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의 속뜻
7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눅17:7-10)
사람이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통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천국으로부터 하는 것, 즉 주님으로부터 천국을 통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속 사람과 관계없이 겉 사람 혼자 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자신으로부터 하는 것이다. (계시록 해설 794:3, 이순철 역) whatever man does from that internal through the external he does from heaven, that is, through heaven from the Lord; but anything that a man does by the external without the internal, this he does from self. (AE.794:3)
다음은 마태복음에 실린 주님의 산상수훈 말씀입니다.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5:1-4)
주님께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할 때는 생색을 내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말씀이지요. 누구나 자기를 자랑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지 말라 하십니다. 왜일까요? 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높이는 건 자아에 대한 사랑이며, 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대신 자신만을 사랑하면 속 사람과 겉 사람 사이의 문이 닫혀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선(善, Divine Good)과 진리(眞理, Divine Truth)의 유입이 끊어집니다. 그런 상태가 속 사람과 관계없이 겉 사람 혼자서 살아가는 상태인데, 그때 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할 뿐 이웃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1장 39절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39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눅11:39-40)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바리새인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위선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그들에게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41절) 하십니다.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는’ 건 이웃에게 선을 베풀 때는 겉 사람으로부터 하지 말고, 속 사람으로부터 하라는 뜻입니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겉 사람으로부터 하는 행동이 있고, 속 사람으로부터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의 자아로부터 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 속 동기는 주님 보시기에 불순하고 악합니다. 반면, 후자, 즉 속 사람으로부터 하는 행동은 주님으로부터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고 선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웃을 구제할 때는 속 사람으로부터 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익한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 앞에 스스로 무익한 종이 되는 건 겉 사람의 마음으로는 어렵고, 속 사람의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서 무익한 종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 오늘 본문의 말씀들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7절입니다.
7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종이 밭에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말씀에서 종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건 말씀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배워 익숙해지는 걸 의미합니다. 밭을 가는 건 진리의 지식을 배워 믿음이 자라가는 걸 의미하고, 양을 치는 건 그 믿음에 따라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걸 의미합니다. 그러면 밭은 무엇일까요? 밭은 교회를 뜻합니다. 신앙인은 교회를 통해 매일 선과 진리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묵상, 실천하는데요, 그것이 종이 밭을 일구고, 양을 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종이 밭에서 돌아와 앉아 누군가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려고 합니다. 말씀에서 앉는 건 의지의 상태를, 먹는 건 진리와 선을 실천하는 거, 즉 삶의 행위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종의 상태는 어떤 겁니까? 선을 행하기는 하는데, 주님과 이웃을 위해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진리에 대해 아는 걸 자랑하고, 진리를 이용해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 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바리새인들과 같은 상태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종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물으신 겁니다. 그러면 종은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을까요? 그에 대해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8절 말씀입니다.
8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종은 자기가 먹기 전에 마땅히 주인의 먹을 것을 먼저 준비하고, 주인이 먹는 동안 곁에서 수종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신앙인들이 진리를 가지고 선을 행할 때는 자기 자신보다 먼저 주님과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속 사람이 열리고, 주님으로부터 천국의 지혜와 사랑, 그리고 기쁨과 행복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주인이 먹은 다음, 종이 먹고 마실 음식은 바로 그런 천국의 것, 곧 천국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 된 사람은 허리에 띠를 두르고 먼저 주인을 수발해야 합니다. 말씀에서 허리는 생식능력과 관련이 있는데요, 그래서 영적으로는 선한 열매를 생산하는 것, 즉 선을 행하는 걸 뜻합니다. 그리고 띠는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띠를 두르고 주인을 수종, 수발하는 건 선을 행함에 있어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진리에 따라 행하는 걸 의미합니다. 진리에 따라 선을 행할 때, 주님과 이웃을 위한 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선과 진리는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걸 가지고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이웃을 위해 쓰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의 지혜와 사랑, 그리고 평화와 자유를 주십니다. 주님은 그걸 위해 종더러 먼저 주인을 수발하고, 그다음에 먹고 마시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길에는 이와 같은 반전의 미학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육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영광을 얻으신 것이나, 신앙인들이 자아라는 생명을 버림으로 주님으로부터 참 생명을 얻는 건 겉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반전입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 가운데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과 진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기보다 이웃들로부터 섬김받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주인보다 먼저 먹고 마시려는 종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잠깐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행복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하십니다. 신앙인들은 주님으로부터 진리를 배우고 믿고, 그것에 따라 살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그걸로 추앙받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걸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끝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는 주님 앞에 스스로 무익한 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잘나거나 총명해서 참된 진리 안에 들어온 게 아닙니다. 내가 선해서 이웃에게 선을 베풀고,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실제로는 아주 작은 선도 스스로 행할 수 없고, 아주 작은 악도 스스로 끊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악하고 거짓된 것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하고 진실한 모든 게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온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걸 인정할 때,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고백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한 일들에 대해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겸손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아시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속 사람이라는 마음과 겉 사람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속 사람 안에는 주님이 계시고, 겉 사람 안에는 인간의 자아가 있습니다.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만 오고, 사람으로부터는 아니라는 건 선과 진리는 주님으로부터 속 사람을 거쳐 겉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한 행위는 겉 사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속 사람으로부터 겉 사람을 통해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겉보기에 아무리 진실한 말을 하고, 성실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더라도 그 동기가 주님과 이웃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속 사람과 관계없이 겉 사람 혼자서 하는 일이며, 그러므로 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속 사람이 열리고, 속 사람으로부터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주님과 이웃 앞에 겸손’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겸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우리에게 시험을 허용하십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주님과 함께’라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거듭나는 사람들에게 시험이 많은 것입니다. 시험을 잘 견디고 이김으로써 속 사람은 열립니다. 그리고 그때 무슨 일을 하든 자아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매일 같이 띠를 두르고, 정성껏 주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시는 모든 성도와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형제에게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시107:15)
아멘
원본
2021-08-29(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4-03-03(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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