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66.심화
1.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장의 말씀 안에는 이러한 것들이 담겨 있으나, 여기에서 제시된 것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대상이 천적 인간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거의 아무도 그 상태를 알지 못하므로, 이 몇 가지조차도 어떤 이들에게는 불분명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Such are some of the things contained in this chapter of the Word, but those here set forth are but few. And as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who at the present day is known to scarcely anyone, even these few things cannot but appear obscure to some. (AC.166)
이런 상황이라면... 그럼에도 불구, 왜 말씀을 이렇게 옛날 이야기식으로 기록하셨나요? 좀 드러낼 건 드러내고 하여 현 인류의 눈높이에 맞추는, 그런 식의 기록은 불가한 무슨 이유가 있나요? 예전엔 구불구불 산길 도로였다면, 요즘은 필요하면 다리를 놓고, 또 필요하면 터널도 뚫어가며 도로를 직선화하는 것처럼 창세기 말씀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나요?
목사님 질문은 사실 거의 모든 현대인이 창세기와 AC를 읽으며, 한 번쯤 부딪히게 되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왜 이렇게 감춰 두셨는가?’, ‘왜 이렇게 상징과 표상과 옛날 이야기 구조 속에 숨겨 두셨는가?’, ‘차라리 현대 교과서처럼 직접적으로 쓰시면 안 되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베덴보리 자신도, 지금 목사님과 거의 비슷한 문제의식을 여러 곳에서 반복해서 다룹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베덴보리에게 말씀은 단순 ‘정보 전달 문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천국과 인간을 실제로 연결하는 살아 있는 구조물입니다. 즉 단순 교리 설명서가 아니라, 천국과 지상 사이의 상응 체계 자체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인간 이해 수준에만 맞춰진 책이 아니라, 천사들과 인간이 동시에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기록되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만약 창세기가 오늘날 현대 철학책이나 조직신학 교과서처럼 ‘속 사람은 이렇고, 겉 사람은 이렇고, proprium은 이렇다’ 식으로 직접 기록되었다면, 인간 지성에는 더 쉬웠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천국과 연결되는 다층적 상응 구조가 사라집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말씀의 진짜 힘은 단순 개념 설명에 있지 않고, literal sense 안에 heavenly things가 살아 움직이도록 담겨 있다는 데 있습니다.
목사님 비유대로 말하면, 말씀은 단순 직선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산 전체를 관통하며, 살아 있는 수맥과 연결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현대식 직선화는 인간 이성에는 편리할 수 있지만, 천국과의 유기적 연결은 오히려 약해질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문자(literal sense)를 단순 포장지가 아니라, 영적, 천적 의미를 담는 vessel, 곧 그릇으로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상태(state)에 따라 같은 말씀을 다르게 읽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수준으로 읽고, 단순한 신앙인은 단순한 신앙 수준으로 읽고, 천사는 그 안에서 heavenly things를 봅니다. 만약 모든 것을 노골적으로 직접 드러내 버리면, 인간 자유와 성장 과정 자체가 크게 제한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찾고, 사랑하고, 선택하며 열려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주 이런 말을 합니다. 진리가 naked하게 너무 직접 드러나면, 인간은 오히려 그것을 profane(모독)할 위험이 커진다고 말입니다. 즉 자기 사랑 안에 머문 채 가장 깊은 천적 진리를 직접 붙들면, 그것을 왜곡하고 자기 proprium에 이용해 버릴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그래서 말씀은 동시에 드러내고 숨깁니다. 이해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열리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문자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사실 주님 자신도 복음서에서 종종 비유(parable)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왜 직접 말씀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식으로 답하시지요.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 교육 기법이 아니라, 영적 질서의 문제로 봅니다. 천국 진리는 강제로 주입되는 정보가 아니라, 사랑 상태에 따라 점차 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지금 AC를 읽으며 느끼시는 이 답답함 자체도, 어쩌면 스베덴보리식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단순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기보다, 인간 사고 자체를 천천히 다른 층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현대인은 ‘정답을 즉시 달라’고 하지만, 말씀은 인간 존재 자체를 변형시키려는 듯 움직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느리고, 구불구불하고,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스베덴보리도 목사님 같은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공유합니다. 그래서 그는 AC 전체를 통해 literal sense 뒤에 숨은 internal sense를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풀어 설명하려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바로 ‘터널을 뚫는 작업’이었습니다. 다만 그는 literal sense 자체를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자 자체가 여전히 천국과 연결되는 가장 바깥 토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말씀이 단순 현대식 직선 교재처럼 쓰이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고 스베덴보리는 봅니다. 그것은 인간 이성만 만족시키는 책이 아니라, 천국과 인간, 문자와 영, 자유와 계시, innocence와 wisdom이 동시에 연결되는 살아 있는 구조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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