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0.심화

 

33. ‘32:28-31

 

28오직 너는 할례를 받지 못한 자와 함께 패망할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29거기에 에돔 곧 그 왕들과 그 모든 고관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간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30거기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내려간 북쪽 모든 방백과 모든 시돈 사람이 있음이여 그들이 본래는 강성하였으므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부끄러움을 품고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와 함께 누웠고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31바로가 그들을 보고 그 모든 무리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을 것임이여 칼에 죽임을 당한 바로와 그 온 군대가 그러하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28-31) And thou shalt be broken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and shalt lie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There is Edom, her kings, and all her chiefs, which with their might are put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they shall lie with the uncircumcised, and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There be the princes of the north, all of them, and all the Zidonians, who have gone down with the slain; by their dismay they are ashamed of their might; and they lie uncircumcised with those slain by the sword, and bear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Pharaoh shall see them, and shall comfort himself over all his crowd; Pharaoh and all his host are slain by the sword, says the Lord Jehovih (Ezek. 32:28–31).

 

 

32:28-31은 애굽 왕 바로와 함께 에돔, 북방의 방백들, 시돈 사람들이 모두 구덩이로 내려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심판 예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인 국가들의 멸망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핵심은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것이며, 이 본문은 그 반대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칼에 죽임을 당한 자’, ‘할례를 받지 못한 자’,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는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죽임을 당함’은 영적 생명의 상실을, ‘할례받지 못함’은 사랑과 신앙으로 정결하게 되지 않은 상태를, ‘구덩이’는 주님과 분리된 영적 죽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육체적인 죽음보다 훨씬 깊은 영적 죽음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할례를 받지 못한 자’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씀에서 할례는 마음의 정결과 악의 제거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할례받지 못한 자는 단순히 이방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을 버리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살아 있을지라도 주님의 생명이 그 안에서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은 AC.290의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에돔과 북방의 방백들, 시돈 사람들도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에돔은 사랑이 타락한 상태를, 북방은 진리의 빛이 없는 상태를, 시돈은 진리에 대한 지식을 잘못 사용하는 상태를 대표합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악과 거짓의 모습들이 결국 모두 동일한 결말,  구덩이’와 죽임당한 자들 가운데 놓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떠난 모든 상태의 종착점이 같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바로가 그들을 보고 위안을 얻으리라’는 말씀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악한 영들은 비슷한 악 가운데 있는 자들과 함께 있을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평안이 아니라 동일한 악이 서로를 확인하며 얻는 거짓된 만족입니다. 참된 생명과 평안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므로, 이러한 위안은 생명 없는 상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본문 전체는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겔32:23-26의 연속입니다. 앞부분에서는 앗수르, 엘람, 메섹, 두발 등이 언급되었고, 여기서는 에돔과 북방의 방백들, 시돈, 그리고 바로가 추가됩니다. 이는 특정 민족만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는 모든 종류의 악과 거짓을 포괄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중심은 역사적 민족이 아니라 영적 상태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호6:2와 시85:6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며’,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는 말씀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호세아와 시편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 살아나는 사람들을 보여 준다면, 에스겔은 그 생명을 거부하여 영적 죽음 가운데 머무는 사람들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본문과 부정적인 본문이 함께 사용됨으로써,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뿐이라는 진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스베덴보리가 겔32:28-31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사람의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떠난 사람은 권세와 지식, 명예를 가졌더라도 결국 영적으로는 할례받지 못한 자’,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로 묘사됩니다. 반대로 참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오며,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참으로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부정적인 예를 통하여 강력하게 증언하며,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더욱 깊고 엄숙하게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32, ‘겔32:23-26’

AC.290.심화 32. ‘겔32:23-26’ 23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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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심화

 

32. ‘32:23-26

 

23그 무덤이 구덩이 깊은 곳에 만들어졌고 그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 곧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 24거기에 엘람이 있고 그 모든 무리가 그 무덤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져 지하에 내려간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였도다 25그와 그 모든 무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침상을 놓았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이제는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뉘었도다 26거기에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방에 있음이여 그들은 다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로다 그들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두렵게 하였으나 (32:23-26) whose graves are put in the flanks of the pit, and her assembly is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put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Elam is there, and all her crowd around her grave, all of them slain, fallen by the sword, who have gone down uncircumcised to the lower earth, who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and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ose who go down to the pit. They have put a bed for her in the midst of the slain with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slain by the sword, for their dismay was put in the land of the living, but they have borne their humiliation with them that go down to the pit. He is put in the midst of the slain. Meshech is there, Tubal, and all her crowd; her graves are all around him, all of them uncircumcised, pierced by the sword, for they put their dismay in the land of the living. (Ezek. 32:23-26).

 

 

32:23-26은 애굽과 여러 이방 민족의 멸망을 노래하는 심판 예언의 일부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긴 본문을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인 전쟁이나 무덤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과 구덩이’, 그리고 영적으로 죽임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진 자’가 무엇인지를 통하여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AC.290의 주제는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며, 이 본문은 그 진리를 부정적인 측면에서 매우 강하게 보여 줍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구덩이’, ‘무덤’, ‘칼에 죽임을 당한 자’,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모두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단순히 이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역사하는 교회와 천국 상태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구덩이’와 무덤’은 주님에게서 분리되어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본문은 영적 생명과 영적 죽음을 대조하여 보여 주는 예언입니다.

 

본문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칼에 죽임을 당한 자’도 문자적인 전사자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은 진리를 파괴하는 거짓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칼에 죽임을 당한 자’는 거짓을 받아들임으로써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살아 있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상태이며, 이것이 AC.290에서 말하는 생명은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와 연결됩니다.

 

또한 본문은 여러 민족을 차례로 언급합니다. 앗수르, 엘람, 메섹, 두발 등은 단순한 역사적 국가들만이 아니라, 말씀의 상응에 따라 교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서로 다른 종류의 거짓과 악을 대표합니다. 이들이 모두 구덩이’와 무덤 가운데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거부한 모든 상태의 최종적인 결과가 동일함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다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을 두렵게 하던 자로다’라는 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영적 의미로는 이것은 거짓과 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참된 신앙과 체어리티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한때 생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활동하였다고 해서 참된 생명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고 왜곡한 결과, 결국 모두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본문에서 반복되는 무덤’이라는 표현 역시 단순한 매장 장소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무덤이 영적으로는 생명 없는 상태, 곧 선과 진리가 전혀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무덤이 사방에 있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사고와 의지, 삶 전체가 영적 죽음 가운데 놓여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인간 proprium의 최종적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사26:14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이사야에서는 죽은 자는 살지 못하겠고’라고 선언하였다면, 에스겔은 그 죽은 상태가 어떠한 영적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더욱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또한 호6:2와 시85:6에서 주님께서 살리시고’,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신 것과도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살아 있는 자가 되지만, 그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결국 무덤과 구덩이로 상징되는 영적 죽음 가운데 머물게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겔32:23-26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역사적 심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 생명과 영적 죽음의 본질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본문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사람만이 참으로 생존하는 사람들’이며, 그 생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비록 세상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미 영적으로는 무덤’과 구덩이 가운데 있는 자라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에게서 생명을 받아야만 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가장 엄숙하고도 강렬한 예언적 언어로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본문입니다.

 

 

 

AC.290, 심화 33, ‘겔32: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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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6: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26:14) The dead shall not live; the Rephaim shall not rise again, because thou hast visited and destroyed them (Isa. 26:14),

 

 

히브리어 르바임(Rephaim)은 개역개정에서 사망하였은즉’으로 번역되었으나, 원문에서는 단순한 죽은 자가 아니라 생명이 완전히 소멸된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이러한 죽은 자’와 오직 주님에게서 오는 참된 생명을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사야가 말하는 죽은 자는 살지 못한다’는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한 상태 자체를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에게서 분리된 상태에서는 참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The dead) 르바임’은 영적 의미에서 선과 진리의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참된 생명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명이며, 그 반대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람에게 생명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시 살지 못하겠고’,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는 결코 영적 생명을 회복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만일 사람 안에 본래 생명이 있다면 스스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생명을 주실 때만 사람이 살아날 수 있으며, 주님을 떠난 상태에서는 참된 생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AC.290의 핵심 논지와 정확히 연결됩니다.

 

이어지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라는 표현도 주님의 자의적인 진노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주님께 돌려지는 진노와 형벌은 인간 편에서 경험하는 결과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곧 사람들이 주님의 생명을 끝내 거부한 결과, 자신들의 악과 거짓 안에 머물게 된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 역시 생명의 근원이 사람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호6:2와 시85:6과도 아름다운 대조를 이룹니다. 호세아와 시편에서는 주님께서 살리시고’, ‘다시 살리신다’고 말씀하시는 반면, 이사야에서는 주님에게서 떠난 자들이 살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앞의 두 구절이 생명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면, 이 구절은 생명을 거부한 결과를 보여 주는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러나 세 구절 모두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라는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사26:14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참된 생명이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님을 역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살아 있으며, 그 생명을 거부한 사람은 비록 자연계에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영적으로는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만 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반대의 경우를 통하여 더욱 선명하게 확증하는 중요한 성경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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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85:6) Wilt Thou not return, wilt Thou not make us live, That Thy people may be glad in Thee? (Ps. 85:6)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다시 살리사’라는 표현이 사람의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매우 직접적으로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나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존재입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다시 살아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생명의 시작과 회복은 모두 주님의 역사이며, 이는 AC.290에서 말하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다’는 메시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여기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단순히 육체의 생명을 연장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에서는 주님에게서 멀어진 상태에서 다시 주님과 결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참된 생명은 주님과의 결합이며, 죽음은 그 결합이 끊어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은 영적 생명의 회복, 곧 거듭남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이라는 말씀도 같은 진리를 보여 줍니다. 참된 기쁨은 사람이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는 감정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올 때 생기는 결과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생명을 회복시키시고, 그 결과 사람은 주님 안에서 기뻐하게 됩니다. 생명과 기쁨의 순서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설명하는 생명의 본질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사람은 생명의 소유자가 아니라 생명의 수용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생명이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살아 있으며, 그 인플럭스가 없다면 사람은 한순간도 영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기도의 형식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호6:2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6:2 주께서 우리를 살리시며’라고 선언한다면, 85: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는 주님의 약속을 선포하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약속을 믿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두 말씀 모두 사람의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동일한 진리를 증언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시85:6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이 구절은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서 끊임없이 생명을 주실 때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생명의 회복과 거듭남,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참된 기쁨까지 모두 주님의 역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기도와 찬양의 형식으로 아름답게 확증하는 대표적인 성경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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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6:2) After two days He will make us live; in the third day He will raise us up, and we shall live before Him (Hos. 6:2).

 

 

스베덴보리가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살리시며’, ‘일으키시리니’, ‘살리라’는 말씀이 모두 참된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살아나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에 참여함으로 살아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구절은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보여 줍니다.

 

이 구절에서 중심이 되는 말씀은 우리를 살리시며’,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입니다. 여기서 주어는 언제나 여호와이십니다. 사람은 자신을 살리거나 스스로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께서 살리시고 일으키실 때 비로소 살아갑니다. 이것은 AC.290의 핵심 메시지인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다’는 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특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는 말씀은 참된 생명이 주님의 임재와 결합 안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성경에서 주님의 앞’은 단순한 공간적 위치가 아니라 주님과의 영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앞에서 산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며 그분과 함께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독립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AC.290의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또한 살리신다’와 일으키신다’는 표현은 육체의 생명보다 영적 생명을 먼저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술에서 죽음은 무엇보다 주님에게서 떠난 영적 상태를 의미하며, 살아남은 주님과 다시 연결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새로운 생명으로 이끄시는 과정을 묘사하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이틀 후’와 셋째 날 역시 단순한 시간 계산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에서 수와 날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반복하여 설명합니다. 따라서 셋째 날’은 시험과 준비의 상태가 끝나고 새로운 생명과 완성이 시작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결국 이 구절은 사람 안에서 주님의 생명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거듭남의 완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호6:2는 앞에서 AC.290에 인용된 시69:28과 계시록의 여러 생명책 구절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생명책은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를 말하고, 6:2는 그 생명이 실제로 사람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생명책이 생명의 상태를 말한다면, 6:2는 그 생명의 근원이 언제나 주님이심을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스베덴보리가 호6:2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살리시고 일으키실 때만 참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시며’,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는 세 표현은 모두 사람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온다는 동일한 진리를 증언하며, 따라서 이 구절은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고,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아름답고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30, ‘시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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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28, ‘계20:15’

AC.290.심화 28.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계20:15) And if anyone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h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Rev. 20:15). AC.290에서 이 구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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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20:15) And if anyone was not found written in the book of life, he was cast into the lake of fire (Rev. 20:15).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최후 심판의 형벌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책’이 의미하는 바를 통하여 모든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의 중심은 불 못’이 아니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입니다. 성경은 심판의 기준을 재산이나 지식, 외적 행위가 아니라 생명책’과의 관계로 제시합니다. 이는 사람의 참된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결합 여부에 달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생명책은 단순한 천국의 명부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과 연결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끊임없이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사랑과 거짓 가운데 머물러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의미는 스베덴보리가 천국과 지옥’에서 설명하는 생명책 개념과도 일치합니다. 생명책은 하늘에 있는 문자적인 책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 안에는 그의 모든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그대로 새겨져 있으며, 천사들은 그것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사람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불 못’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지옥의 불은 물질적 불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의 욕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이 불 못에 던져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임의로 형벌에 처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거부한 결과 자기 사랑의 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영적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때문에 계20:15는 앞에서 인용된 시69:28, 13:8, 17:8과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69:28은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을 말하고, 13:8과 계17:8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상태를 말하며, 20:15는 그 상태가 마지막에는 어떤 영적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줍니다. 세 구절 모두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라는 동일한 진리를 서로 다른 측면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계20:15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심판의 공포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책의 참된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하며, 기록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생명을 거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최후 심판의 선언을 통하여서도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의 모든 영적 생명은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분명하게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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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17:8) The beast that thou sawest was and is not, and is about to come up out of the abyss, and to go away into destruction; and they who dwell on the earth shall marvel, whose names were not written on the book of life from the founding of the world, looking at the beast that was and is not, and yet is (Rev. 17:8).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계13:8과 마찬가지로 생명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하여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에서 특별히 주목할 표현은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운명이 임의로 미리 결정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어떤 외적인 명부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영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끊임없이 받아 살아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은 바로 그 생명의 수용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질서 안에 있다는 뜻이며,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스베덴보리가 Heaven and Hell’에서 설명하는 생명책’의 의미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생명책은 하늘에 있는 문자적인 책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 안에는 그의 모든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기록되어 있으며, 천사들은 그것을 그대로 읽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사람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 생명책과 함께 등장하는 짐승’도 중요한 대조를 이룹니다. 짐승은 영적인 의미에서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과 왜곡된 종교를 상징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보다 이러한 거짓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짐승을 보고 놀라며, 그것을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생명의 근원이 주님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인가를 분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13:8에서는 어린 양의 생명책’이 강조되었다면, 17:8에서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왜 짐승을 따르게 되는지가 강조됩니다. 두 구절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그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사람이 어떤 영적 상태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계17:8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단순히 생명책’이라는 단어를 예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생명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 있으며,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참으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람은 스스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지속적으로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계시록의 상징을 통해 강력하게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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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13:8) And all who dwell on the earth shall worship him,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ing of the world (Rev. 13:8).

 

 

스베덴보리는 ‘Arcana Coelestia’를 라틴어로 저술하면서 성경도 여러 성경 전통과 원어를 참조하여 자신의 라틴어로 인용하였습니다. 따라서 AC.290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특정 영어 번역의 표현 때문이 아니라, ‘어린 양의 생명책(the book of life of the Lamb)이라는 성경 자체의 영적 의미를 통하여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심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에서 핵심은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생명책’이라고 하지 않고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양’은 주님의 신적 인성을 의미하며,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생명책은 주님과 분리된 어떤 독립적인 기록부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연결된 사람들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AC.290에서 스베덴보리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본래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주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단순히 천국의 명단에 이름이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영이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임의로 제외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주님의 생명을 거부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스베덴보리가 ‘천국과 지옥’에서 설명하는 ‘생명책’의 의미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그에 따르면 생명책은 하늘 어딘가에 있는 문자적인 책이 아니라 사람 자신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 안에는 그의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모두 질서 있게 기록되어 있으며, 천사들은 그것을 한 권의 책을 읽듯이 읽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 안에 질서 있게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는 말씀과도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짐승’은 사람의 자연적인 욕망과 거기에서 나오는 거짓을 의미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을 따르기보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짐승을 경배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대조적으로 보여 줍니다.

 

앞서 AC.290에서 인용된 시69:28은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이 구절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진리는 동일합니다. 곧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을 때만 참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되며, 그 상태가 곧 생명책에 기록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가 계13:8 AC.290에서 인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그는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생명의 근원이 오직 주님이심을 다시 한번 확증하고 있습니다. 생명책은 단순한 천국의 명부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영 자체를 의미하며,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 존재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람은 스스로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 생명을 끊임없이 받아 살아간다는 AC.290의 중심 교리를 매우 분명하게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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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천국과 지옥에서 말하는 생명책

 

천국과 지옥’에서 조사 천사들이 새로 온 영을 살필 때, 그들은 단순히 기억을 하나씩 조회하거나 질문을 통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 영의 전 존재를 읽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의 영 전체가 마치 한 권의 책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안에 그의 모든 사랑과 의도, 생각과 행위가 질서 있게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특히 손끝에서부터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손과 손가락 끝은 사람의 가장 바깥 행위까지도 그 사람의 내면과 완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부분에도 사람 전체가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래는 위 내용을 볼 수 있는 천국과 지옥 463번 글 링크입니다.

 

 

HH.463, 48장, '두고 가는 것은 육체밖에 없다'(HH.461-469)

48사후 사람은 모든 감각과 그가 생전에 가졌던 모든 기억, 사고 및 애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가 사용했던 육체 밖에는 남기고 가는 게 없다After Death Man Is Possessed of Every Sense, and of All the Me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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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시69:28 생명책’은 결코 하늘 어딘가에 놓인 거대한 명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생명책’은 곧 그 사람의 영 자체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안에 기록된 모든 삶의 역사이며, 사랑과 신앙의 상태가 그대로 새겨진 존재 자체입니다.

 

그래서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말도 하나님께서 천국의 명단에서 이름을 지우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 자신의 영 안에 주님의 생명이 기록되어 있어야 할 자리가 악과 거짓으로 채워진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의 영이라는  속에 주님의 생명이 더 이상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점에서 AC.290 천국과 지옥’은 정확히 하나로 연결됩니다. AC.290 생명은 오직 주님께 속한다’는 원리를 설명하고, ‘천국과 지옥’은 그 원리가 실제로 사람의 영 안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람의 영은 살아 있는 책이며, 천사들은 그 책을 읽습니다. 그 책에는 사람이 평생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믿었으며, 무엇을 의도했고, 어떻게 살았는지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 천사들이 손끝에서부터 사람을 살피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손은 성경에서 언제나 능력’과 행위’를 상징하며, 손가락은 그 행위의 가장 미세한 표현을 나타냅니다. 영의 가장 바깥까지도 그 사람의 중심 사랑이 흘러나와 있기 때문에, 천사들은 손끝만 보아도 그 사람 전체의 생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상응의 실제 적용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69:28 생명책’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표현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곧 한 권의 생명책’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영 전체가 주님의 생명으로 기록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름을 지우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끝내 주님의 생명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영이라는 책 안에서 그 생명의 기록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AC.290에서 스베덴보리가 시69:28을 인용한 이유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는 단순히 생명책’이라는 단어를 증거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 자체가 주님의 생명을 담고 있는 책이며, 그 영에 기록된 것이 곧 그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책’은 천국의 외부 장부가 아니라, 주님 앞에 완전히 펼쳐지는 사람 자신의 영 그 자체라고 이해하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전체 저작과 가장 잘 조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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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9:28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우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 (69:28) Let them be wiped out of the Book of Lives, And not be written with the just (Ps. 69:28).

 

 

AC.290의 중심 주제는 오직 주님만이 생명 자체이시며, 사람은 그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생명’, ‘산 자’, ‘산 자들의 땅’, ‘생명책’과 같은 표현들은 모두 참된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증언하는 말씀들입니다. 69:28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생명책’은 단순히 천국 입장자 명단을 기록한 어떤 문자적인 책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 따르면 ’은 기억과 기록, 또는 사람의 내적 상태가 모두 드러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책’은 주님과 결합, 그분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태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공동체에 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주님께서 임의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삭제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은 종종 결과를 하나님의 직접적 행위처럼 표현하지만, 내적 의미로는 사람이 스스로 악과 거짓을 선택,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을 거부한 결과를 나타냅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생명을 주시지만, 사람이 끝내 그것을 거절하면 그 사람은 생명의 질서에서 스스로 벗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말게 하소서’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를 보강합니다. 여기서 의인’은 자기 자신의 의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의와 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과 의인들은 같은 부류를 가리킵니다. 곧 주님의 생명 안에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이 구절은 AC.290에서 앞서 인용된 시27:13, 52:5, 66:9, 142:5와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27:13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말하고, 52:5는 악한 자가 살아 있는 땅’에서 뿌리 뽑힌다고 하며, 66:9는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두신다고 말하고, 142:5는 주님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 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시69:28은 이러한 생명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임을 보여 줍니다.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AC.290에서 인용하는 이유는, ‘생명책’이라는 표현을 통해 참된 생명이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상태를 의미하며, 생명책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그 생명을 거부, 스스로 그 상태에서 벗어난 결과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 역시 사람은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존재라는 AC.290의 중심 메시지를 매우 분명하게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AC.290, 심화 25, 책, ‘천국과 지옥’에서 말하는 ‘생명책’

AC.290.심화 25. 책, ‘천국과 지옥’에서 말하는 ‘생명책’ ‘천국과 지옥’에서 조사 천사들이 새로 온 영을 살필 때, 그들은 단순히 기억을 하나씩 조회하거나 질문을 통해 판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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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90, 심화 23, ‘시66:9’

AC.290.심화 23. ‘시66: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시66:9) Who putteth our soul among the living (Ps. 66:9). 겉으로는 위 두 번역이 상당히 달라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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