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And Mahalalel lived after he begat Jared eight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sons and daughters. And all the days of Mahalalel were eight hundred ninety and five years, and he died. (창5:16, 17)
AC.512
이 말씀도 앞에 나온 유사한 말씀들과 동일합니다. It is the same with these words as with the like words before.
해설
이 글은 매우 짧지만, 앞에서 반복되어 온 해석 원리를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기보다 이미 제시된 틀 안에서 이 구절을 읽어야 함을 조용히 상기시켜요. 즉, 여기서 언급되는 표현들도 모두 시간이나 사건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상태와 퍼셉션의 변화를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앞선 구절들에서 ‘날’, ‘해’의 숫자, ‘자녀들’, 그리고 ‘죽음’이 모두 상태의 언어였던 것처럼, 이 구절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반복은 설명의 부족이 아니라, 독자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붙들어 주는 장치예요. 성경을 다시 문자적 이해로 끌어당기려는 유혹을 차단하는 역할을 합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글은 해석의 속도를 잠시 늦추라고 말해 주는 것처럼도 들립니다. 새롭고 인상적인 해석을 계속 덧붙이기보다, 이미 밝혀진 원리가 지금 읽는 말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초대라는 말입니다. 말씀의 힘은 새로운 정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진리가 상태에 따라 반복해서 작동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이 글은 태고교회의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마할랄렐 이후의 교회 상태도 앞선 단계들과 동일한 법칙 아래 놓여 있으며, 퍼셉션의 일반화와 쓰임새의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결국 AC.512는 해설을 멈추는 글이 아니라, 해석의 방향을 고정시키는 글입니다. 지금까지 읽어 온 방식 그대로, 상태를 중심에 두고, 퍼셉션과 사랑의 생명, 그리고 쓰임새의 변화를 함께 보라는 조용한 확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AC.511, 창5:15, ‘마할랄렐’(Mahalalel)이라 하는 교회의 상태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창5:15) AC.511 퍼셉션의 능력이 감소하여, 더 개별적이고 분명하던 상태에서 더 일반적이고 어두운 상태로 바뀌어 간 것처럼, 사랑의 생명 곧 쓰임새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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