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60.심화

 

2. ‘하향(下向) 평준화

 

어느 정도는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스베덴보리 관점에서는 단순 ‘퇴보’나 ‘열화’(劣化)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더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분명 ‘하향’입니다. 태고교회 인간은 거의 직접적인 퍼셉션 안에서 살았습니다.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질서 안에 있었고,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산다는 것을 거의 살아 있는 감각처럼 알았습니다. 그런데 AC.160에 이르면 인간은 이제 ‘(flesh)이 됩니다. 곧 proprium과 자기감이 훨씬 강해지고, 주님의 생명을 직접 지각하던 상태에서는 멀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분명 이전보다 낮아진 상태, 곧 일종의 ‘하향’입니다.

 

그런데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 실패나 실수처럼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상태를 통해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태고교회 인간은 너무 직접적으로 천국 질서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처럼 자기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하게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반면 flesh 상태 안으로 들어온 인간은 자신을 훨씬 더 ‘나 자신’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주님을 자유롭게 사랑할 가능성이 열립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 ‘하향 평준화’라기보다, ‘더 낮고 위험한 상태 안으로 내려왔지만, 동시에 더 자유로운 결합 가능성이 열린 상태’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전보다 더 불완전하고 더 자기중심적으로 될 가능성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자발적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 전체에서 주님은 인간을 자동 순종 기계처럼 만들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기 자신처럼 느끼고, 심지어 자기 사랑으로 기울 가능성까지 가진 상태 안에서, 자유롭게 주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AC.160의 변화는 단순 ‘질 저하’라기보다, 위험성과 자유가 함께 커진 상태라고 보는 편이 더 가깝습니다.

 

이를 아주 거칠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 손 안에서 완전히 보호받는 상태는 안전하지만, 아직 독립적 인격 관계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자기 의지와 자기 판단이 강해지면 훨씬 위험해집니다. 반항도 가능하고 잘못도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바로 그 상태에서 비로소 ‘자발적 사랑’도 가능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 역사를 어느 정도 이런 방향으로 봅니다.

 

그래서 AC.160의 ‘영이 육이 되었다’는 변화는, 단순 추락만이 아니라 ‘자유와 proprium이 본격적으로 인간 존재 안에 결합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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