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0 심화

2. 스베덴보리는 거듭남의 과정을 어떻게 알았을까?’

 

AC.20의 설명을 실제 인간의 삶에 대입해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더 생깁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이 처음에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속한 것을 선과 진리라고 여기다가, 새로 잉태되면서 자기의 선들이 선이 아님을 알기 시작하고, 더 빛 안으로 들어가면서 주님이 선 자체요 진리 자체이심을 알아간다는 이런 내적 과정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것이 단순한 성경 해석에서 나온 것인지, 영계에서 관찰한 것인지, 아니면 스베덴보리 자신이 실제로 겪은 과정인지 궁금해집니다.

 

먼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AC.20의 각 단계를 곧바로 스베덴보리 자신의 자서전으로 읽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깊은 내적 변화와 영적 위기를 경험했다는 사실과, 그가 자신의 생각과 정서와 꿈을 세밀하게 관찰했다는 사실은 그의 여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학 저술기로 넘어가기 전후의 개인 기록은 그가 자기 사랑, 명예욕, 지적 자부심, 주님에 대한 의존 같은 문제를 매우 깊이 씨름했음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그에게 거듭남이 순전히 책상 위의 추상적인 주제만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러므로 AC.20 스베덴보리가 자기에게서 직접 겪은 단계를 기록한 것이다라고 단정하면 한 걸음 너무 나갑니다. AC.20 자체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1:3의 속뜻을 해설하면서 거듭나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첫 상태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의 개인적 영적 경험이 이런 설명을 이해하는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과, AC.20의 교리를 그의 자전적 경험과 동일시하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영적 감각이 열린 뒤 오랜 기간 영들과 천사들과 교통했다고 반복해서 증언한다는 사실입니다. AC 자체에서도 그는 영계에서 보고 들은 것과 사후 인간의 상태, 천국과 지옥, 영들의 성질에 관한 경험을 매우 자주 기록합니다. 이것은 그의 신학을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인간의 생각과 정서가 영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선과 진리는 주님에게서 천국을 통해 흘러들고 악과 거짓은 지옥적 영향과 연결된다는 거대한 틀 안에서 인간의 거듭남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AC.20 여섯 날의 단계는 영계에서 여러 사람을 관찰하여 통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자신의 영계 경험을 교리의 중요한 확증으로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창세기 1장의 거듭남 해석 자체는 무엇보다 말씀의 속뜻에 대한 해설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영계에서 보았기 때문에 1 그렇게 해석했다고 한 방향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이며 가장 직접적인 층위가 바로 말씀입니다. AC는 처음부터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속뜻을 밝히는 저작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말씀은 인간이 임의로 상징을 붙여 해석하는 문서가 아니라, 문자적 의미 안에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이 담겨 있으며 천국과 결합되어 있는 신적 말씀입니다. 따라서 창1의 빛, 낮과 밤, , , 식물, 광명체, 동물, 사람은 서로 흩어진 비유가 아니라 인간의 거듭남과 주님의 나라에 관한 하나의 내적 질서를 이룹니다. AC.20의 첫 빛 역시 이 말씀의 속뜻 안에서 설명됩니다.

 

그렇다면 스베덴보리의 개인 경험, 영계 경험, 말씀의 속뜻이라는 세 가지를 어떻게 관계 지어야 할까요? 셋을 완전히 분리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 똑같은 무게의 가지 자료원이라고 기계적으로 병렬시키는 것도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 AC에서 중심에 놓이는 것은 말씀과 그 속뜻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영계 경험은 그가 설명하는 영적 세계와 인간의 내적 구조를 이해하고 확증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며, 그의 개인적 경험은 그가 이런 문제를 단순한 관념으로만 다루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AC.20의 교리적 근거를 최종적으로 그의 개인 체험에 두는 것은 스베덴보리 자신이 말씀에 부여한 위치와도 맞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의 선들이 선이 아님을 알기 시작한다AC.20의 문장은 스베덴보리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심리 경험이 아니라 그의 거듭남 교리 전체와 연결됩니다. 선은 인간의 proprium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며, 사람이 거듭날수록 자기가 선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은 이후 AC 전체에서 계속 깊어지는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문장을 스베덴보리 자신의 어느 특정한 위기나 회심 사건과 일대일로 대응시키기보다, 말씀의 속뜻 안에서 제시된 거듭남의 보편적인 질서로 읽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생애가 이 설명과 전혀 관계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의 개인 기록을 읽어 보면, 훗날 그의 신학에서 매우 중요해지는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는 , 자기 지성과 공로, 주님께 대한 의존 같은 문제들이 그에게도 실제적인 문제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스베덴보리 자신도 이러한 거듭남의 문제와 무관한 관찰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그의 개인적 체험이고 어디서부터가 말씀의 계시적 해설인지를 우리가 임의로 확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이런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질문에 가장 안전하게 답한다면 이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님의 허락으로 영계가 열린 상태에서 오랫동안 영적 세계를 경험했다고 증언했고, 자신의 내적 삶에서도 깊은 변화를 겪었으며, 무엇보다 말씀의 속뜻이 열려 그 안에서 인간 거듭남의 질서를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배경을 함께 고려할 수 있지만, AC.20 자체는 스베덴보리 개인의 체험담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에 대한 해설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의 개인적 경험을 지나치게 확대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왜 인간의 내적 변화에 이토록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설명했는지를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20 심화 2)

 

 

 

AC.20, 창1:3, ‘빛의 첫 인식 : 자기의 선이 선이 아님을 알고 주님을 알기 시작하는 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창1:3) AC.20첫 번째 상태는 사람이 선과 진리가 더 높은 것임을 알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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