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창5:6)
AC.498
그가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말은, 그들로부터 ‘에노스’(Enosh)라 하는 또 다른 교회가 이어졌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 장에서 이름들이 교회들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That he “begat Enosh” signifies that from them there descended another church called “Enosh”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in this chapter the names signify nothing else than churches.
해설
이 문단은 짧지만, 창세기 5장을 해석하는 데 있어 매우 결정적인 원리를 다시 한번 명시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표현을, 개인의 출생으로 읽지 말고 ‘교회의 출현’으로 읽어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 근거는 단순합니다. 이 장에서 등장하는 이름들은 어느 것도 개인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직 ‘교회의 상태들’만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이 진술은 앞선 모든 해석을 한 줄로 요약하는 역할을 합니다. 만일 이름들이 개인이라면, 창세기 5장은 긴 수명과 혈통을 기록한 고대 연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름들이 교회라면, 이 장은 태고교회가 어떻게 여러 상태로 분화되고, 그 상태들이 어떻게 서로를 ‘낳으며’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영적 계보’가 됩니다. AC.498은 후자의 관점을 확정합니다.
‘낳았다’는 말이 교회의 계승을 뜻한다는 점은, 앞서 반복적으로 확립된 원리입니다.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낳는다는 것은, 한 상태 안에서 형성된 진리와 선의 퍼셉션이 다음 상태로 전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전이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며, 외형의 변화보다 ‘내적 생명의 이동’에 초점이 있습니다.
‘에노스’(Enosh)라는 이름 자체도 이 점을 보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다른 곳에서 ‘에노스’가 상대적으로 연약한 인간 상태, 곧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더해진 상태와 연결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셋의 교회보다 한 단계 더 내려온, 그러니까 더 흐릿해진 상태를 암시합니다. 즉, 에노스의 교회는 여전히 태고교회의 범주 안에 있지만, 퍼셉션의 즉각성과 충만함, 또렷함은 더 약화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약화가 곧바로 죽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에노스의 교회 역시 살아 있는 교회였고, 진리와 선을 퍼셉션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퍼셉션은 이전보다 덜 직접적이고, 더 많은 반성과 매개를 필요로 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변화는 항상 단계적이며, 각 단계는 저마다 고유한 성격을 지닙니다.
AC.498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이 장 전체의 해석 원리의 일관성’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장에서 이름들이 교회들 외에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부분적 상징 해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아담, 셋, 에노스, 그 이후의 모든 이름들은 동일한 규칙 아래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일관성이 무너지면, 장 전체의 구조도 함께 무너집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교회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태의 연속’이라는 것이지요. 한 교회가 다음 교회를 낳는다는 말은, 오늘의 교회가 내일의 교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자신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상태를 위한 씨앗을 품습니다.
개인의 신앙 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안에도 여러 ‘이름’의 상태들이 있습니다. 어떤 시기의 신앙은 셋과 같고, 어떤 시기는 에노스와 같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곧바로 실패나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다른 방식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표지’일 수 있습니다. 질러갈 걸 좀 돌아가는 걸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그 인생이 끝에 가서 아주 잃어버리는 인생이 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결국 AC.498은 창세기 5장을 읽는 독자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합니다. 이 장을 개인들의 전기로 읽을 것인가, 아니면 교회의 생명사가 기록된 말씀, 곧 교회의 영적 계보로 읽을 것인가 하는 선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단호하게 후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교회와 신앙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에노스를 낳았다’(begat Enosh)는 말은 더 이상 낯선 족보 문장이 아니라, ‘섭리 안에서 이어지는 교회의 맥박’으로 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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