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천사들처럼 읽을 수 있으려면 (2024/11/19)
천사들은 내적(內的, internal, 속, 영) 존재들이어서 우리가 읽는 이 말씀(The Word, 성경 66권 중 그 안에 속뜻, 즉 아르카나가 담긴 성경들)도 우리처럼 외적(外的, external, 겉, 육)으로 읽는 게 아니라 내적으로 읽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우리가 자신의 외모는 평생 보아오고 있어 잘 알지만, 자신의 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듯 말씀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겉 글자만 평생 읽어 왔지 말씀의 영, 곧 말씀의 겉 글자에 담긴 아르카나(arcana, 秘義)는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어 거의 모르지요.
그러면 왜 천사들처럼 말씀을 읽는 게 필요하고, 또 중요할까요? 그것은 우리의 사후(死後), 이어질 삶 때문입니다. 뭐, 짐작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민을 앞둔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요, 다른 나라로 살러 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일에 계속 목숨 걸기보다는 앞으로 가서 살게 될 나라를 더 공부하고 준비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떠나기 전까지 어느 정도는 계속 병행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런 겁니다. 그래서 천국 천사들은 말씀을 어떻게 읽나 알아보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우리도 부지런히 그들처럼 말씀 읽는 법을 익혀 말씀에서 가르치고 있는 천국에 대해, 먼저 어떻게 해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의 삶은 어떤 삶인지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아무래도 안 가 본 우리 중 누구들보다 주님의 허락으로 미리 가 본 사람이 전하는 그곳 현지 생생한 소식으로 말입니다.
이를 위해 천국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 곧 인류를 사랑하셔서 이 마지막 때에 이 모든 걸 삼백 년 전에 미리 준비하셨다는 사실! 여러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사람이 바로 ‘스베덴보리’(Emanuel Swendenborg, 1688-1772)입니다. 이분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그러나 주님의 섭리로 스베덴보리를 한 지 어느덧 7년 된 지금, 제가 깊이 느끼는 한 가지는, 이 길을 수십 년 전부터 앞서가신 분들의 말씀처럼 이 계시, 이 가르침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네, 정말 어렵습니다. 육체 안에서 평생 겉의 삶, 외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내적 존재인 천사들의 말이 와닿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내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 가늠이 되시나요? 네, 정말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심지어 저는 이 길을 걷기 전, 몇 번의 영적 체험 및 수도원 공부를 먼저 여러 해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소위 ‘입문’(入門)을 위한 순서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이 순서는 사실은 주님이 저를 이끄신 순서이기도 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From Things Heard and Seen)을 리딩하시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여러 번!
혹시 종이책이 필요하시면, 아래로 가셔서 구입하시면 됩니다. 특별히 김은경 역을 추천하는 이유는 제가 이 번역으로 읽었기 때문인데, 실제로도 여러 번역 중 저한테는 이게 제일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꼭 좀 당부드리고픈 것은, 이 책을 읽으실 때마다 문장 문장, 쉬지 말고 주님의 빛 비추심을 구하시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천국에 관한 기록들, 소식과 사실들은 천국에 충만한 주님의 신성의 빛, 곧 신적 진리(Divine Truth)의 빛으로 비추임을 받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스베덴보리 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The heavenly arcana contained in the Holy Scripture or Word of the Lord unfolded, beginning with the book of Genesis,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리딩을 병행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알던 창세기, 출애굽기와 너무나 달라 당혹스러우시기까지 하겠지만 말입니다.
참고로, 저는 위 첫 번째 책은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기를 한글과 영어로 대략 열 번 이상은 한 것 같고, 두 번째 책은 창3까지는 번역을 끝냈고, 창4부터는 일단 리딩부터 쭉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 가지, 7년이나 되었음에도 겨우 요만큼 밖에 진도를 못 나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물론 다른 많은 저작 역시 병행하여 읽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ㅎㅎㅎ, 아, 참고로 스베덴보리의 저작들(Writings)은 아래 글에 가시면 접하실 수 있습니다.
둘 다 위 제 블로그에 올렸으니 우선은 이걸로 읽으시고, 나중에 책 제본 나오면 그때 종이책으로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위 두번 째 책인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는 번역본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영어가 좀 되시면 그냥 영어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나오는 여러 AI 번역기로 번역을 하셔도 이게 다분히 영서(靈書)라 좀 손이 많이 가실 겁니다.
다음은 리딩 및 번역을 제가 어떻게 중도포기 안 하고 계속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있을까를 몇 줄로 요약한 것입니다.
첫째, 처음엔 수도 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주님, 제가 이 사람의 글 읽는 것이 참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지요? 제가 무슨 이단의 글을 읽는 건 아니지요? 만일 그렇다면 주님이 저를 말려주시고, 이 길로부터 저를 지켜 보호하여 주세요...’ 하는 기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만큼 충격의 연속이었으니까요! 말씀을 겉 글자가 아닌, 거기 담긴 영으로 읽는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둘째, 계시(啓示)는 내면이 열리는 만큼만 보입니다. 계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의 신적 진리(Divine Truth)의 빛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데, 그럴려면 내면이 열려 그 빛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한번은 주님이 맹인을 고치실 때, 그가 단번에 낫지 않아 다시 안수하신 후라야 그가 모든 것을 밝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창세기 처음 세 장을 한 일곱 번 정도 번역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머리 신앙의 사람, 내면의 열림이 매우 더딘 사람이었답니다.
셋째, 이 길을 걸은 지 7년, 제게 가장 큰 보람과 상급, 영광과 감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거의 마치 천사들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태고교회에 허락하셨던 퍼셉션(perception, 태고교회에 허락하셨던, 지금도 천국 주님과 천사들 사이 사용하는 내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주님의 신성을 지각할 수 있는 역량)을 나름 아직은 좀 일반적이지만, 아니 매우 여전히 투박하지만, 그러나 아주 조금이라도 허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퍼셉션이라는 영적 역량의 회복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있어야 천국에 충만한 주님의 신성(The Divine)을 알 수 있는데, 그 결과 주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지를 정말 정말 확실히, 투명하게, 천사들처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학습으로 얻는 게 아닌, 주님이 거저 주시는,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는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을 사랑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이 외에도 많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분명한 건, 저는 7년을 한결같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매일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길을 걸으며 그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ㅎㅎㅎ
그럼에도 여러분, 천사들처럼 말씀을 영으로, 즉 속뜻으로 읽는 법을 익혀 다시 오실, 사실은 말씀의 속뜻으로 이미 오신, 주님의 새 교회, 계시록 주님의 새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그렇다고 말씀을 겉 글자로 읽는 것이 무슨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아직 내면이 열리지 않아 지상의 언어로밖에는, 기록된 겉 글자로밖에는 읽을 수 없는 99.999%의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말씀을 가까이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겉 글자는 그릇이요, 속뜻은 거기 담기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릇 또한 매우 중요하며,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며, 주님을 향한 애정 안에 있는 사람들은 겉 글자로도 충분히 일상에서 선을 행하며, 그로 말미암은 진리를 깨달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내면이 열려가는 것입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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