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
AC.255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한다는 것은,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교회의 씨, 후손은 오직 신앙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라고 불리는 것은 주님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에서는 신앙을 가리켜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이라 합니다. That the “seed of the woman” signifies faith in the Lord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oman” as being the church, whose “seed” is nothing but faith, for it is from faith in the Lord that the church is called the church. In Malachi, faith is called the “seed of God”: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2:14, 15) 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seeking the seed of God? 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15).
여기 ‘어려서 맞이한 아내’(wife of youth)는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하며, 그 ‘씨’(seed), 곧 신앙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에서도 교회를 가리키면서 In this passage the “wife of youth” is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of whose “seed” (or faith) the prophet speaks. In Isaiah also, in reference to the church: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la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Isa. 44:3).
계시록에서 In Revelation: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7).
그리고 시편 And in David: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시89:3-4, 29, 36)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ine elect, I have sworn unto David my servant, even to eternity will I establish thy seed, and his seed will I make to endure forever, and his throne as the days of the heavens; his seed shall endure to eternity, and his throne as the sun before me (Ps. 89:3–4, 29, 36),
여기 ‘다윗’(David)은 주님을, ‘왕위’(throne)는 그분의 왕국을, ‘해’(sun)는 사랑을, 그리고 ‘후손’(seed)은 신앙을 의미합니다. where by “David” is meant the Lord; by “throne,” his kingdom; by the “sun,” love; and by “seed,” faith.
해설
AC.255는 앞의 AC.254와 짝을 이루는 대목입니다. AC.254가 ‘뱀의 후손’을 설명하였다면, AC.255는 ‘여자의 후손’을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씨’(seed, 후손)는 언제나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뱀의 후손’이 악과 자기 사랑에서 나온 불신과 거짓이라면, ‘여자의 후손’은 교회에서 나오는 신앙, 곧 주님께 대한 신앙입니다.
그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원리를 말합니다. ‘교회의 후손은 오직 신앙뿐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그분과 결합하는 신앙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은 본질적으로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동시에 이 신앙이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의 신학에서 참된 신앙은 언제나 사랑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89편에서 ‘후손’(seed)이 ‘왕위’(throne)와 ‘해’(sun)와 함께 언급되는 것입니다. 해는 사랑이고, 왕위는 주님의 왕국이며, 씨, 그러니까 후손은 신앙입니다. 즉 사랑과 신앙이 함께 주님의 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계12:17의 ‘여자의 남은 자손’에 대한 해석은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서 여자의 자손은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씨, 곧 자손의 의미를 직접 보여줍니다. 씨는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말2:15의 ‘경건한 자손’(seed of God)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 목적은 단순히 사람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고, 참된 신앙을 낳고 보존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신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AC.255에서 여러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모두 하나입니다.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육체적 후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참된 신앙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신앙의 근원이신 주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창3:15은 단순히 하와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 대한 신앙과 자기 사랑에서 나온 불신 사이의 영원한 대립을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불신이고, 여자의 후손은 신앙이며, 그 신앙의 중심에는 결국 주님 자신이 계시는 것입니다.
심화
1. ‘말2:14-15’
14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15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2:14, 15) Jehovah hath witnessed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and not one hath done so who had a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seeking the seed of God? But observe ye in your spirit, lest he deal treacherously against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15).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신앙(faith)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그는 여기 나오는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문자적으로는 결혼 언약을 저버리는 일을 책망하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 말씀을 교회와 주님의 관계에 대한 영적 묘사로 이해합니다. 앞서 AC.253에서 설명한 것처럼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thy youth)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합니다. 곧 주님과 가장 순수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은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을 육체적 자녀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신앙으로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상응 해석에서 ‘씨’(seed)는 언제나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산물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악에서 나오면 ‘행악의 종자’가 되고, 거짓에서 나오면 ‘거짓의 후손’이 되며, 하나님에게서 나오면 ‘경건한 자손’이 됩니다. 따라서 ‘경건한 자손’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신앙, 곧 주님께 대한 참된 신앙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셨다’는 표현은 주님과 교회의 결합이 신성한 언약임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결합의 목적은 단순히 외적인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참된 신앙이 계속 태어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AC.255에서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한 증거 본문이 됩니다. 창3:15에서 ‘여자의 후손’이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라면, 말라기의 ‘경건한 자손’도 단순한 자녀를 의미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여기서 씨, 후손, 자손은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신앙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와 선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씨’(seed)라는 표현이 영적으로는 신앙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경건한 자손’(seed of God)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참된 신앙을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창3:15에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의 본질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뱀의 후손’이 불신이라면, ‘여자의 후손’은 신앙이며, 말2:15의 ‘경건한 자손’은 그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구절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2. ‘사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사44:3) I will pour waters upon the thirsty, and floods upon the dry [land]; I will pour my spirit upon thy seed, and my blessing upon thine offspring (Isa. 44:3).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씨’(seed)가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신앙과 영적 생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자손’(seed)이라는 표현을 혈통이 아니라 영적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 이유는 본문 자체가 영적 언어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목마른 자’(thirsty)는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물’(waters)은 진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마른 땅’(dry land)은 진리와 선이 결핍된 상태를 의미하며, ‘시내’(floods)는 풍성하게 공급되는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어지는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말씀도 단순한 육체적 후손에 관한 말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혈통 위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부어집니다. 따라서 여기서 ‘자손’(seed)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또는 그들 안에 있는 신앙 자체를 의미합니다.
또한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말씀에서 복(blessing)은 단순한 물질적 번영이 아니라 선과 진리의 결합, 곧 영적 생명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이 후손에게 부어진다는 것은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255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적은 매우 분명합니다.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여자의 후손’을 신앙(faith in the Lord)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 사44:3은 ‘씨’(seed)가 하나님의 영과 복을 받는 대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는 씨가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신앙과 관련된 영적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씨’(seed)가 영적으로는 신앙을 의미한다는 AC.255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용됩니다. 물은 진리, 영은 주님의 생명, 복은 선과 사랑을 의미하며, 그것들이 부어지는 ‘자손’(seed)은 주님께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 또는 그 신앙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44:3은 ‘여자의 씨, 후손 = 신앙’이라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본문 가운데 하나로 사용된 것입니다.
3.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12:17) The dragon was wroth with the woman, and went to make war with the remnant of her seed, who were keeping the commandments of God, and have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2:17).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seed of the woman)이 무엇인지를 성경 자체가 직접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그는 ‘여자’는 교회를 의미하고, ‘여자의 후손’은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계시록에서는 ‘여자의 남은 자손’(remnant of her seed)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즉 육체적 혈통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과 삶으로 주님과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만일 ‘여자의 씨, 후손’이 문자 그대로의 후손을 의미한다면, 계시록도 혈통에 관하여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씨’(seed)는 혈통이 아니라 영적 성격을 의미한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또한 이 구절은 창3:15의 예언이 계시록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에서는 뱀과 여자 사이에 원수가 생기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대가 생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실제로 용이 여자와 그녀의 자손을 공격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계시록의 용을 창세기의 뱀과 동일한 존재로 봅니다. 앞의 AC.251에서 설명한 것처럼, 용은 옛 뱀이며, 자기 사랑과 악, 그리고 거짓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용이 여자의 자손과 싸운다는 것은 악과 거짓이 참된 신앙을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신앙이 삶 속에서 실천되는 모습을 의미하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다’는 것은 주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은 스베덴보리의 신앙 이해와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에게 참된 신앙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인정하고,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삶과 결합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은 여자의 자손을 단순히 ‘믿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AC.255에서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곧 주님께 대한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 신앙을 의미한다는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가장 명확하게 뒷받침하는 본문 가운데 하나이며, 동시에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영적 전쟁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4. ‘시89:3-4, 29, 36’
3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4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29또 그의 후손을 영구하게 하여 그의 왕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 36그의 후손이 장구하고 그의 왕위는 해 같이 내 앞에 항상 있으며 (시89:3-4, 29, 36) I have made a covenant with mine elect, I have sworn unto David my servant, even to eternity will I establish thy seed, and his seed will I make to endure forever, and his throne as the days of the heavens; his seed shall endure to eternity, and his throne as the sun before me (Ps. 89:3–4, 29, 36),
AC.255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씨’(seed) 또는 ‘자손’이 단순한 육체적 후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faith)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의 후손’을 설명하면서, 말씀 여러 곳에서 ‘씨’가 영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스베덴보리는 여기의 ‘다윗’(David)을 역사적 인물 다윗으로 보지 않고 주님(the Lord)을 의미하는 표상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라는 말씀은 다윗 왕가의 육체적 혈통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다윗의 지상 왕조는 오래전에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반드시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속된다’, ‘그의 왕위가 하늘의 날과 같다’, ‘그의 왕위가 해 같이 항상 있다’는 표현 역시 단순한 인간 왕국에 적용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왕국에만 적용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왕위’(throne)를 주님의 왕국(the Lord's kingdom)으로, ‘해’(sun)를 사랑(love)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씨’(seed)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왕국은 사랑과 신앙 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해가 사랑이라면, 그 해로부터 나오는 빛은 신앙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후손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참된 신앙이 영원히 보존된다는 뜻입니다.
특히 AC.255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앞에서 스베덴보리는 ‘뱀의 후손’을 불신으로 설명하였고, 이제 ‘여자의 후손’을 신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 89편의 ‘다윗의 자손’ 역시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앙의 계열을 의미하게 됩니다.
결국 이 구절이 인용된 이유는, 성경이 ‘씨’(seed)를 영적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왕위는 주님의 왕국을, 해는 사랑을, 씨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의 씨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말씀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참된 신앙이 영원히 존속하며, 그것이 주님의 왕국 안에서 계속 살아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창3:15의 ‘여자의 후손’이 단순한 인간 후손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신앙을 의미한다는 AC.255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