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7.심화
2. ‘렘4:22-23’
22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렘4:22, 23) My people is stupid, they have not known me; they are foolish sons, and are not intelligent; they are wise to do evil, but to do good they have no knowledge. I beheld the earth, and lo a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Jer. 4:22–23).
AC.17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예레미야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상태가 단순한 물질 우주의 초기 상태가 아니라, ‘거듭나기 이전 인간의 영적 상태’를 뜻한다는 점을 성경 자체로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예레미야 4장의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언어가 실제로는 인간 내면의 황폐 상태를 묘사하는 상응의 언어임을 보여 주는 결정적 병행 본문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본문을 보면 먼저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한 지식 부족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인식과 신앙의 상실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이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입니다. 이것은 이해력은 남아 있지만, 그 이해력이 선을 향하지 않고 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지혜가 거꾸로 된 상태입니다.
그다음에 바로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었다’는 표현이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땅’은 실제 지구가 아니고, ‘하늘’도 실제 우주 하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 안의 상태를 말합니다. ‘땅’은 겉 사람, 혹은 교회의 수용 상태를 뜻하고, ‘하늘’은 속 사람, 곧 진리와 선이 있어야 할 내적 영역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하늘에 ‘빛이 없다’고 합니다. 즉, 진리가 사라졌고, 주님의 빛이 비치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표현은 바로 창세기 1장 2절의 표현과 동일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통해 창세기의 창조 언어가 이미 선지서에서 ‘영적 황폐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의 ‘혼돈과 공허’는 물질 우주의 미완성 상태가 아니라, 아직 주님의 질서와 빛이 들어오기 전 인간 내면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예레미야 본문에서는 그 상태가 ‘죄와 무지와 신앙 상실’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빛 없음’은 물리적 어둠이 아니라 영적 어둠이며, ‘혼돈과 공허’는 주님에게서 분리된 인간의 내적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AC.17에서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가 사실은 ‘거듭남 이전 인간 상태’에서 ‘주님의 빛이 들어오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임을 입증하는 증거 본문으로 인용된 것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는 예레미야 4장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보라, 창세기의 언어는 이미 선지자들 안에서 인간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 역시 인간 내면의 새 창조, 곧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다.’
AC.17, 창1:2,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 : 거듭남 이전 인간의 실상'(AC.17-19)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And the earth was a void and emptiness, and thick darkness was upon the faces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moved upon the faces of 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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