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사기행각과 도둑질도 연달아 모두 드러났는데 그중 많은 것은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알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고백해야 했다. 그 당시 그들 마음속에 뒤섞여 있던 모든 생각, 의도, 즐거움과 두려움까지 낱낱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판과 관련, 뇌물을 받고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억으로 조사받았고, 처음 직책을 맡은 때부터 그만둔 날까지의 모든 것이 드러났다. 자세한 뇌물의 액수와 가치, 받은 일시, 당시 그들의 마음 상태와 의도까지 수백 가지가 떠올라 눈앞에 상영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놀랍게도 그들이 그런 행위를 기록해 둔 수첩까지 한 장 한 장 펼쳐져 읽힌다.
처녀들을 유혹해 수치스럽게 했거나 순결을 빼앗은 사람들도 이와 같은 심판을 받는다.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범행이 자세하게 떠오르고 재현된다. 처녀들과 여자들의 얼굴, 장소, 그때 했던 말들과 의도가 실제처럼 나타난다. 이것은 어떤 장면을 눈으로 볼 때처럼 즉각 나타나고, 어떤 때는 그 상영이 몇 시간씩 계속된다.
남을 중상하는 것을 가볍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의 비방과 중상이 그때 사용한 단어들까지 그대로 재연되는 것을 들었다. 세상에서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감추어 왔음에도,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과 그것을 듣고 있던 사람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상영되었다.
사기로 친척의 유산을 가로챈 사람이 있었다. 그도 같은 심판을 거쳐 판결을 받았다. 놀랍게도 그들 사이에 오간 서류와 편지가 읽혀지는 것이 내 귀에 들렸는데, 그것은 한 글자도 빠짐이 없다고 했다.
바로 그 사람은 죽기 얼마 전에 그의 이웃을 몰래 독살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밝혀진 과정은 이렇다. 그가 발밑에 구덩이를 파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 구덩이에서 한 사람이 마치 무덤에서 나오듯이 나와서 그를 향해 외쳤다.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그러자 그 살인자가 친절하게 말을 거는 모습, 잔을 건네주는 모습, 게다가 그 행위를 하기 전에 그가 한 생각과 그 후에 일어난 일까지 모든 것이 드러났다.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자 그는 지옥을 판결받았다.
한마디로 모든 악한 영에게는 그의 모든 악과 범행과 약탈과 사기와 속임수가 밝히 드러나고, 그의 기억에서 떠올려져 죄과가 충분히 입증된다. 또 모든 상황이 전부 공개되므로 이것을 부인할 여지가 없다.
나는 사람의 기억을 천사가 조사할 때, 그가 한 달 동안 생각한 것이 하루하루 일어난 그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되살려지는 것도 보았다.
이상의 사례들로, 사람은 자기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간다는 것과 사후에 만인 앞에 드러나지 못하게 감출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주님 말씀도 그것을 의미한다.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눅12:2-3)
(HH.462)
계속해서 4절, 5절입니다.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친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요한복음 15장 14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4)
말씀처럼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사람들, 즉 영적인(spiritual) 사람들이 주님의 친구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육신을 죽이는 재물이나 지위,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적인(natural) 사람의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람의 두려움에 대해 계시록 해설 696번 글 23항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영적인 사람의 두려움은 악한 삶과 교리의 거짓으로 인해 주님으로부터 멀어지지는 않을까, 또는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의 두려움은 세상 재물이나 지위,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행여 자기 안에 있는 사랑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6, 7절입니다.
6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말씀에서 ‘참새 다섯 마리’는 신앙인의 지혜를 형성하는 작은 진리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돈을 받고 참새를 파는 것은 눈앞의 이득을 위해 진리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참새 하나도 잃어버리는바 되지 않게 하겠다고 하시고요,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머리털’은 몸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계에서의 신앙인의 삶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동과 그 속에 담긴 의도가 머리털입니다. 따라서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 하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의 말과 행동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의도까지 모두 아신다는 뜻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참 많지요. 그리고 바로 수치심과 후회와 같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의도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면 주님께서는 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조금 했더라도 진리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는 영적인 두려움뿐 아니라 세상의 권세에 대한 두려움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 혼란과 진통은 주님이 주시는 선과 진리와 우리 안에 있는 악과 거짓 간 싸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 교회 가르침에서는 큰 싸움을 시험이라고 부르고요, 작은 싸움을 발효(醱酵)라고 부릅니다. 발효란 술이 익을 때 일어나는 바로 그 발효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발효 과정을 거쳐 술의 맑은 원액과 찌꺼기가 분리되는 것처럼 영적인 발효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이 분리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뒤섞여 있는 한 사회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모든 과정이 그렇듯이 우리 사회가 거듭나려면 영적인 시험과 발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선자와 진실한 자들이 주님에 의해 가려질 것입니다. 이때 우리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신앙생활로 인해 주님이 주신 사랑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세속적인 사람에서 영적인 사람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분과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15:13-14)
아멘
원본
2020-05-10(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7-25(D3)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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