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07-18(D3)-매일예배(2494, 눅11,29-36),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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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VBFeMhcl_o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의 속뜻

 

29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3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네 온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눅11:29-36)

 

사람이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은 그의 머릿속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는 사실, 예를 들어, 마음이 쓰임새의 삶을 사랑하여(in the love of uses) 뭔가를 하고 싶어 하면, 몸은 자기의 모든 지체들, 곧 손, 발, 입 등을 가지고(by means of its members) 결국 그걸 해내고자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이게 과연 그런 것은, 의지와 이해하는 능력은 무슨 중심 원리로서(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in their principles) 머릿속에 있고, 거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들은 몸 안에 있는데요, 이것은 마치 의지는 행위 안에 있고, 사고는 말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행위를 보면 그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요. (TCR.403:2) Who does not also comprehend that all the works that a man does with his body are done according to the state of his mind in the head; and if the mind is in the love of uses, the body by means of its members accomplishes them? And this is so, because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in their principles are in the head, and in their derivatives in the body, as the will is in deeds, and the thought in speech, (TCR.403:2)

 

 

※ 아래 에피소드는 원본에 나오는 서울 새 교회 에피소드이지만 저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 그대로 옮깁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어떤 큰 교회에 다니는 부부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새 교회와 기성교회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 물어보셨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차이점을 말씀드렸지요. 첫째는, 하나님을 믿기만 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믿고 행해야 한다 했고, 둘째는,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겉뜻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기록되었지만 속뜻으로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신데 다만 우리 눈에 보이게 육을 입으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 즉 기록된 겉 글자의 뜻 안에는 영적 의미, 즉 속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와 영적 의미, 즉 겉뜻과 속뜻을 함께 알아야 한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부인 되시는 분이 제 말을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그분은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신학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은 각자의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에, 논쟁을 할 일은 아니라 말씀드리며, 대화를 마친 적이 있습니다.

 

주님 당시에도 주님과 제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유대교회의 교리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대교회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장로의 전통이라는 생활 규범을 만들어 그것을 율법보다 더 소중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사람의 법이지 하나님의 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15장에서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3절) 하시며, 그들을 꾸짖으셨지요. 어느 시대에나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라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라면서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마치 주님에게 당신이 메시아라는 표적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하면서 표적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람의 전통을 지키면서 표적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절 말씀입니다.

 

29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주님은 그동안 유대인들에게 수없이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눈먼 자를 보게 하셨고, 귀먹은 자를 듣게 하셨습니다. 중풍 병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이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진리에 뜻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악한 세대’라 하시고,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 하신 것입니다. 수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 하셨을까요?

 

요나는 타락한 도시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시키라는 하나님의 명을 거절하고 도망치다가 결국 니느웨 성으로 돌아가 그곳 사람들을 구한 선지자입니다. 요나가 그렇게 니느웨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고래의 배 속에 가두어 사흘 밤과 낮을 지내게 하십니다. 요나가 고래 배 속에서 머무는 사흘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세상에서 주님이 당하신 지독한 시험을 표상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혹독한 시험을 견디신 이유는 인류에게 세상의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복을 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대인들은 하늘의 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 하시고, 또 30절에서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은 세상 영광을 위한 기적이 아니고, 하늘의 영광을 위한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31절과 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1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솔로몬으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찾아온 시바의 여왕이나 요나의 예언을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구원을 얻은 이방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 왕이나 요나는 모두 주님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밖의 이방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얻을까요? 계시록 해설 351번 글 2번 항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천국의 빛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통해 내려오며, 중심이 되는 빛으로부터 주위의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교회 밖의 이방인들에게까지 이른다.

 

그러니까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거처 내려오는 진리의 빛은 처음에는 교회로 내려오고, 다음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그 외연(外延)을 이루는 수많은 종교의 교리 안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참된 진리와 연결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열왕기상 11장에서는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3절)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단순히 솔로몬 왕이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이 말씀은 이방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 종교의 교리 안에 있는 진리를 통해 주님과 결합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솔로몬 왕은 주님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도 이렇게 진리를 사랑하는데 정작 주님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진리를 대적하고 모독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남방 여왕과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를 정죄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희미한 진리의 빛 안에 있는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는데, 가장 밝은 빛 안에 있으면서도 그 빛을 받아들이지 못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진리를 대적하고, 진리의 표적만을 요구했을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소망하지 않고, 오직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참된 기독교’(True Christian Religion) 403번 글 2번 항에는

 

사람이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은 그의 머릿속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는 사실, 예를 들어, 마음이 쓰임새의 삶을 사랑하여 뭔가를 하고 싶어 하면, 몸은 자기의 모든 지체들, 곧 손, 발, 입 등을 가지고 결국 그걸 해내고자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이게 과연 그런 것은, 의지와 이해하는 능력은 무슨 중심 원리로서 머릿속에 있고, 거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들은 몸 안에 있는데요, 이것은 마치 의지는 행위 안에 있고, 사고는 말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행위를 보면 그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요.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상태에 따라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과 애정이 영향을 받으며, 그것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34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네 온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34절에서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말씀하신 것은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몸은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을 뜻하고, 눈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온전하다면 말이나 행실도 바르고 온전할 것이며, 반대로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잘못되면 그가 하는 말이나 행실도 잘못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진리를 제대로 알고 실천했던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이해력, 곧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변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갔던 귀신이 자기보다 더 나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처럼 이전보다 영적으로 더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마태복음 6장 23절에서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당시나 요즈음이나 진리 안에 있다 자부하면서도 정작 참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영의 눈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눈이 닫힌 사람은 진리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거짓이라 하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며, 참된 진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진실을 왜곡하면서도 잘못인 줄을 모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속이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주변과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영의 눈이 어두워 주변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영의 눈이 밝은 사람은 스스로 진리를 자랑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을 진리로 인도합니다. 주님께서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진리를 자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십니다. 그 진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참된 진리가 있는 교회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일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에 의해 진리가 ‘등경 위에 올려놓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선과 진리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힘을 얻기 위해서 항상 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며, 그래야 언제나 바르고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메시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미7:8)

 

아멘

 

원본

2020-02-23(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7-18(D3)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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