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60.심화

 

4. ‘즉시 퍼셉션으로 감지하고 물러나는 상태

 

첫 번째 태고교회는 우리보다 훨씬 더 주님 안에 있었고, 훨씬 더 직접적으로 주님의 생명을 지각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주님과 분리된 독립 중심처럼 느끼는 정도가 매우 적었습니다. (AC.160 심화 3)

 

1에 의하면, 2 전반 첫 번째 태고교회 역시 부단한 자기 own과의 싸움, 그리고 그 극복을 통해 저 자리, 저 상태까지 이른 것 같은데... 그래서 윗글 표현 자기 자신을 주님과 분리된 독립 중심처럼 느끼는 정도가 매우 적었습니다라는 표현은 자기 자신을 주님과 분리된 독립 중심처럼 느끼려는 순간, 아주 단호하게 물러납니다로 고쳐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목사님 지적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실 AC.16-63까지의 ‘1 거듭남 구조’를 충분히 따라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 제기입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 대로, 창2의 태고교회 인간 역시 아무 노력 없이 자동으로 천적 상태에 도달한 존재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창1 여섯 날의 과정 전체가, 질서 없는 상태로부터 점차 주님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긴 형성 과정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제안하신 표현, 곧 ‘‘자기 자신을 주님과 분리된 독립 중심처럼 느끼는 정도가 매우 적었습니다’라기보다, ‘그렇게 느끼려는 순간 아주 단호하게 물러납니다라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은 상당히 통찰력 있습니다. 실제로 천적 인간을 너무 ‘자기감 자체가 거의 없는 존재’처럼 이해하면, 창1 전체의 거듭남 투쟁 구조와 잘 연결되지 않는 면이 생깁니다.

 

다만 스베덴보리 흐름 안에서는 이 둘이 완전히 충돌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즉, 태고교회 인간에게도 proprium 가능성 자체는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창2에서 ‘돕는 배필’, ‘깊은 잠’, ‘여자’, 그리고 이후 타락 가능성 자체가 등장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도 인간인 이상 자기 자신 안으로 기울 가능성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이는 ‘무게 중심’에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거의 기본 상태 자체가 자기 자신 중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돌이키려면 거꾸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반면 태고교회 인간은 기본 중심이 주님 쪽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독립 중심으로 느끼려는 움직임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오늘날 인간처럼 굳어지고 체질화되기 전에 훨씬 더 민감하게 그것을 감지하고 물러날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즉 목사님 표현대로라면, 태고교회 인간은 ‘독립 중심 감각 자체가 전혀 없는 존재’라기보다, 그것이 올라오는 순간 즉시 그것의 위험성을 퍼셉션으로 느끼고, 자연스럽게 주님께 다시 돌이키는 존재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퍼셉션의 무서운 민감성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기 사랑이나 자기 의를 느껴도 그것을 상당히 오랫동안 ‘나 자신’으로 붙들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proprium을 강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은 자기 자신 안으로 굽어지는 움직임 자체를 거의 영적 통증처럼 느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훨씬 빠르게 주님 질서로 되돌아갑니다.

 

이 점에서 창1의 여섯 날도 새롭게 보입니다. 그것은 단순 자동 성장 과정이 아니라, 인간 안의 혼돈이 점차 주님의 질서 안으로 정렬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안식 상태 역시 ‘더 이상 어떤 유혹도 없는 상태’라기보다, 주님의 질서가 중심을 잡고 있는 상태로 이해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수정 표현은 상당 부분 타당합니다. 특히 ‘자기 자신을 독립 중심처럼 느끼는 정도가 적었다’는 말을 너무 정적인 상태로 이해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순간 즉시 퍼셉션으로 감지하고 물러나는 상태’로 이해하면, 창1의 거듭남 구조와도 훨씬 잘 연결됩니다.

 

 

 

AC.160, 창2:24,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AC.160-162)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창2:24) AC.160 ‘부모를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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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60, 심화 3, ‘온전한 천적 인간 상태, 곧 첫 번째 태고교회’

AC.160.심화 3. ‘온전한 천적 인간 상태, 곧 첫 번째 태고교회’ 그래서 이것은 단순 ‘하향 평준화’라기보다, ‘더 낮고 위험한 상태 안으로 내려왔지만, 동시에 더 자유로운 결합 가능성이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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