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07-23(D1)-주일예배(2496, 눅11,43-54), '주님이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을 매우 엄히 꾸짖으신 이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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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1jkIAFXH7U

 

 

주님이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을 매우 엄히 꾸짖으신 이유

 

 

43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45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눅11:43-54)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속으로는 악한 생각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선한 말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신앙의 진리와 사랑의 선에 대해 속으로는 정신 나간 생각들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번듯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겉만 하얗고 속은 무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AE.659:10) Those who think evil about God and the neighbor but speak well, and those who think insanely about truths of faith and goods of love but speak sanely, such inwardly are sepulchers whited without, (AE.659:10)

 

※ 위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1장 9절,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계11:9) 주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지난 2020년 4월 19일 주일설교인 이 설교 원본에는 앞서 15일에 있었던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관한 내용이 좀 길게 나와서 이를 생략, 본문으로 바로 들어갑니다. 지금이야 이 선거가 99% 부정선거였음을 우파 보수 및 건전한 중도에서는 알게 되었고, 이걸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그 때를 기다리며,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때만 해도 저쪽 사람들이 설마 그런 엄청난 장난을 칠 줄은 일반 국민들은 정말 그 어느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정황이 느껴지는 내용입니다. 저 역시 그때 그 결과가 너무나 이상했거든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두 얼굴 등 당시 분위기로 보아 총선 때 저들의 폭망이 너무나 예견되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리새인들을 매섭게 꾸짖으십니다.

 

※ 복음서에는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 등의 명칭들이 나오는데요, 이들은 모두 종교적으로는 다 바리새인이며, 다만 그 사회적 역할에서 좀 다를 뿐입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했던 사람들에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하시며 용서하셨던 주님, 그러나 그런 주님이 유독 이 바리새인들에게만은 매우 엄격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주님이 보시기에 바리새인들은 모두 위선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이기 때문에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뿌리 깊은 위선을 미워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것처럼 하면서 속으로는 교활한,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사기를 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데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최소한 오히려 이웃에게 경각심이라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선자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속으로는 독이 든 이빨을 감춘 독사이면서도 겉으로는 양의 탈을 쓰고 슬며시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의 분별력을 어지럽히고 때로는 양심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에 의하면, 천사들의 눈에는 이들 위선자들은 마치 독이 있는 뱀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내적 존재이며, 주님의 빛 가운데 있어서 그 내면, 곧 그 속 정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영계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상태로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지상에서 이런 위선자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내면에 영적인 빛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 빛과 육의 눈으로는 그들의 영적 정체를 볼 수 없으며, 그래서 세상에서는 많은 경우, 이들 위선과 거짓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속임과 사기를 당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주님 눈에 비친 이런 위선자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43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여기서 ‘회당’과 ‘시장’은 모두 교회를 뜻합니다. 특별히 시장도 교회를 뜻하는 이유는 시장에서 물품들이 유통되는 것처럼 교회에서는 선과 진리의 지식이 유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높은 자리’는 뭘까요? 높은 자리는 주님, 또는 주님이 계신 천국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한다는 것은, 위선자들은 교회의 직분을 이용해 스스로 주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고, 이웃을 섬기기보다 대접받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악하기만 한 자들은 보통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세상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만 그러나 위선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까지도 넘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결국 천국의 신성한 것에다 세상의 것을 섞어버리는데요, 그것은 주님 앞에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서로 섞는 것을 말씀에서는 영적 간음에 비유합니다.

 

※ 이런 ‘영적 섞음’이 특히 그 속 사람에게 아주 치명적인 이유는 다른 건 주님이 어떻게 해보실 수 있지만, 이 각 사람의 영의 변질은 주님조차 어찌하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주님 말씀하신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마5:37)만 하는 삶을 살든지, 비록 좀 삐뚤어지고, 못되게 굴더라도 최소한 잔머리 굴려 겉 다르고 속 다른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44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평토장(平土葬)한 무덤은 봉분이 없이 평평하게 만든 무덤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무덤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 다음은 류모세 저, ‘열린다 성경, 절기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유월절 한 달 전인 아달월 15일부터 성전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준비에 들어간다. 성전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오는 모든 길들을 보수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도로 보수’와는 다른 개념이다. 성서 시대의 가난한 자들은 땅을 대충 파서 시체를 묻었는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유대 산지는 흙을 조금만 파도 석회암 바위가 나오기 때문에 깊이 앞 수가 없었다. 이들의 무덤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 ‘평토장한 무덤’(unmarked grave)이었고, 깊이 파서 묻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 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순례자들의 몸이 무심코 무덤이나 시체에 닿았다가는 레위기적으로 일주일 동안 부정하게 되고, 그런 상태로는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성전 파견단은 순례자들이 다니는 길에서 이러한 평토장한 무덤을 찾아 회칠로 표시하는 일을 했다. 순례자들은 이 표시를 보고, 길을 우회해서 갔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시체 접촉으로 인한 부정을 피할 수 있었다.

 

말씀에서 무덤은 본래 거듭남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지옥을 의미합니다.

 

※ 천사들은 사람이 지상에서 죽어 장사 되면 반드시 영계에서 깨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계속 산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에 나오는 ‘무덤’이나 ‘장사하다, 땅에 묻다’ 등의 표현들이 나오면 그걸 거듭남, 새롭게 일어남, 생명 등으로 읽습니다.

 

그러므로 평토장한 무덤 같다는 것은 겉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에는 지옥이 들어앉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마23:27)에 비유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한 율법교사가 불쾌함을 토로합니다.

 

45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이것은 위선자가 진리의 소리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주님과 이웃을 대할 때, 주님께서는 양심을 통해 그를 타이르십니다. 어떻게 타이르실까요? 교회의 직분은 이웃을 섬기는 자리이지 섬김받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니 평토장한 무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 그때 위선자들은 그것이 진리의 소리인 줄 알면서도 몹시 불편해합니다. 이 율법교사가 지금 그런 상태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외면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것은 그가 주님께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알 수 있는데요, 영적 의미로 ‘선생’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만약 주님의 말씀이 진리가 아니었다면 위선자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진리로 인해 그동안 쌓아 올린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죽일 듯이 미워했습니다. 주님은 율법교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46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46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신앙인들에게 부여된 짐은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의 짐입니다. 만약 교회의 성직자들이 교인들을 주님께로 온전히 이끈다면 성도들의 짐은 아주 가볍고 쉬운 짐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짐을 대신 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많은 성직자들이 진리를 왜곡해 가르치고, 그렇게 해서 교인들을 주님으로부터 떼어놓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과 함께 가 아니라 교인들 혼자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짐을 교인들에게 지워놓고 정작 자신들은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랑 안에 안주합니다. 그것이 지기 어려운 짐을 교인들에게 지우고 자기는 한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는 성직자들의 모습입니다.

 

교회들은 어떤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을까요? 그것에 대해 50절과 5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50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창세 이후로’는 주님께서 인류에게 최초로 교회를 세워주신 이후부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서 비롯한 교회의 교리를 뜻합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지자가 흘린 피’는 뭘까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을 섞어 말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지자가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또 아벨(창4:10-11)과 사가랴(대하24:20-22)가 피 흘려 죽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사랑, 또는 체어리티(charity, 仁愛)를 말살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아벨은 말씀 속에 들어있는 체어리티, 또는 사랑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해진 이러한 폭력들은 유대교회에서는 모세의 율법보다 장로의 전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믿음과 사랑이 분리된 믿음만의 교리, 즉 ‘오직 믿음’의 교리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더럽힌 죄를 타락한 교회와 성직자들이 감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52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지식의 열쇠는 말씀의 능력이며, 그러므로 천국을 여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말씀을 전하는 위치에 있는 위선자들이 말씀을 왜곡해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인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을 걱정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다 보면 주님께서 특히 바리새인들을 심하게 나무라시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 하시고, 독사의 자식이라 비난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선지자를 죽인 자, 말씀의 열쇠를 가지고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막는 자라 하십니다. 참으로 신랄하고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교회 안의 위선자들을 특히 꺼리신 이유는, 그들이 교인들의 이성을 마비시킬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체어리티의 신앙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체어리티가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위선은 매우 무서운 죄입니다.

 

주님을 죽이고 선지자를 죽인 사람들은 모두 교회 안의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것만 봐도 위선자들이 얼마나 진리를 혐오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진리로 인해 그동안 쌓아놓은 세상 것들, 이를테면 명성이나 평판과 재물 같은 것들을 모두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를 애써 외면하려 하고, 때로는 주님을 책잡았던 바리새인들처럼 책을 잡아 진리를 말살하려고 합니다.

 

진리를 향하는 길은 참으로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가장 밝은 빛 안에서 자신의 위선과 악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매일같이 선의와 진실을 키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겉과 속이 같은 사람 되기를 힘쓰기, 선과 진리 실천함에 있어 잔머리 굴리는 대신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니까, 그것이 곧 주님 말씀이니까 실천, 실행에 옮기기, 주님 말씀하신,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의 삶에 힘쓰기 등 솔직담백, 순진무구, 좀 부족하고 모자라서 실수는 하되 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계2:9)

 

아멘

 

원본

2020-04-19(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7-23(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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